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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 그 계약은 잊어주세요-93화 (93/100)
  • 93화

    “두 번 다시 그때와 같은 일이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절대로.”

    그러니 여기서 끝을 내야 한다. 이번엔 절대로 놓치지 않아.

    “네 녀석들이 이용한 녀석들 중에 마린족도 있었지.”

    “아, 마르피네스에게 보고는 들었지. 마린족, 그 어리석은 녀석이 욕심을 많이 부리는 바람에 바다의 신에 개입으로 일을 망쳤다지. 그리고 네 녀석의 연인이 마린족이고.”

    “네 녀석들 때문에 그녀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지. 죽은 죽음의 바다의 마녀도 마찬가지다. 왜 그리들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인지. 인간을 사랑하고 상처받고, 마녀가 되어 버리고 정말 어리석어. 기껏 마녀가 됐으면 도움이나 될 것이지 도움도 되지 않고 죽어 버리고 말이야.”

    “설마, 인어족도 이용한 것이냐?”

    카시스는 마녀가 죽어 시신도 남지 않자, 이러면 가족의 품으로도 돌아가지 못하지 않느냐며 울던 아일라가 떠올라 미간을 찌푸렸다.

    “멍청하게도, 내가 인간 녀석인 줄 알더군. 그 녀석은 진작에 배신하고 떠났는데. 내가 그 인간 친구 녀석도 이용하기는 했지. 어리석고 어리석은 인어족 같으니라고. 그 인어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것은 그 인어가 좋아했던 인간의 친구였던 것도 몰랐지. 정말이지, 이 세상에 사는 생명체들은 전부 어리석기 짝이 없어. 으하하하!”

    역시 이 녀석들은 살려 두면 안 된다.

    카시스는 아랫입술을 깨문 채 검을 꽉 움켜잡았다.

    “설마, 인어족 공주가 임신했다는 아이가 네 아이인가?”

    “그럴 리가. 인간 사이에서의 아이지. 인어 앞에 몇 번 더 나타났을 뿐이다. 그 친구와 함께. 그 친구 녀석이 내 정체를 눈치챘기에 없애 버렸지만.”

    환영족의 정체라면 보통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는데. 우리도 눈치채지 못한 환영족의 존재를 눈치챘다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눈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닌데. 따지고 보면 마녀가 되어 버린 인어족도 이들의 희생양이라는 말이군.

    “내 말을 엿들었거든. 아, 내가 자신의 친구와 조금 행동이 달라 보였었는지도 모르겠군.”

    “빌어먹을. 페르세우스 그자가 황궁에서 설치고 다니는 동안 네 녀석도 제국 내에서 잘도 설치고 돌아다녔군.”

    카시스의 입에서 욕지거리와 거친 말들이 튀어나왔다.

    이런 자식들에게 계속 휘둘리고 있었다니. 이 녀석들 때문에 제 소중한 연인이 울었다.

    제 가족에게 해를 입힌 마녀를 위해서 울었다. 시신조차 없으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지 않냐며, 마녀를 위해 울어 줬다.

    “네 녀석들만큼은 절대로 용서 못 한다. 더 이상 그러지 못하도록, 이번엔 쥐새끼처럼 숨어 다니지도 못하게 이번엔 실수로라도 놓치면 안 되겠어.”

    카시스 주위에 기운이 더 강해졌다. 무슨 짓을 하고 다닐지 모르는 녀석들을 더 이상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된다.

    “네 녀석들 때문에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야.”

    “-!!?”

    카시스가 검을 휘두르면서 오러를 실어 날린 수십 개의 검기들이 데르키오스를 향해 날아갔다.

    콰과광-!!

    “이런, 네 상관이 카시스를 정말 화나게 해 버렸군그래. 저 녀석이 저 정도로 화를 내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이걸로 두 번째인가? 저 녀석이 저렇게까지 진심으로 화내는 걸 보는 건.”

    킬리언은 마르피네스의 공격을 막아 내고 그를 화염으로 이루어진 마법에 가둔 채 말했다.

    “괜히 용쓰지 마. 넌 절대 거기서 못 빠져나와. 내가 너를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약하지 않거든. 그리고 우리가 괜히 쌍둥이 수호룡의 이름을 미들네임으로 받은 게 아니야. 나도 저 녀석 말에 동의해. 너희를 이번에도 놓치면 너희에게 당하는 희생자들이 늘어날 테지. 내 어머니는 본인이 원한 일이니 희생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도 저 녀석처럼 화가 나거든. 감히 나의 제국에서 멋대로 하고 다녔을 너희들을 생각하면 말이야. 여기서 끝을 내야 더 이상 희생자가 생기지 않고 희생자들 원한이 풀릴 테니.”

    “으윽! 속는 것들이 멍청한 거다!”

    “하아, 아니 속이는 쪽이 잘못이다. 이제 그만 사라져라.”

    “끼야악-!! 데르키오스 님!!”

    킬리언이 마르피네스에게 뻗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주먹을 쥐자 불이 강해졌다. 그 불길이 마르피네스를 옥죄고, 마르피네스는 결국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재가 되어 사라졌다.

    마르피네스를 태워 버릴 정도로 강한 불을 일으키던 마법은 그가 완전한 재가 되고 나서야 잦아들어 사라졌다. 그것을 지켜보던 킬리언은 카시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카시스라면 제가 도울 필요 없는 실력을 가졌지만.

    “카시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이성은 붙잡고 싸워라.”

    저도 카시스도 이성을 잃고 싸우게 되면 무슨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

    “걱정 마십시오. 이성은 제대로 붙잡고 있습니다.”

    제게 충고를 하는 킬리언을 힐끗 보며 대답하고는 앞으로 보며 짓씹듯이 말했다.

