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뜨는 밤-57화 (57/106)
  • 57.

    “에레이 썅. 저 새끼 저거 또 좆대로 쳐들어왔네.”

    모로 누워 부채질을 하던 범화는 심드렁하게 눈을 내리떴다. 벽을 뚫고 귀신처럼 불쑥 나타난 승원이 나무 의자에 앉아 다리를 척 꼬고 있었다.

    “또 늬 할 말만 하고 튀어블라믄 입 다물고 꺼져브러, 새꺄.”

    제대로 골이 난 범화는 불퉁하게 주둥이를 내밀고 팽하니 시선을 거뒀다.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쉰 승원은 무지근한 이마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안 튈 테니까 술이나 내와.”

    “…웜마?”

    이맛살을 삐쭉 밀고 올라간 옅은 눈썹이 의아한 듯 꼬물댔다. 이내 굽은 등을 낑낑대며 일으킨 범화는 정강이를 긁으며 코웃음을 쳤다.

    “늬놈이 으짠 일로 술을 다 찾냐? 왜, 불타는 금요일이라고 늬도 인간들맹키로 광란의 부채춤이라도 춰블라고?”

    “닥치고 내오기나 해.”

    “어허? 이 새끼 보게…?”

    범화는 사뭇 놀란 얼굴로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술은 그다지 즐기지도 않을뿐더러, 술친구나 해달라고 아무리 알랑방귀를 뀌어도 들은 척도 않더니 어쩐 일로 요놈이 먼저 술을 다 찾을까. 흐린 눈을 가늘게 접어 살펴보자니, 어째 안색도 썩은 것이 오늘따라 영 월호 답지 않다.

    으짠 일이여, 이 새끼가…?

    “흐음.”

    그제야 구들장에서 내려온 범화는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주방으로 향했다. 오래지 않아, 막걸리 주전자 하나와 커다란 사발 두 개가 나무테이블에 놓였다.

    범화는 승원의 맞은편에 몸을 놓으며 흘끗 눈을 들었다. 가까이에 두고 보니 생전 피 한 방울 볼 일이 없던 얼굴에 벌건 피딱지까지 앉아 있었다. 이마와 오른쪽 눈가 아래, 왼쪽 턱까지. 한둘이 아니다.

    “뭣이여.”

    범화는 승원의 턱을 쥐어 잡고 요리조리 돌리며 물었다.

    “볼따구는 으찌다가 이 지랄이 났다냐?”

    승원은 말없이 범화의 손을 툭 쳐내고 주전자를 들었다.

    “워째, 딸랑구헌테 껄떡대다가 처맞기라도 헌것이여?”

    “염병을 해라.”

    사납게 치들린 그의 눈초리에 범화는 입술을 삐죽이며 주전자를 낚아챘다.

    “아니믄 말제, 째리기는 새끼…. 이리 내, 따라줄랑게.”

    꼴꼴꼴, 잔을 가득 채우기 무섭게 하얀 손이 성급히 뻗어왔다. 건배도 않고 홀로 꼴깍꼴깍 잔을 비우는 그를 보며 범화는 헛숨을 뱉었다.

    “얼씨구? 뭔 난리여, 이것이?”

    진정 별일도 이런 별일이 없었다. 9백 년을 넘게 보아온 녀석이지만 이런 희한한 광경은 또 처음이었다.

    또 한 잔, 두 잔. 그는 말도 없이 연거푸 막걸리를 들이켰다. 턱을 괴고 가만 바라보던 범화는 그제야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눈썹 머리를 좁혔다.

    아무래도 뭔 일이 있기는 한 모양인데… 이것을 캐물어야 하나, 닥치고 술이나 따라줘야 하나….

    “흠… 뭣이 내 죽마고우의 심중을 이만치 굴려놨으까잉.”

    “…….”

    입을 열 것이라 기대치도 않았지만 역시나 그는 대꾸가 없었다. 채우고 비우고, 또 채우기를 얼마쯤. 결국엔 저 홀로 순식간에 주전자 한 통을 다 비워버린 승원은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등받이에 몸을 툭 놓았다.

    “하… 맛도 없네.”

    “육시럴. 다 처묵어놓고 맛 타령이냐? 아, 긍께 뭣땀시 이 지럴이여? 참말로 별일이네.”

    그러게. 참으로 별일이었다. 왜 느닷없이 이 맛도 없는 술이 생각이 나던지, 그로서도 당최 모를 일이었다.

