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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37)화 (137/174)
  • 137화

    “말도 안 돼…….”

    “무엇이 말이냐?”

    내가 작게 중얼거리자 다니엘이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내가 저 거지 같은 감옥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너도 모르는 사이에 힘을 갖게 된 것이?”

    다니엘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제대로 서지도 못해야 할 다니엘은 멀쩡히 서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뒷덜미의 솜털이 오소소 설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산하고 있었다.

    나는 도무지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분명히 한 달 전에 다니엘을 찾았을 때만 하더라도 다니엘에게서 이런 힘을 찾아 보기 어려웠다.

    아무리 잘 갈무리해 숨겼다고 하더라도 다니엘이 이렇게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자라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혹시 내가 모르는 그 한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럼 내가 여태 느꼈던 기운의 정체가 다니엘이었다면, 데이릭은 무고했던 건가?

    다니엘은 어떻게 그 힘을 갖게 된 거지?

    아니, 그전에 다니엘은 어떻게 멀쩡히 서 있는 거지?

    애초에 쉽게 회복될 만한 상처가 아니었다. 나조차도 신력을 꽤 많이 쏟아부어야 치료가 될 정도의 부상이었다.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무엇 하나 제대로 이해가 가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다니엘이 내 적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반걸음 뒤로 물러나며 레피드를 소환했다. 옆을 살펴보니 이미 제프리는 검을 뽑아 든 상태였다.

    “저자가 이번 사건의 범인이야?”

    제프리가 나를 향해 물었다. 내가 다니엘과 잘 아는 듯이 보였기 때문에 물은 것 같았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

    내가 애매하게 대답하자 제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미라벨 너한테 우호적인 사람이 아닌 건 확실하네.”

    “……응.”

    “누구길래?”

    제프리가 호기심을 담아 내게 물었다.

    “작은할아버지.”

    “뭐?”

    제프리가 놀라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때였다.

    다니엘에게서 생성된 검은색의 기운이 나를 향해 빠르게 쏘아졌다.

    이미 예전의 전투로 인해 겪었던 적 있는 그 힘. 검은 기운은 그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응축된 기운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들고 있는 레피드로 충분히 반격이 가능할 것이었다.

    그렇기에 피하지 않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레피드를 휘둘렀다.

    그러자 응축되어 있던 기운이 폭발하듯 굉음을 내며 터졌다. 그 탓에 나 역시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윽!”

    손목이 시큰거려 와 작게 신음을 흘렸다. 이전에 상대했던 자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때 상대했던 자가 꼭두각시라면, 지금은 마치 그 본체와 상대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시큰거리는 손목을 가볍게 돌리며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조금이라도 방심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14년 전과는 달랐다.

    그때는 한정된 악룡의 힘에 미숙한 능력이었다면, 지금은 흘러넘치는 기운을 조절하지 못해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그 힘을 얻은 거지?”

    내가 다니엘을 향해 묻자 다니엘이 한쪽 입술을 틀어 올리며 이죽거렸다.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미라벨. 감히 작은할아버지한테 말을 놓다니. 형님이 손주 교육을 잘못 시킨 모양이야.”

    다니엘과 제법 거리가 있었음에도 그가 혀를 차는 소리가 내 귀에 똑똑히 들렸다.

    그가 날 도발하기 위해 꺼낸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화가 났다.

    하지만 성급하게 다니엘에게 달려드는 대신 천천히 그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가 가진 힘은 확실히 내가 익히 알던 악룡의 기운은 아니었다.

    하지만 악룡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바로 얼마 전에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혹시 악룡의 힘이 그동안 다른 형식으로 변이된 거라면?

    그 원천이 어디에 기인했을까? 적어도 다니엘이 그 시발점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존재가 있을까?

    천천히 생각을 마치며 다니엘을 향해 반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다시금 다니엘이 허공에 기운을 응축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었다.

    “훌륭한 기운이군.”

    “대체 그 힘을 어디서 손에 넣었지? 게다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 거지?”

    내가 따지듯 묻자 다니엘이 눈만 움직여 나를 주시했다.

    “내가 너에게 알려 줄 의무가 있을까? 시건방진 것. 너를 갈기갈기 찢어 형님의 앞에 던져 놓을 거란다. 그렇게 하면 형님이 얼마나 괴로워할지 궁금하구나.”

    키득거리며 웃는 다니엘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독 징그럽게 보였다.

    “그렇게는 안 될걸?”

    레피드의 검날을 들어 다니엘을 겨눴다.

    나도 14년 동안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대한 몸의 긴장을 높이고 다니엘을 노려보았다. 그가 운용하는 기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내 신력을 주변에 흘려 넣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가 더.

    나는 천천히 레피드 안에 내 신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레피드가 약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곧 레피드의 겉에 하얀 막이 씌워졌다.

