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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 그 계약은 잊어주세요-56화 (56/100)
  • 56화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할 일이 있겠습니까?”

    “경은 마법사이니 다니엘을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아일라의 방에 가서 도와줘.”

    “명 따르겠습니다.”

    이제키엘은 카시스의 명을 받고 집무실을 나가 아일라의 방으로 향했다. 이제키엘이 나간 문을 보며 눈을 감았다 떴다.

    저보다는 마법사인 이제키엘이 더 도움이 될 거다.

    이대로 당신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아일라. 그러니까 내가 그들을 데려올 때까지 제발 버텨 줘.

    “윌, 성에 쥐새끼 한 마리 드나들지 못하게 철저하게 막아. 아일라의 상태를 성 바깥의 그 누구도 알게 해서는 안 될 거야. 아일라, 그녀의 방 앞에 기사를 더 배치시키고.”

    “존명.”

    윌리엄까지 나가고 나서 카시스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내 실책이다. 지켜 준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카르마 독의 해독약이 마린족인 그녀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다니엘은 아틀란으로 아일라를 데려가면 해결책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지금 그녀를 돌려보낼 수 없는 것은 그녀를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만이 아니다. 꿈속에서 만난 바다의 신이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그녀를 돌려보내면 안 된다. 지금의 마린족 왕은 아일라에게 위험할 테니 반드시 이곳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들이 아일라를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을 알아야 할 텐데.”

    아일라 당신을 구할 겁니다. 반드시 방법을 찾아낼 겁니다. 당신을 죽게 하지도 못하고 돌려보낼 수도 없습니다.

    아일라를 잃지 않으려면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니엘이 말한 스무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카시스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직인가? 다니엘이 말한 스무 시간이 되기까지 한 시간 반도 남지 않았다. 아직 그들을 찾지 못한 건가? 아일라를 살려야 하는데 왜 이렇게 연락이 오지 않는 거지.’

    그 둘은 결국 스무 시간 안에 찾지 못하고 아일라가 쓰러진 지 스무 시간이 넘으면 아일라는······ 안 돼. 죽게 두지 않아.

    “전하!”

    미카엘이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며 카시스를 찾았다.

    “찾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습니다.”

    “문제라고?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지?”

    “마린족이 둘이 아니라는 점과 저희 쪽과 대치하고 있다는 겁니다.”

    마린족이 둘이 아니라고? 그리고 대치하고 있다고?

    시간이 없는데 대치를 하고 있다고?

    “내가 직접 가겠다. 거기가 어디지.”

    물론 대치하게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치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아일라를 살려야 해.’

    * * *

    “윽.”

    작은 신음 소리에 침대에 엎드려 있던 멜로디가 고개를 들었다.

    “제이드! 정신이 들어?”

    “멜, 로디? 네가 왜?”

    “다행이다 깨어나서.”

    다행이라고? 잠깐 여기는 어디지? 분명 왕께 공격을 당하고 그 뒤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밖이 소란스러운 것 같네.”

    “그게, 인간들과 대치 중이야.”

    “뭐?!”

    추격자들도 아니고 인간들하고 대치 중이라고? 인간들이 우리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알고?

    “젠장!”

    “일어나지 마! 지금 막 깨어났잖아.”

    “비켜, 멜로디.”

    “네 아버지가 병사들하고 막고 있어. 무리하면 안 돼.”

    아버지가······. 그렇다는 것은 왕비님께서 이곳에 계시다는 것이겠지.

    “비키라고 했잖아. 멜로디!”

    제이드는 멜로디를 밀치다 비틀거렸고 멜로디가 그를 부축했다.

    “놔.”

    “너를 누가 말리겠어. 나도 함께 나갈 테니까 가만히 있어.”

    확실히 왕께서 사용하시는 바다의 신의 힘의 타격이 너무 커. 겨우 이 정도로 몸을 가누지 못하다니.

    멜로디가 제이드를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

    “우리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은 없는 건가? 이거 큰일이네.”

    레안드로가 곤란하다는 듯이 낮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좀 믿어 주면 안 될까? 우린 너희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아. 약속할게.”

    “우리가 너희를 왜 믿어야 하지?”

    제랄드가 입을 열기 전에 여관 문이 열리며 제이드가 멜로디의 부축을 받고 나왔다.

    “제이드, 깨어났구나.”

    “대장!”

    “못난 모습 보여 드려 송구합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말해 봐. 우리가 너희 인간을 왜 믿어야 하는지.”

    제랄드와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은 제이드는 다시 레안드로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게 말이야. 너희가 찾는 아가씨가 우리 주군이······.”

    “내가 말하지.”

    레안드로의 말을 자르며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안드로가 뒤를 돌아봄과 동시에 마린족들과 대치하고 있던 셰도우들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카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은?”

    “아는 자인가? 멜로디.”

    카시스의 등장에 제이드는 인상을 찌푸렸고 멜로디의 카시스를 아는 듯한 행동에 그 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를 아는 것을 보니 그때 만났던 마린족이 너희 둘이군.”

    “우리가 마린족이라는 것을 알아?”

    “마린족은 인간에 대한 적대심이 강하다고 했지. 내가 너무 급한 나머지 레안을 조심시킨다는 것을 깜빡했어.”

