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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52)화 (152/174)
  • 152화

    “플레온 사제님 보셨어요?”

    “아까 이곳으로 지나갔습니다. 아마 기도실 근처로 가셨을 겁니다.”

    다른 사제에게서 들은 정보를 토대로 플레온 사제가 있을 기도실로 향했다. 한창 보수 작업을 진행 중인 복도를 지나 마침내 기도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도실 내부는 반쯤 부서져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제프리와 나는 그 안에서 듀아나 여신님의 석상을 향해 기도드리고 있는 플레온 사제를 발견했다.

    일단 기도하고 있는 것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천천히 기도실 안쪽으로 들어와 한쪽에 자리 잡았다.

    플레온 사제가 기도드리는 모습은 신성하고 경건해 보였다.

    그의 이런 모습은 도저히 악룡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마도 내 기우일 확률이 높아 보였다.

    적지 않은 시간을 공들여 기도하던 플레온 사제가 문득 몸을 돌려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거기 계시던데…… 혹시 제게 볼일이 있으신 겁니까?”

    플레온 사제가 조심스럽게 우리를 향해 물었다.

    “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기도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내가 대답하자 플레온 사제는 의아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이내 사람 좋게 웃었다.

    “그러시군요. 그럼 여기 서서 대화하기는 좀 그러니 이쪽으로 오십시오. 안으로 들어가면 그나마 앉을 곳이 있습니다.”

    “네.”

    플레온 사제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느린 걸음으로 그를 따라 걸었다.

    마침내 우리가 도착한 곳은 기도실 근처에 있는 대기실이었다.

    대기실은 천장이 무너져 하늘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실내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앉으십시오.”

    그가 권하는 의자에 앉았다. 플레온 사제는 우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럼 무슨 일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플레온 사제는 단도직입적으로 우리를 향해 물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이내 결심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제가 플레온 사제님의 몸을 좀 확인해도 될까요?”

    “제 몸…… 말입니까?”

    플레온 사제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평상시에 항상 차분한 모습을 보여 왔던 플레온 사제에게서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나는 설명이 너무 부족했다고 생각하여 어색하게 웃으며 혀를 씹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혹시…… 플레온 사제님의 몸에 악룡의 흔적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

    내가 바로 이야기하자 플레온 사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조금은 불쾌했는지 눈썹을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당황스럽고 불쾌하신 줄로 압니다. 하지만 미라벨이 그런 말씀을 드린 건…….”

    “아뇨, 저는 제프리 콜먼 당신에게 대답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제프리가 나를 대신해 해명하려는 찰나에 플레온 사제가 그의 말허리를 잘라냈다. 불쾌감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저를 의심하시는군요. 그렇습니까, 성녀님?”

    나를 향하는 플레온 사제의 시선이 조금 거북스러웠다.

    이럴 것을 미리 예상해야 했다.

    누구라도 자신을 의심하는데 불쾌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플레온 사제는 내가 지금으로 돌아오기 전, 성자가 되었을 정도로 신력이 뛰어나고 신실한 사제였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으니 더더욱 내 의심이 불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불쾌하게 여기실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네, 솔직히 많이 불쾌합니다.”

    “하지만 저도 만일을 위해서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서 찾아온 거고요.”

    “…….”

    플레온 사제가 잠시 나를 주시했다. 그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주변 공기가 더욱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나 거부한다면 어떻게 하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에 나는 인제야 그가 내 부탁을 거부할 것을 상정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두 가지로 나뉘겠지. 그가 정말 무고하거나, 아니면 악룡의 흔적을 갖고 있거나.

    전자의 경우도 문제였지만, 후자라면 더더욱 곤란해졌다. 플레온 사제는 성자일 때의 기억을 갖고 있으므로 데이릭의 편에 서게 된다면 가장 껄끄러운 적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하…….”

    한참 침묵을 유지하던 플레온 사제가 두 손을 들어 얼굴을 쓸었다. 긴 한숨이 그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왜 저를 의심하신 건지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플레온 사제님을 의심해서 그런 거라기보다는……. 데이릭이 과연 라이넬 사제 한 분에게만 악룡의 흔적을 새겼을지 의아해졌어요. 그래서 데이릭과 마지막에 제일 가까이 있었던 대사제분들을 모두 확인해 보려는 참이었고요.”

    “그렇다면 그중에서 저를 제일 먼저 찾은 이유도 따로 있을 테죠.”