    벌써 사흘째였다. 그 망할 눈물을 본 후로 산만한 정신이 도통 정리되지 않았다. 하여 꼬박 사흘간 한기를 내뿜으며 수 개의 전구를 터트리고 값비싼 얼굴에 생채기만 가득 냈다.

    지안을 찾아가지도 않고 홀로 틀어박힌 시간도 그만큼이 되었다. 구슬의 기운을 장장 사흘간 멀리했다는 뜻이었다. 슬슬 몸 이곳저곳이 욱신대고 기력이 약해짐을 느꼈지만, 발길이 닿은 곳은 결국 술독이 가득한 이곳이었다.

    인간들은 이것을 취하고자 마신다 했던가. 그때만이라도 정신이 홀랑 나자빠져서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지, 아마. 그것이 무슨 기분일까 오늘따라 희한하게 궁금하더란 말이다.

    한데 역시나, 그에겐 이깟 막걸리 몇 잔 따위 배만 실컷 불릴 뿐이었다.

    승원은 괜히 심술 맞게 텅 빈 주전자를 툭 쳤다.

    “젠장. 뭐 얼마나 마셔야 취하는 거야?”

    범화는 헛웃음을 치며 덜렁거리는 주전자를 턱 붙들었다.

    “고것이 목적이었냐? 그라믄 그란다고 첨부터 말을 혔어야제.”

    별안간 검은 이를 드러낸 범화는 검지를 흔들며 굽은 몸을 일으켰다.

    “딱 기둘려 봐. 디져브렀어, 늬는.”

    그러며 주방으로 건너간 범화는 의문의 하얀 호리병 하나를 쥐고 돌아왔다.

    “자, 그라믄 또 판을 새로 깔아야제?”

    주름진 손이 휙 쳐내버린 빈 주전자가 주방까지 날아가 개수대에 처박혔다. 연이어 승원의 잔을 탈탈 흔들어 막걸리를 털어내고는 순식간에 새로운 술판을 만들어낸다.

    “요고 기억나냐?”

    범화는 승원의 잔에 호리병 주둥이를 기울이며 옛 기억에 젖어 신나게 쫑알댔다.

    “거 왜, 숙종 때였든가. 턱주가리에 혹 달린 봇짐쟁이 말여. 고놈이 청나라서 줏아 왔던 고량주라고, 늬도 알 거인디? 워허, 씨불. 한 모금 깔짝대고 디져블뻔 안 했냐.”

    그런 일이 있었던가. 생전 처음 듣는 얘기인 양 승원의 고개가 심드렁히 기울었다. 급변하는 세상을 오롯이 겪어온 그로서는 캄캄한 기억이었으나, 수백 년을 이곳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범화에게는 어제와 같은 일이었을 테다.

    별것 없는 그의 반응에도 범화는 연방 상기된 얼굴로 떠들었다.

    “근디 이거이 참말로 묘한 것이여. 먹으믄 디질 거를 암시롱 희한허게 함씩 생각이 나더란 말이재?”

    차례로 제 잔을 채운 범화는 건배를 권하며 주름진 눈꼬리를 찡긋 접었다.

    “으째, 함 깔짝거려 볼텨?”

    무심한 얼굴로 턱을 괴고 있던 승원은 맑게 찰랑대는 고량주를 힐끗 내려다봤다. 막걸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지독한 냄새가 솔솔 풍겨오긴 하는데…. 뭘 들이부은들 취하기가 어디 쉽겠는가 말이다.

    “하….”

    그래.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밑져야 본전인 것을.

    심드렁하게 잔을 집어 든 승원은 범화의 잔에 기꺼이 제 잔을 맞대었다.

    “오오…. 디지기를 주저하지 않는 거 봉께 뭔 사달이 나도 지대로 났나 보구먼?”

    찰나의 궁금증도 잠시, 꿀꺽꿀꺽 시원하게 고량주를 들이켜는 승원을 보며 범화의 주름진 입술이 팽팽하게 찢어졌다.

    사정이야 어찌 됐거나 요놈이 작정하고 술을 마실 날이 또 언제 올 것인가. 하물며 고량주까지 함께 기울여준다니 홀로 적적했던 그로선 잔치나 다름없음이다.

    실로 수백 년 만에 지기와의 술자리에 제대로 신이 난 범화는 꼴깍 잔을 비우고 곧장 호리병을 쥐었다.

    “키햐, 시원허니 좋다! 에잇, 그려! 호생 뭐 있간? 다 처묵고 기양 디져브러라!”

