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님, 그 계약은 잊어주세요-6화 (6/100)
  • 6화

    다니엘이 저를 구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바다에 빠지고도 안심하고 의식을 잃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저를 구한 것이 다니엘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그럼 그때 그건 대체 누구였지?

    카시스는 의식을 잃기 전에 자신에게 접근하던 그림자가 떠올랐다.

    “너를 찾았을 때 파르미온 왕국의 공주도 함께 있었다고 하더구나.”

    파르미온의 공주가 왜 나와 같이 있었다는 거지? 배가 많이 부서지기는 했지만 수행인들과 기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안전했을 텐데. 바다에 사고로 떨어진 건가? 아니면······.

    ‘혹시 나를 구하려고 바다로 뛰어든 건가? 그럼 나를 구한 건 파르미온의 공주인건가.’

    “그럼, 파르미온 왕국의 공주가 저를 구했다는 말입니까.”

    “그랬으면 좋으련만······.”

    카시스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다니엘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 착각이 아니라는 듯 그가 서 있었다.

    “시녀가 그러더군요. 공주님은 수영을 못 하신다고 말입니다.”

    “그럼 나를 구한 것이 경도 아니고 공주도 아니면 누구라는 거지?”

    “나도 그것이 궁금해서 다니엘 경에게 물었더니 입을 꾹 다물더군.”

    황제의 말에 카시스의 미간에 실금이 갔다.

    “혹, 마린족인가? 네가 입을 다물 일은 네 종족에 관한 것밖에 떠오르지 않는군.”

    “······.”

    “맞군. 대답을 못 하는 것을 보니.”

    다니엘이 말하지 못하는 것으로 어림잡아 짐작한 것인데 저 반응을 보니 확실하군.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던 것은 아니지만 저만큼 다니엘을 아는 이는 없을 거다.

    “확실하지 않습니다.”

    “자네가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말이 틀리지 않다는 이야기야. 아니 그런가?”

    카시스가 확답을 하지 않는 다니엘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황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럼 이것도 그 마린족의 것인가.”

    “그게 뭡니까?”

    카시스의 시선이 황제 손에 들린 물건으로 시선이 향했다.

    “러셀 경이 그러더군. 네 갑옷 안에 걸려 있더라고 말이다.”

    황제의 손에는 빠져나간 것인지 얼마 남지 않은 진주알들과 그 사이에 조개 모양의 보석이 있는 줄 끊어진 목걸이가 들려 있었다.

    “엘레멘탈······.”

    “엘레멘탈?”

    조개 모양의 보석을 본 다니엘이 작게 말했다. 듣기 힘들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말을 들은 황제가 되물었다.

    “바다 깊숙한 곳에서만 나는 광물입니다. 가운데에 있는 보석은 분명히 엘레멘탈로 만든 보석입니다.”

    “그 말은 즉.”

    “마린족입니다. 인어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니엘이 말끝을 흐리면서 카시스를 흘깃 봤다.

    마린족들은 인간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인어족이 구해 줬다는 것보다 마린족이 구해 줬다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거군.

    카시스는 다니엘이 말끝을 흐렸지만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럼 이것 역시 마린족의 것이 맞겠군.”

    황제가 또다시 꺼낸 것을 보고는 다니엘의 검푸른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번에 황제가 꺼내 든 것은, 분명 마린족만이 지닐 수 있는 물빛 머리카락이었다.

    “다니엘 경, 그대가 말했었지. 마린족은 전부 물빛 머리카락에 물빛 눈동자라고.”

    “······네, 그랬습니다.”

    물빛 머리카락과 물빛 눈동자는 마린족의 상징이다. 그러니 저 머리카락은 분명 마린족의 것이었다.

    “하아-! 일을 어쩐다. 너를 구하고 사라졌으니. 바다로 돌아갔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위험해. 마린족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알고 있는 사람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황제의 말에 카시스의 표정이 굳으며 어두워지고 다니엘 또한 표정이 굳었다.

    “다니엘 경의 경우에는 마법으로 머리색과 눈동자색을 바꿨으니 별로 문제 될 건 없지만…… 찾아봐야겠지?”

    “제가 말입니까?”

    자신을 보며 말하는 황제로 인해서 카시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황제는 그럼 네가 찾아보지 않으면 누가 찾느냐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지금 나보고 찾으라는 건가? 대체 왜?

    “당연히 네가 찾아야 할 것이 아니냐. 네 목숨을 구해 줬으니까.”

    “하아-!”

    “찾아서 네가 보호를 하든 바다로 돌려보내든 알아서 하거라.”

    “폐하.”

    “마린족이 네 곁에 있는다고 별문제 생기겠느냐? 이미 네 곁에 마린족이 한 명 있는데. 어째 내 아우님은 마린족과 인연이 깊은가 보구나.”

    “형님!”

    카시스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정말 마린족이면 다니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을 텐데. 네가 무시하고 가만히 있겠다고?”

    카시스는 작게 욕을 내뱉으며 거칠게 머리를 쓸었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구해 준 마린족이 세상 밖에 나와 있지 않고 바다로 돌아갔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나는 황후와 그만 돌아갈 테니. 더 쉰 후에 천천히 와라. 배웅은 필요 없다. 아 참, 그리고 파르미온의 공주가 여기 남아 있으면 불편할 테니 내가 먼저 함께 데려가마. 공주의 거처는 황궁에 마련했다. 아직 정식으로 약혼한 사이라도 아니니 대공저나 네 영지에 함께 지내는 것은 네가 바라지도 않고 불편할 터이니.”

