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님, 그 계약은 잊어주세요-59화 (59/100)
  • 59화

    아일라와 내 반려의 각인을 끊을 생각인가? 그렇게는 안 돼.

    “저는 아일라와 각인을 끊을 생각이 없습니다.”

    “전하!”

    조용히 세레스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카시스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이 인간들을 안 좋게 생각하고 싫어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아일라의 반려를 그만둘 생각이 없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요?”

    “진심입니다. 처음부터 진심이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저는 아일라를 원하고 사랑합니다. 반대해도 각인을 끊고 헤어질 생각은 없습니다.”

    아일라는 계약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아니다.

    “불행해진다 할지라도?”

    “불행해진다고 누가 정한 겁니까? 이야기 속 인간이 인어족을 버렸듯이 제가 아일라를 버릴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겠죠. 하지만 저는 아일라를 버리지 않을 겁니다.”

    “과연 그 사람도 처음부터 제 친우를 버릴 생각이었을까요? 진심이었다면 버리지 않았겠죠.”

    “그 이야기 속 인어족과 친구였습니까?”

    “말리지 못했던 제 잘못이죠. 오히려 그 사랑을 응원했습니다. 비극으로 치닫을 줄도 모르고 말이죠. 제 딸은 그리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하아, 정말 미치겠군. 왜 전부 같은 말만 하는 거지?

    “어째서 불행해질 것이라 단정 짓는 겁니까?”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초를 치는 걸까?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되지 않나요?”

    “아니요,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불행해질 생각도, 아일라를 불행하게 만들 생각도 없습니다.”

    나도 아일라도 행복해질 거다. 제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 거다.

    아일라를 놓고 싶지 않다. 다른 남자 옆에 있는 아일라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제가 각인을 끊는 일에 동의하는 일은 없다. 절대로.

    “꿈을 꿨습니다. 바다의 신이라고 하더군요. 저를 아일라의 진정한 반려라고 했습니다.”

    “웃기지 마!”

    제일 먼저 격한 반응을 한 것은 세레스가 아니었다. 제이드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내 말이 거짓 같으면 그대의 신에게 직접 물어봐. 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아,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인가? 내게 마린족 왕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줬지. 조종당하고 있다고 말이야.”

    “인간의 말 따위.”

    “제이드, 그만두세요.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 않으니. 그이가 조종당하고 있는 것은 그대의 눈으로도 직접 확인하지 않았나요. 그대의 부상이 더디게 낫는 것도 그이에게 공격당했기 때문이죠.”

    “경이 예민하게 날을 세우는 이유는 알고 있어요. 걱정 말아요. 경이 걱정하는 만큼 저는 약하지 않습니다. 경계를 늦출 생각은 없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부를 믿을 수는 없는 것은 사실이니까, 하고 작게 덧붙였다.

    “마린족이라면 누구라도 싸움에서 지지 않을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제 곁에는 제랄드 경과 에리얼, 그리고 다른 병사들이 있으니 제이드와 멜로디는 아일라를 지켜 주세요.”

    “명 받들겠습니다, 왕비님.”

    “잠시 혼자 있게 해 주겠어요? 아일라의 봉인을 풀고 힘을 안정시키기는 했지만, 제가 옆에서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이 그대의 집인 것을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용히 아일라의 상태를 지켜보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전부 나가도록 하죠.”

    세레스가 카시스를 올려다보며 부탁하자 카시스는 정중히 말하며 눈짓했다. 그러자 이제키엘과 대공가의 사람들이 나가고 제랄드도 제이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나가자는 눈짓을 했다.

    “미카엘, 이들이 머물 방을 주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하나, 갑작스러운 손님들이라 준비가 부족해 불편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지. 이 사람을 따라가면 쉴 수 있을 겁니다.”

    방을 나와 미카엘에게 지시를 내린 카시스는 아일라의 닫힌 방문을 잠시 바라보다 걸음을 옮겼고 윌리엄이 그 뒤를 따랐다.

    “따라오십시오. 방이 준비될 때까지 잠시 응접실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제이드.”

    “전 여기 있겠습니다.”

    “너도 쉬어야 한다.”

    “왕비님과 공주님을 지켜야 합니다.”

    인간들 따위 누가 믿을 줄 알고. 절대로 믿지 않아.

    “제이드, 전하께서는 절대로.”

    “내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라. 난 네가 내 형이라는 말 안 믿어.”

    제이드가 다니엘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제이드, 네 형이 맞다. 네 아버지와 내가 못 알아볼 리가 없지 않니?”

    “누가 제 형입니까! 저 머리와 눈동자색은 얼마든지 바꿔서 속일 수 있습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어머니!”

    “제이드 그만해. 제가 제이드 곁에 있을게요. 제이드를 여기에 혼자 둘 수는 없어요. 두 분은 가서 쉬세요.”

    “그건 안 됩니다.”

    미카엘의 미간이 살며시 주름이 갔다.

