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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 그 계약은 잊어주세요-27화 (27/100)
  • 27화

    정말 조금만 반지르르한 녀석이 접근해서 속이면 잘 넘어가겠어. 한 번은 확실히 이야기를 해 줘야 할 것 같군.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 박혀 버린 ‘잘생기면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대로 내버려 두면 정말 큰일 나겠어.

    “그게 아닙니다.”

    “뭐가요?”

    “저는 그리 친절하고 상냥하지 않습니다.”

    “아닌데. 저한테 잘해 주시잖아요.”

    나를 도와주고 지낼 곳도 마련해 주고 챙겨 주는데, 친절하지 않다고?

    이게 친절하지 않으면 대체 뭐가 친절한 거지.

    “그리고 당신의 잘못된 생각은 바로잡아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요?”

    아일라는 카시스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그러면서 저가 무슨 잘못된 생각을 했다는 것인지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했지만 잘 모르겠는지 고개만 갸웃할 뿐이었다.

    그녀의 행동에 그는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오는 것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잘생겼다고 전부 착하고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네?”

    무슨 말이지?

    “기억 안 납니까? 임페리얼 숲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잘생기면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했던 것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말을 왜 하는 거예요?”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당신은 속아 넘어가기 딱 좋습니다.”

    “그 정도는 저도 구분할 수 있어요.”

    아일라는 나를 뭐로 보는 거야, 하는 눈빛을 내비쳤지만 단호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볼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를 보고 그런 말을 할 정도면 반지르르한 외모를 가진 사내가 접근해 거짓을 말해도 넘어갈 것 같습니다만.”

    조금 거리를 벌린 카시스가 허리를 숙여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가까이 댄 채 속삭였다. 그러자 아일라는 얼굴이 벌겋게 변한 채 욱해서 소리쳤다.

    “뭐라고요?! 아니거든요!”

    어, 얼굴은 왜 가까이 들이미는 거야! 깜짝 놀랐잖아!

    “다, 당신 같은 미모가 흔한 줄 알아요?”

    움찔!

    여유롭게 나른한 미소를 지었던 카시스의 어깨가 크게 움찔했다. 설마, 제 외모를 가지고 반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해 당황스러웠다.

    물론 이 집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도 그리 못난 외모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일라는 제가 본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카시스의 외모가 제일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참,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하지만 어디 가서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허리를 펴며 떨어진 그의 얼굴에 어쩐지 당혹감이 드러난 것 같았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본 것이라 아일라는 그저 잘못 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거 굉장히 위험한 발언인 것 압니까? 그 말은 저와 비슷한 외모면 전부 착하고 상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작정하고 접근해 속이면 그대로 속아 넘어가기 쉽다고 말하는 겁니다.”

    “제가 정말 잘 속아 넘어갈 것 같은가요?”

    “네.”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이 너무 빠른 거 아니야? 그래도 조금쯤은 뜸을 들이거나 아니라고 빈말로라도 아니라고 대답해 줘도 되는 거 아니냐고.

    “빈말이라도 아니라고 대답해 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만난 지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제가 겪은 당신은 정말 쉽게 남을 믿을 것 같으니까요.”

    아일라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그를 멍하니 올려다봤다. 그 표정이 마치 ‘당신 내 생각도 읽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카시스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제게는 사람의 생각을 읽는 능력은 없습니다. 단지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았을 뿐입니다.”

    뭐야? 내가 그렇게 쉽게 읽히는 건가?

    아일라는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였다.

    똑똑똑!

    “다니엘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라.”

    카시스의 명에 다니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니엘이 왔으니 힘을 다루는 것을 배우십시오. 저는 그만 가 보겠습니다.”

    카시스가 정중히 말하고는 자리를 뜨고 난 후, 방 안에 다니엘과 아일라만 남았다.

    “정말 제게 힘을 다루는 것을 알려 줄 건가요?”

    “예, 전하의 명이니까요. 그전에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요.”

    “전하께 들으니 표적을 맞추는 연습을 계속하셨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네, 계속 연습했어요.”

    아일라는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라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제어가 되지 않아 표적에 맞지 않는 겁니까?”

    “그래요.”

    “그럼, 왕과 왕비께서는 그때마다 무슨 말을 하셨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만 하셨어요.”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는 세 가지다. 능력이 되지 않거나 아니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우, 그것도 아니면 힘이 너무 커서 그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 이미 물이 가득 찬 양동이에 물을 계속 부으면 넘쳐흐르듯 그릇이 작으면 힘이 넘쳐서 제어하기 힘들다.

    과연 공주님은 어느 쪽일까.

    “그럼 아가씨의 집중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봐도 되겠습니까?”

    “지금 내가 집중력이 약해서 표적을 제대로 못 맞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저를 우습게 보는 것 같자 기분이 나빠진 아일라의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만약이라는 것이 있으니 확인을 해 보겠다는 말입니다. 우선 이 물컵 안에 있는 물을 공중에 띄워 보십시오.”

