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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38)화 (138/174)
  • 138화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다니엘을 주시하며 제프리를 향해 물었다.

    “당연하지.”

    제프리는 괜한 것을 묻는다는 듯이 대답했다. 슬쩍 눈을 돌려 그를 바라보니 그의 말대로 크게 다친 곳은 없는 듯했다.

    나는 안도하며 다시금 다니엘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다니엘은 우리가 병사들을 모두 처리하고 멀쩡히 서 있는 것이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어머, 그래서요, 작은할아버지. 저를 어떻게 하신다고요? 갈기갈기 찢어서 할아버지한테 던져 줄 거라고요?”

    일부러 과장된 말투로 다니엘을 향해 물었다. 내가 놀리자 다니엘의 낯빛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미라벨, 네가 감히……!”

    다니엘이 이를 가는 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그러더니 다시 기운을 응축시키기 시작했다.

    사특한 기운이 다니엘에게서 연신 뿜어져 나왔다.

    이미 몇 번 겪어 보니 처음과 같이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신력을 머금은 레피드는 다니엘의 공격을 충분히 파훼시킬 수 있었다.

    쏘아지는 악한 기운을 레피드로 잘라 버렸다. 그러자 응축되었던 기운이 허공에 스러졌다.

    나는 레피드를 가볍게 휘두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체 언제까지 그런 허접한 공격을 반복할 거지? 방금 겪고도 모르겠어?”

    말을 마친 나는 신력을 머금은 레피드를 사특한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다니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기운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무, 무슨!”

    당황해하는 다니엘을 보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뻔한 결과지. 생각이 있다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힘, 원래 당신 것이 아니잖아. 그런 무식한 힘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정작 다니엘 당신이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는 게 티가 나는걸. 그 기운이 스스로 당신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게 나한테까지 느껴진다고.”

    당장이야 다니엘에게 묶여 있었지만, 다니엘이 그 힘을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결국 14년 전과 똑같은 수순을 거치게 될 터였다.

    아니, 어쩌면 그 전에 다니엘의 몸을 감싼 악한 기운이 먼저 그를 떠나 버릴지도 몰랐다.

    “대체 누가 당신에게 그 힘을 준 거야?”

    어차피 제대로 된 대답을 못 들을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확인차 그에게 물었다.

    다니엘이 대체 어디에서 그런 힘을 갖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있었다.

    다니엘은 지금 그 힘을 완전히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힘을 갖고 있다는 전조도 보이지 않았으니 틀림없이 근래 들어 얻게 된 힘일 터였다. 실제로도 다니엘이 보인 것은 병사들을 세뇌해 명령하고 기운을 응집해서 던지는 것뿐이었다.

    다니엘이 품고 있던 기운의 강도가 세졌기 때문에 겁을 먹었으나, 실제로 그와 대적해 보니 확실히 느껴졌다.

    그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이런 허접한 것뿐이라는 것을.

    그 반면에 나는 14년간 꾸준히 검술과 신력을 수련해 왔다.

    다니엘이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여준 것과 같은 꼴이었다.

    계속해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나에게 대적할 만한 수준일 리가 없었다.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쉰 후 발끝으로 바닥을 가볍게 내리찍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어느 정도는 참작해 줄 용의가 있어.”

    내가 삐딱하게 고개를 틀며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다니엘은 분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다 이내 입을 열었다.

    “고작 공격 몇 번 피했다고 말이 많구나.”

    다니엘은 말을 마치며 다시 기운을 허공에 응축시키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사용했던 기운보다도 강력한 기운이었다. 그래 봤자 무식하기 짝이 없는 마력탄 같은 것이었지만, 어쨌건 조심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았다.

    “제프리, 조심해.”

    “내 걱정은 마.”

    제프리가 대답을 하는 순간에 기운이 우리를 향해 쇄도했다.

    나는 레피드를 들어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기운을 기민한 동작으로 베어 냈다. 옆에 있던 제프리는 이리저리 도약하며 피하고 있었다. 그러다 품에 있던 단검 하나를 꺼내 들어 다니엘에게 던졌다.

    나는 그걸 기회 삼아 다니엘에게로 달려갔다.

    다니엘은 기운을 이끌어 날아오는 단검을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내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피하지 못했다.

    “으억!”

    레피드의 검 손잡이로 다니엘의 턱을 올려 쳤다. 그와 동시에 그의 발을 걸고 손으로는 다니엘의 손을 잡아 그대로 넘어트렸다.

    한 바퀴 허공에 구르듯 바닥으로 나동그라진 다니엘이 억 소리를 내었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레피드를 그의 목에 겨누었다.

    “힉!”

    다니엘은 자신의 목에서 느껴지는 예기에 화들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주름진 눈가에 두려움과 분노가 한데 뒤엉켜 있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기회를 줄게. 어차피 이대로 기다리고 있으면 황성과 신전에서 병사들이 몰려올 거야.”

