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뜨는 밤-91화 (91/106)
  • 91.

    자욱한 안개가 온몸을 뒤덮었다. 습기를 흠뻑 빨아들인 옷이 무겁게 축 늘어졌다. 걸음을 디디려다 결국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도 힘에 겨워 바닥에 드러눕고 말았다.

    어지러웠다. 머릿속에 커다란 구슬이 들어찬 듯 압박감이 느껴졌다.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그것이 묵직하게 구르는 기분이었다. 해서 그저 바로 누운 채 한참 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고적 속에서 나지막한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아… 하….

    그 안에 미약하게 섞이는 내 숨소리도 또렷이 들렸다. 젖은 옷의 시린 감촉도, 옅은 호흡도 인지할 수 있는 것을 보니 아직은 괴수가 되진 않았구나, 힘이 없는 와중에도 내심 안도는 되었다.

    하나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옷의 무게도 이기지 못할 만큼 나약해진 몸이, 힘을 잃은 숨소리가 나락이 가까워졌음을 알려왔다.

    하여 억울한가. 서글픈가. 미련이 남는가.

    안개 속에서 누군가가 그리 물었다. 나는 길지 않은 고민 끝에 초연히 웃음 지었다.

    아니. 충분히 살았으니 미련이 남을 일도 없다. 그러잖아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싶었던 나날들이었다. 천 년을 신수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였고, 어쩌다 어여쁜 여인을 만나 연모까지 해봤으니 무엇이 억울하랴. 저주받은 5백 년의 지루했던 삶조차 지난 백 일의 행복이 희석해버렸으니 결과적으론 썩 나쁘지 않은 호생이었다.

    하여 정말, 진정으로 괜찮은가.

    그 누군가는 구태여 끈질기게 물었다.

    글쎄….

    이번에는 선뜻 대답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 생각이 깊어지자 어여쁜 얼굴을 떠올리며 한껏 풍족했던 마음이 조금 황량해졌다. 이내 텅 비어버린 심장 속으로 꿉꿉한 습기가 가득 밀려들어 왔다.

    그러게…. 나는 괜찮은가.

    짓궂었던 누군가의 질문은 결국 자문이 되었다. 한참을 고민하고 또 생각했다. 심장에 가득 찬 습기가 얼룩덜룩 이끼가 되어갈 때쯤 겨우 진심을 말하였다.

    그래, 실은 괜찮지 않다. 천 년에 한 번이었던 연심을 그다지 오래 품지 못한 것이 아쉽고 서글프다. 미처 하지 못한 말이 남아 있어 못내 마음이 미어졌다. 다시 한 번 그 작은 몸을 품에 안고 말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내가 너를 꽤, 많이 연모하노라고.

    …님. 영감니임….

    고백에 화답이라도 하듯 흐린 기척이 들려왔다. 환청이려니. 마치 물결처럼 일렁이는 소리를 그저 바람에 실어 보냈다.

    영감님… 영감님….

    하나 재차 밀려들어 오는 음성을 담고는 피싯 웃음을 흘렸다. 겁도 없이 나를 영감 따위라 부를 이는 세상에 단 한 명뿐인데….

    환청이 참 모질기도 하다 생각하며 가늘게 눈을 떴다. 어느새 희뿌연 안개를 헤치고 한 줄기 빛과 같은 틈이 벌어져 있었다.

    깜빡깜빡, 느리게 눈꺼풀을 여닫았다. 그때마다 가늘었던 틈이 손톱만큼씩 더 벌어졌다. 그러다 이내 부연 안개가 완전히 걷혔다.

    “흐으흡….”

    월호는 흐릿하게 각막에 맺히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입을 틀어막은 여인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째, 일그러진 얼굴도 어여쁜 걸 보니 너인 듯도 싶고…. 오늘 밤엔 내가 가지 못하여 네가 온 것인가.

    “흡… 어, 어떡해… 어떡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공을 더듬던 작은 손이 제 손을 쥔 채 바들바들 떨었다. 끔찍하게 변해버린 손등을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우는 얼굴은 아무리 봐도 어여쁜 내 여인이다.

    역시 약을 너무 많이 먹었나. 물론 이렇게라도 너를 보니 부작용이 썩 나쁘지는 않다만…. 묘흔의 통통한 얼굴이 이리 예쁜 지안으로 보이는 건 상태가 좀 심각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는 느릿하게 깜박이던 눈을 다시 감았다. 하얗게 핏기를 잃은 입술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하… 진짜 죽을 때가 됐나….”

    찰싹! 손등에 따끔한 마찰이 인 건 그때였다.

    “아.”

    제법 매운 손맛에 외마디가 절로 터져 나왔다. 월호는 황당하여 눈을 찌푸려 떴다.