    플레온 사제가 확신하듯 말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플레온 사제를 굳이 먼저 찾아온 건 라이넬 사제에게 악룡의 흔적이 새겨지기 전에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사람이 바로 플레온 사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얘기를 플레온 사제에게 바로 해도 될지는 의문이었다.

    짧은 판단 끝에 나는 그에게 일단 이 사실을 숨기기로 마음먹었다.

    “플레온 사제님을 제일 먼저 찾은 건 데이릭이 가장 필요로 할 사람이 플레온 사제님이 아닐까 싶은 판단 때문이에요.”

    “왜죠? 설마 제가 성자였던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까?”

    “네.”

    플레온 사제는 고개를 숙이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한숨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성녀님,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이후로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는 조금 전 불쾌감을 드러내던 것과는 판이했다. 평소처럼 차분하고 진정된 목소리였다.

    “데이릭이 아무리 악룡의 힘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가 성자의 기억을 갖고 있다는 걸 알 방법은 없습니다. 성녀님, 제게서 다른 사제와의 차이점을 느끼십니까?”

    플레온 사제는 낮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그의 눈동자를 주시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렇진 않아요.”

    플레온 사제가 아무리 과거에 성자였다고 하더라도 그에게서 다른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성자와 성녀가 특별한 이유는 오직 비브르에게 선택받았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도 비브르에게 선택을 받아 압도적인 신력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선택받지 않았던 과거에는 평범한 용병이었을 뿐이었다.

    지금의 플레온 사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플레온 사제와 다른 사제들의 차이는 과거의 기억이 유일했다.

    “그것 보십시오. 저는 특별할 것 없는 사제일 뿐입니다. 라이넬 사제님처럼 특별히 치유 능력이 뛰어나다거나 성기사 베트람처럼 검을 잘 다루지도 못하죠.”

    호흡을 한 차례 고른 플레온 사제가 말을 이었다.

    “과연 데이릭 모어가 이런 저를 보면서 특별함을 느꼈을까요?”

    “아뇨. 그렇지는 않겠죠.”

    “예. 데이릭 모어가 보기에 저는 나이 많은 사제 중 한 명일 뿐입니다. 굳이 절 이용할 가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을 마친 플레온 사제가 나를 주시했다. 조금은 서글픈 눈동자에 마음이 흔들렸다.

    “이런데도 저를 확인해 보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체념에 가까운 말투로 플레온 사제가 말했다.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결심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플레온 사제님의 말씀은 잘 알겠어요. 무고하다고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그렇죠?”

    “예, 맞습니다.”

    플레온 사제는 내 물음에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곱씹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플레온 사제님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제가 오해한 거라면 확실히 확인한 후에 사과드리고 싶어요.”

    “……꼭 그렇게 하셔야겠습니까?”

    “네.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 말에 플레온 사제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때였다.

    콰쾅!

    신전 바깥에서 굉음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언제든 레피드를 집어들 수 있도록 준비했다.

    제프리 역시 의자에서 일어나 검 손잡이에 손을 얹고 있었다.

    주변을 주시하는 나와 달리 제프리는 플레온 사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뒤늦게 플레온 사제를 확인했다.

    플레온 사제는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 주문을 외는 듯 음침한 모습이었다.

    듀아나 신전의 대사제인 플레온 사제에게서 이런 기분 나쁜 기운이 나는 것은 무척이나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그 기운 자체는 익숙했다. 몇 번이나 데이릭의 흔적을 뒤쫓으며 느꼈던 것과 같은 성질이기 때문이었다.

    “이게 무슨…….”

    나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쾅!

    그때 대기실에 그나마 남아 있던 천장이 와르르 무너졌다.

    제프리가 내 머리를 감싸며 옆으로 굴러 천장 잔해에 맞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자리를 잡고 일어나 허공을 확인했다. 그곳에서 데이릭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 생각보다 일찍 알아차렸네요. 거봐요, 플레온 사제님. 내 그럴 거라고 했잖아요. 라이넬 사제님을 굳이 보낼 필요 없다니까. 내가 타이밍 맞춰 도착했기에 망정이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장난기가 가득한 남자의 목소리. 그건 데이릭의 것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데이릭이 기둥 위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녀님, 잘 지냈어요? 어제 보고 오늘 또 보네요.”

    반가워하며 데이릭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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