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뜨는 밤-71화 (71/106)

71.

뿌옇게 습기가 서린 창에 쉴 새 없이 열기가 쌓였다.

“하아….”

연방 터져 나오는 그의 신음과 단단한 기둥을 물고 빠는 소리가 어지럽게 뒤엉켰다.

턱을 세운 채 속수무책으로 신음만 흘리던 승원은 제 중심 위에서 꼬물거리는 작은 얼굴을 내려다봤다. 흘러내린 머리칼을 손가락 사이에 걸어 뒤로 넘기자, 오목하게 모은 입안으로 들락날락하는 붉은 기둥이 선명히 보인다.

참으로 어설프기 짝이 없는 솜씨였다. 이따금 이를 세워 예민해진 표피를 긁기도 하고, 막무가내로 쑤셔 넣다가 목청이 찔려 헛구역질도 몇 번을 했다.

하나, 치받치는 흥분은 여느 때보다 짜릿하게 전신을 뒤흔드니 희한한 일이었다. 양손으로 밑동을 꽉 붙들고 귀두를 물었다 놓는 입술 하며, 어설프게나마 혀를 내밀어 기둥을 길게 핥아 올리는 모습이 야스럽기 그지없었다.

여인의 아래에서 이렇게나 무력하게 신음만 뱉은 적이 없었거늘, 하여튼 어느 것 하나 손쉽게 이길 수가 없는 여자다.

“하….”

지안의 뒷머리를 붙든 손에 자꾸만 힘이 실렸다. 빨고 빨다가 이젠 나름 요령까지 생긴 모양인지, 뾰족하게 혀를 세우고 제법 간지럽게 요도까지 깔짝댄다.

“너….”

아주 죽이려고 작정을 했지, 네가.

속말을 밀어내버린 신음이 하염없이 늘어졌다. 끈지게 참고 있던 기둥이 결국 울컥 쿠퍼액을 쏟아냈다. 뜨겁고 쌉싸름한 맛에 움찔한 것도 잠시, 지안은 선명히 욕구를 드러낸 그의 반응에 흡족한 듯 더욱 깊숙이 음경을 빨아당겼다.

“…읏.”

바짝 힘이 실린 허벅지가 잘게 경련했다. 흠씬 올라붙은 고환 위로 삼키지 못한 타액이 질척하게 흘러내렸다.

그의 고양된 신음에 더불어 흥분해 버린 지안은 좆 뿌리를 꽉 붙들고 바쁘게 귀두를 빨아댔다. 넓게 편 혀와 입천장 사이에 바짝 흡착된 채 연신 빨리는 기둥이 금세라도 터질 듯 사납게 팽창했다.

“아….”

미간이 사정없이 우그러들었다. 별안간 머리끝까지 치솟은 전율에 그는 아리도록 입술을 사리 물었다. 차오르는 열기에 시야가 자꾸만 흐무러졌으나, 저를 농란하게 집어삼키는 여자의 교태스런 모습에서 도통 눈을 뗄 수가 없다.

“하아… 그만.”

결국 한계까지 다다른 흥분에 몸을 떨던 그는 탁한 신음을 흘리며 지안의 머리칼을 거머쥐었다. 더는 견딜 수가 없다. 이래서야, 지안의 입안에서 절정이라도 맞을 판이었다.

“그만하고 올라와.”

그제야 귀두를 뱉어내고 그를 돌아보는 얼굴이 완전히 열에 녹아 엉망이었다. 그 농염한 눈빛과 번들번들하게 젖은 입술만으로도 사정감이 차오르니 환장할 노릇이다.

“하아, 하아….”

굵직한 기둥에 막혔던 숨을 가쁘게 토해낸 지안은 여전히 그의 것을 쥔 채 아쉽게 중얼댔다.

“아직 다 못 했는데….”

“뭘 더 해. 진짜 죽일 셈이야?”

대번에 헛숨을 터트린 그는 지안의 팔을 얼른 붙들어 올렸다. 엄청난 힘에 깃털처럼 딸려온 몸이 순식간에 탄탄한 허벅지 위로 척 앉혀졌다.

“음…!”

숨 돌릴 틈도 없이 뒷덜미를 붙들어 당긴 그는 성마르게 입술을 삼키고 혀를 밀어 넣었다. 거칠게 입안을 들쑤시는 행위에서 직전까지 붙들고 있던 자제력은 찾아볼 수 없다. 이미 치마 속을 침범한 손은 축축하게 젖은 팬티를 젖혀버린 참이다.

“흣…!”

찌걱대며 그의 손가락을 삼킨 구멍이 화들짝 오므라들었다. 대체 언제부터 흘려댄 건지, 범람하는 애액이 불끈 솟은 기둥까지 뚝뚝 떨어져 흘러내린다.

“하….”

귓가로 미끄러진 그의 입술이 동그란 귓불을 빨아당기며 탁하게 신음했다.

