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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님, 그 계약은 잊어주세요-3화 (3/100)
  • 3화

    “오로치는 이빨뿐만이 아니라 꼬리에도 독이 있습니다!”

    다니엘의 말을 들은 윌리엄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걸 왜 이제 말하나?”

    카시스가 독에 내성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 올라오지 않는 것을 보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윌리엄도 알아챌 수 있었다.

    “여기 계십시오.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바다로 뛰어들려는 윌리엄을 막은 다니엘이 다 부서진 난간을 밟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젠장, 전하도 파르미온 공주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더 깊이 가라앉은 건가.

    다니엘은 좀 더 깊이 잠수하며 주변을 살펴봤지만 칼리스토 대공과 파르미온 공주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 *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속으로 구호를 붙이고 발로 땅을 차며 가볍게 점프할 때마다 물빛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소녀는 세 번째 하나에서 무릎을 더 많이 구부리고 둘에서 땅을 힘차게 박차면서 솟아오르듯 위로 힘껏 헤엄쳐 올라갔다.

    난 정말 바깥세상을 여행해 보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 익숙해져야 해. 몰래 물 위로 올라가 육지를 밟고 주변을 조금씩 걸어서 익숙해지는 거야.

    아버지, 어머니는 위험해서 안 된다고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보호만 받아야 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란 말이야.

    열심히 헤엄쳐 물 위로 얼굴을 내밀고 언제나 걷는 연습을 하던 곳으로 가던 소녀는 ‘쾅!’ 하는 굉음에 놀라 헤엄치던 것도 멈추고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폭발로 화염에 휩싸여 부서지고 있는 배와 그런 배를 휘감고 있는 거대한 바다뱀. 그리고 그 바다뱀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하고 있는 몇 가닥의 물줄기가 보였다.

    “오로치잖아. 오로치가 배를 습격하고 있…… 어?”

    배를 박살 낸 거대한 흰 뱀이 오로치라는 것을 알게 된 그녀의 눈에 누군가 부서진 배의 잔해를 밟고 뛰어오르는 것이 들어왔다. 그러곤 누군가 오로치를 두 동강 내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오로치의 마지막 발악에 그자는 꼬리에 맞고 날아가 바다에 빠졌다.

    그 어떤 날카로운 것에도 작은 흠집조차 잘 나지 않는 오로치의 단단한 비늘을 단번에 둘로 갈랐어.

    아차!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꼬리에 정통으로 맞은 것 같았는데. 거리가 있어도 날아간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 알 수 있었다.

    ‘오로치는 이빨과 꼬리에 독이 있어. 위험해.’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남자가 오로치의 꼬리에 맞아 떨어진 곳을 향해 헤엄쳤다. 그에게 헤엄쳐 가던 소녀는 무언가를 보고 잠시 멈추었다.

    그의 뒤를 이어 누군가 떨어졌고 그를 구하기는커녕 같이 가라앉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을 향해 빠르게 헤엄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잡아채 육지를 향해 헤엄쳤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이게 대체 뭐야? 내가 더 힘들어지잖아!

    연약한 나한테 무슨 짓이야! 그러면서도 구해 주는 나는 대체 뭘까.

    “아이고, 힘들어.”

    한 명도 힘든데 두 명이나 끌고 왔으니 더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힘들게 육지로 끌어 올린 두 사람 중 우선 여자 쪽으로 다가가 가슴에 귀를 대 보았다. 그녀를 흔들어 깨우자 신음 소리를 내는 것을 확인하고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쪽은 괜찮은 것 같네. 문제는 저쪽인가? 독이 있는 오로치 꼬리에 정통으로 맞은 것 같았지만······, 분명히 재앙급 마물인 오로치를 두 동강을 냈어.”

    정말 강했어. 설마 그 단단한 비늘을 가진 오로치를 일격에 해치울 줄은 몰랐는데.

    뒤를 돌아본 그녀는 남자를 멍하니 내려다봤다.

