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방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브라이언과 엘리엇은 물론이고, 신전의 대사제들이 몰려들어 방을 가득 채운 것이었다.
“빠르게 오지 못해서 미안하단다.”
“우리도 밖에 일이 있었어.”
브라이언과 엘리엇이 차례대로 말했다.
신전까지 찾아온 데이릭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이렇게 행패를 부렸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분명 무슨 수를 썼겠지.
보아하니 데이릭이 이곳으로 온 이유는 플레온 사제를 데리러 오기 위함인 듯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이목을 외부로 쏠리게 해 놓아야 수월하게 플레온 사제를 데리고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밖에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작은할아버지의 브로치 기억해?”
내가 질문하자 엘리엇이 운을 떼었다.
단지 그뿐이었음에도 데이릭이 무슨 수를 쓴 것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충 알 것 같네.”
“이곳은…… 데이릭 모어가 왔었던 거지?”
“응.”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성녀님.”
엘리엇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바론 대주교가 가까이 다가와 나를 불렀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바론 대주교를 확인했다. 그의 뒤에 베트람이 서 있었다.
“성기사 베트람에게 들었습니다. 배신자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바론 대주교는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처음 플레온 사제가 데이릭의 편에 섰다는 것을 알게 된 내 표정도 바론 대주교의 지금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하기에는 긴 이야기예요. 자리를 옮기면 안 될까요?”
사람들로 인해 좁게 느껴지는 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는 탓에 사방이 번잡스러웠던 것도 있었다.
게다가 연이어 닥친 상황으로 인해 피로가 급격히 몰려오는 중이었다. 나는 좀 앉아서 쉬고 싶었다.
“일단 다시 회의실로 자리를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 주세요.”
대답을 마치고 먼저 몸을 움직였다.
다른 대사제들 역시 나를 따라왔다.
나는 회의실, 내 지정 좌석에 앉은 후 손을 들어 얼굴을 쓸었다.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아니면 베트람에게서 전해 들었을 짧은 한 문장이 너무나 임팩트가 강했던 것인지 대사제들은 회의실 안에 들어와서도 침묵을 유지했다.
나는 사람들이 모두 착석한 것을 확인한 후 어렵게 입을 열었다.
“플레온 사제님이 배신자였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회의실이 소란스러워졌다. 바론 대주교는 대사제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손을 들었다. 다행히도 대사제들은 금세 진정하고 침묵을 유지했다.
대신 바론 대주교가 그들을 대신하여 나를 주시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배신자라고 하신 건 어떤 의미입니까? 플레온 사제도 악룡의 힘에 지배된 것입니까?”
바론 대주교는 배신을 그 단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나조차도 처음에는 플레온 사제가 악룡의 힘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비브르와 대화를 나눈 끝에 나는 플레온 사제가 단순히 악룡의 흔적 때문에 데이릭과 함께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건 비브르와 대화를 나눈 끝에 내린 추측입니다만, 플레온 사제님은 악룡의 힘에 지배되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예? 아니, 그게 무슨……!”
“그럼 정말 자의로 데이릭 모어의 편이 되었다는 말입니까?”
“그런!”
사람들의 말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왔다.
그들의 당혹감이나 충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희보다도 오랫동안 신전에 몸을 담아 왔던 분이 바로 플레온 사제님입니다. 어떻게 플레온 사제님께서 듀아나 여신님을 배신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다가 이내 괴로운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화를 내어 죄송합니다, 성녀님. 너무 놀라운 상황이라 반사적으로 말이 나왔습니다.”
“이해합니다. 괜찮아요.”
신전에서 플레온 사제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지 않았다.
그는 성자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지금은 내가 성녀의 자리에 올랐지만, 내가 아는 과거에서는 플레온 사제가 성자의 자리에 올랐었다. 심지어는 그 기억마저 모두 갖고 있었다.
성자가 될 정도로 그는 듀아나 여신께 헌신하는 사람이었고, 또한 신실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배신자라고 말하고 있으니 신전 사람들이 이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실이에요.”