    몇 번의 건배가 바쁘게 오갔다. 승원은 심심한 추임새조차 던지지 않았으나, 범화는 그저 신이나 홀로 떠들며 지기와의 잔치를 즐겼다. 호리병은 금세 가벼워졌고, 테이블 위에는 어느새 두 번째 호리병이 놓였다. 곁에는 뒤늦게 안주 삼아 내어온 콩나물 무침도 함께였다.

    둘이 함께였으나 하나만 즐거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나저나 늬, 독산 그 망할 영감탱이는 찾었….”

    콩나물을 질겅대던 범화의 턱이 우뚝 멈췄다. 승원의 잔에 막 기울어지던 호리병이 싱겁게 테이블 위로 척 바로 섰다.

    “뭐시여.”

    범화는 저를 향해 고개가 푹 꺾인 채 미동 없는 정수리를 보며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에헤이 새끼, 벌써 디져브렀네.”

    **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승합차 다음으로 지안의 출근길을 책임지게 된 차량은 비교적 멀쩡한 상태의 SUV였다.

    탈의실이 여의치 않은 야외 촬영 특성상 차체는 가능한 한 클수록 좋았지만, 집채만 한 밴을 타기엔 역시 부담스러웠다. 물론 이마저도 우진이 계속 기사 노릇을 해주니 다른 의미로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도로마저 고요히 잠든 깊은 밤.

    오늘도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차에 오른 지안은 가득 밀려있던 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정신이 없어 건호가 싱가폴로 떠나는 날인 줄도 깜빡 잊고 있었다.

    [ 나 이제 촬영 끝나고 들어가는 중. 촬영 땜에 인사도 못 했네. 건강하게 잘 다녀와. ]

    지금쯤이면 도착했으려나.

    시간을 가늠해보려다 그만 생각을 비우고 헤드레스트에 뒷머리를 기댔다. 피곤에 찌든 머리가 몹시 무겁고 고단해 어떤 것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빠르게 스쳐 가는 창밖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룸미러로 그녀를 살피던 우진이 넌지시 물었다.

    “힘드시죠?”

    상념에 빠져 흩날리던 지안의 시선이 흠칫 룸미러로 향했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애써 웃는 모습이 오늘따라 더 기운이 없었다. 우진은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에휴. TV로 보기만 할 땐 몰랐는데 현장에서 직접 보니 배우고 스탭이고 다들 엄청 고생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라 그런지 일할 땐 힘든 것도 잘 모르겠어요. 잠이 좀 부족한 것 말곤.”

    경소를 지으며 피곤한 눈을 비빈 지안은 사뭇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괜히 저 때문에 죄송해요. 우진 님도 아침저녁으로 피곤하실 텐데.”

    “에이, 저야 뭐. 좋은 구경 실컷 하면서 운전만 하는데요, 뭘. 요즘 중고차 매매도 영 시원찮은데 오히려 할 일이 생겨서 더 기쁩니다. 하하!”

    호쾌한 너털웃음에 지안의 입매가 절로 부드럽게 휘었다.

    “감사해요. 여러모로.”

    “아닙니다. 개의치 마세요, 정말.”

    작은 룸미러에 갇힌 우진의 눈이 하회탈처럼 히죽 접혔다. 누가 남매 아니랄까 봐, 웃을 때면 갈매기 날개가 되는 눈매가 수아와 꼭 빼닮았다. 덕분에 그와 안 지 이제 고작 사흘째였지만 어쩐지 벌써 친근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물론 붙임성 좋은 성격과 호감 가는 시원한 웃음소리도 한몫했을 테지만.

    “오늘따라 더 피곤해 보이시네요. 도착하려면 30분은 더 걸릴 텐데 눈 좀 붙이세요. 깨워드릴게요.”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 지안은 버릇처럼 한숨을 삼키며 차창 밖을 건너다봤다. 아닌 게 아니라, 멀쩡히 촬영을 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심적 피로가 말도 못할 수준이었다.

    사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촬영하는 것쯤은 그저 즐겁고 감사한 일이었다. 다만 과부하에 걸린 정신이 한계에 다다른 것일 뿐.

    솔직한 말로, 갑작스레 신수들에게 둘러싸인 이 환장할 현실을 어느 누가 맨정신으로 견딜 수 있을까. 지금껏 애써 적응하며 버텨온 것조차 심히 놀라운 일일 테다.

    ‘ 세상에. 구슬이 왜 여기 있어? ’

    사흘 전, 생각지도 못했던 시현의 말에 한동안 정신이 멍했었다. 뭘 잘못 들은 건가, 순간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

    ‘ 설마 지안 씨가 호인…. 어머, 웬일이니. ’

    구슬은 물론 호인에 관한 이야기까지 알고 있다는 것은 그녀 또한 인간이 아니라는 뜻일 터.

