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
온전히 잠을 물리치기도 전이었다.
뜨거운 호흡이 흠뻑 밀려 들어왔다. 턱을 붙들어 내린 손끝의 악력에 입을 다물 수도 없었다. 다급히 손목을 붙들었지만, 돌덩이 같은 그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호흡이 마구 엉켰다. 들이쉬어야 할지, 뱉어야 할지, 숨 쉬는 것조차 까마득했다.
“하아.”
조금씩 틈이 생길 때마다 필사적으로 숨을 뱉어냈다. 하지만 그는 또 금세 입술을 틀어막고 혀를 감아 당겼다.
“흐음-!”
밀어내야 하는데 도무지 밀어낼 수가 없다. 느릿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이 너무도 조심스러워 차마 거칠게 뿌리칠 수도 없었다.
아아, 어떡하지. 대체 어떻게 해야 해.
그저 손을 잡는 정도라 했던 그 ‘치료’라는 것이 어째서 이 지경이 되었나, 의구심과 혼란이 폭풍처럼 몰려왔지만 한편으론 눈치채고 말았다.
그는 지금 아주, 몹시, 매우 멀쩡한 상태라는 것을.
하지만 이래서야, 어떻게 된 영문인지 따지지도 못하겠다. 촉, 촉 야릇하게 엉키는 젖은 혀의 마찰음이 요사스런 미약처럼 정신을 혼몽하게 흩트리고 있었다.
당혹감에 감지도 못하고 차 천장만 바라보던 눈이 움찔한 것은 그때였다. 댕그래진 눈동자가 자석에 끌리듯 그의 눈 위로 데굴 굴렀다. 내내 감겨 있던 그의 눈이 어느새 게슴츠레 뜨여 있었다.
승원은 똑바르게 지안의 눈을 응시하며 숨이 막히도록 천천히 입술을 빨아당겼다. 마치 이래도 눈을 감지 않겠냐는 듯 집요하고도 나른한 움직임이다.
제 입술을 삼키는 붉은 입술이, 매끄럽게 입안을 넘나드는 선홍색 혀가 너무도 적나라하게 시야에 걸렸다. 그럼에도 뻣뻣한 눈꺼풀이 좀체 감기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쿵쿵, 발광하는 박동이 결국엔 정수리까지 치솟았다. 삽시간에 얼굴로 몰려든 열기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다디단 사탕이라도 맛보듯 연신 혀를 빨아당기던 그가 그제야 질기게 붙어있던 입술을 떼어냈다. 그래 봤자 닿을락 말락 한 거리. 그의 잇새로 흐르는 숨은 여전히 뜨겁게 입술을 간질이고 있었다.
승원은 나붓이 입매를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눈 뜨고 하는 게 취향인가?”
“하… 하아….”
대답 대신 터져 나온 것은 엉망으로 뒤엉켰던 숨이었다. 추위에 덜덜 떨리듯 입술이 제멋대로 달싹였다.
얽혀있던 시선을 툭 떨군 지안은 그의 입술을 피해 얼른 고개를 돌렸다. 시뻘게진 목덜미가 여과 없이 그의 눈앞에 드러났다.
“자… 잠깐 만요. 나 숨이, 숨이 너무 차서….”
어울리지도 않게 수줍은 아낙처럼 엉뚱한 소리를 더듬대고 말았다. 머리론 어깨를 밀치며 버럭 성을 내고 있었지만, 입 밖에 나오는 소리라곤 고작 그것이 전부였다.
첫날밤 옷고름 잡힌 새색시도 아니고 느닷없이 이게 무슨 내숭인지.
아, 나 왜 이래, 진짜.
심장이 기묘하게 펄떡거렸다. 모르긴 해도 분명 정상은 아닌 거다. 어서 벗어나야 했다. 무엇이 됐든 묻는 것도 따지는 것도 나중 문제였다.
떨리는 입술을 꾹꾹 짓씹던 지안은 그의 가슴을 슬쩍 밀어냈다.
“이제, 다 나은 거 같은데, 그만….”
여전히 바보같이 더듬대던 음성이 흠칫 잘려나갔다. 까딱 반대로 기울어진 그의 고개가 겨우 찾은 퇴로를 차단했다. 다시금 싱겁게 갇혀 버린 얼굴이 검푸른 동공에 가득 차올랐다.
