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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 그 계약은 잊어주세요-44화 (44/100)

44화

“항의를 해 봐야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안 할 것 아닌가. 그리고 아일라에 대해서 왕국에서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들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일단 그녀가 마린족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다. 그러니 그녀가 어느 나라 공주인지 알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알아낼 수 없을 테니 보내라는 거다. 그녀는 힘을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머리와 눈동자색도 바뀐 상태이니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키엘 님, 이 편지 원상 복구 좀 부탁드립니다.”

“내 마법은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게 아닌데 말이야.”

“어쩌겠습니까. 봉투를 이미 뜯었으니 뜯은 흔적을 없애는 것도 마법으로 해주셔야죠.”

미카엘이 편지를 봉투에 다시 넣어서 건네주자 이제키엘의 미간에 주름이 갔다. 그는 마법으로 편지 봉투가 처음부터 뜯어진 적이 없는 것처럼 말끔히 고쳐 놓았다.

“그런데 대공 전하, 그거 알아?”

‘하,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거지?’

“그 편지를 보낸 것이 시녀장 데프리카 백작 부인이라는 거야.”

“시녀장이 말인가?”

시녀장이 파르미온 왕국으로 공주의 서신을 보내고 있었다.

“난 시녀장에게 파르미온 공주의 시중을 들라고 보낸 적이 없는데.”

카시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미카엘을 바라봤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안 그래도 전하께 데프리카 백작에 대해 보고 할 것이 있었습니다.”

이제키엘의 말에 카시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 * *

제이드는 바다 깊숙이 헤엄쳐 들어가다 멈춰 섰다.

저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왕비님?

그런데 왜 쫓기고 계신 거지? 쫓아 오는 쪽은 악시온 가문 쪽인가? 거기다 마물까지?

악시온 쪽 병사들과 마물이 함께하고 있다고 어째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젠장! 이런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제이드는 앞으로 빠르게 헤엄쳐 나가며 양손에 얇은 물회오리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빠르게 제랄드와 세레스들을 지나서 뒤쫓아오는 추격대들을 공격했다.

“제이드!”

“대장!!”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나중에 듣겠습니다, 아버지.”

제이드는 물로 칼날을 만들어 내, 거대 전기 뱀 마물과 악시온가의 병사들을 공격했다.

“먼저 가십시오. 여기는 제가 막겠습니다.”

“너 혼자서는 무리다.”

“왕비님의 안위가 우선이지 않습니까?”

“제이드.”

“저런 녀석들에게 당할 제가 아닙니다. 가십시오.”

“왕비님.”

가만히 제이드를 바라보던 제랄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며 세레스를 불렀다.

“제이드 경, 위험하면 도망쳐도 됩니다. 무사히만 돌아오세요.”

“죄송합니다. 공주님을 아직 찾지 못습니다. 뭍으로 올라가면 멜로디를 찾으십시오.”

세레스는 걱정스럽게 말하고는 제랄드와 그의 아내 에리얼과 함께 위로 헤엄쳐 올라갔다.

“대장.”

“너희도 가라. 방해된다. 왕비님을 지켜.”

경비대의 병사들이자 앤드류가의 병사들이 걱정스럽게 그를 불렀지만 제이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하더니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놓치지 마라. 반역자들이다.”

“너희 상대는 나다. 그런데 지금 감히 누구에게 반역자라고 하는 거지? 반역자는 마물과 함께 움직이는 네 녀석들이겠지!”

제이드가 만들어낸 거대한 물보라가 적들을 덮쳤다.

“으아악-!!”

“뭣들 하는 거야! 저런 것 하나 제압 제대로 못하고!”

슈레더 악시온.

“그런 조무래기들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슈레더 악시온.”

“네가 이 인원을 혼자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이거 하나만은 알지. 넌 내 상대가 안 된다는 거.”

“건방 떨지 마!”

건방은 누가 떠는지 모르겠군.

제이드 말에 악에 받친 슈레더가 그를 공격했다. 하지만 제이드는 그 공격을 받아쳤다. 제이드가 슈레더의 공격을 받아친 순간이었다. 그의 주위로 물들이 원형을 이루어 빙글빙글 돌며 좁혀지더니 결국 제이드의 몸을 묶어 버렸다.

“뭐 해? 당장 왕비 년과 저 자식들 잡아와!”

“감히 왕비님을 경어도 붙이지 않고 년이라고 부르다니. 죽고 싶은가 봐?”

아쿠아링에 묶였음에도 제이드는 여유롭고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묶여 있는 주제에 뭘 할 수 있다고.”

“이걸로 나를 움직일 수 없게 묶었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슈레더 악시온, 겨우 너 따위가!”

슈아아앙-

제이드의 주위에 강한 물보라가 일어나 회오리를 만들었다. 그 바람에 세레스 일행을 뒤쫓아 가려던 병사들이 거기에 휘말려 나가 떨어졌다.

“뭐야? 이거.”

“뭐기는 뭐야. 너와 내 실력 차이를 보여 주는 거지.”

회오리가 사라진 곳에는 구속에서 풀려난 제이드가 서 있었다.

“너는 절대로 나를 이길 수 없어.”

“무슨 헛소리야!”

“그렇게 흥분하면 더 나를 이길 수 없지. 싸울 때는 상대방 도발에 넘어가면 지는 거다.”

퍼어엉!

제이드가 조종한 물이 정확하게 슈레더의 복부를 강타했다.

“확실히 강하기는 하군 그래.”

