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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뜨는 밤-82화 (82/106)
  • 82.

    “하… 하아….”

    밭은 신음이 뿌연 수증기에 하염없이 뒤섞였다. 쏟아지는 물줄기가 악귀의 흔적을 이미 말끔히 거둬냈지만, 그는 집요하게 지안의 몸 구석구석을 핥고 있었다.

    변괴스러운 일을 겪은 후유증을 느낄 새도 없었다. 의식이 완전히 돌아왔을 땐 이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욕조에 몸이 담겨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묵묵히 저를 일으켜 세운 그는 샤워기 아래에서 재차 몸을 헹궈주며 온몸을 핥기 시작했다.

    정신이 없었다. 세트장에서의 일만으로도 머리는 어지럽고 몸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거기다 성욕까지 솟구치니 혼잡한 정신을 다잡기가 힘들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이 꿈인 양 눈앞이 혼몽했다.

    “하아, 하아….”

    지안은 그의 어깨를 붙든 채 속절없이 신음만 쏟아냈다. 목을 핥고 떨어진 그의 혀는 어깨로, 가슴으로, 다시금 꼼꼼히 그녀의 몸을 닦았다. 단단히 솟은 유두를 핥아 올린 순간, 지안은 발가락을 바짝 움츠리며 그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읏-!”

    한껏 예민해진 몸은 약간의 자극에도 찌릿하게 반응했다. 사타구니는 애액과 물줄기의 경계가 모호할 만큼 흥건히 젖은 채였다.

    지안은 딱 붙은 허벅지를 비비적대며 애처롭게 애원했다.

    “하… 영감님… 나 너무, 힘들어요. 읏….”

    지금 그의 행위는 애정이 실린 애무 따위가 아니었다. 사력을 다해 참고 있는 듯하지만, 이따금 악력이 거세지는 손끝에서 미처 감추지 못한 분노가 여실히 느껴졌다.

    하나 이쯤이면 충분할 터였다. 이미 악귀의 손이 닿은 흔적은 티끌만큼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었다. 아니, 애초에 놈의 손은 맨살에 거의 닿지도 않았건만, 그는 필사적이었다.

    “빠… 빨리… 이제 그만… 그만.”

    한계였다. 온몸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다리 사이 깊은 곳이 활활 타오르기 직전이었다.

    결국 참지 못한 그녀가 월호의 손을 붙들어 제 다리 사이로 이끌었다. 뜨거워진 음부에 바짝 들이고는 허벅지를 꽉 모은 채 골반을 마구 달막였다.

    “하아, 하아…!”

    그는 그저 손이 붙들린 채 멈춰 있었다. 아래를 문지르지도, 질구를 긁어주지도 않은 채 손바닥에 흥건히 흐르는 애액만 받아냈다.

    “아흐으…!”

    단단한 목에 매달린 팔이 덜덜 떨렸다. 도포 위로 문질러 대는 젖가슴이 답답한 듯, 지안은 물에 젖은 그의 도포를 허겁지겁 벗겼다. 드러난 맨살을 정신없이 더듬다가 다시금 목에 매달려 젖가슴을 비벼댔다.

    “아아… 제발…!”

    빨리 어떻게든 해달라 애원하는 음성이 간절했다. 달막이는 골반은 한층 더 격해졌다.

    월호는 제 목에 매달린 지안의 뒷머리를 꽉 끌어안고 둥근 어깨에 입술을 묻었다. 무언가를 견뎌내듯 우그러든 미간엔 고통과도 같은 번민이 가득했다.

    “하….”

    깊이 내쉰 그의 숨이 발갛게 익은 지안의 어깨를 뜨겁게 적셨다. 복잡했다. 가슴 속에서 뭔가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아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그런 일을 겪고도 편히 쉬지도 못하고 욕정에 몸부림치는 그녀가 애달프고 애잔했다. 이 모든 것이 제 탓이기에 마음은 더욱더 무거웠다. 심장에 박힌 구슬만 아니었더라도, 저를 만나지만 않았더라도 이 여자는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었다. 저 때문에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지도 못한 채 안아 달라 매달리는 지안이 가여워 미칠 지경이다.

    하지만 자신이 품을수록 그녀의 통증은 배가 될 것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이 미치도록 애가 탄다.

    “하아….”

    지안의 목덜미를 물었다 놓는 그의 입술이 흐느끼듯 떨렸다. 당장 놓아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놈의 손이 닿았다는 핑계로 지안의 몸을 구석구석 입술에 담은 것은 차마 놓지 못한 미련이었다.

    “으읏. 아… 죽을 것 같아, 진짜…. 영감니임…하으으.”

    덩달아 그의 몸이 떨릴 만큼 지안의 사지가 바들바들 흔들렸다. 품에서 떼어낸 지안의 얼굴은 완전히 열에 녹아 엉망으로 일그러진 채였다. 눈에 맺힌 눈물이 한스러워 보였다. 왜 가만히 두고만 보느냐 원망마저 섞여 있다.