    목에 칼을 바짝 들이대자 다니엘이 최대한 칼날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젖혔다. 곧 마른침을 삼키는 듯이 그의 목울대가 아래위로 움직였다.

    “웃기지 마라, 미라벨. 내가 아무리 이런 신세가 되었다고 해도 네까짓 것한테 비굴하게 굽힐 것 같으냐?”

    다니엘은 목에 칼이 드리워진 상황에서도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내가 없다면 넌 아무것도 모른 채 남아 있겠지. 안 그러느냐?”

    확실히 지금 상황으로서는 다니엘의 조력자나 힘의 출처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무런 계기도, 조력도 없이 그 혼자 이런 힘을 손에 넣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분명히 누군가가 다니엘에게 이런 무식한 힘을 부여한 것이 틀림없었다.

    내 머릿속에 한 사람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아닐 거라고 몇 번을 부정하고 또다시 상황을 되짚어 봐도 다니엘에게 이런 힘을 부여할 수 있는 존재는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데이릭이야?”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다니엘에게 물었다. 비록 내가 아는 힘과는 그 궤가 달랐지만, 이만큼의 악한 기운을 품을 수 있는 존재는 내가 아는 한 데이릭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아닐 거라며 부정해 왔지만, 다니엘이 이런 힘을 갖게 된 이상 나는 가장 먼저 데이릭을 의심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었다.

    14년 전, 데이릭이 가진 힘은 파괴의 힘이었다.

    악룡의 힘은 모든 것을 살라 버릴 만큼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전 다니엘이 사용한 힘 역시도 바닥을 숭덩숭덩 파헤칠 정도의 힘이었으니 데이릭이 그에게 힘을 줬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다니엘을 회복시켰을까?

    나는 이 의문에 대해 한 가지 가설을 세워 보았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힘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마법이고, 다른 하나는 신력이었다.

    마법으로 치유하는 힘은 사람이 본디 가진 재생력을 높이는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14년 동안 끊어져 있던 힘줄이나 인대처럼 시간이 흘러 더는 붙을 수 없게 된 상처에는 효용이 없다.

    그러니 그를 회복시킨 힘은 신력일 것이다.

    신력이라면 충분히 다니엘의 부상을 치료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오래된 상처인 만큼 풍부한 신력은 물론 섬세한 실력까지 갖춘 사람이어야 가능한 일이겠지.

    신전 사람들 중 다니엘의 상처를 완벽하게 치유할 만큼 강한 신력과 세밀한 컨트롤을 함께 가진 사람은 몇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만일 신전의 누군가가 다니엘을 치료한 것이라면, 우리는 배신자를 찾기 위해 서로를 의심해야 할 터였다.

    “이거 하나만 말해. 그렇다면 나도 당신에게 선처를 할 수 있도록 해 볼게.”

    “선처?”

    다니엘은 내 말에 과장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탓에 목에 칼이 닿아 상처가 났지만, 다니엘은 웃음을 쉽게 그치지 않았다

    “멍청한 계집 같으니. 네까짓 것의 용서를 구할 것 같으냐? 감옥에 있는 14년 동안 단 하루도 널 증오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다니엘은 효후하듯 걸걸한 목소리로 내게 악감정을 토해 냈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판에 네게 내가 이 힘을 어떻게 얻었는지 알려 줄 성싶으냐? 차라리 내 스스로 죽고 말지!”

    다니엘은 그 말을 마치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큰 소리로 웃었다.

    가까이에 있는 나조차도 흠칫할 정도로 괴악한 웃음이었다.

    그때였다.

    다니엘의 몸에서 사특한 기운이 천천히 짙어지기 시작했다. 닿는 것만으로도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미라벨, 거기서 떨어지렴!]

    비브르가 내게 경고했다. 그리고 그 순간.

    “미라벨!”

    제프리가 나를 향해 달려와 나를 다니엘에게서 떼어 놓았다.

    바닥을 몇 번 구른 후에야 나는 다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다니엘을 제압하기 위해 닿았던 피부가 뜨겁게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신력을 운용하여 통증이 심한 부분에 집중시켰다.

    다행히 상처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다니엘이었다.

    “으하하하!”

    다니엘의 웃음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그에 따라 사특한 기운은 점점 다니엘을 감싸기 시작했다.

    악룡의 기운이 보이는 내게 다니엘은 흡사 검은 기운에 휩싸인 듯이 보였다.

    다니엘의 웃음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곧이어 그를 감쌌던 어둠이 걷히고 남은 것은 일전에 골목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가루뿐이었다.

    나는 작게 침음을 흘렸다.

    다니엘의 최후가 이런 것이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다니엘의 자세와 같은 형태를 한 가루는 천천히 허공으로 기화되기 시작했다.

    기이한 광경이었으나, 조금도 경이롭게 보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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