바이칼 악시온.

“내 뒤를 보겠나? 제이드 앤드류.”

“······왕께서 왜······.”

제이드는 입술을 짓씹었다.

“바다 신의 힘에 제일 가까운 힘을 지닌 너희들의 왕을 네가 이길 수 있을까?”

“전하.”

제이드가 아슐레이를 불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슐레이의 공격은 정확히 제이드에게 날아갔다. 제이드가 아슐레이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지만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

“윽-. 젠장.”

아무리 강한 힘을 가졌다 하더라도 상대가 왕이라면 불리해. 마린족의 왕은 바다의 신 포르세우스님에게 선택받은 신의 힘 일부를 사용할 수 있어.

쿠아아앙-!!

세레스가 물 위로 거의 다 올라왔을 때 거대한 폭발이 들리고 파동이 밀려들어 오는 것을 느끼고 멈춰 섰다.

이 힘은 아슐레이의······.

세레스는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그가 나왔다면 제이드 경은 이길 수 없어.

“왕비님. 가셔야 합니다.”

페트라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내가 더 빨리 눈치챘어야 하는데.

“아슐레이가 움직였어요. 제가 그를 막고 있을 테니 올라가세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이드 경은 그를 이길 수 없어요. 그리고 제랄드 경, 그대도 이길 수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왕비님께서 안전하고 무사하셔야 합니다. 왕비님마저 잘못되시면 공주님은 어쩌십니까.”

“내가 좀 더 그에게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괜찮다고 해도 잘 살펴봤어야 했는데…….”

“왕비님 잘못이 아닙니다.”

“에리얼, 전부 페트라 그 마녀와 악시온 때문입니다. 왕비님과 공주님만이 전하를 제정신으로 되돌리실 수 있으니, 왕비님께서는 무사하셔야 합니다. 제이드는 강하니 무사히 저희 곁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러니 저희와 함께 이곳을 벗어나셔야 합니다.”

에리얼은 제 아들이 걱정되었지만 세레스의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그녀의 말에 세레스는 눈을 살며시 감았다 떴다. 그러고는 결심했는지 제랄드와 에리얼, 그리고 남아 있는 병사들과 함게 그 자리를 떠났다.

* * *

아일라는 다니엘과 함께 대공성 안에 있는 숲속 호숫가에서 물을 제어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아가씨, 그만하십시오.”

“앗!”

최아아악-!!

아일라가 끌어모은 물들이 쏟아져 내려 호수로 돌아갔다.

“오늘따라 집중을 제대로 못 하시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십니까?”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이상하게 불안하고 가슴이 술렁거려서요.”

이유 모를 불안감에 내내 가슴이 술렁였다.

“아가씨를 찾으러 온 마린족을 만나셨다고 하더니, 혹 그 때문이 아닙니까?”

“아니요, 이건 제이드와 멜로디 때문이 아니에요.”

“지금 누구라고 했습니까?”

아일라가 말한 이름을 들은 다니엘의 표정이 굳었다.

“제이드와 멜로디요.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상하네. 갑자기 왜 그러지? 아, 이 사람도 마린족이었지. 머리와 눈동자색이 달라, 자꾸 잊어버린다. 나도 지금 머리와 눈동자색이 바뀌었는데도 아직 익숙하지 않아.

그래, 이 사람도 마린족이니까. 제이드와 멜로디를 알 수도 있겠네.

“훈련은 잘 되어 갑니까?”

“카시스!”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아일라가 뒤를 돌아보며 밝게 그를 불렀다.

“그런데 다니엘은 왜 저럽니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저도 모르겠어요. 며칠 전 마을에서 만났던 저를 데리러 온 제이드와 멜로디의 이름을 들고 그래요.”

“제이드? 멜로디?”

“제이드와 멜로디는 제 소꿉친구예요. 그리고 제이드는 앤드류가의 차남인데요. 아틀란의 경비대 대장이면서 제 호위인데 상당히 강해요.”

꿈틀.

무척 거슬리는 소리라도 들은 듯이 카시스의 눈썹 끝이 까딱 치켜 올라갔다.

“제이드라는 자가 남잡니까? 그런데 마린족은 이름을 그렇게 막 부릅니까?”

“제이드는 제 호위이기도 하지만 소꿉친구니까요.”

“자주 만나고 항상 붙어 다녔습니까?”

“그거야 소꿉친구에 제 호위이기까지 했으니, 자주 만날 수밖에 없어요.”

“제. 이. 드.라는 자가 소. 꿉. 친. 구.라는 말이군요.”

카시스는 또 왜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지? 거기다 왜 제이드의 이름을 말할 때하고 소꿉친구라는 말을 할 때 더 기분이 안 좋은 것 같고 짓씹어 말하는 것 같지.

착각인가?

“카시스, 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한 건가요?”

“말실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제가 뭔가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가요?”

“아닙니다.”

카시스의 입가가 씰룩였다.

웃을지 말지 고민하거나 웃음을 참으려고 할 때 보이는 씰룩임하고는 달랐다.

아닌게 아닌데.

“소. 꿉. 친. 구.라고 하니 찾으면 정중히 데려오라 해야겠군요.”

역시 착각이 아니었어. 전혀 정중히 데려올 것 같지 않은 목소린데.

이 정도 되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네. 카시스는 지금 무지 화가 나 있어.

이유는 알 수가 없지만 제이드 이름을 들은 순간 화가 난 것 같은데…… 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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