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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31)화 (131/174)
  • 131화

    “제프리 맞지?”

    에이드리안은 얼어붙은 데이릭은 외면한 채로 제프리를 향해 물었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탓에 확인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예, 전하.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제프리가 피식 웃으며 에이드리안을 향해 대답했다. 분명히 존댓말이었으나 묘하게 친근한 말투였다.

    에이드리안은 그런 제프리의 말투가 싫지는 않은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야 잘 지냈지. 제프리 넌 용병왕이 되었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뭐. 그렇게들 부르더군요.”

    제프리가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며 대꾸했다.

    “다음에 시간이 된다면 한번 겨뤄 봤으면 좋겠군. 용병왕 정도의 실력자와 겨뤄 보면 나도 영광일 테니까.”

    “한번 시간을 내 보죠.”

    제프리는 에이드리안의 말에 흔쾌히 대답하며 말했다. 날짜를 정하기 위함인지 막 제프리가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였다.

    “자, 자, 잠깐! 잠깐만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건지 데이릭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고는 아직도 얼떨떨해하는 얼굴로 에이드리안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저분이 황태자 전하십니까?”

    “그래.”

    제프리가 확인차 대답을 해 주었음에도 데이릭은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어, 어떻게 성녀님이 황태자 전하와 함께 오신 겁니까?”

    떨리는 음색으로 데이릭이 물었다.

    나는 에이드리안과 제프리를 바라본 후 데이릭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제국의 하나뿐인 대공가의 손녀인데 황태자 전하와 함께 온 게 이상해?”

    “아니, 그건 아니죠. 성녀님은 원래 귀족이시니…… 그럴 만 하죠.”

    뒤늦게 데이릭이 수긍하며 대답했다. 그럼에도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은 여전했다.

    “어렸을 때 두 사람 만난 적 있는데 혹시 기억해?”

    혼란스러워하는 데이릭과 불쾌해하는 에이드리안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흥미로운 기분이었다.

    에이드리안과 데이릭은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

    “모르면 됐어.”

    내가 짧게 말을 끊자 데이릭이 답답해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는 무례한 자로군.”

    한숨 소리에 견디다 못한 에이드리안이 데이릭에게 한소리했다. 그러자 데이릭이 당황해하며 눈을 깜빡였다.

    “어, 그…… 죄송합니다?”

    데이릭의 입에서 나온 건 애매한 사과였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사과에 에이드리안이 다시금 미간을 찡그렸다. 데이릭이 그런 에이드리안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미라벨과 아는 사이인 듯하니 그걸로 일단은 넘어가도록 하지.”

    에이드리안은 마뜩잖은 표정으로 데이릭을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성녀님.”

    그때 옆에서 바론 대주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바론 대주교를 확인했다. 그는 온화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신전에서 준비한 선물이니 시간 되실 때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론 대주교가 내게 작은 함을 하나 건네주었다.

    “이렇게 축하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선물까지 주실 줄은 몰랐어요. 정말 감사해요, 대주교님.”

    “아닙니다. 가급적 그런 일이 없으면 더 좋겠지만, 부디 그 선물이 언젠가 성녀님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그럼 편하게 드시고 밤에는 마법사들에게 부탁해 폭죽놀이도 준비하였으니 즐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해요.”

    바론 대주교는 말을 마친 후 우리를 향해 짧게 성호를 그린 후 자리에서 떠나갔다.

    나는 바론 대주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자리에 착석했다.

    “그게 뭐야?”

    제프리가 호기심을 보이며 내게 물었다.

    “글쎄?”

    나도 이제 막 받은 터라 내용물이 궁금하던 참이었다. 조심스럽게 함을 열자 보인 것은 팔찌였다.

    나는 팔찌를 꺼내 확인했다. 섬세한 디자인의 팔찌였다.

    [마법이 깃들어 있는 듯하구나.]

    내가 팔찌를 살펴보고 있자 비브르가 옆에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비브르는 팔찌에 무언가 마법이 깃들어 있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무슨 마법?’

    마법 쪽으로는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비브르를 향해 물었다. 마법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이니 비브르가 마법을 알아낼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비브르는 천천히 내 손을 타고 내려가 팔찌를 확인했다. 신중을 기하는 비브르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자세한 마법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보호 마법인 듯하구나.]

    ‘보호?’

    [그래. 아무래도 요즘 실종 사건이니 뭐니 뒤숭숭하니 신전에서 혹시 몰라 제작을 의뢰한 모양이구나.]

    나는 속으로 감탄을 터트리며 팔찌를 살폈다.

