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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 그 계약은 잊어주세요-58화 (58/100)
  • 58화

    “제이드 경, 여자를 울리면 안 되는 거랍니다. 따라가 보세요. 경의 아버지도 상당한 실력이니 걱정하지 말고요. 저도 제 몸을 지킬 정도의 능력은 되고요.”

    제이드가 묵례를 하고 뛰쳐나간 멜로디를 뒤쫓아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대, 대장.”

    “제이드, 괜찮은 것이냐.”

    젠장, 안 그래도 안 좋은데 두 대씩이나 때리고 가냐. 빌어먹을, 힘만 세서는.

    제이드는 머리를 흔들었다.

    역시, 왕께서 사용한 포르세우스 님의 힘의 타격이 너무 심하기는 했나 보네.

    “대장!”

    “시끄럽다. 잠시 어지러웠을 뿐이니 조용히 해.”

    “제이드, 쉬는 것이 좋겠구나.”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아 보이니 쉬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직도 저를 모르십니까? 이 정도로 쓰러지지 않습니다. 멜로디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일어나며 제랄드를 힐끗 보며 말하더니 여관 밖으로 나갔다.

    “그이가 사용한 포르세우스의 힘에 당한 것이 벌써 회복했을 리가 없는데 무리를 하는군요.”

    “제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녀석입니다. 뭐라 해도 듣지 않겠지요.”

    “당신을 따라가는 것은 저 둘이 돌아오면 가는 것으로 해도 되겠습니까?”

    “그리하십시오.”

    괜찮을 거다. 다니엘이 말한 시간이 아직 남았어. 왕비라고 했지. 마린족의 왕비면 아일라의 어머니라는 말이군.

    아일라는 살 수 있어.

    “그 전에 아일라가 위험하다고 했던 말을 자세히 듣고 싶은데 괜찮은가요?”

    “아일라가 먹은 약이 있습니다. 저희에게는 해독제지만 마린족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에게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다니엘은 마주 본 채 제 손을 잡고 놓지 않는 에리얼의 손을 다독이고는 입을 열었다.

    “셀레스와 셀레스토, 그리고 플라톤이 섞인 약입니다.”

    “지금 뭐라고 했나요?”

    다니엘의 말에 마린족 전원의 표정이 굳었다.

    “카르마의 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들은 세 가지를 섞어 그 독의 해독제로 사용합니다. 제 수하가 아일라에게 독을 쓰려는 것을 알고 해독제를 가짜 독으로 위장해 줬는데 아일라가 그것을 먹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아일라를 찾으러 온 그 두 사람에게 아일라를 살려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이 안 된다면 아틀란으로 연락을 하게 해서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습니다.”

    카시스의 말을 다니엘이 이어 말했다.

    “제가 공주님의 힘을 막고 있다가 다른 분께 부탁하고 나온 겁니다. 제가 오는 것이 더 설득하기 쉬울 것 같다는 전하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왕비님은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죠.”

    아일라에게 걸어 둔 힘의 봉인을 풀고 힘을 다스려 약의 기운을 밖으로 내몰면 괜찮을 거다. 하지만 아일라의 봉인을 푸는 게 맞는 것일까?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나의 소중한 아이를 살리는 것이 먼저인 것을.

    아일라의 힘을 봉인한 것은 아슐레이였다. 제힘을 잘 다루던 아이가 한순간의 잘못으로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제게 되돌아오는 힘도 막지 못해 크게 다칠 뻔했다. 그때 제가 감싸고 대신 다치지 않았으면, 어린 아일라는 흉이 질 정도로 크게 다쳤을 테지.

    아일라가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봉인 때문이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만일 봉인이 풀린 힘을 제어하지 못해서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그로 인해 아일라가 상처 받게 되는 것이다.

    ‘후애앵- 자모해쪄요. 자모해쪄요. 죽지 마요. 아이가 자모해쪄요.’

    어릴 적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일라는 울며 그렇게 말했었다. 아일라는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나이였지만. 제가 깨어날 때까지 몇 날 며칠을 그치지도 않고 울어서 그이가 진땀을 뺐다고 했었지.

    제가 깨어나서 괜찮다고 다독여 주는 것이 전부였다.

    “아일라에게 걸려 있는 힘의 봉인을 풀면 되는 일입니다.”

    “왕비님. 그것은.”

    “이제 풀어줄 때도 되었지요. 어릴 때하고는 다를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랄드 경.”

    그러고 보니 그때 에리얼과 제이드 경이 다쳤었지. 아들을 감싸느라 에리얼이 더 심하게 다쳤었지만.

    “아일라라면 이제 잘 해낼 겁니다. 아일라가 정신을 잃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요?”

    “스물네 시간이 지났습니다.”

    “전하, 마차가 도착했습니다.”

    문이 열리며 윌리엄이 고했다.

    “가시죠.”

    카시스가 안내하듯 여관을 나가자 제이드와 멜로디가 돌아와 여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카시스는 마차 문을 열어 세레스와 마린족을 태우고 성으로 향했다.

    “아가씨의 힘이 점점 강해지는 것 같은데 전하께서는 아직 멀으신 건가?”

    이제키엘이 점점 강해지며 흘러나오는 아일라의 힘에 진땀을 빼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며 카시스가 들어왔다.

    “전하! 마린족과 이야기는 잘 되신 겁니까?”