    “그만 나와라. 죽을 정도로 공격하지도 않았으니.”

    먼지가 가라앉자, 카시스의 공격을 막아 내지 못해 한쪽 팔이 잘린 데르키오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괴물 자식.”

    “설마 이 정도로 끝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하아-, 저 녀석. 이성을 붙들고 있다더니, 전혀 아니잖아.

    킬리언은 이마를 짚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편하게 죽을 거란 생각은 하지 마라. 네 녀석을 편하게 죽여 줄 생각은 없으니.”

    카시스는 데르키오스에게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크윽! 웃기지 마. 내가 쉽게 당할 것 같아!”

    콰앙!

    카시스는 제게 날아오는 공격을 검으로 막아 낸 다음, 쳐내어 다른 곳으로 날려 버렸다.

    저벅저벅.

    카시스가 다가갈수록 데르키오스는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뒤로 물러나다 벽에 막히자 옆으로 슬금슬금 걸었다. 그 모습이 너무 어이없어 카시스는 ‘픽’ 실소를 흘리고는 검을 휘둘러 검기로 데르키오스가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지금 너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려는 건가? 네 수하가 당했는데 살고 싶은가?”

    입이 삐뚜름하게 올라갔지만 그의 눈은 어둡게 가라앉았다.

    “젠장, 마물을 부르고 마법진만 제대로 발동되면.”

    “어디 한 번 해 봐. 네 뜻대로 되는지.”

    데르키오스의 말에 카시스가 걸음도 공격도 멈췄다. 그 순간 데르키오스 위쪽으로 수십 개의 빛의 검이 생기더니 그대로 내리꽂혔다.

    “으아악-!! 커헉!”

    “뭐 하시는 겁니까? 제가 끝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아, 너야말로 무엇을 하는 거냐? 내가 이성은 붙들고 싸우라고 하지 않았더냐?”

    “전 정신 멀쩡합니다. 이성도 제대로 붙들고 있습니다.”

    “내가 볼 땐 아니다.”

    “저런 녀석을 편하게 죽이실 생각입니까? 수 년 전부터 저 자들에게 이용당하고 희생당한 이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카시스가 검을 힘주어 잡고 부르르 떨었다.

    “후-, 누가 그걸 모르더냐? 더 이상 희생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도망친 녀석들을 찾으려 했던 것 아니냐? 그리고 누가 편하게 죽게 한다고 하더냐.”

    따악! 퍼퍼펑!

    킬리언이 손가락을 튕기자 데르키오스에게 박혀 있던 빛의 검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데르키오스의 몸도 터져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끄윽! 끄윽!”

    “역시 목숨 한번 질기군그래. 그 지경이 되고도 살아 있다니. 뭐, 죽지 않을 정도로 조절하기는 했지만. 끝은 네가 내거라. 네가 끝낸다고 하지 않았더냐.”

    “저보다 폐하께서 더 잔인하십니다. ”

    “나도 저 녀석들은 용서할 생각이 없거든.”

    제대로 숨쉬기가 힘이 들어 끅끅거리는 데르키오스를 무심하게 내려다보던 카시스는 그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고는, 비틀어 그으며 빼냈다. 극심한 고통에도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한 데르키오스의 숨이 끊어지자 카시스가 뒤로 물러났다.

    지켜보던 킬리언은 마법으로 시신을 태운 후에 파르미온의 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 이제 기회를 줬음에도 제대로 협조하지 않고 그 기회를 차 버린 파르미온 왕족의 처분만 남았나? 대공, 그대는 어찌하면 좋겠나?”

    “저는 파르미온 왕족의 처분에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폐하의 뜻대로 하십시오.”

    카시스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카시스가 밖으로 나가자 킬리언의 무심하고 차가운 시선이 파르미온 왕에게로 향했다.

    “짐이 모르고 있을 줄 알았나? 파르미온 왕국이 제대로 협력하고 있지 않다는 것과 남몰래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설마 제국을 무너트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내정이 회복된 지 몇 년 되지는 않았지만 왕국 따위에 무너질 플루투스 제국이 아니었다.

    “아, 설마 에류시온 공국이나 가이아 왕국이 도와줄 것이라 생각한 것인가? 아니면 환영족의힘을 빌리면 플루투스 제국을 무너트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참으로 어리석다. 환영족에게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짐은 정말 그 여자가 환영족인 줄 몰랐소.”

    “정말 몰랐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채 숨겨 줬는지, 그건 천천히 조사하면 될 일이고. 그대는 파르미온 왕국의 국왕으로서 실격이야. 플루투스 제국과 전쟁을 하려고 했던 것부터가 왕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이기지도 못할 전쟁으로 왕국민들을 위험에 빠트리려 했으니.”

    카시스가 나가고 기사들이 킬리언이 있는 장소로 들어왔다.

    “폐하!”

    “끌고 나가라.”

    “이거 놓아라! 놓으란 말이다! 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는 것이냐!”

    파르미온의 왕이 저를 붙잡는 기사들에게 소리치며 반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패전국의 왕을 대우해 줄 제국의 기사들이 아니었다.

    그때, 카시스는 밖으로 나와 기사들에게 끌려온 크레타의 말을 듣고는 미간에 주름이 갔다.

    “저한테 어떻게 이러실 수 있나요! 저를 쫓아낸 것으로 모자라 우호국인 저희 왕국을 침범하다니!”

    “쿡! 우호국? 플루투스 제국과 파르미온 왕국이?”

    카시스는 재밌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실소를 터트리고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플루투스 제국과 파르미온 왕국이 우호국이라? 재밌는 말을 하는군, 공주. 그리고 이건 공주와 공주의 아버지가 자청한 일입니다. 협조는 협조대로 안 하고 볼모로 온 공주는 제멋대로에 제 연인을 죽이려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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