    “신경 써 주신 점 감사합니다.”

    신경 써 주는 김에 그 약혼도 없던 일로 해 주시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겠지. 대외적으로는 약혼녀로 데려온 것이니. 공주 본인도 그렇게 알고 있고.

    “몸이나 잘 추스르고, 수도로 오면 황태후 폐하나 뵈러 황성에 오거라. 네 걱정을 많이 하셨다.”

    “예······.”

    내 걱정을 하셨다고? 그럴 리가.

    황제가 환궁하기 위해서 방을 나서자 다니엘이 카시스 대신 배웅하려고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마린족이라······.

    카시스는 다니엘을 처음 봤을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다니엘이라는 이름도 그가 붙여 준 이름이지 그의 진짜 이름은 아니었다. 그것은 카시스보다 보름 정도 빨리 태어난 제 형님인 킬리언 라 오벨리스크 플루투스가 황제 자리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카시스는 황제의 명을 받아 노예상을 소탕하기 위해 그들의 본거지로 몰래 잠입했다. 그날의 목표는 불법적인 노예 거래상 중에서도 질이 나쁘기로 유명한 이종족 노예 상인들이었다. 카시스가 다니엘을 발견했던 것은 깊숙한 지하 안쪽이었다. 다니엘은 물이 한가득 들어찬 유리관 안에 사슬로 묶인 채 구속구까지 차고 있었다.

    처음에 그를 봤을 때는 그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사람이 숨 쉴 수 없는 물속에 있었고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사람을 물속에다 넣어서 익사시켜? 살려 둘 필요가 없겠군.’

    자신 앞에 무릎이 꿇려진 노예 상인은 물속에 갇혀 있는 사람을 보고 멍하니 있는 기사를 뿌리치고 일어나 유리관에 달려들어 탕탕 두드렸다.

    ‘살아 있습니다. 마린족이라는 종족입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마린족은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녀석도 살아 있습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카시스에게 노예 상인은 유리관을 계속 두드리면서 말했다.

    ‘마린족?’

    그때 마린족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됐다. 아니, 마린족이라는 이종족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이 있었다. 다만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지 몰랐을 뿐이다.

    노예 상인이 움직이라고 그가 갇혀 있는 유리관을 계속 두드렸다. 그러자 살아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듯 유리관 속의 남자가 눈을 떴고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인어족도 아니고 사람과 똑같이 생겼는데 물속에서 숨을 쉬고 살아 있었다. 어릴 적 형님과 본 책에서 나온 대로, 겉모습은 우리들과 같지만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종족이 맞는 것 같았다.

    일단 꺼내 줘야 했기에 검을 휘둘러 유리관을 깨 버렸다. 그러자 안에 있던 물이 쏟아져 내리고, 갇혀 있던 그가 바닥에 떨어졌다.

    ‘비싸게 팔 수 있는 상품인데 어찌···.’

    ‘이렇게 되었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네 녀석들이 잡은 이종족들은 치료 후 풀어 줄 거다. 너희 같은 작자들 때문에 이종족들이 인간들을 싫어하는 거다.’

    노예 상인이 발악하자 기사가 그를 제압했다. 카시스는 노예 상인을 지나쳐 일어나지도 못하는 그에게 다가갔다.

    ‘정리는 끝난 것이냐?’

    ‘예, 폐하.’

    그때 기사들과 다른 곳을 수색하던 황제가 자리에 도착했다.

    ‘이건, 뭐지? 설마 이종족 노예만 있던 것이 아니었나?’

    ‘제가 보기에는 평범한 사람 같은데 이종족이라고 하는군요. 마린족이랍니다.’

    ‘마린족?······. 책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진짜 있는지는 몰랐군. 일단 옮겨서 치료해 주도록.’

    그렇게 옮겨서 치료해 주고도, 처음에는 다니엘을 상대하는 데 애를 먹었었다. 물을 조종해서 공격하는 모습은 실로 놀라웠다. 하지만 그 때문에 다치지 않게 잡아 제압하느라 갖은 애를 먹기도 했다. 저는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 베는 것은 자신 있었지만 다치지 않게 제압하는 것은 무리였으니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을 해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 다니엘은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 뒤에야 조금 얌전해졌다.

    ‘구해 줘서 고맙습니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말 한 번 안 하고 대답도 안 하더니 처음으로 한 말이 감사 인사였다.

    ‘구해 주신 것도 감사한데 치료와 숙식 제공까지 해 주셨으니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이름이 뭐지?’

    ‘·······잊어버렸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 건가. 가족이 기다릴 텐데.’

    ‘십 년이 넘었습니다. 이미 제가 죽었다 생각할 겁니다. 제가 돌아가면 기뻐하겠지만, 진짜가 맞나 의심도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이미 가문을 이을 후계자가 정해졌을 텐데, 제가 돌아가 혼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습니다.’

    후계에 있어서는 이종족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라는 건가? 살아남기 위해서, 후계자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또는 빼앗기 위해서 죽이고······· 이런 건 어디나 똑같은 모양이군.

    그래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인가 싶었다.

    ‘좋아, 네가 이곳에 남아 있겠다면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마련해 주마. 이름을 잊었다 하니 새 이름부터 만드는 것이 좋겠지. 그것이 부르기 편할 테니. 이제부터 네 이름은 다니엘이다.’

    카시스는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었다.

    그가 카시스를 멍하니 올려다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