    카시스가 대답을 하지 않고 옆으로 비켜서자 세레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레스를 본 이제키엘은 놀란 눈으로 누워있는 아일라와 세레스를 번갈아 바라봤다.

    침대로 다가간 세레스는 침대에 걸터앉아 아일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검지와 중지를 아일라의 이마의 가져다 대고는 눈을 감았다.

    “누굽니까?”

    “아일라의 어머니?”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글쎄.”

    아일라의 힘의 봉인을 푼다고 했었지.

    “그런데 마린족들이 왜 이리 많은 겁니까?”

    “글쎄, 왜일까. 나도 모르겠네.”

    “전하가 데려오고 나서 모르신다는 겁니까?”

    “모르니까.”

    마린족이 왜 이리 많이 제 영지에 있는지 정말 모른다. 바다와 가까워서일까? 그것도 이유면 이유겠지. 제 영지가 바다와 가깝다는 것.

    그런데 아까는 분명 동족을 공격했다.

    “으음.”

    “아일라.”

    아일라가 내는 옅음 신음 소리에 카시스가 다가가려고 했지만, 세레스가 손을 들어 가만히 있으라는 듯 그를 막았다. 그렇게 얼마를 있었을까. 세레스가 낮은 탄식을 내뱉으면서 아일라의 이마에 대고 있던 손가락을 떼었다.

    “아일라에게 걸어 놓은 봉인은 풀었다. 나머지는 아일라 자신에게 달렸어.”

    “아일라는 이제 괜찮은 겁니까?”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일라의 봉인을 풀면서 내 힘도 조금 불어넣기는 했지만 약을 몸 밖으로 밀어 내는 건 아일라 스스로 해야 할 일이야. 너는 해낼 수 있을 거란다.

    “음.”

    아이라의 입에서 작은 신음 소리가 나면서 이마에 각인이 드러나고 카시스의 이마에도 각인이 나타났다.

    “설마, 당신이 아일라의 각인자였던 건가요?”

    세레스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아일라가 말했던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었구나.

    “왕비님께서는 각인을 파훼하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왕족은 각인을 끊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니엘?

    다니엘이 앞으로 나서며 세레스에게 묻자 카시스의 미간에 주름이 갔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인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제가 아닙니다. 바다의 신 포르세우스 님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그이만이 가능합니다. 각인이라는 것은 신의 허락을 받아 정해진 반려. 그렇게 서로의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로 각인을 끊어 낸다면 둘 중 한 사람이나 둘 다 죽거나 미쳐 버리는 겁니다.”

    “왕만이 가능하신 겁니까?”

    “그것을 알고 있나요? 샤우드. 역대 왕 중 그 누구도 각인을 끊지 못했습니다. 오직 제 남편인 아슐레이만이 가능했습니다. 그가 가능했기에 다른 왕족들 또한 가능하지 않았나 가설을 세우더니 자기들 멋대로 왕족만이 각인을 끊을 수 있다, 이리 말이 돈 겁니다.”

    왕족 전부가 각인을 끊을 수 있다는 그 말은 틀렸다. 오직 아슐레이기에 가능했다.

    “현왕께서만 가능하다는 겁니까?”

    “다른 사람은 모르는 일이죠. 제 남편이 각인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언약의 맹세를 무효화시킬 수 있어섭니다. 이건 저와 그만 알고 있는 거지만, 그는 우리하고는 조금 다르게 태어났습니다. 제가 남편을 만났던 것은 바다의 신 제단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제단에서 빛이 나더니 그가 태어났죠. 그러곤 포르세우스 님께 왕으로 선택됐습니다. 그리고 그를 만난 날 저는 포르세우스 님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이 아이가 마린족의 바다의 새로운 왕이 될 것이며 너의 반려다.’ 그렇기 때문에 역대 왕들은 힘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죠. 초대로부터 몇 대에 걸쳐 신은 마린족의 왕을 인정했기에 바다 신의 힘 일부를 다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포르세우스 님의 인정을 받지 못해 마린족의 왕들은 조금이나마 다룰 수 있었던 바다 신의 힘을 다룰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족들은 바다의 신의 힘 일부를 사용할 수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 전쟁을 하며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만 하고 바다를 어지럽혔으니.

    “아슐레이가 아틀란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뭔지 기억하시나요? 제랄드 경.”

    “어찌 잊겠습니까? 어린 나이에도 성인을 한꺼번에 제압해 그 힘을 보였지 않습니까? 그 누구도 아슐레이를 이길 수 없었죠. 신께 선택받은 왕은 오로지 아슐레이 한 사람이며 신께 인정받은 왕은 바다의 신의 힘 일부를 사용할 수 있다. 인어족과의 싸움을 잠재운 것도 바로 그이였죠. 그 덕분에 페트라와 친구로 지낼 수 있었고요.”

    하나 갑자기 나타난 어린 아슐레이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신의 힘을 일부 사용할 수 있는 아슐레이에게 대항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런 그이가 그렇게 된 것은 제 탓입니다. 페트라와의 싸움에 그녀가 마지막에 건 저주를 그가 대신 받았으니 말입니다. 정확히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일라를 향한 저주였죠. 그래서 결론은 각인을 끊을 수 없습니다. 각인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니 말입니다.”

    세레스의 말에 카시스의 표정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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