    강하고 잘생겼다. 인간 남자들은 전부 다 이렇게 곱상하고 잘생긴 건가? 이런 사람이 내 반려면 얼마나 좋을까.

    ‘잘생긴 데다 강하기까지 해.’

    그런데 이 사람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요 근래 봤다면 잊어버렸을 리가 없는데. 어디서 봤더라.

    분명히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왜 생각이 안 나는 거지.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으윽-.”

    “아차! 나 좀 봐.”

    남자의 신음에 정신을 차린 소녀는 그의 심장 소리를 들어 보고자 귀를 대 보았다. 하지만 옷 위에 방어구로 보이는 차갑고 단단한 것 때문에 심장 소리가 미약하게 들렸다. 소녀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그것을 벗겨 보려고 애를 썼다.

    “이거 어떻게 벗기는 거지? 휴우-. 물어볼 사람도 없고 대답해 줄 사람도 없고. 어쩐다.”

    인간들은 왜 이렇게 벗기기 힘든 걸 입는 거지?

    “상처가 얼마나 심한지 봐야 하는데.”

    “으윽!”

    소녀는 품에서 작은 주머니에 담긴 진주알을 꺼내 남자의 입에 넣어 줬다.

    은혼단은 이미 죽었거나 죽기 직전의 상태와 병만 아니면 웬만한 상처나 독을 치료해 주니 괜찮을 거야.

    하지만 남자는 은혼단을 삼키지 못하고 뱉어 냈다.

    “은혼단을 먹어야지 괜찮아질 텐데. 큰일이네.”

    “이를 어쩐다. 아틀란으로 돌아가서 아버지께 이 사람을 도와 달라고 할까? 오로치를 두 동강을 내는 걸 보면 꽤 강해 보이던데. 오로치가 자주 출몰해서 아버지도 골치 아파하시는데 이야기를 잘하면 도와줄 수 있잖아. 종족은 다르지만. 아니야······, 예전의 아버지 같지 않아서 이 사람이 위험할 수도 있어.”

    소녀는 고개를 저으면서 아틀란으로 돌아가서 도와달라고 하는 것을 포기했다.

    아버지가 이 사람을 죽이려고 들지도 몰라. 아버지는 인간들을 싫어하니까. 내가 또 물 위로 올라온 걸 아시면 화내실 거야.

    “그리고, 이렇게 잘생긴 사람을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잖아. 그런데 정말 어디선가 본 것처럼 낯설지 않은데. 어디서 봤더라?”

    소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최근에 만났다면 이런 얼굴을 쉽게 잊어버릴 리가 없을 텐데.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언제 봤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아.

    “으-.”

    ‘내가 또 딴생각을 하고 있었네. 그냥은 못 삼키는 것 같으니 입으로 먹여 줘야 하는 건가? 으음-. 어쩌지.’

    소녀는 굳은 결심을 한 듯 은혼단을 제 입에 머금고는 얼굴을 내려 입술을 겹쳤다. 그 순간 소녀와 남자의 이마에서 아주 약한 빛이 반짝이다가 사라졌다.

    “아야야.”

    고개를 들고 일어나려던 소녀의 머리카락이 갑옷 안으로 흘러들어 가, 뭔가에 엉키면서 걸렸다. 갑옷 안에 손을 넣어서 풀어 보려 했지만, 손가락 하나조차 쉽게 들어가지 않아 끙끙거리고 있을 때였다.

    “공주님!”

    “힉!?”

    “또 몰래 나오셨죠?”

    이, 이 목소리는. 어쩐지 뒤돌아보기 싫다는 생각에 소녀는 잠시 얼어붙었다.

    “공주님.”

    억지로 고개를 돌려 보니 역시나 그녀가 예상했던 인물이 서 있었다.

    “제, 제이드. 놀랐잖아.”