“왜 이렇게 젖었어, 넌.”

죽을 만큼 빨린 건 난데, 왜 네가 더 흥분했느냐 속살대는 목소리가 짓궂다. 버릇처럼 그의 목에 매달린 지안은 술에 취해 늘어진 목소리로 겨우 대꾸했다.

“내 말이… 왜 이래요, 나….”

이 와중에 끙끙대며 주정하는 모습이 귀여워 입술이 절로 휘었다.

“주사가 뭐, 중간이 없어.”

이래서야 참을 수가 있나. 이런 좁아터진 공간에서 성교를 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해본 적도 없건만, 도무지 이래서야.

“집까지 못 가겠다.”

다시 그녀의 호흡을 앗아간 입술이 부드럽게 혀를 얽었다. 하나, 동시에 양껏 벌어진 질구에 올려 붙은 귀두는 사납게 구멍 속을 헤집어댔다.

“으응!”

작은 몸뚱이가 그의 위에서 발작하듯 튀어 올랐다. 긴 머리칼이 파도치는 물결처럼 세차게 너울진다. 뿌연 차창에 물방울이 맺혀 흐르도록 뜨거운 숨이 쌓이고 또 쌓였다.

깊고 깊은 밤이었다. 하나 좁은 공간을 휘도는 신음성은 더 깊은 어둠이 내리도록 그칠 줄을 몰랐다.

**

환한 햇살이 활기차게 쏟아지는 아침이었다. 하나, 그 햇살 아래 모로 누운 지안은 전혀 활기찰 수가 없었으니….

“…….”

잠은 깼지만 눈을 뜰 수가 없다. 귀 뒤로 머리칼을 간종그리는 그의 다정한 손길에도 차마 미소로 화답할 수가 없어 심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쩜 이렇게 1분 1초의 순간까지 빠짐없이 생생하게 기억이 날 수가 있을까.

‘ 여기… 빨아줄까요? ’

미쳤다. 또렷이 기억에 남아버린 그 엉큼한 여자가 분명 저와 동일인물인 것인가, 끊임없이 의심해봐도 답은 하나라 환장하겠다.

“그래서.”

웃음 섞인 그의 음성이 눈두덩을 간질인 것은 그때였다.

“언제까지 자는 척할 건데.”

“…….”

애석하게도 그에겐 훤히 개방된 머릿속이었다. 애초에 눈을 뜰까 말까 치열했던 고민은 부질없었던 거다

눈두덩이 뻑뻑하지도 않을 만큼 이미 정신은 완전히 깨버린 참이었다. 하나 쌀가마니를 얹은 양 힘겨운 척 눈을 뜬 지안은 그래도 뻔뻔하게 시치미는 떼보기로 했다.

“아… 잘.잤.다.”

아니, 역시 무리였던가. 8년 연기 인생이 한순간 부정당하는 발연기가 아닐 수 없었다.

월호의 입술이 고른 치아가 드러날 만큼 길게 늘어졌다.

“어쩔까…. 모른 척해줘?”

구태여 건너온 야속한 질문에 지안은 뜨거워진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한숨 섞인 목소리가 애원하듯 흘러나왔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구요….”

가려진 손등 너머로 실룩거리는 그의 입꼬리가 훤히 보이는 기분이었다. 시뻘게진 귀 끝이 심지를 갖다 대면 불이라도 붙을 듯 후끈댔다. 정말이지, 수아에게 상실초라도 피워달라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다.

얼마쯤 웃음을 삼키던 월호는 말없이 지안의 등을 안아 당겼다. 못 이긴 척 품에 안긴 지안은 그제야 얼굴을 가린 손을 내리고 그의 가슴에 볼을 묻었다.

“더 자. 밤 촬영이라며.”

듣기 좋은 중저음이 귀에 닿은 가슴에서 잔잔히 울렸다. 이건 또 무슨 마법인지, 직전까지 불타오르던 민망함도 잊고 또 금세 나른해지고 만다.

조금 더 깊숙이 품을 파고든 지안은 그의 허리를 둘러 안았다.

“다 깼어요.”

토닥토닥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이 한없이 보드랍다. 정수리에 한 번, 이마에 또 한 번, 가볍게 닿는 입술이 간지러워 절로 입꼬리가 늘어진다.

“그래, 그럼.”

나슨하게 정신을 앗아놓고 낌새도 차리지 못한 사이, 속옷 위로 온기가 떨어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

갑작스레 다리 사이를 꾹 누르는 손길에 지안은 흠칫 눈을 떴다.

“여기.”

새빨간 구미호의 입술이 돌연 얄궂게 휘어졌다.

“빨아줄까?”

“아, 증말…!”

그럼 그렇지. 웬일로 우리 짓궂은 영감님이 곱게 넘어가 주나 했다.

벌떡 일어나 그의 가슴팍을 찰싹 내리친 지안은 얼른 침대를 벗어나 후다닥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속옷만 걸친 채 쏜살같이 도망치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월호는 결국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렸다.

