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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뜨는 밤-50화 (50/106)
  • 50화

    고요하다 못해 삭막했다.

    딱히 누구도 먼저 입을 떼지 않으니 당최 침묵이 깨지지 않고 있었다.

    하필이면 오늘따라 교통 신호 운도 더럽게 없어서는, 정적이 찾아들 틈이 필요 이상으로 길었다.

    얼마 못 가 다시 빨간 신호에 가로막힌 세단이 천천히 속력을 늦추었다.

    엔진 소리가 잦아든 공간에 여지없이 갑갑한 정적이 흘렀다.

    기분이 제대로 상해버린 저야 그렇다 치지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별일 없는 밤을 보냈을 지안이 하루아침에 꽁해 있으니 그로선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목 끝까지 차오른 갑갑증을 참지 못한 승원은 결국 브레이크를 꾹 밟으며 입을 뗐다.

    “뭐야, 이 분위기는.”

    차에 오른 후로 보조석 쪽으론 눈도 돌리지 않던 그가 그제야 지안을 돌아보며 물었다.

    “헛소리 한 번 했다고 내외하는 거야?”

    왼쪽 귀만 겨우 보일 만큼 창을 향해 팽 돌아간 얼굴은 미동도 없었다.

    지안은 그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심심한 어투로 대꾸했다.

    “내외는 무슨…. 피곤해서 그래요. 잠을 좀 못 자서.”

    아무래도 말꼬리가 불퉁했다. 진정 피곤해서인지 뒤늦게 내외를 하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이제는 머리통을 텅 비워놓는 재주까지 연마한 것인가. 어째 좀처럼 속말도 들리지 않았다.

    고집스레 창밖만 건너다보던 지안은 일순 그를 휙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는 영감님은요. 아직도 그 헛소리 때문에 예민한 상태예요?”

    “…….”

    생각지도 못했던 맹랑한 질문이었다. 승원은 잠시간 대꾸 없이 지안의 눈을 빤히 마주 봤다.

    자고로 사건은 사건을 덮고, 감정은 감정을 덮는 법이다.

    그 예민함을 단번에 덮어버린 너로 인해 심기가 더더욱 불편해졌노라 말할 수는 없으니, 빤히 건너가던 시선이 이내 거두어졌다.

    “피곤해서 그래. 잠을 못 자서.”

    제 핑계가 고대로 되돌아오자, 지안은 더는 따질 말을 찾지 못하고 다시 꿍하니 입을 다물었다.

    마침맞게 파란 등에 불이 켜졌다. 어김없이 정적이 내리깔린 공간 속으로 묵직한 엔진음이 잔잔히 차올랐다.

    그 길로 편집숍에 다다를 때까지, 그와 그녀는 동상이몽의 상태로 애꿎은 서운함만 키워갔다.

    싱겁게 막을 내린 1차전이었다.

    **

    갓길에 정차해둔 차체에 기대어 담배를 빼 물던 승원은 불을 붙이려다 말고 눈을 치떴다.

    “감사합니다!”

    왕복 2차선 도로 너머의 편집숍 건물을 나선 지안이 살갑게 인사를 던지며 문을 나서고 있었다. 한 손에는 제 상체만 한 부직포 가방을 든 채였다.

    이미 이전에 들렀던 곳에서도 딱 저만 한 가방을 챙겨 와 차에 실은 참이거늘, 대체 무슨 옷을 저렇게나 많이 집어오는 건지.

    기사 노릇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혼자 어떻게 감당했을까, 절로 혀가 내둘렸다.

    “대책 없기는.”

    보도블록 위에 묵직한 가방을 내려둔 지안은 도로를 둘러보며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 위로 차들이 끊임없이 쌩쌩 스쳐 갔다.

    저래서야 어느 세월에 건너올까….

    가만 지켜보던 승원은 결국 담배를 도로 집어넣고 가볍게 손가락을 퉁겼다.

    일순, 빠르게 구르던 수 대의 자동차 휠이 그림처럼 대기 속에 우뚝 멈췄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지안은 멈춘 차들을 돌아보다 어리둥절하게 그를 건너다봤다. 곁에 내려두었던 옷 가방은 눈 깜짝할 사이 그의 손에 달랑 들린 채였다.

    승원은 뒷좌석에 무심히 가방을 쑤셔 넣고 벙찐 얼굴로 서 있는 지안을 돌아봤다.

    “빨리 와, 굼뜨지 말고.”

    그의 능력에 새삼 놀라 입만 쩍 벌리고 있던 지안은 그제야 정신을 붙들고 아스팔트를 총총 건너왔다.