“개수작인 거 알고 있잖아, 이미.”
“…….”
마른 침을 꿀꺽 삼킨 지안은 당황해 눈을 깜빡였다. 대놓고 이실직고를 해버리니 이 상황을 벗어날 핑계를 되레 잃고 만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이.
개수작인 거 맞잖아, 거봐.
그런데 도통, 알고도 당최 화를 못 내겠으니 제 머리통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러니, 까요.”
빤히 닿은 시선에 떠밀리듯 주춤 내뱉었다. 사뭇 원망 어린 눈동자가 이쪽저쪽 길을 헤매다 겨우 그를 마주 봤다.
“멀쩡하면서 왜….”
“…….”
의미 모를 그의 시선이 얼굴 위를 구석구석 덧그렸다. 이마에서 눈으로, 콧대를 타고 입술로, 다시 지그시 되돌아와 눈으로. 눅진하게 핥아 내리는 듯한 눈빛에 숨이 바짝 조여들었다.
한참 야릇한 눈길을 흘리며 심장을 움켜쥐던 그는 별안간 피싯 웃으며 말했다.
“좋아해 달라며, 네가.”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하….”
잔뜩 긴장해 솟아있던 어깨가 뚝 떨어졌다. 그러니까 지금, 지난날 그의 비웃음을 샀던 오해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말인가.
지안은 흡사 울 것 같은 얼굴로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그건 그런 뜻이 아니…!”
촉- 순식간에 붙었다 떨어진 입술이 능청맞게 뒷말을 앗아갔다. 묘하게 다정했던 입맞춤에 덜컥 당혹감이 밀려왔다.
“알아.”
그의 입술 끝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간엔 본 적 없던 미소였다. 이 남자에게도 이런 얼굴이 있었던가, 순간 낯선 이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둥둥,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단전에서 시작된 열감이 간지럽게 온몸으로 번져갔다.
아… 이상해. 나 이상해, 지금.
혼란한 정신을 다잡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미….”
어느새 미소가 가신 얼굴이 성큼 가까워졌다.
“거기까지 갔어.”
“……!”
다가오는 그를 피하지 못했다. 놀라 절로 벌어진 잇새로 다시금 그의 혀가 밀려들어 왔다. 뜨거운 숨이 목구멍 깊이 흠씬 틀어박히던 순간, 깜빡깜빡 사정없이 여닫히던 눈꺼풀이 꾹 감기고 말았다.
**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사위에 떠도는 모든 소리가 웅웅 울렸다. 바쁘게 오가는 스태프들의 모습이 흐릿한 시야 속에 이리저리 흐트러져 있었다.
“내가 손목을 잡으면 지안 씨가 돌아보면서 동시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자의 얼굴조차 매한가지였다. 무어라 건너오는 소리도 물에 잠긴 듯 멀찍이 울릴 뿐이다.
이토록 주변의 소리를 모조리 밀어내버린 것은 다름 아닌 제 신음소리였다.
‘ 하아… 하압. ’
여전히 호흡법을 찾지 못했다. 해서 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다급히 숨을 내쉬고 그의 혀를 받아들이길 반복했다.
그러다 한순간, 검푸른 동공이 서서히 회색빛으로 변해가는 기이한 장면을 보고 말았다. 동시에 길게 늘어지던 검은 머리칼이 마법처럼 은빛으로 물들던 모습마저 홀린 듯 보았다.
그때부터였다. 오롯이 월호의 모습으로 돌변한 그는 마치 이성을 잃은 것처럼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 아… 읍! ’
혀뿌리가 뽑힐 듯 무자비하게 당겨졌다. 입술이 아래위로 정신없이 빨렸다.
“지안 씨…? 내 말 듣고 있어요?”
쿵-!
차창에 뒤통수가 부딪힐 만큼 몸이 밀려났다. 사정없이 입안을 헤집던 그의 입술은 목덜미를 타고 귓불을 잘근잘근 씹다가, 급기야 가슴골까지 미끄러졌다.
‘ 자, 잠깐…! ’
있는 힘껏 손목을 붙들었지만 제 미약한 힘 따위는 조금도 전달되지 않았다. 깃털이라도 앉은 양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던 그의 힘은 과연 인간의 것이 아님은 확실했다.
