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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33)화 (133/174)

133화

“데이릭이라면, 보육원 쪽으로 갔을 겁니다. 헌데 갑자기 데이릭은 왜 찾으시는지…….”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라이넬 사제의 말을 듣고 곧장 데이릭이 있을 보육원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내 뒤를 따라 제프리가 달려왔다.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인해 혼란스러울 법한 상황이었지만, 신전은 빠르게 상황을 수습하고 있었다.

나는 분주히 움직이는 사제들을 지나쳐 마침내 보육원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사제들을 비롯한 어른들이 아이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데이릭과 에이드리안이 있었다.

데이릭 또한 사제들을 도와 아이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에이드리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한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쉬며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낀 탓인지 데이릭과 에이드리안이 순간 나를 돌아보았다.

“미라벨? 너 괜찮은 거야?”

가장 먼저 나를 부른 것은 에이드리안이었다. 그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와 내 어깨를 잡았다. 그러고는 내 상태를 살피듯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았다.

“다친 곳은 없어?”

“응. 괜찮아.”

나는 입매를 끌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에이드리안은 쉽사리 걱정을 놓지 않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그렇게 달려나가서 놀랐잖아.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아냐. 내가 확인해 봐야 하는 일이었어.”

“뭐?”

의아해하는 에이드리안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후 곧장 그의 뒤에 있는 데이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에이드리안이 나를 막지 않고 길을 터 주었다.

내가 다가가자 잠시 의아한 듯 눈을 크게 떴던 데이릭이 이내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무사해 보여서 다행입니다. 어휴, 얼마나 놀랐는지.”

데이릭은 정말 한시름 놓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정말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기 때문에 일단은 데이릭부터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자리를 옮길 필요성을 느꼈다.

“데이릭, 잠깐만 나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저랑요?”

데이릭이 얼떨떨한 듯이 되물었다.

“그래. 너랑.”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하자 데이릭이 시선을 돌려 제프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제프리라고 해도 데이릭에게 해 줄 만한 이야기는 없을 터였다.

무엇보다 제프리는 자세한 사정을 모르고 있으니까.

“아, 네. 저는 상관없습니다. 뜬금없이 느껴지긴 하지만.”

데이릭이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는데 데이릭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혹시 괜찮으시면 제 방으로 가시죠. 여기서 가까우니까요. 보다시피 신전 다른 곳에서 얘기하기에는 다들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상황이라서요.”

데이릭의 말이 맞았다. 이미 주변이 혼잡했다. 찾는다면 어렵지 않게 방을 찾을 테지만, 그 대신 상황을 수습하는 다른 사제들에게 방해가 될 것이 뻔했다`.

그러느니 차라리 데이릭의 방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터였다.

“좋아. 가자.”

“나도 함께 갈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갈게, 미라벨.”

내가 수락하자 바로 뒤에서 제프리가 대답했다. 곧이어 에이드리안 역시 우리를 따라오겠노라 대답했다.

“아…… 다들 가면 좀 좁긴 할 텐데요. 그래도 괜찮으시면 오셔도 됩니다.”

난처한 듯이 뺨을 긁적이며 제프리와 에이드리안을 번갈아 바라보던 데이릭이 순순히 허락을 내렸다.

“따라오세요.”

그러더니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방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런 데이릭의 뒤를 따라갔다.

데이릭이 머무는 곳은 신전에서 마련해 준 직원들의 숙소였다. 데이릭의 방은 그곳에서도 3층에 위치해 있었다.

사람 다섯 명이면 꽉 찰 작은 방에 침대 하나와 책상, 그리고 옷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신전의 이미지만큼이나 투박한 방이었다. 그나마 데이릭이 깔끔한 성격인 건지 방은 뭐 하나 흠잡을 것 없이 깨끗하고 단정했다.

나는 천천히 데이릭의 방을 둘러보았다. 대화하기 위한 장소로 데이릭의 방을 찾아오긴 했지만, 마땅히 앉을 만한 곳은 없어 보였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데이릭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앉을 곳은 여의찮을 텐데 괜찮으실지 모르겠네요. 일단 침대에 앉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차는…… 대접하기 곤란할 것 같고요.”

