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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50)화 (150/174)
  • 150화

    “혹 라이넬 사제가 데이릭 모어의 사주를 받고 다시 신전으로 돌아온 것은 아닙니까? 신전에서는 라이넬 사제가 본디 신전의 사람이었으니 믿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선뜻 신뢰하기가 어렵군요.”

    바론 대주교의 말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에이드리안이었다.

    듀아나 신전 사람들과 라이넬 사제는 오랜 시간 동안 신뢰가 쌓여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에이드리안을 포함한 황성의 입장은 또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의심스러운 자를 함부로 믿고 풀어 주는 것은 더욱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에이드리안의 말에 브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몰려들었다.

    “제가 한마디 해도 될까요?”

    에이드리안이 나를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제야 손을 내리고 라이넬 사제를 한번 확인했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확실히 라이넬 사제님이 듀아나 신전으로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또 어떤 목적으로 오게 된 건지 지금으로써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건 몇 번을 캐물어도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에이드리안이 내게 물었다. 평소라면 헤프게 웃으며 말을 걸었을 테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그 역시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살피려 하는 것이 역력히 느껴졌다.

    “데이릭은 사람을 조종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다니엘 크라이튼의 일로 인해 잘 알려진 이야기겠죠?”

    다니엘의 이름이 언급되자 크라이튼 대공이 시선을 내렸다.

    불편한 이름이었지만, 언급되어야만 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알고 있습니다. 다니엘 크라이튼이 사용했던 힘을 데이릭 모어 역시 사용한다면 그 역시도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을 갖고 있겠죠. 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라이넬 사제가 위험하다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황태자 전하, 제게 다니엘 크라이튼이 사용한 그 힘을 없앨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 역시 알고 계시지 않나요?”

    “…….”

    에이드리안은 내 말에 결국 입을 다물었다.

    “저는 새벽에 라이넬 사제님이 듀아나 신전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저기 있는 플레온 사제님과 함께 라이넬 사제님에게 걸려 있는 데이릭의 능력을 파훼시켰죠. 그건 저와 그 자리에 함께했던 플레온 사제님이 증명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에이드리안이 눈을 가늘게 좁혀 뜨고는 라이넬 사제를 주시했다. 그러더니 시선을 돌려 플레온 사제를 확인했다.

    “그게 사실입니까?”

    “예,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플레온 사제가 에이드리안을 향해 대답했다.

    듀아나 신전의 성녀인 내가 라이넬 사제에게 걸려 있던 암시를 풀었다는데 반박할 만한 말을 찾기는 어려울 터였다.

    결국, 에이드리안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은 성녀님의 말을 믿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경계하고 주의해야 할 만한 대상이라는 건 틀림없는 것이겠죠.”

    “예, 황태자 전하.”

    일단은 한 발씩 물러났다.

    어쨌든 데이릭의 능력에서 벗어난 라이넬 사제는 무고했지만, 라이넬 사제가 어떻게 그 타이밍에 돌아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서, 듀아나 신전의 성녀와 용병 제프리 콜먼이 데이릭을 맞닥뜨렸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죠.”

    에이드리안이 주제를 꺼내자 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이 나와 제프리를 향했다.

    내가 발의했을 때 내게 시선이 모이는 것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왜 데이릭 모어의 행방을 알아냈음에도 황성의 기사와 병사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까?”

    에이드리안의 질문에 나는 잠시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확실히 황명으로 인해 데이릭에 대한 추포 권한이 에이드리안과 브라이언에게로 부여된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 나간 것은 문제였다.

    물론 그 당시 회의에 참석한 나한테도 권한이 있기는 했지만, 내 멋대로 알리지 않은 것은 문제 삼을 만했다.

    나는 반박하는 대신 한발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갑작스럽게 데이릭의 기운이 감지되어 그 흔적을 놓치기 전에 빠르게 쫓는다는 게 그만 독선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황성에 알렸다고 하더라도 크게 도움이 되었을지는 미지수였다.

    용병왕으로 이름을 날리는 제프리조차도 나를 지키다 큰 부상을 입었다.

    아마도 브라이언이나 엘리엇 정도가 아니라면 모두들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했겠지.

    그렇기에 나는 그때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

    에이드리안은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다음부터 데이릭 모어의 흔적이 발견되거든 단독 행동 하지 마십시오.”

    에이드리안은 당부하듯 내게 말했다.

