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낮임에도 빛 하나 들지 않은 공간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하나, 광안光眼을 밝혀 내부를 휘둘러보는 회백색 눈동자는 하등 개의치 않고 좁은 공간을 유유히 살폈다.
정수리에 닿을 듯 간당간당하게 매달려 있는 붉은 연등 하나까지 유심히 들여다보는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답을 찾지 못하고 가늘게 내리뜬 눈동자가 뜻 없이 원목 좌탁 위에 머물렀다.
승원은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이며 입바람을 당겼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어째서 이곳 신월당에서 뜬금없이 묘흔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인가.
사신동에 들른다는 지안을 태워 간만에 함께 와본 참이었다. 지안이 무당 할멈과 목욕탕에 간 사이 겸사겸사 살피러 온 신월당의 분위기가 어쩐지 변괴스러웠다.
120해가 넘도록 단 하루도 떨어져 본 적 없던 묘흔의 기운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클라이언트와 미팅이 있어 회사에 다녀오겠다던 묘흔의 향이 다름 아닌 이곳에서 맴돌고 있으니 응당 이상한 일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다녀갔더라면 10분 안짝. 미처 주인을 따라가지 못한 향이 꽉 막힌 신월당 안에 머물러 있었다.
혹여 무당 할멈에 관하여 무언가를 알아낸 것인가. 아니, 그렇다면 구태여 회사에 다녀오겠노라 거짓을 고할 녀석이 아닌데….
‘ 아, 아이쿠. 제가 어디 사고를 칠 위묘爲猫랍니까? ’
불현듯 지난날 어딘가 요상했던 묘흔의 모습이 스쳐 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단상 위에 징그러울 만큼 빼곡히 놓여있는 불상을 휘둘러보던 승원은 문득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기분 탓인가. 묘흔에게 닿았을 신호가 어쩐지 오늘따라 길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연결음에 그만 종료버튼을 누르려던 때였다. 통화가 연결된 액정에 초가 흘렀다.
- 예, 월호 님.
다시 휴대폰을 귓바퀴에 올린 승원은 수화기 너머의 잡음에 집중하며 물었다.
“어디야.”
- 회사이지요. 곧 미팅이 시작될 참이라…. 어인 일이십니까?
감이 조금 멀다. 목소리가 다소 멀찍이서 건너오고 있었다. 이는 필시 차량 내부에서 스피커로 울리는 소리일 터.
내 충직한 고양이가 또 거짓을 고하였다.
얼마쯤 침묵하던 승원은 짐짓 모른 척 여상하게 말했다.
“미팅 끝나면 결과 보고해.”
- 예…? 갑자기 결과는 어인 일로….
“회사 일에 관심 좀 가지라며.”
- 아…. 거야, 그냥 한번 해본 소리….
“어쨌거나. 보고해.”
미묘한 정적이 흘렀다. 평소 같았더라면 개의치 않고 스쳐 갔을 만큼 아주 찰나에 불과했으나, 필요 이상으로 길게 느껴지는 침묵이었다.
- …예, 그리하겠습니다.
더는 묻지 않고 통화를 끝낸 승원은 휴대폰을 갈무리하며 다시금 신월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이놈이 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인가….”
하나, 봐도 봐도 잡히는 것은 묘흔의 의뭉스러운 기운뿐이었다.
**
창 안으로 새벽달이 길게 기울었다.
늦은 시각까지 촬영을 하고 돌아온 지안은 베개에 머리를 묻기 무섭게 곤드라졌다. 그 곁에 모로 누워 잠든 얼굴을 말끄러미 바라보던 월호는 고른 숨이 얼마쯤 흘러나온 후에야 조심히 몸을 일으켰다.
후로 찰나의 순간.
대리석 바닥을 딛기도 전에 번쩍 사라진 그는 어느새 서재로 옮겨와 책상 앞에 호젓이 서 있었다.
연잎차를 우려놓은 것은 한참 전이었다. 이미 차게 식은 차를 다기잔에 따른 그는 한 모금 입을 적시고 커다란 책장을 건너다봤다. 사선으로 쏟아진 달빛이 책장의 절반만 겨우 비추고 있었다.
한눈에 다 담기도 힘들 만큼 높고도 넓은 책장이었다. 멀찍이 보아야 그나마 살필 수 있는 책장을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차분히 훑어보았다.
병천과 수아에게 독산의 서적 찾기를 지시한 것이 언제였던가. 이따금 찾았느냐 확인은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 도통 보이지를 않습니다. 어디 같은 모양의 고서가 한두 권이어야 말이지요. ’
매일 수가 불어나는 것도 아니니 언젠가는 찾아내겠지. 최근엔 그저 지안에게 홀랑 빠져 깊이 관여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한데 잊고 있었던 그것이 문득 생각난 데에는 역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길게 늘어진 백색 도포 자락이 디디는 걸음을 따라 사락사락 바닥을 스쳤다. 한곳만 빤히 주시하며 옮기던 걸음은 달빛이 채 닿지 않은 어둠 속에서 우뚝 멈추었다.