    뭐 이런 미친 경우가 다 있는지, 넋이 나가 말도 나오지 않더랬다. 제 심장에 박힌 구슬의 존재에 되레 놀란 시현도 붕어처럼 입만 벙긋대다 감독의 부름에 하는 수 없이 자리를 떴다.

    ‘ 아, 모르셨구나! 전 월호 님께 이미 들어 아시는 줄 알았는데. …저희에겐 시호 님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분이시지요. 실은 저도 여기 계시는 줄 모르고 왔다가 놀라서 차에만 숨어 있었어요. 제가 양기가 좀 약한 편이라 암구미호 가까이만 가도 기가 축나버리거든요. ’

    우진에게 물어 알게 된 그녀의 정체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어쩐지 시현의 손이 닿고도 그가 멀쩡하더라니, 인간이 아니었을 줄이야.

    단지 그 사실이 놀라워 거짓으로 꾀병을 부린 그에겐 화도 나지 않았다. 다만 대체 얼마나 더 많은 동물이 인간인 척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이젠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우니 진정 실성이라도 할 것 같아 덜컥 겁이 날 지경이었다.

    하… 나 정말 미치면 어쩌지….

    차라리 꿈이라면 좋겠다. 일이 모조리 끊기는 암담한 상황에 다시 직면하더라도 차라리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그랬다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구미호 때문에 이렇게 머리가 복잡할 일도 없었을 텐데.

    흐트러진 시야로 창밖을 말끄러미 바라보던 지안은 건조해진 눈을 꾹 감았다. 언제부턴가 눈을 감으면 버릇처럼 좁아지는 미간이 여지없이 우그러들었다.

    아… 또 이래….

    캄캄해진 시야로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얼굴이 둥둥 떠올랐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겁고 피곤해도 쉽게 눈을 감을 수 없는 이유였다.

    “하….”

    번쩍 눈을 떠버린 지안은 찌릿하게 전류가 흐르는 가슴을 꾹 내리눌렀다.

    ‘ 내가 이미, 거기까지 갔어. ’

    이젠 그의 얼굴이 떠오르면 자석처럼 따라붙는 목소리에 얼른 고개도 털어냈다.

    이쯤 되면 인정해야 했다. 사흘 내내 정신을 고단하게 흔들었던 것은 힘든 촬영도 시현의 정체도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까 벌써 사흘째. 그날 이후로 연 사흘째 그가 찾아오지 않고 있었다.

    ‘ 월호 님이 집무실에서 통 나오질 않으셨어요…. 두 분 이번엔 정말 치고받고 싸우신 건 아니시지요? 어휴우… 한기를 어찌나 내뿜으시는지, 전구도 펑펑 깨지구 고드름도 대롱대롱 달리구… W 사옥이 이글루가 돼버렸지 모예요. 이젠 펜트하우스까지 얼음집이 돼가니, 원…. ’

    수아가 전한 그에 관한 소식이라곤 그것이 전부였다.

    대체 뭐 때문에. 멋대로 키스하고 멋대로 고백하고 멋대로 덮친 게 누군데. 왜 자기가 열을 내고 있냐고, 대체….

    ‘ 하루 이상 떨어지면 곤란해. 그러니까 내가 없는 곳에서 외박은 불가야. ’

    그랬으면서 사흘씩이나.

    “어쩌고 있는 거야, 정말….”

    까칠해진 입술이 꾹 말려들어 갔다. 어쩐지 점점 산만해지는 시선이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리저리 길을 헤맸다.

    pm 11:00

    휴대폰 버튼을 눌러 시간을 확인했다가, 쌩하니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도 돌아봤다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가.

    톡, 톡. 무심결에 휴대폰 액정을 두드리는 손끝으로 지난 사흘을 억눌러왔던 근심이 몰려들고 있었다.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나 정말, 걱정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은데…. 부풀어가는 감정이 자꾸만 의지를 밀어내고 충동을 부추긴다.

    잇새에 물린 아랫입술이 꾹 깨물렸다. 엄지 끝이 공연히 검지 마디를 아프게 긁어내렸다. 미세하게 콩닥거리던 박동이 어느 순간 가슴팍을 둥둥둥 흔들어댔다.

    결국엔, 제멋대로 열려버린 입을 막지 못했다.

    “저, 우진 님.”

    시트에서 등을 떼어버린 지안은 사뭇 초조해진 얼굴로 성마르게 물었다.

    “혹시 이사님 청담동 댁이요, 어딘지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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