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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 그 계약은 잊어주세요-74화 (74/100)
  • 74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금술이 얼마나 좋은데. 하지만 아버지가 변하셨던 게 저주 때문이라는 게 걸려.”

    “아가씨.”

    방 안을 배회하며 혼잣말을 하던 아일라는 클로에의 목소리에 멈춰서 고개를 돌렸다.

    “클로에.”

    “죄송해요. 노크를 하고 불러도 대답이 없어 무슨 일이 생기셨나 싶어, 무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들어왔어요.”

    “아니, 클로에라면 괜찮아. 그런데 몸은 괜찮아? 나 때문에 다친 것 같았는데.”

    “괜찮아요. 걱정 끼쳐 죄송해요.”

    내가 내 힘을 좀 더 제대로 다룰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다른 사람들도 지킬 수 있었을 거다. 게다가 클로에를 다치게 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 카시스를 내가 다치게 할 뻔하지도 않았을 텐데.

    나는 왜 아직도 내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걸까? 어머니는 예전보다 나을 거라고 하셨지만 전혀 나아진 것 같지 않아. 좀 더 노력해야 해. 하지만 시간이 없어. 아버지와 어머니를 구해야 해. 우선 슈레더를 만나서 다시 확인해야겠어.

    “클로에. 나 감옥에 가고 싶어.”

    “네? 어디를 가시고 싶으시다고요?”

    “슈레더를 만나야겠어.”

    “네? 안 돼요. 감옥에 가시다니요. 안 될 말이에요.”

    클로에가 말렸지만 아일라는 방을 나섰다. 그리고 제 방 앞에서 호위로 복귀한 디오스 그리고 아키오스와 마주쳤다.

    “아가씨, 어디 가시는 겁니까?”

    “감옥에요. 그러니 경들이 안내 좀 해 줘요.”

    디오스와 아키오스가 서로 마주 보고는 다시 아일라를 바라봤다.

    “감옥이요?”

    “거기는 왜 가시려는 겁니까?”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

    “아가씨!”

    아일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비명을 지르듯 부르는 클로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옥은 험한 곳입니다.”

    “아가씨께서는 가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들으셨죠? 아가씨.”

    클로에가 아일라를 다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아일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꼭 만나야 돼.”

    더 이상 누군가의 뒤에 숨어서 도망칠 수는 없어. 난 아틀란에 하나뿐인 공주야.

    위험하다고 해서 숨고 도망치고, 보호받기만 해서도 의지만 해서도 안 돼.

    내가 싸워서 아틀란도 되찾고 아버지도 구할 거야.

    나는 아틀란의 왕의 딸 아일라 아틀란이니까.

    “나는 슈레더 악시온을 꼭 만나야 돼.”

    “아키오스. 단장님께 가서 알려.”

    “형?”

    “어서.”

    확고한 아일라의 목소리에 디오스가 제 옆에 있는 아키오스에게 말했다. 망설이던 아키오스는 윌리엄이 있는 곳을 향해 뛰어갔다. 본래는 칼리스토 대공인 카시스의 허락이 필요하지만 그가 자리를 비웠으니 윌리엄의 허락이 필요했다.

    “아키오스 경이 단장님께 갔으니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아가씨께서 가시고 싶다고 하셔도 저희가 마음대로 모시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키오스의 말을 전해 들은 단장님이 곧 달려올 터였다.

    클로에뿐만이 아니라 디오스와 아키오스에게까지 막히자 다시 방으로 들어온 아일라는 윌리엄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40분이 지나도 그는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아일라가 나가기 위해 다시 방문을 열었을 때 그 앞에 윌리엄이 서 있었다.

    “어디를 가시려는 겁니까?”

    “하도 안 와서 내가 직접 가려고요.”

    “보고는 받았습니다. 감옥에는 왜 가시려는 겁니까?”

    “거기 갇혀 있는 슈레더 악시온을 만나야겠어요.”

    아일라가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아는 윌리엄의 미간이 좁혀졌다.

    “만나서 어쩌시려는 겁니까?”

    “해결책을 찾을 거예요. 저는 저 때문에 누군가 다치는 게 싫어요. 더 이상 뒤에 숨어서 보호받지도 도망치지도 않을 거예요.”

    나 때문에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이 다쳤어. 더 이상 카시스가 다스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게 해서는 안 돼. 그게 마린족의 공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어요.”

    “전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시면 안 됩니까?”

    하지만 카시스는 아무것도 못 하게 할 게 뻔해. 밖에 나가는 것도 허락을 잘 안 해 주는 사람인데.

    “안 돼요. 이건 제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에요. 더 이상 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해결해야만 해.

    “대공 전하께서 그 말을 들으셨다면 화내실 겁니다. 그리고 그런 곳에 아가씨를 모시고 갔다가는 저희가 죽습니다.”

    “죽어요? 왜요?”

    “첫 번째 이유는 전하께서 아가씨가 그런 곳에 발을 들이는 것을 싫어하실 테고 두 번째 이유로는 아가씨께서 그자를 만나는 것을 싫어하실 테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카시스가 죽이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진짜 죽이지는 않겠죠. 다만.”

    대련이라는 명목으로 죽기 직전까지 패 놓을 겁니다, 라는 말은 윌리엄의 입 안으로 사라졌다.

    “다만?”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꼭 만나야 해요. 만나게 해 주세요. 카시스에게 비밀로 하면 되잖아요.”

