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입안이 바짝 말랐다. 입술은 쩍쩍 갈라져 연방 피가 새어 나왔다. 지독히도 건조한 사막을 건너왔다. 푹푹 발을 잡아먹는 검은 모래밭을 빠져나오느라 진이 쭉 빠져버렸다.
“허억, 허억….”
묘흔은 가까스로 숨을 토해내며 눈앞에 드러난 천옥문天獄門을 건너다보았다. 진회색 구름을 뚫고 끝도 없이 치솟은 그것을 올려다보다, 그만 볼썽사납게 엉덩방아를 쿵 찧었다.
“아고. 아고고, 엉덩이야….”
다시 일어날 기력이 없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도통 힘이 실리지 않았다. 몇 시간을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체감상 몇 날 며칠은 꼬박 걸린 것 같았다.
하긴, 인간계의 하루는 천계의 마흔아홉 날이니 실상 이곳의 시간은 며칠이 꼬박 흘렀을 터였다.
몇 번을 일어나려 시도하다 벌러덩 나자빠졌다. 아이고오, 조금만 쉬자, 조금만….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아 딱 열만 세자 하며 대자로 뻗어버렸다.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고르자 하늘 아래 두고 온 근심이 차올랐다.
우리 월호 님은 어쩌고 계시려나. 지금쯤이면 정신이 들어 지안 님을 보셨으려나.
‘ 허…! 지, 지안 님…! ’
수아의 수면초를 기다리다 느닷없이 지안과 맞닥뜨렸다. 이성을 잃고 곧장 침실로 향하는 그녀를 막아서지도 못했다. 수아에게 뒤늦게 자초지종을 듣고는 이 일을 어쩌나 눈앞이 막막해졌다. 하나 그도 잠시, 에라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그러잖아도 홀로 죽음과 싸우는 우리 월호 님이 너무 가엾지 않나, 내내 마음이 무거웠었다. 끔찍하게 변해가는 그를 지켜봐야 할 지안의 마음일랑 짐작도 되지 않을 만큼 무너지겠으나, 제 마음의 무게는 월호 님께만 기울어져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지안 님…. ’
하여 그녀에게 그를 맡기고 펜트하우스를 나섰다. 그도 저보다야 그녀가 곁을 지켜주는 것이 외려 안락할 것이었다. 이제 저는 그를 살릴 방도를 찾는 일에만 몰두하면 되는 것이다.
예까지 온 보람이 꼭 있어야 할 터인데….
다시 힘을 내어 일어나보자 주먹을 불끈 쥐었을 때였다. 감은 눈꺼풀 너머로 별안간 음영이 졌다. 동시에 후끈대는 열기가 얼굴 위로 훅 끼쳐왔다. 묘흔은 화들짝 눈을 떴다.
“……!”
양쪽 귀를 이을 만큼 길게 찢어진 검은 입술과 눈동자도 없이 커다랗게 박힌 하얀 눈알. 그보다 더 새하얗고 길쭉한 얼굴.
코앞에 거꾸로 붙어있던 흉악한 얼굴을 몇 번이고 확인한 묘흔은 뒤늦게 비명을 터트렸다.
“끄, 끄아아악!”
“꾸웨엑!”
그 커다란 입을 쩍 벌리며 놀리듯 고함을 꽤액 지른 그것이 낄낄거리며 묘흔을 내려다봤다.
“크크큭. 귀청 떨어지겠다, 이놈아.”
“허억, 허억….”
묘흔은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가슴팍을 덥석 쥐고 괴생명체를 멀뚱멀뚱 바라봤다. 제 정수리 위에 쪼그려 앉아 있는 몸은 대충 봐도 저의 서너 배는 됨직해 보였다. 손에 들고 맛나게도 뜯어먹고 있는 저것은 설마하니 인간의 다리인가.
“뉘, 뉘, 뉘십니까…?”
나오는 대로 대뜸 묻자 괴생명체는 인간의 다리 살을 질겅질겅 씹으며 헛숨을 터트렸다.
“천옥문 앞까지 기어들어 온 것은 네놈이 아니냐. 한데 장승에게 정체를 묻는다? 허허, 뭐 이런 놈이 다 있는고?”
“아. 아아…!”
묘흔은 그제야 벌떡 일어나 천옥문을 지키는 장승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자, 장승이셨습니까. 아이고, 이놈이 정신이 혼란하여 알아뵙지 못하였습니다. 송구합니다. 송구합니다….”
벌떡 일어서고도 쪼그려 앉은 장승의 얼굴을 마주하자니 고개가 쳐들렸다. 실로 어마어마한 덩치였다.
흰 눈알의 장승은 고개를 까딱 기울이며 묘흔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이내 시꺼먼 입술 사이로 묘흔의 생년월일이 술술 흘러나왔다.