    어느 틈에 차에 올라 있던 승원은 보조석 문이 열리기 무섭게 성마른 잔소리를 늘어놨다.

    “패션쇼 나가? 뭘 그렇게 많이 집어와?”

    머쓱한 얼굴로 올라탄 지안은 안전벨트를 당기며 말했다.

    “모자란 거보단 넘치는 게 나을 때도 있어요.”

    넘쳐봤자 제 몸만 고생할 일이지.

    도통 이해하지 못한 승원은 콧방귀를 뀌며 시동을 걸었다.

    “퍽이나.”

    지안은 자못 억울한 얼굴로 항변하듯 말했다.

    “조명이나 자연광 따라서 카메라 잘 받는 스타일도 다르단 말이에요. 감독님이 앵글 따보고 패스하시면 갈아입어야 하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고.”

    “배우가 연기만 하면 되지, 뭘 그런 것까지 신경을 써?”

    “연기는 뭐 발가벗고 해요? 난 소속사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소속사를 찾아, 그럼.”

    “그게 쉬웠으면 이러고 있겠어요?”

    “염병. 어려운 것도 많네.”

    “…뭐 염병일 것까지야…. 아니, 잔소리 하려고 태워준댔어요?”

    오가는 어투가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까칠했다. 언제는 다정한 적이 있었느냐마는, 오늘따라 유독 곱지 않은 것은 그도 그녀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하나, 누구도 먼저 제 속내를 터놓고 따지지는 못했다. 본인들도 몹시 유치한 감정에 지배된 상태임을 익히 알기 때문이었다.

    지안은 괜스레 눈치를 살피며 불퉁한 얼굴로 물었다.

    “한 군데만 더 들러도 돼요?”

    “점심시간이야. 밥부터 먹어.”

    “…….”

    하여튼 그놈의 밥은 드럽게 챙겨 먹이네, 진짜.

    배부른 투정에 삐죽대던 입술이 별수 없이 꾹 다물렸다.

    바쁜 심신과 다운된 기분과는 별개로 뱃가죽은 룰루랄라 등짝을 향해 가고 있었으니, 우선 배는 채우고 볼 일이었다.

    어쨌거나 은근슬쩍 시작된 2차전은 그녀의 패배인 셈이다.

    차창 밖의 세상은 여전히 풍경 사진처럼 멈춰있었다. 그 속에서 홀로 움직인 그의 손이 드라이브 모드로 기어를 맞추었다.

    그와 동시에 최면에서 깨어난 세상이 소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지안은 커다란 상에 차곡차곡 줄지어 놓인 반찬들을 맥없이 휘둘러봤다.

    외식 메뉴조차 영양 잡곡이 듬뿍 들어간 돌솥밥 정식이라니.

    이쯤 되니 그의 장수 비결은 균형 잡힌 식생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한데, 사람이 참 간사하기도 하지.

    언제는 컵라면에 삼각 김밥이 그렇게도 지겹더니, 이젠 배가 조금 불렀다고 인스턴트가 그립기까지 한다.

    특히나 오늘처럼 한시가 바쁜 날엔 더더욱.

    수도 헤아리기 힘든 반찬에 각자의 몫으로 놓인 돌솥밥을 끝으로 푸짐한 한 상이 차려졌다.

    직원이 룸의 문을 닫고 나서자마자, 지안은 급히 숟가락을 들었다. 아직 편집숍도 다 들르지 못했는데, 헤어숍까지 들르자면 초침 한 칸 넘어가는 시간도 아까웠다.

    “후우, 후우.”

    한술 크게 뜬 밥 위로 솔솔 오르는 김을 식히느라 동그랗게 모은 입이 바쁘게 바람을 뿜었다.

    왜 하필이면 돌솥밥인지, 한술 뜰 때마다 열기를 식히자니 아까운 시간만 술술 흐른다.

    지안이 하는 양을 가만 바라보던 승원은 고개를 절절 흔들며 지안의 돌솥을 휙 거둬갔다.

    그러고는 테이블 한편에 놓여있던 커다란 대접에 밥을 옮겨 담고 그것을 지안의 앞에 놓아주었다. 텅 빈 돌솥에는 뜨거운 숭늉이 가득 따라졌다.

    “…….”

    지안은 멋쩍은 얼굴로 제 앞에 놓인 밥그릇을 내려다봤다.

    어쩐지, 왜 빈 그릇을 놓고 갔나 했더니. 생전 이런 데서 돌솥을 긁어봤어야 알지….