    이놈이 하다 하다 손찌검까지….

    “무섭게 왜 그런 말을 해요!”

    버럭 소리를 내지른 놈이 다시 제 손을 붙들고 엉엉 눈물을 쏟아냈다. 기가 차 입만 벌린 채 놈을 노려보던 월호는 점점 가늘게 눈을 좁혔다.

    “…….”

    시커멓게 번진 화장하며, 곱게 차려입은 원피스, 구불구불 우아하게 매만진 머리칼이 차례로 각막에 차오른다.

    그리고, 제 손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살결의 감촉과 코끝을 간질이는 익숙한 향기가 심장 깊이 가시처럼 박혔다.

    …설마.

    미간에 균열이 생겼다. 일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동시에 철렁 내려앉은 심장이 망연히 헛숨을 밀어냈다.

    “하.”

    설마. 진정 너였던가.

    “너….”

    입술이 파르르 경련했다. 관리하지 못한 표정이 엉망으로 구겨졌다.

    묘흔이라 착각했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더 크게 울음을 터트린 지안이 제 가슴 위로 무너졌다.

    “이러는 게 어딨어요. 이게 뭐예요, 정말…!”

    “…….”

    목덜미에 푹 파묻힌 얼굴이 울음 섞인 원망을 토해냈다. 반사적으로 손이 들렸지만 차마 그녀의 등을 안지 못하고 허공에서 어색하게 멈추었다.

    “…너.”

    맞닿은 가슴이 파도처럼 철썩댔다.

    “너, 어떻게….”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뱉어냈지만 귓가엔 지안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당황스러워 천장만 훑는 그의 시선이 불안정하게 떨렸다.

    “왜 그랬어요. 왜애…!”

    품에서 떨어진 지안이 그의 가슴을 찰싹찰싹 내리치며 울부짖었다. 문드러진 살갗이 떨어져 나갈 듯 아렸으나 그는 가만히 누워 눈물로 얼룩진 지안의 얼굴을 바라만 보았다.

    “이런 줄도, 모르고… 나는… 이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

    두서없이 중얼거리는 울먹임이 갈수록 격앙되었다. 그의 가슴을 내리치다가, 답답한 듯 제 가슴팍을 퍽퍽 치기도 하고, 얼굴이 엉망인 줄도 모르고 손등으로 눈물을 벅벅 닦아내다가, 그의 목을 끌어안고 통곡을 하기도 하고.

    지안은 금세라도 탈진할 듯 기가 빠진 얼굴로 그렇게 한참 동안 울기만 했다. 무어라 말도 못 하게, 더는 차게 내칠 수도 없게 창백해진 낯으로 쓰러질 듯 휘청댔다.

    허공에 어색하게 들려있던 그의 손이 여러 번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어찌해야 하나 주춤대던 손은 결국 한숨과 함께 지안의 등에 내려앉았다.

    “…진정해. 그만 울어.”

    그는 들썩이는 몸을 품에 당겨 안았다.

    “내가 잘못했으니 그만….”

    며칠 사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등을 토닥토닥 다정히 어루만졌다. 울음을 달래고자 품에 안았거늘, 지안은 그가 내어준 품 안에서 더욱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월호는 하염없이 지안의 등을 쓸어내리며 천장에 닿을 듯 깊은 탄식을 밀어냈다.

    “하아….”

    또르륵, 저도 모르게 흘려버린 눈물이 관자놀이를 뜨겁게 적셨다.

    **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어 앉은 월호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통곡하는 지안을 품에 안고 등을 토닥이기까지 했지만, 실은 그마저 꿈인 줄로만 알았다.

    약 기운이 흐리게 남아있던 상태였다. 하물며 커다란 울음소리에 머리가 둥둥 울리니 까무룩 혼이 나가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짙은 새벽빛이 창에 걸려있었다. 침실엔 혼자였고 시린 정적이 깊었다. 해서 역시 꿈이었구나 확신했었다.

    한데.

    ‘ 어! 깨셨어요? ’

    물을 담은 대야와 수건을 들고 침실로 들어서던 지안을 보는 순간, 심장이 다시금 철렁 떨어졌다. 환상이 아니었다. 이젠 정신이 말짱히 돌아와 착각이라 치부할 수도 없었다.

    아… 빌어먹을. 진짜 너였구나.

    허망함이 솟구쳤다. 당혹감에 숨이 턱 막혔다. 보기 싫으니 그만 좀 꺼지라며 뒤늦게야 부질없이 차게 굴었다. 그러자 지안은 퍽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 다 알고 온 거 알면서 왜 또 그래요. 자꾸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면 나 콱 죽어버릴 거야. ’

    극강의 협박이었다. 치사한 계집애.

    “그만 놔요. 왜 이렇게 고집을 부려요, 진짜.”