    월호는 안타까운 얼굴로 지안의 볼을 매만졌다. 저 역시 색스럽게 벌어진 입속을 흠씬 헤집고 싶다. 밤이 새도록 이 뜨거운 몸속에 저를 밀어 넣고만 싶다. 하나 이 와중에 욕정이 솟는 자신의 몸뚱이가 그는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다.

    “빠, 빨리… 어서….”

    급기야 더는 참지 못한 지안이 그의 중심을 더듬으며 탄탄한 가슴을 혀로 핥았다.

    “하….”

    정직하게 흘려낸 신음이 지안의 정수리로 쏟아졌다. 한계까지 내몰린 욕정에 눈동자가 제멋대로 붉어진다. 이미 아프게 발기한 남경은 눈치 없이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

    고개를 꺾어 든 채 속절없이 신음을 흘리던 월호는 어설프게 젖꼭지를 깨무는 지안의 얼굴을 붙들어 올렸다. 촉촉이 젖은 입술 사이로 그를 갈구하는 신음이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하아. 하… 제발….”

    맞닿은 눈동자가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흔들렸다. 가빠지는 호흡이 수증기를 뚫고 어지러이 뒤섞인다.

    너를 어찌해야 할까. 아니, 나는 어찌해야 할까.

    게슴츠레 풀린 지안의 눈에 물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반짝이는 눈동자가 자꾸만 그를 나약하게 휘저었다.

    어차피 구슬을 빼내면 되지 않느냐, 한 번 더 그녀를 안는다 해서 무엇이 얼마나 달라지느냐, 속살거리는 소리가 그녀의 신음을 빌려 야릇하게 그를 부추긴다.

    …그래, 마지막.

    그러니까 이제 정말, 마지막.

    볼을 붙든 손에 지안의 눈물이 넘쳐흐른 순간, 인내의 끈은 결국 끊어지고 말았다. 아니 실은, 내재된 이기심은 이미 몇 번이고 그녀를 탐했다.

    번뇌는 깊었으나 끊어진 인내는 일순간이었다.

    “흡!”

    방심한 채 벌어진 그녀의 입술 사이로 그의 혀가 불쑥 파고들었다. 얄팍한 등허리와 뒷머리를 바짝 당겨 안은 그는 거칠게 혀를 얽고 빨아당겼다. 기껍게 그의 목을 끌어안은 지안은 결사적이었다.

    아낌없이 서로의 타액을 탐했다. 꽉 막힌 욕실 안에 젖은 소리가 맹렬히 울렸다. 꾸역꾸역 눌러뒀던 열기가 순식간에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혀뿌리를 뽑을 기세로 입안을 들쑤시던 그는 한 움큼 젖가슴을 그러쥐었다. 유두를 굴리고 긁으며 지분대는 손짓이 점점 다급해졌다. 이내 흐르는 물길을 따라 다리 사이로 미끄러진 손은 질펀하게 젖은 속살을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하아!”

    음부를 문지르며 퍽퍽 찍어 올릴 때마다 연신 애액이 튀어 올랐다. 음모에 끈적하게 방울지는 애액은 쏟아지는 물줄기에 씻겨 내려가기 바쁘다.

    “아흣! 하아!”

    이미 흥건히 젖고도 쏟아지는 흥분액은 한도 끝도 없이 그의 손을 적셨다. 결국엔 한계였다. 그의 숨은 완전히 흐트러지고 말았다. 적안이 발현한 것은 이미 오래전이었다.

    “돌아봐.”

    벽을 짚고 돌아선 그녀는 성마르게 그의 몸에 제 몸을 밀착시켰다. 둔부를 꽉 쥐어 벌린 그는 이미 충분히 풀어진 질구에 주저 없이 남경을 밀어 넣었다.

    “흐읏-!”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젖가슴이 증기 맺힌 벽에 찰싹찰싹 부딪혔다. 지안의 어깨를 당겨 안은 그는 발갛게 달아오른 젖가슴을 주무르며 빠르게 둔부를 쳐올렸다.

    “으읏! 하앙! 아!”

    그녀의 교성이 솟구칠수록 그의 눈두덩은 뜨거워졌다. 조금만 더, 1분만 더…. 홧홧한 구멍 속을 헤집을 때마다 미련과 욕심은 질척하게 늘어졌다.

    폭주하듯 밀어 넣었다. 내일은 없을 것처럼 무자비하게 쑤셔 박았다. 아니, 진정으로 내일은 없기에 그토록 악착스레 내달렸다.

    “읏.”

    “아흐윽!”

    뜨겁게 파정하고도 또 한 번. 다리에 힘이 풀린 지안이 흐물흐물 늘어질 때까지 그는 쉼 없이 그녀 안에 제 몸을 각인시켰다.

    이 밤이 지나면 지금 이 순간도, 제 존재도 까맣게 잊기를. 아니 부디 잊지 않기를. 모순된 마음의 파고가 너무도 극명하다.

    가느다란 뒷덜미를 내리누른 채 또다시 그녀 안에서 절정을 맞던 순간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월호는 밭은 숨을 몰아 뱉으며 지안의 등허리를 내려다보았다. 붉고도 검다. 흐린 연기가 뽀얀 살갗을 뚫고 스산하게 피어오른다.

