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님, 그 계약은 잊어주세요-57화 (57/100)
  • 57화

    “멜로디, 너 뭐 하는 거야?”

    제 앞을 가로막는 멜로디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너야말로 뭐 하는 거야! 넌 지금 막 깨어나고 아직 회복도 안 된 환자야!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화, 환장? 너 말 다 했냐?”

    “아직 말 다 못했다. 이 바보 멍청아!”

    “바, 바보? 멍, 멍청이? 너 정말.”

    “내가 얼마나······ 얼마나······.”

    멜로디가 눈에 눈물을 머금고 입술을 부르르 떨면서 말을 이었다.

    “얼마나 걱정했는데! 너란 녀석은 깨어나자마자 이렇게 무리하는 건데!!”

    멜로디가 소리침과 동시에 제이드가 멜로디를 감싸고 땅을 굴렀다.

    “저 자식이 정말!”

    “안 돼.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이거 못 놔?!”

    “절대 안 놔!”

    일어나려는 제이드를 멜로디가 붙잡았다.

    “멜로디 말을 듣거라. 여기서 너만 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랄드가 제이드를 나무라며 앞으로 나섰다.

    내 영지를 물에 잠기게 만들 셈인가?

    “기다리시오.”

    카시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제랄드의 앞을 막아섰다.

    “여기는 내 영지이니 내가 해결하도록 하지.”

    “인간 따위가 나를 막겠다고?”

    “하아-, 날 너무 우습게 보는군그래.”

    “전하 제가.”

    “아니, 말했듯이 여기는 내 영지다. 다니엘.”

    내 영지에서 날뛰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정도로 제가 무심하고 겁쟁이는 아니다.

    카시스가 다니엘의 말을 자르며 검을 빼 들고 앞으로 나섰다.

    “내 영지를 물바다로 만들면 안 되지.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네 녀석을 보면 기분이 나빠.”

    “건방진 인간.”

    물줄기가 제게 날아오는 것을 보며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린 카시스가 검을 내리긋자 물이 갈라졌다. 양쪽으로 갈라진 두 물줄기가 다시 제게로 날아오자 카시스가 능숙하게 물줄기를 쳐 냈다. 그것을 본 슈레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겨우 이 정도인가? 별것 아니군. 시간 없으니까 빨리 끝내자.”

    “뭐라고!!”

    하, 겨우 이 정도로 흥분한다고.

    “내가 하나 알려 줄까? 먼저 흥분하는 쪽이 지는 거다.”

    카시스는 빠르게 슈레더의 안으로 파고들어 검을 그었고 슈레더는 깜짝 놀라는 듯이 보이더니 가까스로 몸을 뒤로 물리며 피했다.

    겨우 피한 건가?

    물줄기가 날아오자 카시스는 다시 검을 휘둘러 막아 냈다.

    “남의 영지에 들어와서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것도 모르나? 너희 영역 싸움은 바다로 돌아가서 하시지.”

    “뭐야? 이 녀석?”

    카시스가 다시 슈레더의 안쪽으로 빠르게 파고들며 검을 휘둘렀다. 슈레더는 간신히 검을 피하며 물로 무기를 만들어 내 공격을 막아 냈다.

    “전하, 시간이 없습니다.”

    뒤에서 들린 다니엘의 말에 잠시 멈칫한 카시스는 성이 있는 방향을 힐끗 보더니 몸을 바로 세워 후우- 하고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키엘이 잠시 동안은 혼자서 아일라의 힘을 막아 놓을 수 있다고 해서 다니엘을 데리고 나올 수 있었지. 마린족이 있다면 설득에 도움이 될 테니까. 키엘이 마법사라 다행이었어. 칼리스타의 유일한 마법사. 다니엘과 키엘이 없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카시스는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장난은 여기까지. 이제 정말 시간이 없어서 빨리 끝내야겠다.”

    “뭐라고?”

    슈레더의 얼굴이 찡그려진 것을 본 카시스는 검이 검은 오러를 두르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더 빠르게 슈레더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시 말해 주지. 나는 너와 놀아 줄 시간이 없다.”

    콰앙-!!

    “으악!”

    카시스의 공격을 겨우 막아 낸 것처럼 보였으나, 곧 무기가 갈라지며 폭음이 들렸다. 틈을 놓치지 않은 카시스의 검이 슈레더의 어깨와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카시스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검기를 이용해 슈레더를 날려 보냈다.

    “미친!”

    레안드로의 욕지거리가 나왔다.

    “우리 전하께서 사람들의 안전을 신경 안 쓰실 생각이신가. 적당히 해! 전하! 아무리 다니엘이 있다고 할지라도 좀 살살하라고! 나와 다니엘이 전부는 못 막는단 말이야!”

    “더 할 텐가? 여기서 더하면 이 자리에서 넌 죽는다.”

    레안드로가 소리치자 눈썹을 까딱인 카시스가 긴 숨을 내쉬며 부서진 벽을 노려보며 말했다.

    “오늘은 그냥 가지만 두고 봐라! 네 녀석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 줄 테니!”

    “가능하다면 해 보시던가.”

    그 실력으로 어쩌겠다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달아나는 슈레더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카시스는 뒤를 돌아봤다.

    “그대 힘도 그만 거둬 주지 않겠나? 난 더 이상 영지민들이 피해를 입길 바라지 않네. 그대가 땅 밑에서 끌어올린 물은 없어서는 안 되는 물이네. 그런데 그런 물을 사용하지도 못하게 마을을 물바다로 만들면 나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어.”