결국엔 셔츠 앞섶이 훤히 풀렸다. 브래지어가 너무도 가소롭게 끌려내려 갔다. 그는 구겨진 캡 위로 출렁 드러난 젖가슴을 지체 없이 입안에 머금었다.
‘ 하아…! ’
허리춤을 지분대던 그의 손이 스커트 속으로 불쑥 들어오던 순간, 멀찍이 창밖 너머에서 애타게 저를 찾던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더라면. 정말 그랬더라면….
모르겠다. 장담할 수가 없다. 그와 어떻게, 어디까지 닿았을지를.
하아. 맙소사.
“미쳤어, 진짜….”
“응? 뭐라고요?”
“……!”
팽창한 풍선이 터지듯 화들짝 귀가 열렸다. 흠칫 고개를 쳐든 지안은 제게로 기울어진 눈앞의 얼굴을 그제야 바로 눈에 담았다.
“아! 죄, 죄송해요, 선배님!”
미친. 제대로 미쳤다, 정말. 동선 맞추다가 느닷없이 또 왜….
얼른 정신을 다잡은 지안은 겸연쩍게 이마를 문지르며 물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잠시… 뭐, 뭐라고 하셨죠?”
극중 지안의 파트너로 만난 배우 장신재는 걱정 어린 얼굴로 지안의 얼굴을 살폈다.
“괜찮아요? 아까부터 안색도 안 좋고 열도 좀 나는 거 같은데.”
살갑게 기울어진 얼굴이 지나치게 가까웠다. 지안은 반사적으로 등을 휙 물리며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뇨, 괜찮아요! 어제 긴장해서 잠을 좀 못 잤더니…. 아! 씬9 어떻게 할까요? 전 이쯤에서 돌아서는 게 나을 것 같긴 한데. 음… 일단 감독님 나오시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주절거렸지만 시뻘게진 얼굴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갸우뚱 고개를 기울이며 연방 지안의 안색을 살피던 신재는 마지못해 웃으며 동선을 맞추었다. 보고 또 봐도 이상한데, 본인이 괜찮다 하니 그라고 어찌할 수가 없었을 터였다.
**
새벽 3시.
저녁 6시부터 재개된 지안의 촬영이 끝난 시각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동료 배우와 스탭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기 무섭게 어깨가 축 늘어졌다. 정말이지, 곧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몰골이었다.
하루가 몹시 길었다. 첫 촬영의 기분 좋은 긴장감, 씬이 마무리될 때마다 밀려오던 성취감, 다시 현장에 나와 연기를 할 수 있게 된 현실에 벅차오르던 행복감.
그토록 다양한 감정만으로도 충분히 고단했을 정신에 너무도 커다란 폭탄이 떨어졌다.
미쳤어. 나 진짜 미친 거 같애. 야, 이 미친년아…!
멀쩡한 듯 연기를 하면서도 수없이 정신적 자학을 반복했다. 그 상태로 NG도 몇 번 내지 않았던 것은 과연 기적이었을까, 감독의 유한 성격 덕이었을까.
“하아.”
주차장을 향해 터벅터벅 힘겹게 내딛던 걸음이 인적이 멀어지기 무섭게 우뚝 멈췄다. 이내 푹 꺾인 무릎에 이마가 풀썩 고꾸라졌다.
“아… 나 어떡해, 진짜….”
난데없이 코끝이 찡해졌다. 정신이 분잡스러워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없다.
왜. 대체 왜. 어째서 완강히 거부하지 못했을까. 한순간 휩쓸린 감정인지, 모른 채 외면했던 진심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아아….”
번쩍 고개를 쳐든 지안은 손안에 얼굴을 파묻었다.
“돌아버리겠네, 정말.”
결국엔 삐져나온 눈물이 촉촉이 손바닥을 적셨다. 몸은 고단하고 머리는 어지럽고 마음마저 어수선해서, 답답함에 절로 삐쭉 눈물이 났다.
설상가상, 그간에 있었던 꿈같은 일들이 느닷없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니 찔끔 나던 눈물이 제멋대로 줄줄 흐르고 만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 그래, 그놈의 막걸리. 그것만 마시지 않았더라면 구슬을 삼킬 일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든 꾸역꾸역 그를 거부했더라면 이런 이상한 감정에 휘말릴 일도….