애초부터 높이 머물러 있던 시선은 책장에 다가갈수록 가파르게 경사가 졌다.
“…….”
월호는 어둠에 가려진 책장의 위 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빼곡하게 꽂혀있던 책장에 이제 보니 손가락만 한 공간이 생겼다.
“…찾은 게로구나.”
찾고도 말을 하지 않았다. 왜일까….
조심스런 노크 뒤로 서재 문이 열린 것이 그때였다. 월호는 꺾어든 고개를 내버려둔 채 눈만 힐끗 비껴 떴다. 종종걸음으로 얼른 다가온 병천의 모습이 곁눈에 걸린다. 늦은 시각 따위 개의치 않고 다녀가라 연락을 해둔 참이었다.
“어떻게 됐어.”
대뜸 건너간 물음에 병천의 고개가 스륵 기울었다.
“…예?”
그제야 병천을 오롯이 돌아본 월호는 심심한 얼굴로 말했다.
“미팅.”
“아…!”
번뜩 고개를 세운 병천은 진저리를 치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휴우, 말도 마십시오. 외국계 기업에서 나온 자라 그런지 사고방식이 달라 진탕 애를 먹었지 뭡니까. 허나 결과는 다행히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
한 번의 어설픈 연기가 교훈이 되었을까. 이번엔 얼마나 달달 외우고 왔는지 술술 나오는 말 하며 탄식을 쏟는 표정까지 제법 그럴듯하다.
하나 이미 진행된 미팅은 없었음을 수아를 통해 전해 들은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다.
“잘됐네.”
그만 시선을 거둔 월호는 들고 있던 다기잔을 기울이며 창가로 발길을 돌렸다. 그저 고비를 넘겼다 여기며 심호흡을 훅 뱉어낸 병천은 그의 걸음을 조용히 뒤따랐다.
창가에 멈춘 걸음 뒤로 다섯 발짝. 괜히 찔리는 것이 있어 더는 다가서지 못하고 우뚝 멈춰 선 병천은 월호의 뒷모습만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달빛을 내려 받은 그의 몸 주변으로 하얀빛이 달무리처럼 번져있었다. 온통 하얀 사내가 눈이 부셔 시야가 절로 좁아 든다.
호로록, 점잖게 차를 들이켜는 소리가 잔잔히 울렸다.
“내 너를 처음 찾은 날 말이다.”
느닷없이 세월을 거슬러 간 서두에 병천의 눈이 멍하니 끔벅였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밤을 닮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물었다.
“그날을 기억하느냐.”
단전에 공손히 포개놓은 병천의 손이 흠칫 떨렸다. 순간 철렁인 심장이 펄떡펄떡 가슴팍을 두드리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하시다. 예스러운 말투야 평소에도 이따금 툭툭 내뱉곤 하셨지만 저리 장난기를 쏙 빼고 나직이 목청을 눌리시니 괜히 긴장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거친 야생미만 풀풀 풍기던 예전의 그가 되돌아온 것 같아 문득 옛 생각이 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모습 또한 처음 그를 만났을 때와 같지 않은가.
‘ 네놈도 사묘의 핏줄이 맞더냐. ’
옷깃에 화려하게 금 자수를 놓은 백색의 도포하며 기이한 빛을 뿜어내던 크고 단단한 몸. 보이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눈동자 또한 그때처럼 적빛과 회색빛이 오묘하게 공존하고 있으리라.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병천은 긴장하여 달달 떨리는 손을 꾹 말아쥐었다.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월호 님을 뫼시던 제 부친께서 급작스레 비명횡사하시어 월호 님께서 직접 저를 찾아와주셨지요.”
제 혈족이 대대로 그를 모셔왔다곤 하나, 엄밀히 말하면 이 자리는 제 것이 아니었다. 제 앞으로 셋의 형님이 한날 목숨을 잃지 않는 이상, 저는 감히 그를 알현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만큼 보잘것없는 서열이었다.
‘ 너, 이름이 어찌 되느냐. ’
‘ 그… 그것이… 이놈이라 불리기도 하고, 저놈이라 불리기도 하여…. ’
‘ 쯧. 이름도 없는 것을 보니 서열이 어지간히 뒷간에 처박힌 모양이구나. ’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감히 쳐다볼 수도 없어 바닥에 처박고 있던 얼굴을 가만히 들어 올리던 크고 새하얀 손. 마주하던 순간 오금이 저리도록 매섭고도 아름답던 회적색의 눈동자. 길게 휘어지던 붉은 입술 사이로 꿈처럼 흘러나오던 낮고 강인한 목소리까지.