    그의 말이 단순히 독단적으로 움직이지 말라는 뜻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엷게 웃음을 지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데이릭 모어에 대해서 알려 주었으면 합니다. 성녀님과 제프리, 그대라면 알겠죠. 데이릭 모어가 어떤 힘을 갖고 있는 건지. 실종사건의 범인이라는 것 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대들의 정보가 어떤 때보다도 절실하니 상세히 알려 주길 바랍니다.”

    나는 에이드리안을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제프리를 확인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의문이었다.

    “일단 데이릭이 사용하는 힘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립니다. 이미 라이넬 사제의 사례로 알고 계신 사람을 조종하는 힘, 그리고 실종사건의 주원인이었던 마력.”

    나는 천천히 그들에게 내가 보고 판단한 것들을 하나하나씩 말해 주기 시작했다.

    “사람을 조종하는 힘은 세뇌에 가까우며 제가 아니면 그 힘을 끊어내기 어렵습니다.”

    실제로는 레피드에 신력을 실으면 내가 아니더라도 가능했지만, 그것까지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기에 일단은 생략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악룡의 힘, 마력을 응축하여 쏘아 보내는 것이 주된 공격입니다.”

    “듣는 것만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는군…….”

    내 말의 중간에 에이드리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혼잣말인 듯했으나 주변이 조용한 탓에 모두에게 들렸을 것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신력을 허공으로 분출하여 강하게 응축시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이건 제가 신력을 응축시킨 것이라 다르기는 합니다만, 보기에는 이런 거죠. 다만, 제가 만든 것과 달리 아주 음습하고 사특한 기운이 느껴지는 검은색 마력탄입니다.”

    그제야 사람들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력탄에도 두 가지 성질이 있는 듯합니다. 하나는 사람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힘.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상처의 치료를 막는 힘이고요.”

    그 이후로 제프리를 치료하기 위해서 나와 라이넬 사제의 힘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이곳저곳에서 침음이 들려왔다.

    단순히 닿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피해를 남기는 공격.

    과연 그 공격을 상대할 방법이 있긴 한 건지 막연한 눈치였다.

    “그래도 제가 가진 검이라면 마력탄을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건 그것대로 문제겠군요. 성녀님이 아니라면 누구도 그 공격에 맞설 수 없다는 말이니까요.”

    에이드리안은 복잡했는지 입가를 매만졌다.

    지금까지의 대화를 총합해 보면, 내가 데이릭과 대적해야 한다는 결말에 이를 것이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이번 회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에이드리안이 회의를 끝낼 것을 제안했다.

    안 그래도 원하던 바였기에 흔쾌히 에이드리안의 제안에 수긍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회의실에서 나가고 에이드리안이 나와 제프리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된 거야? 다친 건 아니지? 조금 전 회의에서 부상 얘기가 나왔는데.”

    에이드리안은 걱정을 가득 담아 우리에게 물었다. 방금 전 딱딱하게 대꾸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아니고, 제프리가. 근데 라이넬 사제님의 도움을 받아 치료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에이드리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닌 척했지만, 내 말을 듣고 적잖이 걱정한 모양이었다.

    “그러게 왜 둘이서 무모하게 데이릭 모어한테 달려든 거야?”

    “사람을 불러서 함께 가기에는 데이릭의 기운이 언제 끊길지 몰라서 그랬어.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왠지 입안이 씁쓸했다.

    “그런데 아마 다음에도 황실 병사들에게 알리진 못할 것 같아. 괜히 희생자만 늘릴 수는 없으니까.”

    “그 정도야?”

    에이드리안의 물음에 제프리와 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개죽음당하게 될 거야. 그러느니 차라리 데이릭과 싸울 만한 사람들 몇몇만 데리고 가는 게 나아.”

    제프리 역시도 내 말을 거들었다.

    “그래도 최소한 나한테는 얘기해. 그럼 크라이튼 공작과 엘리엇 경도 갈 수 있을 테고. 도움은 되지 않겠어?”

    브라이언과 엘리엇이라면 도움은 되겠지만, 에이드리안까지 동행하는 것은 조금 걱정되었다.

    “에이드리안, 넌 황태자잖아. 그러다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럼 너희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나라고 그냥 지켜만 봐?”

    답답했는지 에이드리안이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까만 머리칼이 그의 손짓에 의해 찰랑거렸다.

    “알았어. 일단 데이릭의 기운을 발견하거든 알려는 줄게.”

    “꼭이야.”

    에이드리안이 당부하듯 내게 말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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