    아이씨-. 이번엔 안 들킬 줄 알았는데. 제이드가 직접 올라올 걸 보면 아버지가 아셨다는 건데······. 큰일 났다!

    “제가 온 이유를 아시겠죠? 저도 공주님 잡으러 다니기 귀찮고 힘듭니다. 적당히 좀 하시죠. 그런데 뭡니까, 그 자세는?”

    무슨 자세기는 무슨 자세야. 머리카락이 걸려서 일어나지 못하는 자세지. 보면 모르냐!

    “머리카락이 뭔가에 걸렸어.”

    “그럼 그 인간도 데리고 가죠. 왕께서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미쳤어? 인간은 물속에서 숨을 쉴 수가 없어.”

    “그럼 죽으라고 놔두면 되지 않습니까. 제가 그 인간의 생사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겁니까?”

    “정말 못됐어. 너.”

    “전 인간이 싫습니다. 죽든지 말든지 저하고는 상관없단 말입니다. 제 형이 누구 때문에 죽었는데요.”

    ‘행방을 모를 뿐이지 안 죽은 거 아니었어?’

    제이드 앤드류. 어린 시절부터 천재라고 불릴 정도로 물을 조종하는 것도 빨리 터득하고 실력이 꽤 좋은 앤드류가의 차남. 앤드류가에는 제이드 이외의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고 했다. 그 형이 물 위로 올라왔다 생사도 알 수 없이 행방불명이 되어 버렸다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

    소녀가 처음 물 위로 올라왔을 때보다 더 어린 나이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제이드의 형. 이름이 뭐였더라? 샤? 사? 아무튼 둘 중 하나가 들어가는 이름이었다. 제이드처럼 실력 좋고 천재적인 능력에 누구에게나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고.

    그런 제이드의 형이 생사도 알 수 없이 행방불명이 된 것은 십 년도 더 된 일이었다. 아일라처럼 물 밖 세상을 동경해 물 위로 나섰던 형을 하루아침에 잃은 후, 제이드는 완전히 변해 버렸다.

    “안 갈 겁니까?”

    “머리카락을 빼야 한다니까.”

    머리카락이 잘 안 빠져, 하고 아일라가 작게 투정을 부렸다.

    “그 인간을 익사시키고 싶지 않으면 머리카락을 자르든지 뽑든지 해도 되겠군요.”

    바로 이렇게 싹수없게 변했다.

    “뭐라는 거야?! 나 공주야.”

    “누가 뭐랍니까, 공주님. 아는 사실을 굳이 말해 주실 필요 없습니다.”

    “여자한테는 얼굴과 몸도 중요하지만 머리카락도 중요해. 어떻게 내게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뽑으라고 할 수 있어?”

    “그럼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어쩌라는 겁니까? 제 임무는 공주님을 모시고 아틀란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네가 물로 이것 좀 잘라 줘. 그럼 엉킨 머리카락을 풀 수 있을 것 같아.”

    “그 인간의 몸도 같이 자를 것 같습니다만.”

    “죽이면 안 돼! 내가 살렸는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죽여.”

    넘기기 힘들어하기에 입으로 겨우 은혼단을 먹였다는 말은 아일라의 입 안에만 맴돌 뿐이었다.

    “그럼 저더러 어쩌라는 겁니까? 둘 중 하나만 고르십시오. 첫째, 그 인간을 아틀란으로 데리고 가서 머리카락을 풀어낸다. 둘째, 죽이고 머리카락을 잘라 낸다.”

    뭐야? 선택지 둘 다 전부 죽인다는 내용이 있잖아.

    “둘 다 싫어. 다른 방법을 제시해. 죽이지 않고 내 머리카락 푸는 방법. 네 능력이면 이 남자가 입고 있는 이것만 자를 수 있잖아.”

    내가 구한 사람을 누구 마음대로 죽인다는 거야, 정말.

    그녀가 남자가 입고 있는 갑옷을 두드리면서 말하자, 제이드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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