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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 그 계약은 잊어주세요-76화 (76/100)
  • 76화

    “아일라.”

    아일라에게 제이드를 걱정하는 것을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슈레더의 말에 제가 동요했다는 것을 아일라도 알았나 보다. 왕비님이 잡혔다는 말에 동요했을 텐데 저까지 신경 쓰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래, 한 번 해 보자.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 그래서 출발은 언제 할 거야?”

    “내일 이른 아침.”

    결정을 했으면 바로 움직여야지. 어영부영 뜸을 들이다가는 계획을 망칠 수도 있어.

    아일라는 윌리엄과 이제키엘을 찾았다.

    “어디를 가시겠다고 하셨습니까?”

    “오해하지 말아요. 그냥 멜로디를 배웅하고 싶어서요. 저도 걱정이 되는데 멜로디가 아틀란의 상황을 살피러 간다고 하니까. 메르바 항구 마을까지는 같이 가고 싶어요.”

    이제키엘이 윌리엄을 바라봤다. 카시스가 자리를 비웠을 때 칼리스타의 모든 권한은 칼리스타에서 대공 다음 작위를 가지고 있는 기사단장인 윌리엄이 가지고 있었다.

    “전하께서 돌아오시면 함께 가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카시스가 돌아오기 전에 돌아올게요. 약속할 수 있어요.”

    “전하께서 언제 돌아오실 줄 알고 그런 말을 하십니까?”

    “후작 각하의 말이 맞습니다.”

    윌리엄과 이제키엘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아일라가 입을 열었다.

    “그럼 카시스가 돌아오는 날짜와 시간을 알아보고 연락 주면 되겠네요. 뭔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 아니에요.”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아니요. 디오스와 아키오스 경이면 돼요.”

    이 사람이 가면 일이 틀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윌리엄 경과 가면 안 돼.

    “위험합니다.”

    “위험하지 않아요. 디오스 경과 아키오스 경도 충분히 강한 것 아닌가요? 카시스가 내게 실력 없는 기사들을 호위로 붙여 주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러니 그 두 사람으로 충분해요.”

    “그래도 아가씨를 혼자 보낼 수는 없습니다.”

    “혼자 아니에요. 디오스와 아키오스 경도 같이 가잖아요. 저는 두 사람이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클로에와 라피스도 함께 갈 텐데 무슨 걱정이에요.”

    윌리엄 경도 카시스처럼 걱정이 심한 타입인가.

    “역시 제가 함께 가는 것이.”

    “정말 괜찮다니까요. 아니면 윌리엄 경은 자신의 부하들을 믿지 못하는 건가요?”

    아일라의 말에 윌리엄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자 아일라도 피하지 않고 마주 바라봤다.

    피하면 안 돼. 내가 시선을 피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경의 수하들을 믿어 보세요. 경도 바쁠 것 아니에요.”

    조용히 아일라를 바라보던 윌리엄이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언제 출발하실 겁니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아일라에게 이제키엘이 물었다.

    “내일 이른 아침에요.”

    “그리 서두를 필요 있습니까?”

    아일라의 대답을 듣고 생각에 잠긴 윌리엄 대신 이제키엘이 다시 물었다.

    “말했잖아요. 카시스가 돌아오기 전에 온다고요. 그러려면 서둘러야죠. 그럼 나는 그만 가서 내일 출발 준비를 할게요.”

    하지만 카시스가 연락도 하지 않고 예정보다 빠르게 돌아올 것이란 걸 아일라는 불행히도 알지 못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아일라가 집무실을 나가고도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는 윌리엄을 보고는 이제키엘이 입을 떼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뭔가 좀 이상해서 말입니다. 윈터우드 경은 느끼지 못했습니까?”

    “저도 뭔가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게 뭔지 모르겠군요.”

    “미카엘.”

    윌리엄이 미카엘을 부르자 두 사람만 있는 줄 알았던 집무실 구석에서 미카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일라는 모르고 있었지만 미카엘도 계속 집무실에 있었다. 미카엘이 본래 레안드로의 수하인 데다 본업이 암살 쪽이라 인기척을 숨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라피스에게 아가씨께 눈을 떼지 말고 지켜보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시하신 건 준비했습니다.”

    미카엘이 준비해 놨다는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듣고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미카엘이 조용히 집무실에서 사라졌다.

    “정말 두 백작가를 그리 처리하실 겁니까?”

    “전하의 명입니다. 윈터우드 백작. 임페리얼 숲에서 이종족 노예 거래를 하는 프란츠 백작을 급습해 사고사로 처리하면 됩니다.”

    “정말 그래도 되는 겁니까?”

    “이게 누구에게서 나온 계획이라고 생각합니까? 전하의 뜻입니다.”

    “하아-, 그럼 어쩔 수 없지요.”

    카시스가 지시한 일이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두 백작가는 그리 처리하고. 아가씨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후작 각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알지만 벨로체 자작에게 아가씨와 동행하도록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이제키엘의 말에 윌리엄이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나 윌리엄은 아나스타샤의 이야기가 나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전하께서 좋아하실 것 같지 않습니다만.”