    지안은 월호의 손목을 꽉 움켜쥔 채 으르렁댔다. 기력은 바닥이었으나 한 손으로 제 옷고름을 사수하고 있는 월호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한다니까.”

    자는 사이 폭포처럼 흐른 식은땀에 속적삼이 축축이 젖고 말았다. 한기가 들어 몸을 떨자, 지안은 얼른 드레스룸으로 건너가 새 옷을 꺼내왔다. 기어이 제가 갈아입히겠다고 옷고름을 당겨대는 지안과 힘겨루기를 하는 이 상황이 어째 낯설지 않았다.

    묘흔과 이미 이 곤란한 실랑이를 한 차례 벌였던 참이었다. 충격에 붉어지던 묘흔의 눈빛을 익히 보지 않았던가. 지안에게만은 결코 보이고 싶지 않은 몰골이었다.

    월호는 이젠 움직이기도 힘겨운 오른팔을 겨우 들어 제 왼손을 움켜쥔 지안의 손을 떼어냈다. 하지만 다시 자석처럼 들러붙은 손은 물러섬이 없다.

    “옷고름도 제대로 못 풀면서 무슨. 놓으라구요, 어서.”

    급기야 성질을 내며 그의 손을 탁 쳐낸 지안은 지체 없이 그의 속적삼을 벗겨냈다. 어찌 해 볼 수도 없을 만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

    역시나 그녀는 말을 잃었다. 멈칫한 손이 숨김없이 움찔 떨렸다. 얼굴은 부러 보지 않았으나 아마도 경악스레 굳어졌을 것이었다.

    월호는 팔꿈치에 걸쳐진 옷을 마저 벗으며 짐짓 짜증스레 미간을 구겼다.

    “이제 속이 시원해?”

    말꼬리가 괜히 까칠해졌다. 묘흔도 너도 왜 이리 내 맘을 몰라주나, 속상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젖은 속적삼을 바닥에 툭 던져놓고 곧장 새 옷을 쥐었다. 그제야 지안은 아무렇지 않은 척 그에게서 옷을 빼앗았다.

    “땀 좀 먼저 닦구요. 찝찝하잖아요.”

    “괜찮아.”

    “샤워를 할래요? 내가 씻겨줘?”

    “…….”

    천천히 돌아간 시선이 그녀와 묵묵히 맞닿았다.

    “너 자꾸 이럴래?”

    제법 매섭게 눈빛을 쏘아봤지만 이 맹랑한 것이 칼을 제대로 갈았는지 꿈쩍도 않는다.

    “난 씻겨주는 게 더 좋긴 한데.”

    “하….”

    한숨을 뱉으며 머리칼을 쓸어올린 월호는 하는 수없이 팔을 내밀었다.

    “대충해.”

    젠장. 이렇게나 무력할 수가.

    하나 도리가 없다. 닦아주든 씻겨주든 지금의 지안은 뭐든 해낼 기세고, 옷만 벗겼음에도 벌써 아랫도리가 뻣뻣해지고 말았다. 저 예쁜 눈앞에 발가벗고 전신을 내놓으면 미쳐 날뛸 좆의 아우성을 어찌할 것인가.

    염병할. 다 죽어가는 마당에 이것은 어째 이리 또 강강한지 제 몸임에도 참 놀라울 지경이다.

    월호의 손목을 단단히 쥔 지안은 따뜻한 물수건으로 슥슥 팔을 문질렀다. 불퉁불퉁 살갗에 불거져 나온 검은 핏대들 탓에 혹 아프지는 않을까, 문지르는 손짓이 몹시 조심스럽다.

    정적이 숨을 조였다. 울음을 참으려 입술을 꾹 깨무는 지안의 얼굴을 힐끗 보고 나니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다. 정적이 길어지면 기어이 또 눈물을 쏟을 것 같아 그는 먼저 침묵을 깨트렸다.

    “제작발표회는 어쩌고 왔어.”

    지안의 입술이 심술 맞게 꿈틀댔다.

    “내 스케줄 다 꿰고 있나 봐요?”

    “…….”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에 괜히 뜨끔해졌다. 모질게 내쳐놓고 내내 지켜봤노라 제 입으로 이실직고한 셈이었다. 괜히 머쓱해진 그는 입을 다물었다.

    “등 조금만 떼봐요.”

    이제 와 반항이 무슨 소용일까. 어깨를 당기는 손길에 그의 몸이 맥없이 움직였다. 보드라운 물수건이 매끄럽게 등에 닿았다. 조금 간지러워 미간을 좁히던 월호는 재차 물었다.

    “어쩌고 왔냐고.”

    “잘하고 왔으니까 내 걱정 좀 하지 말아요. 지금 심정으론 진짜 하나도 안 고마워.”