“아… 서지안 진짜.”

어쩌자고 갈수록 저리 귀여워지나, 정신 못 차리게.

절절 고개를 흔들던 월호는 지안의 향기가 흠뻑 묻어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또 한참 어깨를 들썩였다.

하루하루 마음이 근실거린다. 인간들의 연애라는 게 이토록 즐거운 것이었나, 9백 년을 넘도록 우습게만 보아왔던 감정놀음에 뒤늦게 행복감을 느껴본다.

지루하리만큼 오랜 세월을 살고도 미련이 남는 생이었다. 하나 이제야,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

밤 촬영까지 시간이 남아 오랜만에 사신동에 들렀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살피지 못한 사이, 모란은 이전보다 또 한 뼘 세월의 그늘에 수척해져 있었다.

특별히 아픈 곳이 없으니 병원 갈 일도 없다 하시지만, 숨이 꼴깍 넘어가도 병원 따윈 찾지 않을 그녀를 알고 있다. 생은 어차피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버릇처럼 말하던 그녀였다.

그간 살피지 못해 죄송한 마음에 하염없이 팔다리만 주물러드리다, 할머니를 모시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각질이 일어 거칫해진 피부를 더듬다 보니 문득 옛 기억이 떠오른 것이었다.

중학교 때였던가. 모란과 함께 목욕탕에 들렀던 것이 벌써 그렇게나 오래된 것 같다. 사춘기가 뭔지, 왜 할머니와 함께 목욕탕에 가는 것도 부끄러웠던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의 감정들은 돌이켜보면 썩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옷감에 가려져 있던 모란의 몸은 생각보다 더욱 작아져 있었다. 앙상하게 뼈가 도드라진 등을 마주한 지안은 시큰해진 코를 문지르며 괜히 장난스레 말했다.

“어우, 때 좀 봐. 국수 한 그릇 뽑겠다, 할머니.”

쿡쿡, 작은 어깨가 들썩이며 웃는다. 웅웅 울리는 공간에서 들릴 듯 말 듯 걸걸한 목소리가 건너왔다.

“시원하이 좋네.”

이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더라면 자주 좀 모시고 올 것을. 뭐 그리 대단한 인생이었다고 내 앞길만 보고 살아왔을까. 거두고 먹여주신 은혜를 오로지 성공해서 갚겠노라 했던 편협하고 어렸던 생각이 이제 와 죄송스럽다.

“몸은 좀 어떠셔? 무릎은 괜찮아요?”

“내나 글치, 뭐. 한번 녹스른기 고치지나, 어데.”

“그래도 침도 좀 맞고 하면 좀 좋아? 전에 사다 드린 찜질팩은 잘하고 계시죠?”

“기찮아가 마.”

“귀찮긴. 코드 꼽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데 또 그러신다.”

하여튼 볼 때마다 잔소리가 늘어나니 반가움도 한순간이다. 피식 웃음으로 넘겨버린 모란은 돌아앉으며 지안의 손에서 때밀이 타올을 빼 들었다.

“디비바라.”

“난 됐어. 힘드신데.”

“바라, 퍼떡.”

“아유, 참. 괜찮다니까.”

못 이긴 척 등을 보인 지안은 슬렁슬렁 긁어만 주시라 당부했다. 물론 구태여 당부가 없어도 힘없는 노인의 손길은 안타까울 만큼 간지러울 뿐이다.

등이 굽은 저보다 앉은키도 훌쩍 큰 손녀의 등을 슥슥 문지르던 모란은 무심코 오른쪽 등허리 아래로 시선을 떨궜다. 황백색 노안이 가늘게 좁아졌다.

이내 호인의 문양 위로 손을 내린 모란은 오래전 보았던 날보다 색이 짙어진 그것을 조심히 더듬었다.

“니 이기….”

주름진 입술이 가만히 벌어졌다. 미간에 깊이 팬 그늘에 별안간 근심이 찼다.

“응? 왜요?”

말간 얼굴로 돌아보는 지안의 옆얼굴을 히끗 올려다본 모란은 다시금 새카맣게 짙어진 문양을 바라보다 그만 말을 거두었다.

“…아이다.”

스윽, 슥. 등을 문지르는 손길이 직전보다 더욱 느릿해졌다. 상념에 빠진 시야가 하얗게 흐무러진다.

지안의 운명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 막연히 아직은, 그래도 앞으로 두 손가락쯤은 꼽을 수 있을 만큼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고 없이 제 몸을 찾아드는 독산에게 들은바 또한 그러했었다. 못 해도 서른의 생은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데, 어째서 이 문양이 벌써 이리 썩어가고 있는 것인가.

“니는 마 맨드리하네. 때가 밀리도 안 한다.”

그러면서도 돌아앉은 손녀의 등을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느린 손을 움직였다. 흐린 노안이 전에 없이 무겁게 침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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