    “너희에게 왕비님과 공주님을 맡길 수 없다.”

    제이드가 미카엘에게 날카롭게 바로 대

    “전하, 파르미온의 공주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응했다.

    “하아, 너희 둘도 제이드와 멜로디와 함께 남아라. 인간들을 온전히 믿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니.”

    제랄드가 낮은 한숨을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미카엘에게 안내하라고 재촉하며 부인과 나머지 열 명과 그 뒤를 따라갔다.

    “인간들에 대한 경계심과 적대감이 심하군. 특히 다니엘의 아우라는 자 말이야.”

    “저도 느꼈습니다.”

    “다니엘 경도 믿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윌리엄과 이제키엘의 말에 카시스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니엘의 가족. 제가 다니엘을 돌려보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이곳에 남은 것은 다니엘의 선택이었고 저는 그 선택을 존중해 줬다.

    감금해 두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계속 그 상태로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전하, 아가씨께서 깨어나셨습니다.”

    카시스가 생각에 잠겼다 입을 열려고 할 때, 집무실 문이 급히 열리며 미카엘이 들어와 보고했다. 아일라가 깨어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카시스는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 * *

    카시스와 제랄드 일행이 나간 후에 세레스는 침대에 걸터앉아 제 딸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쓸어 주고 있었다.

    “아일라.”

    “이 일을 어쩌면 좋으니? 아일라.”

    내가 좀 더 빨리 눈치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슐레이를 제정신으로 돌려놓아야 해. 아일라가 슬퍼하지 않게.

    “바다로 돌아가야겠어. 내가, 내가 막야야 해. 그이와 아일라가 대치하는 것을 막아야 해.”

    아일라, 나의 소중한 아이. 잘 지내야 한다.

    세레스가 아일라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고 일어나 등을 돌리며 침대에서 멀어졌을 때였다.

    “으음, 엄마?”

    아일라는 끊겨서 잘 들리지 않는 대화 소리를 들었다. 분명, 제가 잘 알고 있는 목소리들이었지만 이곳에서 들릴 리가 없는 그리운 목소리들이었다. 눈을 떠서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서 그럴 수 없었다.

    다시 조용해지자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더 잤을까? 또 제일 그립고 보고 싶었던 사람 중 한 사람이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분명 엄마 목소린데. 내가 꿈을 꾸나?

    어? 감촉은 진짜인데? 설마 정말로 엄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여기는 바다도 아틀란도 아닌데.

    내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고? 아니야,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틀란으로 돌아온 것일까?

    “으음-. 어, 머니?”

    목소리가 제 목소리 같지 않게 형편없이 갈라졌다.

    “이제 좀 안정이 되었나 보구나. 깨어난 것을 보니?”

    정말 엄마의 목소리?

    시야가 확보가 되지 않아 눈을 깜빡이다 말고 튕기듯 침대에 일어나 앉고 말았다. 정말 어머니다. 어머니가 왜?

    나 정말 아틀란으로 돌아온 건가? 그럼 카시스는? 그는 어떻게 된 거지? 어?

    카시스가 걱정돼서 주변을 살피는데 여기는 아틀란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세레스가 보이고 목소리가 들리자 아일라가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봤다.

    “어머니?”

    “왜 그러니?”

    “정말 어머니예요?”

    “그럼.”

    대화는 물론 웃기까지 하시고 만져지기까지. 정말 어머니라고?

    “어머니. 우와왕-!! 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아틀란을 나오기는 했지만 정말 보고 싶었다.

    아일라는 세레스에게 안겨들어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고, 세레스는 그런 딸을 안아 보듬어 줬다.

    “다행이구나. 걱정하고는 다르게 잘 지낸 것 같아서.”

    “흐윽. 흑. 어, 머니가 어째서 이곳에.”

    “이야기하자면 길단다.”

    세레스의 품에서 흐느끼다 가까스로 진정이 된 아일라가 떨어져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말을 꺼내려 입술을 달싹이는데, 그 순간 방문이 벌컥 열렸다.

    “아일라!”

    “카, 시스?”

    본래의 카시스라면 당연히 하지 않았을 법한 행동에 놀란 아일라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가 다가와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어? 어어? 카시스?”

    “하아-,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카시스의 행동에 당황스러워 가만히 있던 아일라는 그의 떨림을 느끼고 팔을 들어 마주 안았다.

    “카시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었어요?”

    무슨 일 있었냐는 그녀의 질문에 카시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금 무슨 일 있었냐고 물은 겁니까? 제가 시녀장이 가져온 건 아무것도 손대지 말라 했습니다. 그대는 그런다고 약조했고.”

    화났다. 카시스는 지금 제게 화를 내고 있었다.

    “진짜 독이 아니라고 했으니 괜찮을 거라고 했으니까요. 그래도 앞에서 먹어 줘야 할 것 같기도 했고요.”

    “그대가 죽을 뻔했다는 건 알고 말하는 건가?”

    “제가 죽을 뻔했다고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