말을 꺼내는 게 유독 무거웠다.
“어떻게 된 경위인지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프리와 저는, 라이넬 사제님에게 악룡의 흔적을 새긴 데이릭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내가 제프리를 바라보자 회의실 내의 사람들이 동시에 제프리를 바라보았다.
제프리는 사실이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플레온 사제님은 제가 악룡의 흔적을 확인하겠다고 하자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악룡의 흔적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까? 그건 플레온 사제님의 의지가 아니니 배신을 했다고 보기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중간에 나를 향해 따지듯 묻는 사제를 향해 짧게 대꾸했다.
“악룡의 흔적이 새겨지면 보편적으로 힘의 주인에게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 탓에 자신의 원래 감정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죠. 기억을 잃기도 하고요. 그런데 플레온 사제님은 죄책감을 느끼시더라고요. 악룡의 흔적이 새겨졌다면 오히려 죄책감 같은 걸 느낄 리가 없을 텐데 말이에요.”
“그게 플레온 사제님께서 듀아나 여신님을 배신했다는 근거입니까?”
“네. 사소해 보이지만 악룡의 힘에 지배되는 사람과 아닌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차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비브르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나뿐만이 아니라 비브르의 의견이기도 하다는 말에 사제들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개인의 느낌이라면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 테지만, 수호룡의 판단까지 곁들여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말로 플레온 사제가…….”
바론 대주교가 탄식했다. 그러자 다른 사제들 역시 비통함을 토해 냈다.
그 탓에 회의실은 온통 한숨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혹시 이유에 대해서는 알고 계십니까? 플레온 사제가 어째서 듀아나 여신님을 배신하게 되었는지요.”
“아뇨, 그건 못 들었습니다. 그런 걸 물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요. 밖에서도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들었습니다만, 저희 쪽도 보셨던 것처럼 전투를 치른 후였습니다. 그 사이에 플레온 사제님과 대화할 시간 같은 건 없었어요.”
“그렇군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론 대주교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짐작 가는 바가 있으면 누구든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이유를 알아야 대처가 가능할 것 같군요.”
“…….”
바론 대주교가 대사제들을 향해 물었으나,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플레온 사제의 배신을 짐작조차 못 한 사람들이었다.
플레온 사제가 무슨 이유로 배신하게 되었는지를 알 턱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플레온 사제의 일탈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플레온 사제가 데이릭의 편에 붙게 된 걸까?
악의 힘에 지배되는 것도 아니라면, 마땅히 그에 맞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 답을 모르니 마치 미궁 속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사람들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베트람 기사님마저도 악룡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없을 것이라 확신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대사제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지금 무고한 듯이 보이는 그들 중에도 어쩌면 데이릭이 심어 놓은 사람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플레온 사제처럼 자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 악의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겠지만.
“예, 그건 저도 찬성합니다. 위험부담은 최대한 줄이는 게 좋을 테니까요.”
“네.”
“하지만 성녀님.”
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바론 대주교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네, 말씀하세요.”
내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바론 대주교가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현재 우리 듀아나 신전에는 악룡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성녀님과 비브르 님 외에는 말이죠.”
“아, 맞아요. 그건 그렇죠.”
성녀인 나나 수호룡인 비브르가 아닌 이상에야 악룡의 흔적을 볼 수 없을 터였다.
“그렇다는 말은 성녀님께서 신전의 많은 이들을 직접 살피셔야 한다는 건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가뜩이나 데이릭 모어와의 전투로 인해 피곤하실 텐데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됩니다.”
바론 대주교의 걱정이 이해가 갔다.
그러나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신전 사람이라고 해도 선뜻 신뢰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누가 데이릭의 심복일지 모르는 상황일 테니까.
“그래도 확인은 해야죠.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피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신력으로 그 정도는 해소할 수 있으니까요.”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바론 대주교가 씁쓸하게 웃었다.
“……예.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희는 최대한 성녀님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해요, 대주교님”
나는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바론 대주교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