‘ 네놈이 나를 따르거라. 내 너를 묘흔이라 부를 것이다. ’
금 보따리를 손에 쥔 것보다 더한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형제애란 태초부터 생성되지 못했으니 형제들의 핍박과 구박은 우리네에겐 당연한 것이었다. 하여 그때 그의 간택을 받지 않았더라면, 노비와 다를 바 없이 핍박받으며 골방에서 배를 곯던 저는 아마 아사하고 말았을 터였다.
“희한하게 네놈이 눈에 들었다.”
어쩐지 아련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병천은 송구하여 어깨를 옹송그렸다.
“저도 삐쩍 마른 것이 배곯는 인간 아이들을 먹이느라 손가락만 빠는 꼴이 참 가당치도 않더란 말이지.”
“…….”
다른 뜻은 없었다. 저야 배곯아 아사하더라도 인간들보다야 오랜 생을 살 것이나,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어 금세라도 생이 꺼질 듯 깡마른 어린 인간들을 보고 있자니 왜 그리 불쌍하던지. 뭣 같은 세상이라지만 그저 하루라도 더 살아보길 바랐을 뿐이었다.
‘ 그 아이들은 내 알아서 돌볼 테니 걱정 말고 네 배나 채우거라. ’
그리 저를 데려다 따순 방 하나를 내어준 그는 몇 날 며칠 배가 터지도록 푸짐한 상을 차려주었다. 제 먹성이 이리 좋았던가. 80해를 살았던 그때야 처음 알았더랬다.
“해서 네놈 몸뚱이가 지금 그 지경으로 둔중하게 불지 않았느냐.”
“허허. 예… 과하게도 먹여주셨지요. 어찌 되었거나 월호 님께서 그때 이놈을 가엾게 보아주시어….”
“가엾다라….”
순간 긴장됨도 잊고 아련히 웃음 짓던 때였다. 별안간 사위를 떠도는 기온이 뚝 떨어졌다.
“내게 그런 온정이 있었을 것 같으냐.”
바람도 불지 않는 공간이었다. 다만 서늘한 기운에 밀린 공기가 그의 도포자락을 사락사락 흔들었다.
“배불리 먹이고 목숨을 살려 얻은 충성만큼 맹목적인 것이 없지.”
단지 맹목적인 충성심을 심고자 달콤한 먹이 몇 접시 던져준 것뿐이라며 차게 비웃는다. 그간 제게 보인 모든 정을 부정하는 말이었다.
그때야 온전히 깨달았다. 아아. 제 연기가 역시 어설펐구나. 무언가 낌새를 차리신 것이구나.
“넌 내게 그리해야 한다.”
병천은 입술을 꾹 사리 물었다. 느닷없이 무언가가 울컥 치받쳐 올라 통통한 눈두덩이 금세 벌겋게 달아올랐다.
“죽어 뼛가루가 되어서도 너는 나를 거스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반쯤 돌아선 그가 달빛을 등지고 병천을 물끄러미 건너다봤다. 막연히 적빛을 품었을 거라 생각했던 그의 눈동자는 그저 부연 회색빛이었다.
“믿음을 저버리지 마라, 묘흔.”
“…….”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무의 눈으로 전에 없이 차게 벽을 세우지만, 병천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행여 심중에 큰 생채기가 날세라 미연에 거리를 두려 하는 것임을. 그의 성정에 대번에 목을 조르지 않고 기회를 주는 것조차 깊은 정의 또 다른 형태임을.
고개를 떨군 채 입술을 꾹 짓씹던 병천은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금 그를 마주 보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 생은 오로지 월호 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을요.”
주책없게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라 수려한 사내의 모습이 물에 번진 물감처럼 흐릿하다.
“허니 이놈의 충심을 보아서라도… 이 목숨 다하는 날까지 곁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
속내를 찔러보고자 세워둔 녀석이 느닷없이 눈물을 갈쌍이며 간지러운 청을 해오니 뒤에 숨긴 것이 무엇인지 더욱 아리송하다. 하나 분명한 것은, 역시 이 온순한 녀석은 배심 따위를 품을 놈이 아니란 것이었다.
내심 무거웠던 마음을 놓으며 시선을 거둔 월호는 다시금 창밖을 건너다보았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 쉬어라.”
딱 하루의 시간을 더 주겠다는 뜻이었다.
“예… 내일 뵙겠습니다. 주무십시오.”
기꺼이 하루를 더 고민해 보겠노라는 발칙한 대답이었다.
곰만 한 덩치로 용케 발소리도 내지 않고 걸음을 되돌린 병천은 이내 닫힌 문 너머로 완전히 기척을 거두었다.
그새 새벽달이 조금 더 기울었다. 바닥에 드리운 그의 그림자가 한 뼘만큼 더 길게 늘어진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