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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30)화 (130/174)
  • 130화

    에이드리안과 춤을 마치고 난 후 한쪽으로 물러났다. 다행히도 춤을 추고 난 이후로는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간간이 또래의 남자들이 이 근처를 기웃거리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오다가도 이내 다시 걸음을 돌려 제자리로 돌아가는 통에 나는 한결 편안한 기분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크라이튼 대공과 엄마, 그리고 브라이언이 무도회장으로 들어섰다.

    무도회장 내 모두의 시선이 크라이튼 대공을 향하기 시작했다.

    크라이튼 대공은 무도회장 정면에 위치한 연단 앞에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나를 발견하고 다정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역시 크라이튼 대공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곧 크라이튼 대공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 모여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오.”

    마법으로 인해 크라이튼 대공의 목소리가 무도회장에 울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내 사랑하는 손녀인 미라벨의 생일을 기념하는 무도회요. 그러니 모두들 미라벨의 생일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주길 바라오.”

    짧은 개회사였다.

    크라이튼 대공은 말을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와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의 뒤로 엄마와 브라이언이 함께 따라오고 있었다.

    “미라벨, 아가. 생일 축하한단다.”

    “그래, 벨. 우리도 생일 축하한다.”

    “축하해, 벨.”

    크라이튼 대공과 브라이언, 그리고 엄마까지 나를 향해 축하의 말을 건넸다. 나는 왠지 가슴 한쪽이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어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감사해요. 할아버지도, 숙부님도, 그리고 엄마도요.”

    내가 웃으며 대답하자 세 분 모두 흡족해하며 고개를 돌려 에이드리안을 확인했다.

    “황태자 전하께서도 우리 미라벨의 생일을 축하하러 와 주셨군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대공. 친구인데 그 정도는 당연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에이드리안이 크라이튼 대공의 감사 인사에 대답했다.

    “부디 편히 있다가 가시길 바랍니다.”

    크라이튼 대공은 짧은 인사를 마치며 자리를 피해 주었다. 엄마와 숙부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뭐 할 거야?”

    에이드리안이 세 분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다 이내 나를 향해 속삭였다.

    “글쎄. 생각해 보지는 않았는데. 일단 여기서 좀 더 있다가 나갈 거야.”

    내가 에이드리안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에이드리안이 놀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갈 거라고? 왜?”

    “신전에서도 내 생일로 인해 무슨 이벤트를 연 모양이더라고. 이미 가족들에게는 양해를 구한 일이라 조금만 더 머무르다가 나갈 거야.”

    에이드리안은 이미 가족들과 얘기가 되었다는 부분에서 이해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무도회의 주인공이 나였는데 내가 자리를 뜬다고 하면 이상하게 느껴질 터였다. 그러나 신전에서도 내 생일을 기념하며 준비를 한 모양인데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에이드리안은 잠시 고민하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런가 싶어 그를 바라보고 있자 뒤늦게 그가 인상을 펴며 말을 꺼냈다.

    “나도 가도 될까?”

    “같이?”

    “응.”

    에이드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가 동행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잠시 그를 주시했다.

    “내 쪽에서는 안 될 거 없긴 하지만, 괜찮겠어? 바쁜데 일부러 날 따라오는 거라면 안 그랬으면 좋겠어.”

    워낙 바쁜 에이드리안의 일정을 잘 알고 있는 터라 혹시나 싶은 마음에 그를 향해 물었다.

    “나야 뭐. 어차피 오늘 네 생일로 인해 일정을 모두 비워 놓은 상태야.”

    나를 안심시키기 위함인지 에이드리안은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며 대답했다.

    일정이 비었다면 굳이 그를 거부할 생각이 없었다.

    “알겠어. 그럼 같이 가.”

    “고마워.”

    에이드리안이 속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런 에이드리안을 주시하다가 마찬가지로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 * *

    무도회장에서 한 번 더 춤을 추고 난 이후 에이드리안을 대동한 채 저택을 벗어났다.

    늦지 않기 위해서 빠르게 나온다고는 했지만, 시간이 제법 흘러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미리 준비되어 있던 마차 위에 올라탔다. 에이드리안도 마차에 올라 내 맞은편에 앉았다.

    “가면 제프리도 있을 거야.”

    나는 오랜만의 외출에 들뜬 에이드리안을 확인하며 말했다.

    “몇 년 만에 보는 건지 모르겠네. 날 기억하기는 할까?”

    “당연히 기억하지.”

