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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 그 계약은 잊어주세요-24화 (24/100)
  • 24화

    “마, 말도 안 돼. 오, 오라버니가······!”

    오, 오라버니가, 카시스 오라버니가! 여, 여인을 품에 안고 가고 있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 광경을 지켜보던 로에나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고는 급히 카시스의 뒤를 따라갔다.

    마차에 함께 타게 된 로에나는 아일라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왜, 왜 저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지?

    “로에나, 그렇게 쳐다보는 것은 실례다.”

    “앗, 죄송해요. 신기해서 저도 모르게 빤히 쳐다봤네요.”

    내가 신기하다고? 왜?

    “그런데 너는 왜 우리와 같은 마차를 탄 거냐?”

    “카시스 오라버니가 여인에게 신경 쓰는 건 처음 봤거든요.”

    로에나의 말에 아일라는 눈동자를 굴려 로에나 옆자리에 앉아 있는 카시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것도 눈에 띄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이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안아서 옮기시다니.”

    “처음 아닌데요.”

    “뭐가 처음이 아니에요?”

    “저를 안아서 옮긴 거요.”

    “처음이, 아니라고요?! 말도 안 돼!”

    아일라의 말을 들은 로에나가 추궁하듯 다급히 말을 꺼내며 카시스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대체 언제, 어디서요? 아니, 그것보다 둘이 무슨 사이에요? 어디서 만난……!”

    “로에나.”

    카시스는 제 누이를 조용히 부르며 말을 끊었다.

    “내 손님께 너무 많은 질문은 실례다.”

    “오라버니 손님이라고요? 그럼 대공저에 와 있다는 손님이 바로 이 아가씨예요? 대체 언제 어디서 만났는데요?”

    “로에나.”

    “아니, 궁금하잖아요.”

    “로에나.”

    카시스가 다시 한번 부르자 로에나는 작게 ‘알겠어요.’하며 불만을 표했다. 그 모습을 본 아일라가 카시스에게 물었다.

    “어디서 만났는지는 말해도 되지 않아요?”

    “그대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으면 좋지 않습니다. 그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저와 다니엘, 그리고 대공저에 입이 무거운 자들 소수와 폐하와 황후 폐하 정도면 됩니다. 다른 이들이 그대에 대해 알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음-. 하지만 연회가 열리는 황궁이라는 곳에 당신의 연인으로서 참석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지 않나요?”

    “그대를 제 연인으로 알게 되는 것이지, 당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 잠시만요! 저 지금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요? 연인 사이요? 누구와 누가요?”

    로에나가 놀라서 아일라와 카시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설마, 오라버니와······. 지금 두 사람 이야기인가요?”

    로에나는 카시스와 아일라 두 사람을 힐끗거리며 물었고, 카시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연인이라니요? 그러면 오라버니와의 약혼을 위해 이곳까지 온 파르미온의 공주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뭐, 좋아요. 오라버니를 구해 줬다는 거짓말을 한 게 저도 조금 마음에 안 드니까요. 다른 것도 아니고 그런 걸로 거짓말하는 사람은 좋게 볼래야 좋게 볼 수가 없죠.”

    “이 사람을 구해 준 건 전데요. 누가 누구를 구해 줘요?”

    “네?”

    “당신이 오라버니를 구해 준 건가요?”

    “네? 뭐, 일단은 바다에 빠져 의식이 없는 사람을 건져서 마물 독까지 없어지게 해 줬으니 구해 준 것이 맞겠죠?”

    로에나가 갑작스레 제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며 말하자 아일라는 당황한 듯 멈칫해 보였다.

    “로에나, 불편해하지 않느냐. 떨어져라.”

    “미안해요. 오라버니를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을 만나서 반가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그만 무례하게 굴었네요. 놀랐다면 사과할게요. 그러니까 이름이 뭔가요? 제 오라버니의 생명의 은인님은요?”

    은인님?

    “아일라 아틀란이라고 해요.”

    “예쁜 이름인데요. 그런데 제국에 아틀란이라는 성을 가진 귀족이 있었나?”

    로에나는 생소한 성씨에 고개를 옆으로 갸웃했다.

    “로에나, 너는 이대로 대공저까지 갈 생각인 거냐?”

    카시스는 아일라가 자신의 정체에 대해 전부 말하기 전에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로에나에게 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히 대공저로 가려고 오라버니와 이분과 같은 마차를 탄 거지요.”

    “하아-.”

    로에나의 말에 카시스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아틀란 영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어요. 이렇게 오라버니의 연인이 갑자기 나타났으니까요.”

    “아, 그건 있죠.”

    “언제 갈 생각이냐?”

    “음-, 저녁까지 함께하고 환궁할 생각이에요.”

    아일라가 하려는 말을 막은 카시스가 로에나의 대답을 듣고 미간이 찌푸렸다.

    그는 제 누이를 아끼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제 일에 관심을 갖거나 끼어드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저녁을 대공저에서 하고 환궁하겠다고?”