    까칠한 대꾸에 다른 가시가 박혀 있었다. 저를 살리자고 이 꼴을 자처한 것이 조금도 고맙지 않다는 뜻일 테다.

    이거 어째 자꾸 약자가 되는 기분인데.

    문득 이 사태의 원흉을 향한 분노가 치밀었다. 아니, 알만했기에 묻지 않았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봤다.

    “어떻게 알았어. 수아 짓이야?”

    “고양이 님이랑 통화하는 거 어쩌다 들은 거예요. 수아 님한테 뭐라 그러지 마세요. 바지도 벗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 아니야.”

    냉큼 지안의 손을 털어낸 월호는 얼른 옷을 집어 들었다. 이불 아래 숨겨둔 바지 속의 사정은 여전히 강건했다. 냅다 꽂을 수도 없으니 숨길 수밖에.

    다행히 하의는 포기한 지안이 옷을 챙겨입는 그의 손을 거들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눈이 또 촉촉해졌다. 툭 건들면 울음을 터트릴 듯 아슬아슬한 얼굴이었다.

    애써 눈물을 삼키며 티셔츠 소매에 팔을 꿰어주던 지안은 별안간 이를 악물었다.

    “또 도망가기만 해요. 나 진짜 콱 죽어버릴….”

    “입 다물어. 어디서 자꾸 죽는단 소리가 나와.”

    한 대 콕 쥐어 박아버릴라.

    그 소리만은 곱게 봐줄 수 없는 그가 매섭게 눈을 치떴다.

    “…….”

    대번에 꼬리를 내린 지안은 입술을 불퉁 내밀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도망가지 말라구요.”

    그러며 그의 젖은 옷과 대야를 챙기는 손이 부산스러웠다. 한계인 모양이었다. 기어코 눈물이 쏟아질 기세였다. 월호는 고개를 푹 떨구고 냉큼 돌아서는 지안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짐짓 무신경하게 포장해왔던 얼굴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제 어찌해야 하나, 남은 나흘을 너를 곁에 두고 어떻게 견뎌야 하나, 막막하고 착잡해 절로 한숨이 감겼다.

    잰걸음을 걷던 지안이 문 앞에 다다라 별안간 멈춰 섰다. 다시 몸을 돌리는 순간, 월호는 아프게 일그러졌던 얼굴을 버릇처럼 굳혔다.

    지안은 금세 맹맹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한 번만, 안아봐도 돼요?”

    월호는 대번 헛웃음을 쳤다.

    “여태 멋대로 다 해놓고 그건 왜 물어보는데.”

    “듣고 싶어서요.”

    “뭘.”

    “계속 안 된다고만 했잖아요, 여태. 괜찮다고, 이제 그래도 된다고… 직접 듣고 싶어서.”

    “…….”

    이미 모든 걸 들켜놓고 말 한마디 다정히 해주지 못했다. 제게 남은 시간이 고작 나흘뿐이었다. 진실을 알아버렸다 한들, 다시 예전처럼 연심을 나눌 수가 없다는 뜻이다. 해서 그는 이 순간까지도 어떻게든 지안을 떨쳐낼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다.

    하나 이미 터질 듯이 뛰고 있는 심장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감각을 잃은 오른손마저 움찔움찔 그녀를 안고 싶어 안달이었다. 가뜩이나 그러한데, 저리 눈물을 글썽이며 곤란한 부탁을 해오니 녹아나는 심장을 다잡기가 힘들다.

    “하….”

    차라리 제멋대로 안아버렸다면 못 이긴 척 품을 내어줬을 텐데. 기어코 두 손을 들게 하겠다는 거지. 하여튼 치사한 계집애.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절절 흔든 월호는 한 꺼풀 누그러진 얼굴로 지안을 건너다봤다. 그새 그녀의 볼 위로 반들반들 눈물길이 나 있다.

    젠장. 저 얼굴을 두고 어떻게 더 버틸 수가 있나.

    그는 별수 없이 왼팔을 들었다.

    “이리 와.”

    항복하며 내뱉는 음성은 직전과 달리 시리도록 다정했다.

    손에 든 것들을 얼른 내려둔 지안은 한달음에 달려와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앉아 있던 그가 베개에 푹 파묻힐 만큼 격한 포옹이었다.

    월호는 가슴팍의 통증도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온 연인을 꽉 끌어안았다. 작은 어깨에 묻은 입술이 뭉개졌다. 막힌 공간을 뚫고 한숨이 파도처럼 부서진다. 하지만 쿵쿵 살아 숨 쉬는 심장은 열없이 행복감에 취해있었다.

    어찌 보낸 너인데. 이 꼴을 보이기 싫어 그리 모질게 내쳤건만….

    이래서야, 편히 죽기는 글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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