    걱정하는 에이드리안을 향해 짧게 대꾸했다. 에이드리안은 그런 내 짧은 대답에도 퍽 안심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마차가 조금 빠른 속도로 달린 끝에 어두워지기 전에 신전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신전은 축제 상태였다. 신전에서 준비한 음식을 모든 사람과 함께 나누었고, 듀아나 여신님을 위한 노래가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라이넬 사제가 우리를 반겼다.

    나는 에이드리안의 도움을 받아 마차에서 내린 후 라이넬 사제를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늦었죠? 일찍 나오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죄송해요.”

    내가 미안한 마음에 사과의 말을 건네자 라이넬 사제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오후까지 무도회에 참석하시는 걸 알고 있었는걸요. 피곤하시지는 않습니까?”

    “전혀요. 아시잖아요.”

    내가 웃으며 너스레를 떨자 라이넬 사제가 웃음을 흘렸다.

    신력을 사용하는 내게 있어 피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피로마저도 신력으로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분은…….”

    뒤늦게 에이드리안을 확인한 라이넬 사제가 눈을 크게 떴다. 평소 동요하는 일이 적은 라이넬 사제였음에도 갑작스럽게 황태자를 마주하니 놀라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황태자 전하가 아니십니까?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요?”

    라이넬 사제가 확인을 위해 에이드리안을 향해 물었다.

    “맞네. 바로 맞췄어.”

    에이드리안이 긍정하며 대답했다. 라이넬 사제는 그제야 에이드리안을 향해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제국의 작은 태양을 뵙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황태자 전하.”

    “예고 없이 찾아왔지만 반겨 주어서 고맙군.”

    에이드리안이 라이넬 사제의 인사에 대답했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라이넬 사제는 나와 에이드리안을 데리고 신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으로 향하자 신전 내부 광장이 보였다. 외부에서 벌어지는 축제처럼 내부에서도 음악과 음식이 함께하는 자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분위기 자체는 외부와 많이 달랐다.

    “오셨습니까, 성녀님?”

    “네, 사제님.”

    플레온 사제가 나를 반기며 인사했다. 그러고는 내 옆의 에이드리안을 발견하고 잠시 놀라는 듯하다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황태자 전하께서도 오셨군요. 여신님의 은총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반겨 주어 고맙네.”

    에이드리안은 짧게 대답하며 나를 따라왔다.

    “성녀님!”

    “미라벨!”

    데이릭과 제프리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두 사람이 한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걸음을 재촉해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여기 있었어?”

    “예. 이래 봬도 관계자라서요.”

    데이릭이 먼저 말했다. 그가 신전에 고용된 직원이었으니 그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제프리는 어떻게 신전 내부까지 올 수 있었는지 의아했다.

    내 의문을 알아차렸는지 데이릭이 손을 올려 제프리에게 어깨동무했다.

    “이 녀석은 성녀님과 제 친구라서 특별히 허용된 겁니다.”

    데이릭이 설명을 덧붙였다. 제프리는 데이릭의 말에도 피식 웃을 뿐이었다.

    “잘됐네.”

    나는 대답을 마치며 그들의 앞에 놓인 빈자리에 앉았다. 에이드리안은 조금 망설이다가 내 옆에 앉았다.

    “그런데 이쪽은…….”

    데이릭이 에이드리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무례한 행동이었으나 데이릭은 그런 인지조차 없는 듯했다.

    “누구예요? 왠지 낯이 익은데.”

    기억하나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더듬는 데이릭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에이드리안을 확인했다. 혹시 에이드리안은 기억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에이드리안은 무례한 데이릭의 언행에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 기억이 날 것도 같고…….”

    “황태자 전하셔.”

    “황태자 전하요. 어쩐지 기억이……. 예? 황태자 전하요?”

    계속해서 누구인지 기억해 내려 애쓰는 데이릭을 향해 제프리가 짧게 에이드리안을 설명했다. 뒤늦게 데이릭이 화들짝 놀라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지, 진짜 황태자 전하십니까?”

    여전히 믿지 못하는 데이릭의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자 데이릭은 더 혼란스러운 얼굴로 나와 에이드리안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저 놀리는 거죠? 황태자 전하 아닌 거죠?”

    긴가민가하는 그의 모습이 우스웠다.

    나는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팔뚝으로 불쾌해하는 듯한 에이드리안의 옆구리를 찔렀다. 에이드리안이 왜 그러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에이드리안을 확인하며 데이릭을 향해 입을 열었다.

    “황태자 전하 맞아.”

    “에이드리안 카스트로. 알다시피 황태자다.”

    내가 짧게 대답하자 에이드리안이 내 말에 덧붙이며 말했다.

    데이릭은 떡하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동자만 굴려 에이드리안과 나를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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