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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43)화 (143/174)

143화

레피드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준 채 데이릭을 주시했다. 데이릭이야말로 위험한 상대였다.

“그러니까 모든 사건의 범인이 데이라 이거지?”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확인하니 제프리 역시 검을 뽑아 든 후였다.

제프리 역시 데이릭의 힘을 보았기 때문인지 긴장한 모습이었다.

“제프리.”

내가 제프리를 부르자 제프리가 나를 슬쩍 돌아보았다.

“위험하니까 넌 뒤로 빠져 있는 게 좋을 거 같아.”

내가 제프리를 향해 제안했다.

용병왕인 그에게 이렇게 말하면 자존심이 상하리라는 것쯤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제프리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데이릭이 쏘아 보낸 마력탄은 다니엘의 허접한 공격과는 궤가 달랐다.

다니엘이 사용한 기운은 힘도 훨씬 약했거니와 컨트롤이랄 것도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데이릭은 태초부터 그 힘을 갖고 있던 존재다. 다니엘에게 자신의 힘을 나눠주고도 신전을 아무렇지 않게 부술 정도니 비교가 될 리 없었다.

강력한 힘은 물론이고 압도적인 속도와 세밀한 컨트롤까지.

그나마 나는 데이릭과 대적하기 위한 힘을 갖춘 후였다.

내가 가진 신력과 레피드는 데이릭의 마력탄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다.

반면 제프리는 그런 힘이 없었다.

그가 아무리 검술이 뛰어나고 용병왕이라는 호칭으로 불릴 정도라 하더라도 지금의 데이릭을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무슨 소리야? 나보고 뒤로 빠지라니?”

예상한 대로 제프리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내 말을 받아쳤다.

“말 그대로야. 너도 일전에 다니엘과의 전투에서 확인했잖아. 저 힘은 일반적인 힘으로는 상대할 수 없어.”

제프리는 내 말을 듣고 짧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제프리도 이미 경험해 본 후이기 때문에 선뜻 내 말에 반박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그가 내 곁에 남아 데이릭에게 함께 대적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제프리가 데이릭의 공격에 노출된다면 나 역시 데이릭과의 전투에 몰입하기 어려울 터였다.

“내가 널 두고 어떻게 가?”

제프리는 단호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나를 두고는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해 보였다.

제프리에게 다시 입을 열려던 찰나에 맞은편에 있던 데이릭이 입을 열었다.

“음, 설마 성녀님 혼자서 절 상대하시려고요?”

맞은편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데이릭이 흥미진진한 목소리로 우리를 향해 물었다.

“그래도 상관은 없긴 한데, 괜찮으시겠어요?”

제프리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혼자서라도 우리 두 사람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듯이.

그리고 제프리의 그런 자신감은 자만이나 오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우리 두 사람과 대적할 만한 힘을 가졌다.

살아 있는 것에 닿으면 생명력을 빼앗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기괴한 마력을 자재로이 다룰 수 있었으니까.

“내가 질 거라고 생각해, 데이릭?”

“글쎄요?”

데이릭은 빙긋 웃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자신만만한 것치고는 싱거운 반응이었다.

“제프리, 제발 가 줘.”

내가 부탁하듯 말했다. 적어도 이 싸움에 제프리가 얽히지 않았으면 했다.

사실 나도 지금의 데이릭을 상대로 얼마나 싸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신력을 몸에 두른다고 해도 저 힘에 한 번 닿으면 부상이 심하겠지?

데이릭의 주변에 응축된 마력탄을 보고 있으니 심란해졌다.

“걱정하지 마, 미라벨. 나도 저게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 그리고 내 몸을 지키는 것쯤은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제프리는 내 부탁에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다시 한번 마력탄이 우리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제프리와 더 대화할 새도 없이 쇄도하는 마력탄을 피해 우리는 정신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나는 내 앞으로 날아드는 마력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신력이 담긴 레피드는 마력탄을 가볍게 잘라내었다. 그렇게 갈라진 마력탄은 허공에서 힘을 잃고 스러졌다.

이 기세로 훌쩍 나아가 데이릭을 포획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주변에 산재하고 있는 마력탄이 그를 보호하듯이 둘러싸고 있는 통에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사이 옆쪽에서 커다란 소리를 내며 무언가 터지는 듯한 느낌이 났다. 제프리가 있는 방향이었다.

다행히 제프리의 비명은 들리지 않았지만,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기다리는 건 상관없는데, 지루하게는 하지 말아 주세요.”

마력탄을 쏘아 보낸 데이릭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조금 전 흥미로워하며 눈을 휘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다만 이전까지는 본 적 없는 냉정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데이릭의 주위로 생성되었던 마력탄의 절반이 우리의 주변으로 쏘아지고 난 후, 겨우 숨을 돌리며 제프리의 모습을 확인했다.

