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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 그 계약은 잊어주세요-40화 (40/100)
  • 40화

    “우선 왕비님께 연락을 하고 나서 이동하자.”

    “시간이 없어. 시간이······.”

    제이드는 입술을 짓씹었다.

    이제 정말 왕이 제게 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빌어먹을. 아일라!”

    쾅!!

    “저 성질머리하고는.”

    제이드가 문을 세게 닫고 나가자 멜로디는 낮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문을 바라보다 욕실로 들어가 물을 틀고 욕조에 물을 받았다.

    받은 물에 손을 뻗자 물이 공중에 떠올라 뭉치기 시작하더니 거울이 만들어졌다.

    “왕비님.”

    [멜로디로구나. 아일라는 아직 찾지 못한 것이니?]

    “예, 송구합니다.”

    [아니, 괜찮단다. 멜로디. 나는 혹여 아일라가 무슨 일을 당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고, 너희가 찾지 못한 것에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된단다.]

    “왕비님.”

    [나는 아일라가 무사할 것이라고 믿는단다.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무사할 것이라고 말하는 세레스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인간들이 위험하다 말은 했지만 세상에는 그 아이 말대로 위험하고 나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니.]

    쾅쾅! 쾅쾅!

    [왕비님! 왕비님!]

    “무슨 일이죠?”

    쾅쾅! 쾅쾅!

    [왕비님! 큰일났습니다. 피하셔야 합니다.]

    [글쎄, 잠시만 기다려 주겠니? 멜로디.]

    방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며 부르는 소리에 세레스가 문을 다가가 열었다.

    [웬 소란들인가.]

    [지금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무슨 일이냐는데도!]

    치지직-! 팟!

    “왕비님? 왕비님!”

    뭐야? 아틀란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왜 갑자기 연락이 끊긴 거지?

    수경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멜로디는 몇 번이나 수경으로 다시 세레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고 멜로디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분명히 무슨 일이 생기신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연결이 갑자기 끊길 리가 없어. 제 연락을 부러 받지 않으실 리도 없는데…….

    ‘제이드.’

    멜로디는 제이드를 찾기 위해서 급히 뛰쳐나갔다. 그러자 수경이 깨지면서 물이 밑으로 쏟아져 내렸다.

    “제이드! 제이드!”

    기분이 별로 좋지 않던 제이드는 여관 1층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 저를 다급히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야?”

    “아무래도 왕비님께, 아니 아틀란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무슨 일?”

    “내가 수경으로 왕비님께 연락을 했는데.”

    “그새 연락했냐?”

    제이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제 앞에 놓여 있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지금 내가 왕비님께 연락한 걸 따지고 들 때가 아니야 이 바보야!”

    “바······,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왕비님께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니까.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연결이 끊겼다고. 내가 몇 번이나 다시 연결을 시도했는데 되지 않아. 그리고 끊기기 전에 분명히 피해야 한다는 말이 들렸어.”

    그제서야 제이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제이드는 계단을 두세 칸씩 뛰어오르며 방으로 돌아가 수경을 만들었다.

    “…….”

    아버지께서 연락을 받지 않으신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설마, 아일라를 아직 찾지 못한 것 때문에······. 아니, 그건 아닐 거야. 아직 기간이 남아 있어. 그럼 뭐지?

    왜, 연락이 되지 않는 거지?

    “제이드.”

    “아틀란으로 돌아가 봐야겠어. 네 말대로 무슨 일이 생긴 것일 수도 있으니까.”

    만일 정말 아버지와 왕과 왕비님께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지금은 그쪽 일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다. 아일라를 찾는 건 그 다음이야.

    뭐지······ 이 불안감은.

    “나도.”

    “아니, 넌 여기 남아서 아일라를 계속 찾아.”

    “하지만.”

    “만일 정말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래서 연락이 되지 않는 거라면 내가 가 봐야 해.”

    “제이드.”

    “네가 따라오면 아무런 도움이 안 돼. 걸리적거려.”

    “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만일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라면 멜로디는 이곳에 남는 것이 오히려 안전할 수 있었다.

    “절대로 따라오지 마. 넌 걸림돌일 뿐이야.”

    “너, 너 어떻게 내게……!”

    “그러니까 따라오지 말고 여기 남으라고!”

    멜로디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밖으로 나가려던 제이드의 발이 멈췄다.

    “하아, 이런 말하기 진짜 싫지만 네게는 오히려 지금 이곳이 더 안전할 수 있어. 만일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아일라를 반드시 찾아내서 지켜. 지금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야.”

    “제이드·······. 너······.”

    “부탁할게.”

    “제이드, 무사히 돌아와야 해. 안 그러면 나 정말 화낸다.”

    “······.”

    제이드는 대답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무사히 내 옆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난 널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 절대로. 그러니까 다치지 말고 무사히 돌아와야 해. 내 반려는 너뿐이니까.

    * * *

    카시스는 제 에스코트를 받고 내린 아일라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물었다.

    “정말 괜찮은 겁니까?”

    “괜찮다니까요.”

    “괜찮지 않아 보이니 하는 말입니다.”