데이릭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데이릭이 제안에 따라 그의 침대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계속 서서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앉는 것을 확인한 데이릭은 책상 앞에 있던 나무 의자를 끌고 와 우리 앞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인지 이제 들을 수 있을까요? 갑자기 왜 저를 찾으셨는지.”

데이릭은 단도직입적으로 나를 향해 물었다.

“조금 전까지는 신전을 습격한 자를 쫓아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절 왜 찾으시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요.”

직설적으로 묻는 데이릭의 말에 굳이 돌려 말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게 실은, 신전을 습격한 자를 쫓아가서 그를 확인했는데…… 거기에 악룡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어.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확인하러 온 거야.”

나 역시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데이릭은 악룡이라는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하실 만도 하네요. 악룡의 힘이라고 하니.”

데이릭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미 데이릭은 자신이 악룡의 씨앗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신전에서 지내며 들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데이릭이 관련되어 있던 일은 신전에서 제일 중요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신전에서 데이릭을 보호 겸 관찰했기 때문에 데이릭이 맘먹고 알아본다면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된 건지 알 방법은 많다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데이릭이 순순히 수긍하자 왠지 그가 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악한 사람들에게 이용당해 끝끝내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는 듀아나 신전의 보호 하에 있는 것이 데이릭에게 더 나은 길이었다.

그렇기에 그도 결국 자신의 괴로움이나 불편함을 견디고 우리의 곁에 있기를 선택한 것일 테고.

“그걸 제가 했을까 봐 의심하시는 거군요. 안 그런가요?”

데이릭이 불쑥 나를 향해 질문했다.

“그래. 아무래도 당장 의심할 사람은 데이릭 너뿐이니까.”

내 말에 데이릭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불쾌하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데이릭에게서 그런 기색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데이릭은 애석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어떤 생각으로 저를 찾으신 건지 대충은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가 아닙니다. 그동안 제가 이 신전에 있으면서 어떻게 자라 왔는지는 누구보다 성녀님이 제일 잘 알지 않습니까?”

“……그렇지.”

“잘못 찾아오신 겁니다. 그러니 다른 범인을 찾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고요.”

데이릭의 말이 끝났으나 나는 선뜻 그의 말을 믿기가 어려웠다.

데이릭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악룡의 힘을 사용한다는 걸까?

내가 선뜻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데이릭이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보라색 눈동자가 내 속을 꿰뚫어 볼 듯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녀님, 저는 최근에 기억을 잃은 적이 없어요.”

데이릭의 말뜻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금색 눈동자로 바뀐 일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의심스러우시다면 신전에 따로 말을 하겠습니다. 사제님들의 감시를 받으며 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면 되겠죠?”

데이릭은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내용 자체는 담담하게 얘기할 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못했다.

그 스스로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감시망에 들어가겠다는 말이니 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차마 입을 열지 못하자 데이릭이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듯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에이,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차피 한 번 증명하면 다음부터는 의심하지 않으실 거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그럼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데이릭은 걱정할 거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 추어올렸다.

“내친김에 지금 사제님들께 가면 될까요?”

금방 자리에서 일어난 데이릭이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잠시 그런 데이릭을 올려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믿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나로서는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일이라서 그래. 그러니 미안하지만 불쾌하고 불편하더라도 조금만 나를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최대한 조심스럽게 데이릭에게 말했다. 데이릭이 순순히 자신의 의지로 사제들의 감시를 받겠다 자처했으나 그걸 결정하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가시죠. 이럴 줄 알았으면 이 방으로 오는 게 아니라 사제님들이 모이는 회의실로 갈 것을 그랬네요.”

데이릭이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에 웃음으로 대답할 수 없었다.

데이릭도 금세 그걸 깨달았는지 민망한 듯이 뺨을 긁적거리다가 이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다시 신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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