    머쓱하게 숟가락을 고쳐 쥔 지안은 밥알을 뒤적이며 비교적 손쉽게 김을 식혔다. 괜한 자존심에 비굴하게 한 마디 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서 그랬어요.”

    “알았으니까 먹기나 해.”

    보지 않아도 비웃음 걸린 얼굴이 그려지는 것은 기분 탓이겠지.

    분한 마음을 삭이며 묵묵히 몇 숟갈을 뜨고 있자니, 그가 물잔을 들며 무심히 물었다.

    “촬영장엔 저 많은 옷을 어떻게 들고 갈 건데.”

    지안은 오물오물 씹던 음식을 꿀꺽 삼키고 답했다.

    “내일 촬영분에 다 쓸 건 아니에요. 대본 나온 만큼만 미리 준비해놓은 거지.”

    “어쨌든 한두 벌은 아닐 거 아냐.”

    아닌 게 아니라, 내일 필요한 의상만 해도 세 벌은 되었다. 여유 있게 준비하자면 그보다 몇 벌은 더 챙겨야 하니 양손이 무겁긴 할 일이었다.

    혹 귀찮게 부탁이라도 할세라 미리 선수 치는 건가.

    마음이 삐뚤어져서인지 어째 한 마디도 곱게 들리지 않는다.

    지안은 마뜩잖게 들썩이던 입술을 감추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건호한테 부탁하면 돼요.”

    밥을 뜨던 그의 손이 멈칫했다. 검푸른 눈동자가 지안을 향해 한껏 치떠졌다.

    “…누구?”

    “전에 보셨던 친구요. 아, W 기획 다니는.”

    친절히 설명을 덧붙인 지안은 식힌 밥을 크게 한술 떠먹었다.

    “…….”

    어쩐지 대꾸가 없는 그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었다. 연근 조림 하나를 집으며 은근슬쩍 눈을 들자, 여태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그와 시선이 얽혔다.

    얼마쯤 의미 모를 시선을 머쓱하게 마주 보던 지안은 볼을 스윽 문지르며 물었다.

    “왜요? 또 밥풀 묻었어요?”

    뚫어져라 건너오던 검푸른 시선이 그제야 제 밥그릇 위로 떨어졌다.

    “그 친구한텐 연락하지 마.”

    뜬금없는 명령에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는 차게 시선을 내리뜬 채 덧붙였다.

    “이건호 대리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아서 아침부터 매우 바쁠 예정이니까.”

    “…….”

    충분히 알고 있는 소식이었으나, 그 ‘중요한 프로젝트’는 사흘 뒤 싱가폴로 떠난 후에나 매우 바쁘게 돌아가리란 사실도 익히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내일은….

    ‘ 오전에 매니저 노릇 좀 해줘? 나 그날은 오후 출근이라 오전 시간 뺄 수 있어. ’

    이미 건호의 일정을 훤히 알고 있건만 어디서 거짓말을….

    와… 진짜 심보 되게 고약하네.

    “회사 고급인력 막 쓰는 게 아니꼬운 건 아니구요?”

    저도 모르게 꽈배기 같이 꼬인 본심이 툭 튀어나갔다. 여태 들고만 있던 연근을 태연하게 씹으면서도 내심 아차 했지만 이미 뿌린 물을 담을 순 없었다.

    제게로 향해있는 그의 시선이 곁눈에 여지없이 걸리고 있었다.

    잠시간 불편한 침묵을 꾹꾹 씹어삼키던 지안은 짧은 심호흡을 툭 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 이미 뿌린 물을 어찌하랴. 속이나 개운하게 다 뿌려버려야지.

    “말 나온 김에 얘기 좀 할게요.”

    전에 없이 분위기를 잡자 그는 수저를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지안은 경청의 자세로 기껍게 건너오는 시선을 똑바르게 마주했다.

    “제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알겠는데요. 저라고 원해서 호인인지 뭔지, 그걸로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 솔직히 억울한 걸로 따지면 내 쪽이 더한 거 아니에요?”

    그려놓은 듯 곱게 뻗은 그의 눈썹이 이맛살을 삐쭉 밀어 올렸다.

    “갑자기 얘기가 왜 거기까지 가?”

    “이러나저러나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온 거니까 하는 말이에요.”

    사실 건호의 일은 그저 준비 태세를 갖춘 폭탄에 불씨만 되었을 뿐, 온종일 마음이 곪아있던 원인은 결국 그것이었다.