“순조 20년 유월 갑술일이라…. 명名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 죽을 날이 아닌 듯싶은데, 어찌 예서 이리 자빠져 있을꼬? 사자가 실수를 한 것인가?”
“아, 아닙니다. 저, 저는 이것으로 하늘의 문을 넘어온 것입니다.”
품 안에서 천문패를 꺼내 든 손이 덜덜덜 떨렸다. 그것을 힐끗 내려다본 장승의 눈썹이 산봉우리처럼 삐죽 솟았다.
“으응? 네놈이 천문패를 어찌….”
각각의 자연계를 통치하는 신들만이 지닐 수 있는 물건을 어찌 죽지도 않은 한낱 고양이가 쥐고 있는 것인가.
제 새끼손가락만 한 그것을 쏙 뽑아든 장승은 그 안에 새겨진 이름을 확인했다.
月狐
“월호라….”
아아… 그렇지. 신을 제외한다면 단 한 명, 신수를 다스리는 자. 호조사의 자격을 쥐고 있는 이자 역시 천문패를 지닐 수 있었을 테지.
“월호의 수족이더냐?”
“예, 예에. 그렇습니다.”
두툼한 손가락이 뾰족한 턱을 스윽 스윽 문질렀다.
“흐음…. 그자가 이 위험한 물건을 직접 쥐여줬을 리는 없을 테고….”
“…….”
“산목숨으로 제 주인의 천문패까지 훔쳐 예까지 왔다라….”
묘흔은 대꾸도 못하고 마른침만 연거푸 삼켰다. 해서 안 될 짓임을 알면서도 무턱대고 여기까지 찾아왔지만 막상 이 커다란 덩치 앞에 서 있자니 오금이 저려 미칠 지경이었다.
까딱까딱 기울던 장승의 얼굴이 불시에 눈앞까지 성큼 밀려들었다.
“흡!”
묘흔은 숨을 집어삼키며 화들짝 등을 물렸다. 하얀 눈알이 코앞에서 기이하게 깜박였다.
“네놈도 염라 님을 알현하러 온 것이냐? 화신과 같은 청을 하고자?”
겁에 질려있던 묘흔의 눈망울이 별안간 어리둥절해졌다.
“…예?”
저는 그저 율령을 만나고자 걸음한 것이었다. 이 천옥문 너머에 염라대왕이 기거하리란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어차피 염라의 성까지는 닿지도 못할 몸이니 그저 이 천옥문 앞에서 하염없이 율령을 기다릴 작정이었다.
한데 청이라니. 율령이 매일같이 천옥문을 넘나들었다는 것이 허면….
“몰랐던 게냐? 화신이 제 아들을 살리고자 몇 날 며칠 염라 님께 무릎을….”
그때였다.
“묘흔.”
장승의 커다란 어깨너머에서 익숙한 음성이 건너왔다. 두툼한 팔뚝 너머로 빼쭉 고개를 내민 묘흔은 턱이 빠지라 입을 떡 벌렸다.
“억!”
쩔뚝거리며 걸음을 내디딘 율령이 의아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네놈이 어찌 여기 있느냐.”
“아, 아, 아이고….”
덥석 입을 틀어막은 묘흔은 한달음에 율령의 앞으로 달려갔다. 땀에 전 얼굴과 지옥불을 걷느라 까맣게 타버린 다리를 훑는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 이게, 이게 대체….”
감히 손대지도 못하고 허공만 더듬던 묘흔은 그의 앞에 냅다 고개를 처박았다.
“아이고, 율령 니임…!”
월호 님을 포기하신 줄로만 알았습니다. 이놈이 생각이 짧아 감히 이 지독한 부정 앞에 서운함을 품었습니다. 송구합니다, 감사합니다!
울먹이는 묘흔의 목소리가 천옥의 검은 하늘을 쩌렁쩌렁하게 흔들었다. 율령은 그저 지친 숨을 내쉬며 묘흔의 등을 토닥여줄 뿐이었다.
**
창을 투과한 아침 햇살이 발치까지 떨어졌다. 의자에 앉은 채로 침대 위에 불편하게 엎드린 몸이 이따금 잘게 떨렸다.
아… 안 돼….
숨처럼 흐르는 목소리가 불안정했다. 고개는 경련하듯 흔들렸고, 움찔거리던 손은 절박하게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형체도 보이지 않는 악몽이었다. 뭐가 안 된다는 건지도 모른 채 ‘안 돼, 안 돼.’ 같은 말만 반복했다.
꼼짝없이 엎드려 신음만 내뱉길 얼마쯤.
지이잉. 요란한 진동음이 동아줄처럼 악몽 속을 파고들었다.
“…허!”