    내 안색이 그렇게 안 좋은 건가.

    “역시 조금 전에 그자들, 그대를 데리러 온 겁니까.”

    “······.”

    “제 생각이 맞습니까.”

    “······.”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자 아일라의 손을 잡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일라.”

    “······저, 카시스. 부탁이 있어요.”

    아일라는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하십시오. 제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면 무엇이든지 들어줄 테니.”

    “만일 오늘 만난 그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돼서, 만약에······.”

    말끝을 흐리며 입을 꾹 다물었던 아일라가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럴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만약······ 본의 아니게 싸우게 된다면 당신도 그 둘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충분히 강한 이 사람이 다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야. 만에 하나 바다에서 싸움이 벌어지게 되면 다칠 수도 있는 거잖아.

    “제 부탁, 들어줄 건가요?”

    “제가 다치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그자들이 다치지 않게 하리란 보장은 못하겠습니다.”

    그대를 강제로 데려가려고 하면 저도 어찌할지 모르겠습니다.

    “다치는 일이 없다니, 그걸 어떻게 장담하나요. 당신이 불리한 곳에서 싸우게 되면 다칠 수도 있다고요. 아니, 다치는 걸로 끝나지 않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요!”

    가령 바닷가에서 바다속으로 끌려 들어간다거나 발판이 없는 바다 한가운데라거나. 당신은 인간이잖아요. 인어족이나 마린족이 아니라서 물속에서는 숨을 쉴 수 없다고.

    “지금 저를 걱정해 주는 겁니까?”

    어느새 나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카시스가 가까워졌다.

    “걱정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걱정해 줘서 고맙기는 하지만, 저는 그리 약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저는 강합니다.”

    그런데 웃는 게 왜 이렇게 예쁘지.

    아일라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카시스는 다시 거리를 두며 떨어졌을 때였다.

    카시스와 아일라가 탄 마차가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던 크레타가 빠르게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네가 감히!”

    ‘쨔악-!!’하는 찰진 마찰음과 함께 아일라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가며 비틀거렸다. 하지만 옆에서 잡아 주는 카시스 덕분에 넘어지지는 않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일라를 잡아 준 카시스가 얼굴이 굳으며 크레타에게 소리쳤고, 아일라는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이 되지 않아 멍하니 있다가 맞은 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파······. 왜 아프지.

    나 지금 맞은 거야?

    “무슨 짓이냐니요. 주제도 모르고 대공에게 꼬리를 친 계집애 교육을 위해 뺨을 때린 것 뿐입니다.”

    그의 얼굴이 더 굳으며 한쪽 눈썹 끝이 까딱 치켜 올라갔다.

    “지금 뭐라 했습니까?”

    “주제도 모르는 계집이라고 했습니다. 감히 제 약혼자인 대공을 넘보고 꼬리를 쳤지 않습니까!”

    “제가 황궁에서 분명히 말했을 텐데요. 약혼녀 대접이라도 받고 싶으면 가만히 있으라고 말입니다. 파르미온의 공주께서는 제 말이 우스운가 봅니다.”

    “저는 전하의 약혼녀 자리를 이 계집에게 넘겨줄 생각이 없습니다.”

    “과연 주제를 모르는 쪽이 어느 쪽일까.”

    카시스의 목소리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쨔악-!!

    이번에는 크레타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고 카시스의 시선이 아일라에게로 향했다.

    “네, 네가 감히 나를 때려! 네까짓 게!”

    “당신이 먼저 때렸잖아요. 나는 이유 없이 맞고만 있어야 하는 건가요?”

    나는 받은 대로 돌려준 것뿐이야.

    “저도 당신과 같은 공주예요. 예의를 지키세요.”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속국의 공주 따위가! 부모님도 나를 때린 적이 없는데 너 따위가 감히!!”

    “당신만 안 맞고 자랐는 줄 알아요? 나도 한 번도 맞아 본 적 없어요. 나도 곱게 자랐단 말이에요! 그런데 당신이 뭔데 나를 때려요?”

    “난 대공 전하의 약혼녀야!”

    “난 카시스의 연인이에요! 당신보다 내가 먼저 카시스를 만났어요. 카시스는 당신과 어쩔 수 없이 약혼한 거라고요.”

    아일라는 슬쩍 카시스를 곁눈질로 한번 보더니 말을 이었다.

    “화내야 할 건 당신이 아니라 나라는 말이에요. 카시스를 빼앗긴 건 당신이 아니라 바로 나예요.”

    이 정도면 연인 역할을 하는 건가?

    “헛소리 하지 마! 네까짓 것과 내가 같은 줄 알아!”

    내가 먼저 만났다는 말이 헛소리가 맞기는 하지만······. 그걸 이 여자가 어떻게 알겠어.

    그런데 이 여자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황궁에서 말고 그전에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앗!? 생각났다! 이 여자 황궁이란 곳에서 만났을 때는 몰랐는데 바다에 카시스와 같이 빠져서 육지로 끌어올리느라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그 여자잖아? 내가 구해 준 여자! 그때 카시스와 같이 바다에서 구해 준 여자가 약혼녀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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