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아까부터 시도는 해 보고 있지만 소용없어요. 지금 아일라는 저희 왕께서만 사용하시던 바다 신의 힘, 절대복종을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아일라가 아틀란의 유일한 후계자이니 절대복종을 사용하지 못할 일은 없겠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이 정도면······.”
왕만이 아일라를 막을 수 있어.
“아일라, 정신 차려!”
“아, 아가씨?”
“다가가지 마!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폭주하고 있어.”
멜로디가 소리쳤지만 늦었다. 물줄기가 클로에를 쳐냈다.
“클로에!”
윌리엄이 놀라서 클로에에게 다가가 감쌌다.
“윌, 오라버니.”
클로에가 저를 부르는 소리에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봤다. 오라버니라는 소리는 정말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었다. 다시 듣는 오라버니라는 호칭이 이런 상황에서라니.
“아가씨를······.”
“라피스, 잠시 클로에를 부탁하지. 나는 아무래도 아가씨를 말려야 할 것 같으니.”
말을 끝맺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클로에를 땅에 편하게 눕히고는 라피스에게 부탁했다. 라피스는 아일라의 호위였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클로에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제키엘 경. 좀 도와주십시오. 아가씨를 말려야 할 것 같으니 말입니다.”
“전하 다음으로 강하신 후작 각하께서 제게 도움을 청하십니까?”
“아가씨를 다치게 하면 전하께서 화내실 테니까요. 그리고, 마린족 왕족의 힘이란 상상 이상으로 상당한 압박감이 듭니다.”
설마, 제 힘을 제대로 조종하지 못하던 아가씨의 힘이 이 정도일 줄이야. 솔직히 제가 제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제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황제 폐하와 칼리스토 대공 정도로 괴물은 아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누가 설명 좀 해 줄 수 있나?”
윌리엄이 자세를 잡고 이제키엘이 마법을 사용하려고 하던 그때, 이곳에서 들리면 안 되는 카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하?”
“전하께서 왜?”
카시스는 주변을 살펴봤다. 한창 복구되어 가고 있던 곳이 다시 물바다가 되었다. 거기다 엉망진창이 된 중앙 광장과 마을, 물속에 갇혀서 괴로워하는 전에 본 적 있는 마린족 한 명. 그리고 제 앞에 분수를 터트린 아일라.
카시스는 황태후와 다투고 나서 방으로 돌아와 쉬고 있었다. 그런데 이마가 뜨거워지더니 각인이 드러나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의 통증이 찾아왔다. 그리고 너 같은 건 죽어 버리라는 아일라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아일라.”
저를 부르는 것을 안 것인지, 초점이 없는 아일라의 눈동자가 카시스에게로 향했다.
설마 내 불안감은 이것이었나?
“전하!”
“위험합니다!”
아일라가 카시스를 알아보지 못하고 공격했다. 그것을 본 윌리엄이 카시스의 앞을 가로막았고 이제키엘은 바로 보호 마법을 시전했다.
“너희는 뒤로 물러나 있어라.”
“위험합니다. 전하.”
“지금 그거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윌리엄 러셀 후작.”
카시스는 아일라에게 다가가며 검을 빼 들었다.
아일라를 다치게 할 생각은 없지만 지금 상태로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아일라.”
“······.”
“아일라, 제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까?”
카시스의 말에 아무런 반응이 없던 아일라가 카시스를 향해 팔을 내뻗자 물줄기가 곧게 카시스를 향해 날아갔다. 카시스는 검의 오라를 두르고 물줄기를 가르자 두 갈래로 나눠졌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눠진 물줄기는 방향을 틀어 그의 뒤를 노리고 날아왔다. 카시스는 뒤돌아서 제게 날아오는 두 줄기 중 하나는 쳐냈다. 그러자 한 줄기는 땅으로 떨어져 ‘펑!’ 소리를 냈고, 검으로 버티며 막고 있던 한 줄기는 공중으로 날려 터뜨렸다.
“아일라.”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겁니까?
카시스는 제게 날아오는 물줄기들을 쳐내거나 막아 내며 아일라에게 다가갔다.
“아일라. 정신 차리십시오.”
카시스가 아일라의 앞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아일라의 얼굴에 가져다 대며 그 이름을 다시 한번 부르곤 그녀를 품에 가뒀다. 그 순간 아일라의 뒤에서 여러 개의 물줄기가 솟아 나와 곧게 뻗어 나가다 휘어서 카시스의 등 뒤를 노렸다. 하지만 카시스는 품에 가둔 아일라를 놓지 않아 무방비하기 그지없었다.
“전하, 위험합니다.”
“아일라, 괜찮습니다. 진정하십시오. 괜찮지 않으면 제가 괜찮게 만들 겁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진정하십시오.”
그는 말을 끝내고 고개를 숙여 아일라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그의 등 뒤로 쇄도하던 물줄기들이 멈췄다.
“카, 시스?”
“이제 저를 알아보겠습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물줄기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 돼. 제어가 되지 않아요. 피해요.”
“걱정 마십시오. 그대가 저를 다치게 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아니까. 그러니 진정하고 집중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움직이는 물줄기들을 향해 멈추라고 말해 보십시오.”
“나는 못 해요.”
“아니요. 그대라면 할 수 있습니다. 그대의 힘을 믿으십시오.”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니, 해내야 해. 내가 다루는 힘인데 내가 제어를 하지 못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치고 말 거야.