    “안 되나요? 저는 오라버니의 누이예요. 누이가 오라버니 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요? 안 그런가요? 더군다나 오라버니는 연회가 끝나면 바로 칼리스타로 돌아가실 거잖아요. 돌아가시면 잘 오시지도 않으시면서 수도에 계실 때만이라도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가지면 좀 좋아요?”

    “·······.”

    카시스는 로에나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로에나의 말이 맞기는 하다. 칼리스타로 돌아가면 제가 수도로 올 때는 늘 폐하께서 부를 때뿐이었다. 마법진을 이용하면 자주 올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을 뿐이었다. 칼리스타를 영지로 받은 후부터 수도에 발을 자주 붙일 생각은 별로 없었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제게는 황궁이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다. 처음부터 황궁에서 제가 있을 곳은 없었으니까. 제 존재 자체만으로도 황좌를 위협하게 되니까 그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제 영지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저는 황좌에 앉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수도로 잘 오지 않은 것이지만, 그런데도 저를 걸고넘어지는 귀족들이 있다. 그들을 처리하는 것도 제 일이었다.

    파르미온 왕국의 공주를 약혼이라는 명목으로 데려오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환영족의 행방을 찾기 위한 볼모로 데려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귀족들이 그것을 빌미로 저를 이용해 반역을 저지르려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는 황좌에 관심이 없어도 회유하려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자들은 이미 제 손으로 찾아내 처리했지만, 또다시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반역을 꾀하는 자들이 파르미온 공주와의 약혼으로 스스로 걸어 나와 주면 저야 좋지만 역시······.

    “별로 내키지 않아.”

    “오라버니?”

    로에나가 혼잣말을 한 카시스에게 되물었고 아일라도 의아하게 그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아니다. 다 왔군.”

    카시스는 마차가 멈추자 문이 열리고 먼저 내린 카시스가 손을 내밀어 로에나를 먼저 내리게 하고는 마차에 올라 아일라를 안아서 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에나는 ‘또?’하며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저 정도까지 해 주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카시스 오라버니께서 연애를 하느라 이렇게 변하신다고? 말도 안 돼!

    로에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전하, 아가씨.”

    “오랜만이에요? 다니엘.”

    “황녀 전하께서도 오셨습니까?”

    다니엘의 목소리에 로에나가 뒤돌아 반갑게 인사하자 다니엘이 움찔했다.

    “왜 그렇게 놀라나요? 제가 오라버니 집에 오는 것이 이상한 일인가요?”

    “아, 아닙니다. 오신다는 연통도 없이 갑작스레 전하와 함께 오셔서 당황했을 뿐입니다.”

    “흐음-. 동생이 오라버니를 찾아오는 일이 이상한 일은 아닌데 당황할 게 있나요?”

    “다니엘이 말하지 않았느냐? 연통도 없이 오면 누구나 당황하게 되어 있어.”

    카시스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는 로에나의 옆으로 아일라를 안아 들고 지나치며 말했다.

    “저는 오라버니 행동이 더 당황스러워요.”

    뒤에서 로에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카시스는 신경 쓰지 않고 아일라의 방까지 안아서 데려다줬다.

    “제 발로 걸어올 수 있었어요.”

    “맨발로 말입니까?”

    카시스가 침대 위로 저를 내려놓자 아일라는 부루퉁히 말했다.

    “이미 몇 번이나 말했지만, 맨발로 다니면 다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불편하고 아프다고요.”

    인간들이 입는 옷도 불편하고 신발도 불편하고.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맞춰 줄 테니 그대도 뭍에서 지내는 동안은 이곳 생활에 맞춰 주십시오.”

    “노력할게요.”

    쉽게 되지는 않겠지만, 아일라도 뭍으로 올라온 것이 제 선택인 만큼 제게 지낼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준 이에게 폐가 되지 않을 만큼은 노력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것이 지금 당장 될 리는 없었다.

    “그리고 로에나에게 당신이 마린족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마십시오.”

    “왜요?”

    “아까도 말했듯이 그대가 마린족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좋습니다.”

    폐하께는 숨길 수 없기에 말씀드린 것이고, 황후 폐하는 애초에 속일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말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밝힐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신 가족인데도요.”

    “예, 제 가족이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누구든지 쉽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조금 전에 폐하라는 분은 제가 마린족인 것을 알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폐하께서는 다니엘이 마린족인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알아도 그대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만일 폐하께서 그대에게 해를 입히려 한다면 제가 막을 겁니다. 그대를 지켜 주기로 제 이름을 걸고 맹세했으니 그 맹세는 지킬 겁니다.”

    그것이 비록 폐하께 반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런데, 제가 지켜 줄 만큼 그렇게 약한가요?”

    “임페리얼 숲에서 쫓기던 분이 할 말입니까?”

    정말 제가 그렇게 약해 보이나 싶어서 물어본 것인데 왜 화가 난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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