“괜찮아?”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프리를 향해 물었다.

“멀쩡해.”

제프리는 꽤나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한시름 놓으며 데이릭을 노려보았다.

그의 주위로 다시 마력탄이 생성되는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도 동일한 공격인 듯했다.

그러고 보면 이상했다.

악룡의 힘이라는 게 단순히 마력탄만을 쏘아 보내는 능력이 아닐 텐데, 다니엘도, 그리고 데이릭도 계속해서 단순한 공격만 하고 있었다.

“공격은 그것밖에 없는 모양이지?”

“설마 그럴 리가요. 하지만 성녀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몸으로 싸우는 건 영 젬병이라서요. 성녀님이나 제프리처럼 육체파인 사람들과 어떻게 결투를 벌이겠어요? 그러니 이런 방식으로 할 수밖에요.”

데이릭은 그것도 몰랐냐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다른 걸 원하시는 것 같으니 조금 바꿔 볼까요?”

데이릭은 말을 마치고 양손을 가슴께의 높이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던 마력탄이 까맣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는 더 조심하셔야 할 거예요.”

말을 마치자마자 데이릭의 주변에 있던 까만 마력탄 하나가 사라졌다. 그러자 옆에서 소름 돋는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벗어나니 곧 내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무리해서라도 데이릭을 잡아야 할 것 같은데…….”

나 혼자 마력탄 사이를 뚫는 것은 한계가 있을 터였다.

제프리가 나를 엄호해 준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제프리의 힘으로는 마력탄에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상태로 무모하게 데이릭을 향해 달려들었다가는 목숨을 버리는 격이었다. 그것이 제프리든, 아니면 우리 둘이든.

그렇게 데이릭의 공격을 피하며 어떻게 데이릭에게 대응해야 하나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이렇게 해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내가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머리를 굴리는 것을 알아챘는지 비브르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레피드를 제프리에게 건네주렴. 그리고 제프리의 검을 미라벨 네가 받아 사용하는 거야. 일시적이겠지만, 일반적인 검도 신력을 머금으면 레피드의 대체제가 될 수 있을 게다.]

“레피드를?”

비브르가 꺼낸 말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생각으로 전달한다는 게 그만 소리를 낼 정도였다. 그러고는 반사적으로 내가 들고 있는 레피드를 확인했다. 신력을 머금고 있는 레피드는 하얗게 빛이 나고 있었다. 그건 내가 레피드에 신력을 불어넣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래?”

비브르의 존재를 볼 수 없는 제프리가 혼잣말하는 내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고 내게 물었다. 그러나 제프리의 궁금증에 대답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그래도 되는 거야? 내가 레피드를 건네도 신력이 유지되는 거야?’

신력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마력탄에 대항하기 어려웠다. 그래 봤자 조금 더 튼튼한 검일 뿐이겠지.

그런 내 생각을 부정하듯 비브르가 내게 속삭였다.

[그렇단다. 레피드는 나에게서 비롯된 검이다. 신력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능력은 그 어떤 검보다 뛰어날 것이니 걱정하지 말렴.]

나는 망설이며 레피드를 바라보았다.

비브르의 말대로라면 확실히 그게 방법이 되어 줄 터였다.

“미라벨, 무슨 일이야?”

제프리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 사이에도 제프리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마력이 어디서 터지는지 감지하여 이리저리 피하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마음을 먹고 제프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프리. 이걸 받아.”

내가 들고 있던 레피드를 제프리에게 던졌다. 제프리는 영문도 모른 채로 내가 던진 검을 받아 들었다.

“뭐 하는 거야?”

“그리고 네 검을 내게 던져!”

“뭐?”

제프리가 당황해하며 물었다.

“빨리!”

한 바퀴 바닥을 구르며 제프리에게 외쳤다. 제프리는 그제야 칼집째로 내게 검을 던져 주었다.

나는 그의 검을 받아 칼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회백색의 검날이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제프리의 투 핸디드 소드는 내가 익히 사용하던 레피드와는 무게가 달랐다. 아무래도 그가 사용하는 무기라 그런지 꼭 맞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평생 사용할 것도 아니고 임시로 사용하는 것이니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제프리, 이제부터 데이릭에게 다가갈 거야. 네가 날 엄호해 줘. 그 칼이라면 너도 알다시피 마력탄을 베어낼 수 있을 거야.”

“그럼 넌?”

제프리가 즉각적으로 내게 물어왔다.

나는 그런 제프리를 확인하며 천천히 검에 신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검이 우웅거리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제프리가 가진 레피드처럼 하얀 막이 검날 위에 덧씌워졌다.

“이거면 임시방편은 될 거야.”

나는 두 손으로 검을 잡으며 가볍게 횡으로 내리쳤다. 음습한 마력이 응축되는 지점이었다.

마력이 검날에 닿자 펑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친 바람이 몰아쳤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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