    귀찮음도 무릅쓰고 기사 노릇을 해준 것도, 세상 고귀하신 분이 손수 돌솥을 긁어준 것도 분명 그답지 않은 배려임을 알면서도 내내 고깝게만 보았다.

    기저에 깔린 서운함이 이성적인 판단력을 배배 꼬아버린 탓이었다.

    베어 물었던 연근 반 토막을 입안에 마저 던져넣은 지안은 콧바람을 씽씽 뿜으며 근질근질한 목을 애써 다잡았다.

    아… 더 뿌리면 안 되는데.

    이것까지 다 뱉으면 홍수 나는 건데, 이거….

    “내가 진짜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하지만 이미 늦었다. 달리는 입술은 말리는 머리를 뿌리쳤고.

    “아니, 솔직히 내가 뭐 어때서요?”

    결국 대책 없이 남은 물을 모조리 뿜어내고 말았다.

    “구미호 눈엔 별로일지 몰라도 사람 기준에서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편이거든요?”

    “…….”

    솟아있던 그의 눈썹이 천천히 떨어졌다. 정직하게 깜빡이는 눈동자는 갑작스런 상황을 파악하느라 벙벙한 상태였다.

    예고도 없었기에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했던 그로선 갑자기 홍수가 터진 이 상황이 충분히 어리둥절할 일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느닷없는 해일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물론 외모가 다는 아니지만 성격이라고 뭐 그렇게…. 어쨌든 고양이 님한테 그런 소리 좀 들었다고 그렇게까지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잖아요. 것도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사태 파악에 골몰하던 승원의 입술이 돌연 한쪽으로 피식 기울어졌다. 그제야 그녀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제대로 파악한 것이었다.

    “어제는 실컷 웃어 넘겨놓고 왜 연근 씹다가 갑자기 뒷북이야?”

    “거야 어제는 그냥 기가 막혀서….”

    딱히 할 말이 없어 꾹 다물렸던 입술이 다시 불퉁 튀어나왔다.

    “아니,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쁘잖아요.”

    영감님 같으면 안 그러겠어요? ‘내 친구가 나더러 내가 널 좋아한다고 헛소리를 하더라.’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그러고 내내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는데 나라고 기분이 좋을 리가 없잖아요.”

    애꿎은 숟가락질만 푹푹 거칠어졌다. 나오는 대로 뱉고는 있지만 이게 지금 두서가 있기는 한 건지, 말은 되는 소린지 저조차도 헷갈리는 상태로 열변만 토했다.

    한데, 잠시간 쳐다만 보던 그의 얼굴엔 알 수 없는 웃음기가 슬슬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한 마디 툭 던져놓고 헛웃음을 치다 물었다.

    “네가 종일 툴툴거린 이유가 그거였어?”

    빼쪽해진 지안의 눈초리가 억울한 듯 휙 쳐들렸다.

    “나 혼자 그랬어요? 솔직히 영감님도 그랬잖아요. 말끝마다 시비 걸고 까칠하게 말하고.”

    “난 말투가 원래 이래. 내가 언제 곱게 말한 적 있어?”

    “물론 없죠. 원래도 싸가지는 없으셨는데 오늘은 유독….”

    대번에 엄하게 일그러지는 그의 눈썹을 바라보다 말꼬리가 흠칫 쪼그라들었다.

    이 와중에도 매서운 눈빛 한 번에 은근히 쫄아버린 자신이 이다지도 비굴할 수 없다.

    지안은 괜스레 밥알만 깨작깨작 씹으며 되는 대로 지껄였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도 어디 가서 빠지는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무시를 하니까….”

    아, 뭐라는 거야.

    “아후, 됐어요. 식사나 하세요.”

    뭘 먹는지도 모르게 손이 가는 대로 반찬을 집었다.

    갈수록 두서없는 헛소리에 가까웠으나 그래도 종일 체증처럼 갑갑했던 명치는 한결 개운해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결론이 뭐야.”

    이런 반응이 건너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좋아해 달란 소리야?”

    “아니, 무슨…!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아… 이 양반 이해력이 쉼터에 계시네.

    괜히 벌게진 얼굴로 열변을 토하려던 지안은 별안간 할 말을 잃고 벙벙해졌다.

    느닷없이 이마를 문지르며 고개를 푹 떨군 그가 소리도 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고 있었다.

    지안은 황당한 얼굴로 헛숨 쉬듯 물었다.

    “…웃겨요?”

    하나, 그는 인중에 손을 지탱한 채 되레 시원하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

    이건 또 무슨 리액션이야.

    분명 속 시원히 할 말을 다 했는데, 이상하게 또 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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