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29)화 (129/174)
  • 129화

    “작은 아가씨, 정말 아름다우세요.”

    아니타가 내 옆에서 손바닥을 마주치며 말했다. 아부성 발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만 띄워 줘, 아니타.”

    “하지만 작은 아가씨 오늘 정말 아름다우신걸요? 평소에도 예쁘셨지만, 오늘처럼 화려하게 꾸미는 날은 거의 없으시잖아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워요.”

    “칼리나 손재주가 좋아서 그렇지, 뭐.”

    나는 아니타의 말에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에요, 작은 아가씨. 제 잔재주는 작은 아가씨의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일 뿐이에요. 작은 아가씨께서 워낙 아름다우시니 제 제주도 빛을 발하는 거지요.”

    칼리나가 태연히 내 말을 받으며 말했다.

    날 띄워 주는 말은 몇 번을 들어도 간지럽고 기분 좋았지만, 반대로 창피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더 말해 봐야 칼리나나 아니타가 되받아쳐 버리니 나는 결국 입을 꾹 닫고 칼리나의 머리 손질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괜히 주변이 좀 더운 듯 느껴지기도 했다.

    “자, 다 됐습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칼리나가 마지막으로 내 머리를 매만지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감았던 눈을 떠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에는 나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귀공녀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와.”

    나는 새삼스럽게 내 모습을 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내가 너무 예뻐서라기보다는 칼리나의 솜씨가 정말 경이롭기 때문이었다.

    “어때요, 작은 아가씨? 마음에 드세요?”

    칼리나가 조심스럽게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그런 칼리나를 돌아보며 밝게 미소를 지었다.

    “정말 예뻐. 매번 고마워, 칼리나.”

    내 말에 칼리나가 흡족하게 웃었다.

    “자, 그럼 이제 그만 가셔야 할 시간이에요. 밖에 황태자 전하께서도 기다리고 계실 거고요.”

    아니타가 나를 재촉하듯 말했다.

    나는 거울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몸을 돌려 문을 향해 다가갔다. 내 뒤로 아니타가 재빠르게 따라붙었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온 나는 파우더룸에서 가장 가까운 응접실로 향했다. 에이드리안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였다.

    똑똑, 내가 응접실 앞에 도착하자 하인이 타이밍 좋게 문을 두드렸다.

    “미라벨 크라이튼 소공녀께서 오셨습니다.”

    하인이 안을 향해 고한 후 문을 열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내 치맛자락을 정돈한 아니타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나는 그제야 에이드리안이 기다리고 있을 응접실로 들어섰다.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지난번 황성 응접실에서 마주쳤을 때와 달리 주변에 지켜보는 시선이 있기에 말을 높여 에이드리안을 향해 물었다.

    에이드리안은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내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 미라벨 너…….”

    에이드리안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그대로 자리에 멈추어 서 버리고 말았다.

    “……정말 아름답다.”

    에이드리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듣기 좋은 말에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에이드리안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에이드리안 역시 나를 보고는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서로 두 걸음 정도를 남겨두고 자리에 멈추어 섰다.

    에이드리안은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 이내 정중히 몸을 숙이며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완벽한 그의 예법을 확인하며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가실까요, 레이디 크라이튼?”

    에이드리안이 나를 향해 제안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소리 없이 웃으며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가볍게 얹었다.

    “영광입니다.”

    에이드리안은 내 말을 들은 후에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내 손을 자신의 팔뚝에 올려놓고 응접실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에이드리안과 함께 무도회가 열리는 저택의 별채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별채는 이미 무도회에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북적거리고 있었다.

    별채로 가까이 다가가자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와 오케스트라단의 음악 소리가 동시에 가까워졌다.

    별채 건물로 들어가 무도회가 열리는 연회장 출입구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하인이 나와 에이드리안을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고해 드릴까요?”

    그러고는 우리의 입장을 연회장에 알릴지 물었다.

    “고해 주게.”

    에이드리안이 나를 대신하여 하인에게 대답했다.

    그러자 하인이 문을 열고 연회장을 향해 크게 외쳤다.

    “에이드리안 카스트로 황태자 전하 듭시오! 미라벨 크라이튼 소공녀 듭시오!”