    “마린족을 아느냐고 물었어! 윽.”

    “제이드!”

    제이드가 비틀거리자 멜로디가 그를 부축한 팔에 힘을 줬다.

    “알다마다. 네가 아일라의 소꿉친구이자 호위인가?”

    카시스는 소꿉친구라는 말을 할 때 이맛살을 찌푸렸다.

    “······네 녀석은 누구냐? 누군데 아일라를 알아!”

    “지금 저 인간 입에서 공주님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냐?”

    “나도 분명 들었어.”

    “내가 마린족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한가? 그건 마린족은 모두 물빛 머리와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

    이자, 도대체 뭐지?

    “우린 그때 분명 모포를 뒤집어쓰고 있었어.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마린족인 걸 알고 아일라를 알고 있지?”

    아무리 소꿉친구라고는 하지만 아까부터 저 입에서 아일라의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것이 거슬린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내가 너희 종족이 가진 특색을 알고 있던 것은 아일라를 만나기 전부터였지. 안 그런가? 다니엘 경.”

    “마, 린족? 마린족이 인간하고 같이 있다고?”

    카시스의 부름에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다니엘의 물빛 머리와 눈동자에 마린족들의 눈이 커지며 술렁였다.

    “우리와 같은 마린족이 왜?”

    “인간하고······.”

    “속지 마라. 마린족처럼 보이려고 술수를 부린 걸 테니.”

    제이드가 카시스를 노려보며 동요하는 병사들을 향해 일갈했다.

    “너는, 너는 설마······.”

    “아버지?”

    “제이드, 많이 컸구나.”

    나를 알아?

    “인간이 변장한 주제에 내 이름을 그렇게 친근하게 부르지 마라!”

    “제이드.”

    “내 이름 부르지 말라고 했어!”

    콰앙! 쏴아아-!!

    지하 수로의 물을 끌어 올린 건가. 굉장하군. 주변에 물만 있으면 된다는 건가?

    “무슨······.”

    셰도우 일원들이 놀라서 땅을 뚫고 나온 물줄기를 바라봤다.

    “제이드, 그런 몸으로 무슨 짓이야!”

    “너 따위 인간이 함부로 불러도 될 이름이 아니야!”

    “제이드, 그만두거라. 저 아이는······.”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버지.”

    제랄드가 다니엘을 알아보고 제이드를 말리기도 전에 다니엘이 먼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다.

    “지금, 뭐라고?”

    아버지라고? 누가 누구의? 라는 의문을 품은 시선들이 다니엘에게로 향했다.

    “제이드, 네 형이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버지! 저 인간이 제 형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제 형은 죽었습니다. 인간들 손에 죽었다는 말입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었어.”

    “웃기지 마! 그럼 왜 여태껏 돌아오지 않았는데! 네가 내 형이라니, 그럴 리 없어!!”

    “제이드······. 나는 갇혀 있어서 돌아갈 수 없었어. 비록 갇혀 있었지만 내 옆에 계신 분이 구해 주셨다.”

    “제이드 진정해. 너 지금 몸 상태가 안 좋아. 그런데 이렇게 힘을 사용하고 흥분하면.”

    멜로디가 말렸지만, 제이드는 들리지 않는지 입술을 짓씹으며 카시스와 다니엘을 노려봤다.

    “웃기지 마. 웃기지 마.”

    “제이드.”

    “쿨럭!!”

    “제이드!”

    “제이드, 괜찮은 거니?”

    제이드가 피를 토하자 다니엘이 다가가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제이드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제이드, 그만하거라.”

    “아버지!”

    “네 형이 맞다.”

    제이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형이 맞다고? 그럴 리가 없어.

    “아버지는 저 인간들에게 벌써 넘어가신 겁니까.”

    “세월이 흘렀다 한들 어찌 아비가 돼서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겠느냐. 네 형 샤우드가 맞다.”

    “아버······!!?”

    퍼엉-!! 콰아앙-!

    “제이드!”

    제이드가 멜로디를 밀치고 옆으로 돌아서 물 벽을 만들자 제이드가 만들어 낸 물 벽과 뭔가 부딪혔다.

    “빌어먹을······.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던 거야? 멜로디.”

    “사흘은 넘었어.”

    “대장.”

    “너는 내 상대가 안 된다고 했을 텐데. 슈레더 악시온.”

    “글쎄, 지금은 어떨까? 서 있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슈레더 악시온.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데. 어디서 들었더라.

    카시스는 슈레더의 이름을 들고 물 벽 너머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보며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설마, 너 혼자 온 거냐?”

    “부상자를 상대하는 데 더 필요할까?”

    슈레더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 한들 너 하나 처리하지 못할까?”

    비겁한 자식. 이래야 악시온이지.

    “허세 그만 부려라, 제이드 앤드류.”

    “과연 허세인지 아닌지 시험해 보시지.”

    콰앙-!!

    또 다른 물줄기가 땅을 뚫고 나왔다.

    “미쳤어! 제이드!!”

    제이드가 한 발 앞으로 내디디며 물을 조종하려고 할 때 멜로디가 양팔을 벌리며 제이드를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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