    까맣게 부패한 호인의 표식이 속절없이 쌓여가는 그의 양기를 품고 눈에 띄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으으… 읏.”

    푹푹 꺾이는 지안의 무릎이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렸다. 움찔움찔 골반이 비틀리는 것은 성욕 때문이 아닐 것이다. 필시 야금야금 타들어 가는 통증 탓이리라. 다만 흥분에 녹아난 그녀가 통증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일 뿐.

    하아… 젠장.

    붉게 일렁이던 적안이 삽시간에 하얗게 빛을 잃었다. 아프게 사리 문 입술에 금세 피가 몰렸다.

    빌어먹을.

    답지 않게 물기마저 어린 눈이 초점 없이 흔들린다. 떨리는 주먹 속으로 손끝이 꾹 말려들어 갔다.

    “하.”

    악다문 잇새로 고통 어린 숨을 토해낸 월호는 지안을 돌려세워 앙상한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작고 여린 여체가 가쁜 호흡을 뱉으며 축 늘어졌다.

    월호는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달싹였다.

    “…이제.”

    이제는 충분히.

    “이제 됐어.”

    지독한 미련도 이쯤이면.

    숨은 속뜻을 알 길 없는 그녀는 그의 품 안에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길처럼 뜨거웠던 지안의 몸이 서서히 체온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녀를 외설스레 지배했던 악랄한 그믐의 저주가 겨우 잠잠히 스러져가는 것이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그는 분명히 깨닫고 말았다.

    “하… 오늘은 너무… 계속, 너무… 꿈 같아서….”

    겨우 제 목소리를 찾았으나 횡설수설 늘어지는 음성은 이미 반쯤 잠에 취했다. 끔벅끔벅 눈꺼풀이 무겁게 여닫혔다. 의식이 가물가물 희미해지고 있었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면 지금, 조금이라도 지안의 의식이 흐릴 때….

    “나 진짜, 정신이 하나도….”

    품에서 조금 떼어내자 힘을 잃은 목이 맥없이 뒤로 툭 꺾였다. 꾸역꾸역 눈을 떠 보려 하지만 몰려오는 노곤함을 이기기엔 그녀는 몹시 지쳐있었다.

    그 덕에 하얀 목이 너무도 쉽게 눈앞에 드러났다. 턱 아래 훤히 드러난 급소를 누르고 구슬이 빠져나올 길을 열어준다면, 그녀는 살 수 있다.

    그리되면, 지난 5백 년간 피워온 염원의 불씨는 꺼질 것이었다.

    “하….”

    호흡이 조금 불안정했다. 이제 와 결정을 번복하겠느냐 묻는다면 단호히 고개를 저을 테지만 복잡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쥐었다 폈다, 떨리는 손이 천천히 지안의 목으로 향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전진한 손은 금세 급소에 닿아 있었다.

    톡 건들면 부러질 듯 약한 목이었다. 이 순간에도 구슬의 길을 열다 자칫 목이 조여 숨을 못 쉬지는 않을까, 엉뚱한 걱정이 스친다.

    하나 망설임은 없었다. 점점 힘이 실리는 엄지에 하얗게 피가 밀려났다. 꾹 깨문 입술과 충혈된 눈동자는 반대로 피가 몰려 짙게 물든 채였다.

    “으, 으읏….”

    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통증에 신음하던 지안은 반사적으로 그의 손목을 더듬으며 꺽꺽 숨을 삼켰다.

    “억, 꺼….”

    월호는 파리하게 떨리는 지안의 입술에 짐짓 차분히 입을 맞추었다.

    “조금만 참아.”

    속삭이듯 달래는 음성이 습기를 머금고 구슬프게 울렸다.

    “곧 끝날 거야.”

    “무스, 압… 수, 숨…!”

    결국 의식이 깨버린 지안은 다시금 눈을 떴다. 막연한 두려움과 의구심에 젖은 눈동자가 복잡하게 그늘진 회색 시선에 맞닿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지안은 그와의 사이에서 번쩍이는 빛에 질끈 눈을 감았다. 동시에 커다란 무언가가 목을 뚫고 역류하는 느낌이 선연해졌다.

    “허억, 컥-!”

    숨이 넘어갈 것 같아 사지를 뒤틀던 지안은 제 목을 짓누르는 그의 손만 애타게 붙들었다. 느끼지 못한 사이 따스한 온기가 입술에 닿아 있었다.

    실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빠르게 역류하던 그것은 혀끝에 닿기 무섭게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허억, 허….”

    숨은 트였으나 머리는 멍했다. 의지와 상관없이 시야가 저절로 좁아졌다. 좁아지고 좁아지다 한 줄기 빛만 남던 순간,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것은 어쩐지 슬퍼 보이던 그의 눈동자였다.

    이상한 꿈이다.

    지안은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참 이상한 꿈이라 생각했다.

    타일 바닥으로 쏟아지던 물줄기가 어느새 잠잠해졌다. 똑, 똑…. 샤워기 헤드에 고여있다 떨어지는 물소리만 고적해진 욕실을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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