    제이드가 그의 말에 주먹을 움켜쥐자 멜로디가 주먹을 감싸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싸우려고 온 게 아니잖아. 공주님을 찾으러 왔지.”

    멜로디의 말에도 제이드는 카시스를 노려보다 다니엘을 노려봤다.

    “멈추세요, 제이드 경.”

    “왕비님.”

    제이드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힘을 거두고 뒤돌아 바로 무릎을 꿇었다.

    왕비라고? 마린족의 왕비가 왜 여기에······.

    아일라와 닮았다. 아니, 아일라가 닮은 건가?

    “왜 나오셨습니까? 저희가 알아서.”

    “이 소란에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요. 제랄드 경, 보세요. 다른 사람들도 나와 있지 않나요.”

    주변에는 어느새 사람들이 나와 웅성거리고 있었고 저 멀리서 말을 타고 기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당신이 마린족의 왕비입니까.”

    “그렇습니다.”

    마린족의 왕비라면 아일라가 돌아가지 않아도 아일라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 거야.

    “저와 함께 가 주시겠습니까?”

    “무엄하게.”

    “제이드 경.”

    제이드가 일어나 달려들려 하자 세레스가 조용한 목소리로 그를 저지했다.

    “제가 당신과 함께 가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아일라가 위험합니다. 왕비이니 그녀를 살릴 방법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아일라를 알고 있나요? 아니, 질문이 잘못되었군요. 아일라를 데리고 있나요?”

    “그녀는 제 성에서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거짓입니다. 믿어서는 안 됩니다.”

    세레스가 아무 말 없이 카시스를 바라보고 있기만 하자 제이드가 나서며 말했고 제랄드도 거들었다.

    “인간은 믿을 존재가 되지 않습니다.”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 않군요. 그리고.”

    세레스의 시선이 다니엘에게로 향했다.

    “앤드류가의 샤우드 앤드류가 왕비님을 뵙습니다.”

    “살아 있었군요. 어릴 적 모습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역시 제랄드 경과 에리얼을 닮았어요.”

    “샤, 샤우드. 정말 샤우드니?”

    “어머니.”

    “가족 상봉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일단 이 자리는 벗어나도록 하죠. 사람들이 점점 더 모이는 것 같고. 제 아이가 어디가 어떻게 위험한지 들어 볼까요.”

    “전하-!!”

    멀찍이서 달려온 윌리엄과 기사들이 말 위에서 내려 부복했다.

    “늦게 와 송구합니다.”

    “됐으니 마차를 구해 와라. 이들과 함께 돌아갈 거다.”

    카시스의 말을 들은 윌리엄은 고개를 들어 돌리더니 눈이 살짝 커졌다.

    “전부 말입니까?”

    “그래, 전부. 그리고 주위 좀 정리해.”

    카시스의 명이 떨어지자 윌리엄이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려 소란으로 모여든 사람들을 해산시켰고 마차를 구해 오라고 명했다.

    “그럼 저희는 마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관으로 들어와 에리얼은 다니엘을 눈물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 조심스레 손을 올려 다니엘의 얼굴을 감쌌다.

    “살아 있었어. 내 아들 샤우드가 살아 있었어.”

    “살아 있었으면서 돌아가지 않아 죄송합니다. 어머니.”

    “아니, 아니다. 이리 건강하게 살아 있어 준 것만으로 고맙구나.”

    그 모습을 인상을 찡그리고 지켜보던 제이드는 다니엘이 고개를 돌리면서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왕비님은 정말 공주님이 저들과 있다고 믿는 겁니까? 인간들을 믿으십니까?”

    “제이드, 무례하게 굴지 말거라.”

    “됐습니다. 제랄드 경. 저도 인간을 믿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저들을 따라가신다는 겁니까?”

    “제이드.”

    제랄드가 나지막이 제이드의 이름을 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일라와 있다는 말이 거짓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이드 경, 그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판단을 믿어 줄 수 없겠습니까?”

    “저는 저들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제 형이라는 것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만하라고 했다.”

    “제랄드 경. 제이드 경 입장에서는 충분한 이해할 수 있는 당연한 반응입니다. 아틀란의 수호 경비대 대장이지 않습니까.”

    세레스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저들을 말고 저를 믿으세요. 제이드 경. 그리고 깨어나자마자 너무 무리해서 힘을 사용했으니 쉬세요.”

    “아틀란의 왕가를 지키는 건 제 일입니다. 그러니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임감이 강한 것은 좋지만 그대가 잘못되면 슬퍼할 사람들을 생각하세요.”

    “지금으로 봐서는 제가 죽어도 그리 슬퍼할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퍽!

    “윽! 무슨 짓이야? 멜로디'”

    “어쩜 그렇게 말을 예. 쁘. 게. 할까.”

    무방비하게 멜로디에게 옆구리를 가격당한 제이드는 허리를 굽혀 옆구리를 감싸며 인상을 구기고 멜로디를 노려봤고 멜로디는 이를 악물고 짓씹으며 말했다.

    “너 폭력 좀 그만 써.”

    “그럼 너는 말 좀 예쁘게 못 하겠어? 여기에 네가 죽으면 슬퍼할 사람 많거든. 그리고 너한테 나는 대체 뭔데?! 난 네 각인자야! 그런데 어떻게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해! 으흑!”

    “야, 울지 마. 울지 말라고.”

    “네가 울게 만들잖아. 이 나쁜 놈아! 흐으윽!”

    퍼억!

    “윽! 때린 데 또 때리냐. 아, 미치겠네!”

    멜로디는 한 대 더 때리고 밀치고는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제이드가 그런 멜로디의 뒷모습을 보며 머리를 거칠게 흐트러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