    우리는 그 소리에 맞추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먹먹하게 들렸던 오케스트라단의 연주가 다시금 부드럽게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웅성거리는 소리는 어느새 잠잠해졌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주목하여 조용해진 그사이의 침묵이 어색하고 민망했지만, 이제는 그게 낯설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에이드리안과 내가 계단을 내려와 무도회장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몇 번 봐서 익숙해진 사람도 있었고, 아닌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적인 주제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우선 내 생일을 기념하여 열린 무도회였으니 당연히 나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인사를 하려는 것이었다. 또, 선물을 준비해서 보냈으니 확인해 달라는 말도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나와 에이드리안이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말이었다.

    “두 분께서 정말 잘 어울리세요. 어려서부터 절친한 사이인 것을 보아왔는데 지금 보니 선남선녀가 따로 없네요.”

    웃으며 꺼내는 말에 나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그리고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여기서 굳이 그렇다 아니다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건 무도회를 몇 번 찾은 이후로 노하우였다.

    지금 내가 극구 아니라고 해 봐야 곤란해지는 것은 에이드리안이었다.

    실제로 나와 교제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우리 이전에 엄마와 황제의 일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에이드리안이 많이 상처받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또 괜히 엄마와 황제의 일이 다시금 화두에 오르는 것도 원치 않았다.

    애초에 이런 말이 불편하다고 에이드리안과 인연을 끊을 수는 없으니 차라리 이런 식의 대응을 택하게 되었다.

    “벨.”

    그때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확인하니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빠.”

    내 주위로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엘리엇의 등장을 확인하고는 길을 터 주었다. 그 덕에 엘리엇이 우리를 향해 편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그의 곁에는 그의 약혼녀인 제니엘 슈페른이 있었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엘리엇과 슈페른 영애가 내 옆에 있는 에이드리안을 향해 인사했다. 둘이 꼭 맞춘 듯 동시에 인사하는 게 신기했다.

    인사를 마친 두 사람이 나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이 그들에게서 느껴졌다.

    “진심으로 생일 축하해, 벨.”

    “생일 축하드려요, 크라이튼 소공녀님.”

    “축하해 줘서 정말 고마워, 오빠. 그리고 슈페른 영애께서도 축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내가 감사를 전하자 엘리엇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을 확인하고 나를 향해 제안하듯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춤이라도 추지그래? 무도회의 주인공인데.”

    춤을 추는 사이에 사람들이 흩어질 것이니 춤을 추고 오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 생략된 제안이었다. 나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흘끔 에이드리안을 살폈다.

    “괜찮겠어?”

    “괜찮지 않을 것도 없지.”

    에이드리안은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는 내 손을 풀고 내 정면에 마주 보듯 섰다.

    내가 에이드리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에이드리안이 정중히 나를 향해 예를 취했다.

    “아름다운 레이디, 저와 함께 춤을 추시겠습니까?”

    에이드리안의 춤 신청에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겹쳤다.

    “영광입니다, 신사님.”

    에이드리안은 내가 그의 손 위에 손을 얹자 곧 자세를 바로 하고 나를 무도회장 중앙 홀로 이끌기 시작했다.

    우리가 무도회장 중앙에 도착하자 오케스트라단이 눈치채고 자연스레 선곡을 바꾸었다. 잔잔하고 우아한 가곡이 무도회장을 울리기 시작했다.

    에이드리안은 내 손을 부드럽게 잡고는 곧 다른 손으로 내 허리를 받쳤다. 나 역시 그에게 잡힌 손에 힘을 풀고 다른 손으로 그의 어깨를 짚었다. 그러자 에이드리안이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이드리안의 리드는 수준급이었다. 천천히 나를 리드하면서도 강약을 조절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새삼스럽게 나를 주시하며 춤을 추는 에이드리안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뭐야? 춤추는 데 집중 안 하고 딴생각 중이었어?”

    에이드리안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내게 속삭였다. 나는 에이드리안의 눈을 마주 보며 밝게 미소를 지었다.

    “옛날 생각이 나서.”

    에이드리안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에이드리안이 의아해하며 눈을 크게 떴다.

    “옛날 일?”

    “응. 옛날 일. 14년 전 누군가와 여기서 춤을 췄는데 말이야, 하나둘, 하나둘하고 수를 세면서 춤을 추지 뭐야?”

    “미라벨 너 그거…….”

    에이드리안은 뒤늦게 그때의 일을 떠올렸는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귀까지 빨개진 것을 보아하니 그때의 기억이 창피한 모양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의 에이드리안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 에이드리안 너 정말 귀여웠는데.”

    나는 그런 에이드리안의 몸에 내 몸을 밀착하며 작은 소리로 웃었다.

    에이드리안은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으며 춤을 출 뿐이었다.

    그에게서 낮은 고동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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