    “하지만 벨로체 자작도 뛰어난 기사인 것을 알지 않습니까. 각하께서 불편하시면 자작에게는 제가 부탁해 보겠습니다.”

    “······.”

    윌리엄도 아일라가 걱정되는 것은 마찬가지고 아나스타샤가 실력이 있는 기사인 것도 알기에 부정도 긍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키엘이 직접 가서 말해 보라는 대답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게 되면 카시스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럼 허락하신 것으로 알고 벨로체 자작께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키엘이 일어나 집무실을 나갔다.

    * * *

    “아가씨, 꼭 가셔야겠어요?”

    “응, 꼭 가야 해.”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카시스는 안 된다고만 할 게 뻔해.

    위험하다고 밖에도 잘 못 나가게 했으니까.

    “얼마 전에 안 좋은 일이 있으셨는데 그냥 더 이따가.”

    “그럼 클로에는 오지 마.”

    윌리엄 경에겐 클로에를 데리고 가기로 했지만 안 데리고 가는 것이 편하다. 재울 사람도 줄어들고.

    “아가씨가 가시면 당연히 저도 가요. 아가씨를 보필하는 것이 제 일이에요. 하지만 저는 아가씨께서 마음을 바꾸셨으면 좋겠어요.”

    “아니, 나는 내일 이른 아침에 떠날 거야. 이미 마음 굳혔으니까 더 이상 말하지 마. 더 말하면 정말 두고 갈 거야.”

    아일라의 단호한 말투에 클로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인어족의 왕을 만나야 해. 만나 주지 않을 수 있지만······. 아니야 반드시 어떻게든 만나야 해.

    인어족의 왕을 만나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죽음의 바다로 가서 마녀를 만나는 것.

    나는 인어족과 불화가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아. 그건 아버지도 같을 거야. 비록 조종당하고 계시만 싸움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계실 리가 없어. 인어족의 왕도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 싸워야 한다면 마물과 싸워야 해.

    짐을 꾸리던 아일라는 잠시 멈칫해 제 옷차림을 내려다봤다.

    ‘역시 헤엄칠 때 불편하겠지. 물에 젖으면 무겁고 달라붙어서 헤엄치기 힘들 것 같아. 신발도 필요 없을 거고.’

    그렇다고 옷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조금만 가져가자.”

    아일라는 싸 놓은 옷을 꺼내더니 딱 두벌만 챙겼다.

    “그거로 부족하지 않을까요?”

    “아니, 이걸로 충분해.”

    이 드레스를 입고 바다로 들어갈 수 없으니까. 그리고 드레스를 입고 바다로 들어가면 헤엄치는 것이 힘든 건 물론이고 드레스를 버릴 것 같단 말이야. 이거 꽤 비싸던데.

    다음 날, 이른 아침. 메르바 항구 마을로 출발하려던 아일라는 곱슬거리는 금발의 미녀를 보고는 당황스러워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뭐, 뭐지?

    “아가씨와 함께 갈 아나스타샤 벨로체라고 해요.”

    얼마 전에 만났던······. 그런데 이 사람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아니 방금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저희와 같이 간다고요?”

    “네, 그렇게 됐으니 잘 부탁해요.”

    왜?

    “아무래도 불안해서 아가씨 호위를 부탁했습니다.”

    아일라는 이제키엘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아니, 그러니까 왜?!

    “벨로체 자작도 뛰어난 기사입니다. 저 대신 가는 겁니다.”

    윌리엄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그가 다가오고 있었다.

    필요 없는데. 왜 자기 대신 다른 사람을 보내냐고. 클라우디스 경들만으로 충분하다니까.

    “벨로체 경. 아가씨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너희도 아가씨께 무슨 일이 생기지 않게 잘 지켜야 할 거다. 불순한 이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미리 차단해라. 그것이 귀족이라고 할지라도 신분을 막론하고 막아라. 벤자민 프란츠 같은 자가 아가씨께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럼 그다음은 전하께서 알아서 하실 거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아나스타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윌리엄은 미간을 살포시 찌푸리며 말하고는 디오스와 아키오스에게 명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는 하녀 복장을 입고 있는 라피스를 보자 라피스가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끄덕였다. 미카엘이 그가 한 말을 잘 전한 모양이었다.

    “아니 ,호위는 늘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는데요.”

    “그리 말씀하셨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이제키엘 경.”

    윌리엄이 이제키엘을 부르자 그가 수정구 하나를 꺼내서 아일라에게 건네줬다.

    “통신석입니다. 목소리만 들리는 겁니다. 얼굴까지 볼 수 있는 통신석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서 이거라도 가지고 가십시오. 사용법을 알려 드릴 테니 잘 기억하셨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십시오.”

    이제키엘은 아일라에게 통신석 사용법을 설명해 줬다. 지금 칼리스타에 영상까지 되는 통신석은 카시스의 집무실에 있는 것과 파르미온 왕국으로 가 있는 레안드로 그리고 황제 킬리언이 가지고 있는 통신석까지, 세 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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