어머니도 이제 예전보다는 수월하게 힘을 다룰 수 있다고 하셨잖아. 나는 할 수 있어.
멈춰.
카시스가 다치는 게 싫어. 멈춰.
제발 멈춰 줘. 카시스를,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마!
카시스가 다시 아일라에게 입을 맞췄다. 아일라가 눈을 감자 두 사람의 이마에 각인이 드러나며 빛이 났다. 그러면서 다시 움직이던 물줄기들이 카시스의 등에 닿기도 전에 펑 터지며 사라졌다.
“그것 보십시오.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제야 아일라를 놓아준 카시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아일라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내가 해낸 거야? 내가 내 힘을 제어한 거야?
“잘했습니다. 아일라.”
“카시스 덕분이에요. 카시스가 저를 믿어 줬잖아요.”
그런데 잠깐만. 나 방금 카시스와 입 맞추지 않았었나? 마, 맞췄잖아! 그것도 사람들 앞에서! 꺄아아-!!
아일라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아일라는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왜 그럽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쿵!!
“쿨럭! 쿨럭! 으윽!”
카시스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자 놀란 아일라는 비명을 지를 뻔한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아일라가 만들어 낸 물의 구체에 갇혀 있던 슈레더가 땅으로 떨어지면서 막혔던 숨이 트이자 목을 잡고 마른기침을 했다.
카시스와 아일라의 시선이 슈레더에게로 향했고 슈레더를 잊고 있던 아일라가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이 이름을 불렀다.
“아, 슈레더.”
“쿨럭! 컥! 이거 뭐야? 되다 만 마린족의 공주 따위에게 이런 힘이 있다고?”
땅에 엎드려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허리를 굽히고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괴로워하던 슈레더의 목에 서늘하고 차가운 날붙이가 닿았다. 그리고 얼마 후 ‘퍼억!’이라는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슈레더의 허리에 무게감이 실리며 땅과 배가 밀착했다.
“말을 가려서 하는 것이 좋겠군. 저번에 혼이 덜 나셨나. 감히 누구에게 그딴 말을 하는 거지.”
아일라에게 말할 때와는 다르게 살얼음판 같은 시리도록 차가운 목소리였다.
“내가 내 거한테 뭐라고 말하든지. 으아악!!”
“누가 네 거라는 거냐?”
슈레더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카시스가 그를 밟고 있는 발에 힘을 주며 비볐기 때문이다.
“으아악!! 이 자식, 죽여 버린다!”
“할 수 있으면 해 봐.”
카시스는 발을 떼고 슈레더를 일으켜 멱살을 잡고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한 말 중 틀린 말 하나를 정정해 주지. 아일라는 네 것이 아니다. 아일라는 내 여인이다. 그리고 나는 내 여인을 빼앗으려고 하는 자를 보고만 있지 않아.”
카시스는 슈레더를 내동댕이치면서 말하고는 지시를 내렸다.
“여기 다시 복구 시작하고, 그 자식 힘 사용하지 못하게 구속구 채워서 지하 감옥에다 가둬.”
“전하, 송구하지만 저자가 가진 것은 마력이 아닙니다.”
“왜 못 알아듣는 척을 하지? 이 녀석 전용 구속구 있잖아. 예전에 다니엘이 차고 있던 것 없애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개조까지 하지 않았나.”
“정말 채웁니까?”
“채워. 더 이상 내 영지에서 날뛰며 물바다로 만드는 것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말려들게 해서 다치게 하는 것은 용서 못 한다.”
전에도 이번에도 슈레더가 원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하 수로를 끌어 올려서 터트린 것도, 분수를 부숴서 물바다로 만든 것도 슈레더가 한 짓은 아니었다.
“카시스, 그를 죽이면 안 돼요. 바이칼 악시온과 거래할 수 있는 패가 될 거예요.”
“그대가 원한다면 당장은 살려 두겠습니다.”
하지만 카시스는 제 여인을 노린 자를 계속 살려 둘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
“다시 가 봐야 합니다. 느낌이 좋지 않아 와 본 것뿐입니다. 다친 곳 있습니까?”
“아니요. 없어요.”
아직도 무언가 불안했지만 아직 돌아와도 된다는 폐하의 허락이 없었다. 제가 파르미온 왕국으로 직접 건너가겠다는 것에 대한 허락도 받지 못했다.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리스타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제 마음이 일러 주는 것처럼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하지만 그 불안감은 이렇게 아일라를 마주하고 있는데도 사라지지 않는다.
대체 이 불안감은 ‘뭐지?’라는 생각을 할 때 아일라가 그를 불렀다.
“카시스?”
“그만 성으로 돌아갑시다.”
아일라를 성에 데려다주고 황성으로 다시 가서 마무리를 짓고 돌아와야 했지만 자꾸만 드는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카시스는 아일라를 데리고 돌아가 방까지 데려다줬다.
“정말 다친 데 없습니까?”
“없다니까요.”
“정말 없습니까? 제게 숨기는 것 아닙니까?”
“아니, 왜 사람 말을 못 믿어요.”
“하아-, 알겠습니다. 믿겠습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진료는 받으십시오.”
아니 믿는다면서요!
“제가 그대가 다치지 않았다는 말과 진료를 받는 건 별갭니다.”
뭐야 그게?
아일라가 멍하니 카시스를 올려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