    비밀로 한다고 카시스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은 하지 않지만, 단호하게 만나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아일라를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그런 아일라를 말린다는 명목으로 그녀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댈 수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단,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오라버니!”

    클로에가 윌리엄을 소리쳐 불렀다.

    오라버니? 남매였나? 전혀 안 닮았는데. 그리고 성도 다르고.

    “클로에와 저는 친남매는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을 뿐입니다.”

    아일라가 멍하니 바라보자 윌리엄이 설명했다.

    “제가 함께 가면 괜찮을 겁니다. 그래도 여기서는 대공 전하 다음으로 강하니 말입니다.”

    윌리엄은 카시스 같은 마검사는 아니어도 오러를 사용하는 소드마스터였다.

    “그럼 가서 만나도 되는 거죠?”

    “예, 그렇습니다. 하나, 그자가 아무리 구속구를 차고 감옥 안에 있다 할지라도 너무 가까이 가지는 마십시오.”

    “알았어요. 가까이 가지 않고 이야기만 할 거예요.”

    윌리엄은 속으로 낮은 한숨을 내쉬고는 슈레더가 있는 감옥으로 아일라를 안내했다.

    어두운 감옥 통로에 구둣발 소리가 들리더니 한 곳에서 멈춰 섰다.

    “슈레더 악시온.”

    슈레더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달려들듯 철창을 잡았다. 아일라는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아일라,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난 무사할 거야. 무사하지 못하는 건 너하고 네 아버지지.”

    “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덜떨어진 반푼이, 마린족의 수치 주제에.”

    콰앙!

    “으악!”

    윌리엄이 철창을 걷어차며 철창을 잡고 있는 슈레더의 손을 짓밟았다.

    “말이라는 것은 상황을 봐 가면서 가려서 하는 거다.”

    “가만 안 둘 거야, 인간.”

    “할 수 있으면 해 봐. 너 하나 정도 내가 어쩌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란 걸 알아야지.”

    “잠시만요, 윌리엄 경.”

    윌리엄 경도 화나면 무섭구나.

    “잘 들어. 슈레더 악시온. 나는 네 아버지도 너도 용서 못 해. 바다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야. 그런데 감히 제 욕심을 채우려 내 아버지를 꼭두각시로 만든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반푼이 공주 주제에.”

    슈레더가 씹어 뱉듯 말했다.

    “그 입 다물어. 난 바다의 왕 아슐레이 아틀란의 딸이야. 네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어. 내가 왜 너와 각인 의식을 하지 않았는지 알아? 네 더럽고 추악한 욕심을 알았기 때문이야. 악시온가가 아무리 왕이 되려고 발버둥을 쳐도 너희는 될 수 없어. 아틀란의 진정한 왕은 오직 바다의 신, 포르세우스 님이 정하시니까. 내가 봐도 너희는 실격이야. 바다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운 좋게 공주로 태어난 주제에 감히!”

    “운이라고 했어? 뭐, 운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희는 그동안 아버지가 친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면 안전하게 지냈잖아. 아틀란을 세운 것도 내 아버지였어. 역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지. 마린족에겐 오랫동안 왕이 태어나지 않았다. 그게 왜일 거라고 생각해? 너희 중에는 왕이 될 자격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야. 내 아버지는 누구보다 바다를 사랑하셔. 너흰 아니잖아. 권력욕만 높을 뿐. 앞에서는 네네, 하며 말을 듣는 체하다 뒤돌아서면 바뀌지. 아버지는 그걸 아셨기에 악시온을 멀리하셨던 거야.”

    아버지께서 저주 때문에 변하지 않으셨다면 내 말도 들어주시고 지금 이런 사달이 일어나지 않았겠지.

    “말해. 아버지께 뭘 먹인 거야? 분명 저주 때문이기는 하지만 바이칼이 뭔가를 먹였다고 했어.”

    아버지가 변하신 건 분명 쓰러지고 난 이후지만 그건 저주 때문이 아닐 거야.

    “뭔가를 먹였다고 했어. 그게 뭐야?”

    “내가 알 게 뭐야? 어차피 네 아버지만 아니었으면 우리 아버지가 왕이셨겠지.”

    “말했지. 너도 네 아버지도 왕이 될 자격은 없다고. 너희 같은 자들이 정권을 잡으면 망해. 아니 멸망하고 말 거야. 제 욕심만 챙기려는 쓰레기들.”

    “뭐라고? 이게 듣자 듣자 하니까.”

    “난 마린족의 공주야. 예의를 지켜.”

    “반푼이 공주 따위가 인간에게 결국 마린족을 팔아넘기면서! 배신자 주제에 공주라고?”

    내가 인간을 반려로 삼으려고 했던 건 내 꿈을 위해서였어. 비록 지어 낸 결말이었다는 것이란 걸 알게 됐지만, 그래도 타종족 간의 사랑 아름답잖아.

    꿈을 꾸는 게 뭐가 나빠. 꿈을 이루려는 게 뭐가 나빠.

    분명 이 세상에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야. 그렇다고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야.

    나는 반드시 카시스와 함께하면서 사람들과 교류할 거야, 서로 도울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말겠어.

    “나는 아버지를 되찾을 거야. 그리고 내가 네 각인자가 될 일은 없어.”

    “될 거라고 생각해? 정신을 흐트러트리는 약을 계속 먹어 왔는데. 너도 알아보지 못할 텐데.”

    “뭐라고?”

    아버지. 바이칼 악시온. 절대로 용서 못 해.

    삐뚜름하게 웃는 슈레더를 보며 주먹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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