번쩍 눈을 뜬 지안은 엎드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까스로 가위에서 풀려난 심장이 시끄럽게 둥둥 울렸다. 그럼에도 꿈인가 현실인가, 단번에 파악하지 못하고 얼마간 동그랗게 눈만 깜박였다.
협탁 위에 놓아둔 휴대폰이 다시 한 번 진동했다. 그제야 식은땀을 훔치며 몸을 일으킨 지안은 힘 빠진 팔을 뻗어 겨우 휴대폰을 들었다. 수아의 메시지였다.
[ 지안 님…. 현장은 잘 수습했어요. 과로로 병원 진료 받으셨고, 하루 이틀 휴식 필요하다는 정도루요. 감독님께도 잘 말씀드렸으니 이쪽 일은 걱정 마시고 모쪼록 마음 잘 추스르셔요. ]
[ 아! 그리고… 지안 님 탓이 아니니 너무 마음 쓰지 마셔요. 제가 말실수를 하여 혹여 마음 다치셨을까 봐 걱정이어요. ㅜㅜ ]
“하….”
답장을 쓰려다 한숨이 먼저 쏟아졌다. 왜 제 탓이 아닐까. 저를 원망할 수아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마음이 상할 것도 없었다. 괜찮으니 괘념치 말라는 말과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창에 띄워놓고 고개를 들었다.
침대 위가 허전하게 비어 있었다. 행여 도망갈세라 그와 제 손목을 꽁꽁 묶여뒀던 수건만 베개 옆에 덩그러니 남은 채였다.
“어디 가셨지….”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고요한 침실을 휘둘러보던 지안은 돌연 눈을 고쳐 떴다. 설마 하는 마음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달음에 침실을 나선 지안은 너른 거실을 가로질렀다. 주방과 욕실을 정신없이 살핀 후 손톱만큼 틈이 보이던 서재 문을 벌컥 연 순간이었다.
지안은 펄떡이는 가슴팍을 꾹 내리누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 깜짝이야….”
창을 마주하고 서 있던 그가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
“아침부터 왜 뜀박질이야?”
지안은 태연하게 묻는 그에게 다가가며 괜히 눈꼬리를 샐쭉 접었다.
“도망간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월호는 피식 웃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도망가면 죽겠다며.”
“협박이 통하긴 했나 보네….”
성큼 월호의 곁에 붙어선 지안은 잃어버린 엄마를 찾기라도 한 것처럼 얼른 그의 손을 잡았다. 그가 울퉁불퉁 못난 손이 신경 쓰여 슬그머니 빼내려 하자, 지안은 되레 손가락 사이사이로 꼼꼼히 깍지를 꼈다. 그러고는 능청스레 창밖을 내다보며 묻는다.
“뭐 보고 있었어요?”
혀를 내두르며 손 풀기를 포기한 월호는 먼 산을 건너다보며 말했다.
“아침.”
“아침이요?”
며칠 후면 보지 못할 아침.
구태여 속말을 내뱉지 않고 눈부신 해만 바라보던 월호는 돌연 시야를 좁히며 지안을 내려다봤다.
“제작발표회 잘하고 왔다며.”
가늘게 내리뜬 눈이 ‘어디서 거짓말이야.’라며 추궁하고 있었다. 지안의 눈동자가 머쓱하게 그의 눈치를 살폈다.
“…수아 님 연락 왔었어요?”
“연락도 왔고, 이미 알고 있기도 했고.”
그러며 눈짓한 곳은 창가 옆에 놓인 작은 선반 위였다. 자신의 기사가 떠 있는 태블릿PC 화면을 확인한 지안은 멋쩍은 얼굴이 됐다.
[ 서지안, ‘너나들이’ 제작발표회 도중 이탈. ]
“아….”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지. 프로가 그래서 되겠어?”
지안은 대번 입술을 삐죽이며 변명했다.
“‘사’가 웬만큼 큰일이어야지…. 어떻게 구분이 돼요, 그 정신에.”
“말이나 못 하면.”
정말 그 정신에, 무대에 어떻게 올라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마이크를 들기는 했던가? 어쩌다 박차고 나왔는지 그조차도 모르겠다. 저를 살리고 그가 죽으려 한다는데 어떻게 제정신일 수가 있을까.
실은 지금도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버젓이 눈앞에 있는데, 며칠 후면 그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그의 전신을 물들인 검은 흔적을 보지 않았더라면, 더더욱 믿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러한 생각에 잠기자 여지없이 눈망울이 서글퍼졌다. 그만 울어야지 다짐했건만 대번에 코끝이 찡해진다.
“와아. 아침 구경 재밌네요.”
괜히 실없는 소리를 뱉으며 애써 울음을 삼키던 때였다.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던 그가 손깍지를 풀며 느닷없이 말했다.
“뒤돌아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