    다니엘이 물컵에 물을 따르며 말했다.

    “이걸 공중에 띄우라고요?”

    “그 정도는 간단한 일이지 않습니까.”

    확인해 본다는 것뿐인데, 나는 왜 기분이 나쁘지. 설마 내가 그 정도도 못할 것 같은 건가?

    “제가 아가씨의 능력에 대해 파악하고자 확인하는 것뿐입니다.”

    “·······.”

    “뭐 하십니까?”

    “알았어요. 하면 되잖아요.”

    아일라는 물이 담긴 컵을 노려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이 정도쯤이야 간단하지. 어? 뭐 하는 거지?

    다니엘이 다른 컵에 물을 따르는 것을 보고는 의아해했다. 잠시 다른 곳에 한눈을 판 사이에 공중에 떠올랐던 물이 반은 다시 컵 안으로, 반은 탁자 위로 쏟아져 내렸다.

    “아!”

    “한눈을 파시면 어쩝니까.”

    “당신이 저를 보지 않고 다른 행동을 하니까 뭐 하나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제가 뭐를 하든지 신경 쓰지 말고 집중을 하셨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집중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니엘은 탁자와 바닥으로 떨어진 물을 닦고는 아일라 앞의 컵에 물을 다시 채워 줬다.

    “잘 보십시오. 그리고 제가 한 대로 물을 변형시켜 보십시오”

    그렇게 말한 다니엘은 컵 안에 든 물을 공중에 띄웠다. 그런데 공중에 떠오른 물의 모양이 컵 안에 담겨 있던 모양 그대로였다.

    그 모양은 둥근 구체로 변하기도 하고 네모로 변하기도 하고 뾰족뾰족 여러 개의 가시가 돋친 모양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러곤 다시 컵 모양으로 바뀌더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컵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아가씨께서는 제가 무엇을 하든지 정신을 집중하십시오. 그다음은 지금 제가 한 그대로, 물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단계를 시도해 보기로 하죠. 이왕 하는 김에 지금 한번 변형시켜 보시겠습니까?”

    집중력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물을 변형시키는 것이 가능한지 미리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뭐, 그 정도야 간단하죠.”

    정신을 집중해 공중에 물을 띄운 아일라는 다니엘이 했던 것처럼 물의 형태를 변형시켰다.

    “이 정도는 간단하게 하시는군요.”

    “당연한 것 아닌가요. 설마 제가 이 정도도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요?”

    이런 건 어릴 때 다 배우는 거라고. 그리고 마린족이라면 배우지 않아도 물을 조종하는 것을 터득한단 말이야.

    “물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것은 단순히 집중력을 알아보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마린족에게는 물 자체가 무기지만 물을 무기의 형태로 변형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제가 하는 행동에 형태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집중력이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물을 변형시키는 것을 보면 집중력이 그렇게 약한 것 같지도 않았다. 대체 뭐지? 물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것은 꽤나 높은 수준의 집중력을 요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옆에서 사람이 움직이고 다른 행동들을 하면 그때만 집중을 못 하시는 건가? 그런 것이라면 집중력을 더 기를 필요는 있을 것 같은데.

    다니엘이 정신을 집중해 주전자와 컵 안에 있는 물을 모아 단검 모양으로 변형시켰다.

    듣기는 했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제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이런 무기 형태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그 전에 아가씨께서 어느 정도의 양을 제어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 물의 양을 조금씩 늘려 보도록 하죠. 그리고 제가 옆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여도 집중을 흐트러뜨리지는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일라와 다니엘은 물 한 잔의 양을 공중에 띄우는 훈련부터 다시 시작했다. 아일라는 제가 왜 이런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건가 불만스러웠지만 물을 제어할 수만 있게 된다면 이 정도쯤을 얼마든지 참고 할 수 있었다.

    * * *

    춤 수업도 받고 물을 다루는 훈련을 시작한 지 열흘이 되면서 아일라가 제어할 수 있는 물의 양이 조금씩 늘어났다. 처음에는 대접과 컵, 그다음은 대야에 물이 가득 찼다. 매일매일 물의 양이 늘어나고 꽤 커다란 목욕통 하나에 물이 가득 차는 정도가 되었을 때였다.

    “오늘은 밖에서 하는 건가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꽤 많은 양이니까요. 여태껏 했던 것처럼 이 안에 들어 있는 물을 움직여 변형시켜 보십시오.”

    좋아. 집중해서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말고. 다니엘과 함께 하던 것처럼 하면 될 거야.

    마린족은 바다 종족이야. 이 정도도 다루지 못하면 바다 종족 마린족이라고 할 수 없어.

    아일라가 양손을 물을 향해 뻗어 집중했다. 그러자 물이 공중에 떠오르고 둥근 구체의 형태로 물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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