    “내가 채워 줄까?”

    내가 한참 팔찌를 바라보고 있자 제프리가 내게 제안했다.

    “그래 줄래? 자, 여기.”

    제프리에게 팔찌를 건네주자 제프리가 내 손목에 팔찌를 깔끔하게 채워 주었다.

    “고마워.”

    “잘 어울린다.”

    제프리가 푸른 눈으로 나를 똑바로 주시하며 말했다. 나는 괜히 손을 한번 들어 보며 팔찌를 확인했다.

    평소에 착용하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말이야.”

    불쑥 에이드리안이 서두를 꺼냈다.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그를 바라보자 그가 나와 제프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제프리, 미라벨. 두 사람은 친구인 거야?”

    “응?”

    “당연하지.”

    나와 제프리가 대답하자 에이드리안이 빤히 우리를 주시했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래. 그런 걸로 알고 있을게.”

    우리의 답을 들은 에이드리안은 이내 시선을 돌려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에이드리안의 말에 어깨를 으쓱 추어올렸다.

    “저기요.”

    뒤늦게 데이릭이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성녀님은 그렇다 치더라도 황태자 전하께서 제프리는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어떻게 알기는. 어렸을 때 미라벨을 만나러 갔다가 알게 됐지.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미라벨의 말처럼 황태자 전하랑 너랑 같이 다닌 기억도 있어.”

    제프리가 데이릭에게 설명했다. 데이릭은 여전히 아리송하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의아해하는 건 에이드리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르면 됐어.”

    제프리가 데이릭에게 짧게 말하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콰광!

    커다란 굉음이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던 나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신전 입구 쪽에서 난 소리였다.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왜인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를 따라 에이드리안과 제프리, 그리고 데이릭이 뒤를 따라왔다.

    그리고 막 신전의 입구로 나왔을 때였다.

    쾅!

    “꺅!”

    다시금 터지는 듯한 굉음에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치고 있었다.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비집고 건물 잔해가 바닥에 볼품없이 굴러다니고 있는 입구로 나왔다.

    “이리로 피하십시오!”

    신전의 사제들이 사람들을 황급히 대피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소란이 일어난 장소의 건너편에 회색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이 서 있었다.

    “저 사람…….”

    [수상한 기운을 풍기는 자구나.]

    일전에 느꼈던 이질적인 기운이 그의 몸에서 풍기고 있었다.

    “미라벨.”

    제프리 역시 뭔가를 느꼈는지 내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돌리기라도 했다가 눈앞에 있는 자를 놓치기라도 할까 봐 대답하지 않고 있으니 제프리가 내게 말을 걸었다.

    “저 녀석 그때 그 녀석 같은데…… 맞지?”

    추상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의 말을 반문했다.

    “가루를 발견했을 때의 그자 말이지?”

    “그래.”

    제프리가 짧게 대답했다.

    “아마도. 하지만 뭔가 다른 것 같기도 해. 약하다고 해야 할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똑같이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때 느꼈던 그 기운보다도 현저히 약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하지만 그걸 다른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망설여지기는 했다.

    그런 기운이 두 명 이상 있다는 말이 되니까. 그리고 누군가는 공기 중에 퍼진 신력을 깨트릴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일 것이 분명했다.

    “일단 잡아서 확인해 보는 게 나을 것 같군. 안 그래?”

    “응. 그게 낫겠어.”

    제프리가 허리춤에 고정해 놓았던 검을 뽑아 들었다. 나 역시 허공에 레피드를 소환하여 손에 들었다. 레피드의 손잡이가 내 손에 착 감기는 기분이 들었다.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은 마치 우리에게 따라오라는 듯이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몸을 돌려 어딘가로 달려갔다.

    “미라벨!”

    뒤늦게 에이드리안이 우리의 뒤를 따라왔다. 슬쩍 돌아보니 그 역시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가는 것을 따라오겠다는 듯이. 그러나 나는 그가 따라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제프리를 바라보았다.

    “제프리, 먼저 따라가 줘. 부탁할게.”

    “그래.”

    제프리가 먼저 로브를 뒤집어쓴 자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나를 향해 다가온 에이드리안을 돌아보았다.

    “잠시만 여기 있어 줘. 바로 다녀올게.”

    “나도 갈게.”

    에이드리안은 굳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도움을 거절하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 있어. 넌 황태자잖아. 이런 일에 얽히면 안 되니까. 금방 올게. 기다리고 있어.”

    제프리는 황태자라는 말에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돌려 기운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제프리와 대치하는 그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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