“…….”
찌르르, 심장에 익숙한 전류가 흐른 건 그때였다. 답 없을 후회만 거듭하던 머리가 순간 사고를 멈추었다. 버릇처럼 내쉬던 한숨도 흠칫 멎었다.
묵직한 우디향이 솔솔 풍겨오고 있었다. 그가, 가까이에 있다.
그러니까 왜 아직 여기에….
공연히 마른 침을 삼킨 지안은 눈을 가린 손가락을 찔끔찔끔 움직였다. 검지와 중지 사이로 조금씩 시야가 트일수록 쿵쿵쿵 심장이 낯설게 요동쳤다.
어디쯤 있을까, 긴장하며 찾아 헤맬 필요조차 없었다. 이미 코앞까지 다가와 무릎을 낮춘 그가 턱을 괸 채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 미친. 왜 떨리고 난리야.
손가락 사이로 그와 눈이 마주치고도 손을 떼어내지 못했다. 그의 기척에 놀라 순간 쏙 들어갔던 눈물이 다시 스멀스멀 차오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그것을 발견한 모양인지 그의 고개가 조금 기울었다. 눈은 가늘어지고 미간엔 실금이 그어진 채였다.
이윽고, 그의 커다란 손이 한쪽 시야를 가리며 다가왔다. 얼굴에 찰싹 붙은 손가락을 차례로 떼어낸 그는 네 개의 손가락을 움켜쥐고 가만히 끌어내렸다. 한쪽 방패가 싱겁게 떨어져 나갔다. 눈망울에 가득 차올라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승원은 눈썹 머리를 좁히며 물었다.
“왜 울어.”
“…….”
저도 눈물의 의미를 몰라 할 말이 없었다. 지금은 그저, 심장이 너무 떨려 입을 열기가 부담스러웠다.
‘ 그런데 내가 이미, 거기까지 갔어. ’
다시 얼굴을 마주하니 짓궂게 되돌아온 소리가 벌렁벌렁 심장에 장난질을 치고 있었다.
하… 숨도 못 쉬겠네, 정말.
잠시간 어색하게 눈만 깜박이던 지안은 그의 손에 쥐어 잡힌 손가락을 삐죽삐죽 빼내며 몸을 일으켰다. 고작 눈물 몇 줄기 흘렸다고 얼버무리듯 내뱉은 말이 맹맹하게 잠겼다.
“모르겠어요. 촬영 땜에,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승원은 여전히 앉은 채로 검푸른 눈동자를 힐끗 치떴다. 저를 올려다보는 무표정한 얼굴이 어쩐지 조금 화가 난 듯 보이기도 했다.
부담스럽게 빤히 건너오는 시선에 목 언저리가 슬슬 뜨거워지고 있었다. 눈꼬리에 달려 있던 눈물을 얼른 거둬낸 지안은 기색을 감추려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미 알고 있던 시간을 구태여 확인하며 애써 담담한 척 물었다.
“여태 기다린 거예요? 3시나 됐는데.”
그러고도 다소간 그녀를 빤히 올려다보던 그는 뒤늦게 무릎을 펴고 일어나 여상하게 물었다.
“운전할 줄 알아?”
“면허증은 있긴 한데… 잘은 못해요.”
“그러니까.”
그러며 피식 입꼬리를 올린 그는 뒤돌아 성큼성큼 걸어갔다. 언제 가져다 두었는지, 몇 걸음 앞에 그의 세단이 있었다. 금세 운전석 문 앞까지 당도한 그가 지안을 돌아보며 보조석 쪽을 턱짓했다.
“타.”
지안은 주춤 발을 떼어내며 주차장을 휘둘러봤다. 그러잖아도 승합차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하나 내심 고민되던 차였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승합차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차에 오른 참이었다. 못 이긴 척 보조석에 올라탄 지안은 뒷좌석에 옮겨져 있는 제 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승합차는 어디로 간 거예요?”
“저 세상.”
의아한 얼굴로 눈썹을 들썩이자, 그는 시동을 걸며 무심히 말했다.
“폐차시켰어. 뒤질 때가 된 거 같아서.”
“…아.”
바퀴가 한 번 구를 때마다 덜덜 떨리던 승차감을 떠올리던 지안은 그저 묵묵히 고개만 주억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