    신력을 불어넣은 레피드를 제대로 사용해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상대할 사람이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 혼자 수련하는 것에 그쳤다면, 지금은 이 검을 사용할 대상이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와아!”

    그때 멀리서 병사들이 밀려들었다.

    황실 감옥이 누군가의 공격으로 반파되었으니, 이를 확인한 병사들이 몰려오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썩 달가운 자들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다니엘과 겨루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벅찬 상황인데 병사들까지 지키기는 어려울 터였다.

    “뭐야?”

    제프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왜 그런가 싶어 확인을 해 보니 병사들의 검은 나와 제프리를 향하고 있었다.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다니엘만으로도 충분히 상황 파악이 어려웠는데, 병사들까지 우리를 적으로 인식한다고?

    하다못해 나까지?

    크라이튼 대공가의 손녀이자 듀아나 신전의 성녀로 얼굴이 알려진 내게 황실 병사들이 검과 창을 들이대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미라벨, 저길 보렴.]

    당황해하는 내게 내내 조용히 있던 비브르가 말을 걸었다. 비브르가 어딜 보고 말하나 싶어 고개를 들어 보니 비브르는 병사들의 튜닉에 매달린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에는 일전에 다니엘이 판매했던 브로치가 있었다.

    “저거…….”

    [저들이 하고 있는 브로치에는 전보다 더 강한 암시가 깃들었구나.]

    비브르가 긴장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황당함에 고개를 들어 다니엘을 흘겨보았다. 다니엘은 뿌듯한 얼굴로 병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병사들아, 나의 힘에 따라 움직이거라.”

    다니엘이 손을 들며 명령을 내리자 병사들이 칼날을 세웠다.

    수십 개의 칼날이 나를 향하는 것은 아찔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상황에 처하는 건 오랜만인데.”

    “오랜만? 이런 적이 또 있었어?”

    옆에서 들려오는 태평한 소리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제프리를 향해 물었다.

    “두 번 정도? 한 번은 마물들이었지만.”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표정에는 긴장하고 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제프리와 등을 맞댔다.

    “제프리, 부탁하는데 다치지 마. 알았지?”

    “내 걱정은 마. 난 나보다 미라벨 네가 더 걱정인걸.”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우리를 향해 검을 들이밀고 있는 병사들에게 쏘아져 갔다.

    여러 방향에서 쏟아지는 검의 비로 인해 점점 더 감각이 예민해져 갔다.

    크라이튼 대공가로 들어오고 난 이후로 실전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했는데, 주변을 찌르고 베는 공격을 막고 반격하다 보니 어느새 용병으로 다니던 때의 경험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듯했다.

    그때는 주로 마물에게 둘러싸였다면, 지금은 나를 둘러싼 게 병사들이라는 점이 문제였지만.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집중력은 점차 강화되기 시작했다. 기민한 동작으로 나를 찌르는 검을 쳐내고 폼멜로 병사들을 쳐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용병일 때의 나였다면 벌써 부상을 입었어도 진작 입었을 상황이었다. 그것도 큰 부상을.

    그러나 신기하게도 내 몸은 검이 움직이는 길을 찾아내어 반사적으로 피하고 찌르기를 반복했다.

    그간 브라이언에게 받은 훈련은 확실히 내게 도움이 많이 된 모양이었다.

    “뭐 하는 거야! 고작 계집 하나랑 어린 사내놈뿐인데 왜 죽이지 못하는 게냐!”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 가는 건 기절한 병사들의 수라는 것을 확인한 다니엘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러더니 주변에 만들어 두었던 악의 기운을 이쪽으로 쏘아 보냈다.

    보지 않아도 빠른 속도로 우리를 향해 쇄도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거의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던 나는 앞에 있던 병사들을 밀치고 그들의 투구를 발받침 삼아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날아드는 기운을 향해 레피드를 휘둘렀다.

    펑!

    레피드로 인해 갈라진 기운이 주변으로 비산하며 허공에서 커다란 소리를 냈다.

    신력을 불어넣지 않았을 때는 바로 레피드에 닿아 터지던 기운이 이제는 분명히 잘린 것이었다.

    나는 바닥으로 무사히 착지해 잠시 레피드를 바라보았다.

    그동안은 사용해 볼 일이 없어 긴가민가했던 능력이 이제야 확인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멈추어 있을 수는 없었다.

    쏘아지는 악의 기운은 한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방금 전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빠르게 도약해 날아오는 기운을 모두 베어 버렸다.

    레피드에 의해 위력이 현저히 떨어진 그 기운들은 이내 허공에서 폭죽처럼 터지며 사라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의 주변에 몰려 있던 병사들이 모두 나가떨어지고, 발을 딛고 서 있는 사람은 나와 제프리, 그리고 멀리서 우리를 노려보는 다니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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