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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26)화 (126/174)

126화

사제들이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수색을 해 나갈지 서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다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괜찮으십니까?”

내가 지친 기색으로 사제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자 플레온 사제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나는 그를 향해 한번 웃음을 지어 보였다.

“괜찮아요. 그냥 좀 신경이 쓰여서요.”

“공기 중에 퍼트렸던 신력이 깨졌다면 성녀님께서도 제법 타격이 있으셨을 텐데 괜찮습니까? 혹여 필요하시다면 저의 미약한 힘으로나마 성녀님의 치유를 돕겠습니다.”

플레온 사제가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 정도로 타격이 심하지는 않았다.

물론 어제는 숨을 쉬는 것조차도 힘들었지만, 이미 충분한 휴식을 통해 어느 정도 신력을 회복한 이후였다. 그렇기에 플레온 사제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괜찮아요. 갑작스럽게 깨졌을 때 크게 놀라기는 했지만, 이미 어느 정도는 회복했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플레온 사제에게 설명하고 감사를 전하였음에도 플레온 사제는 걱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거든 망설이지 마시고 저한테 말씀을 해 주세요.”

“네, 그럴게요.”

플레온 사제의 말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신전의 사람들이 모두 내 가족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회의실에 있는 사제들은 점점 의견을 좁혀 나가기 시작했다.

아직 그 이질적인 기운의 존재가 누구인지 파악도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실종자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는 것도 확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신전에서 인원을 풀어 수색하는 것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무턱대고 사제들과 성기사들에게 이를 수색하라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한 일이었다.

결국, 회의실에서는 신력이 풍부하고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대사제들이 직접 움직이기로 결정되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 성녀님.”

회의 내용에 대해서 확인한 후 곧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 하자 라이넬 사제가 나를 불렀다.

“네, 사제님. 왜 그러세요?”

내가 의아함에 라이넬 사제를 바라보자 라이넬 사제가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조만간 생신이지 않습니까? 혹시 당일에 찾아와 주실 수 있으십니까? 성녀님을 위해서 여러 가지를 준비했습니다만, 가능하신지요.”

나는 라이넬 사제의 말을 듣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일에 신전에서 특별한 이벤트를 할 거라는 이야기는 이미 데이릭을 통해서 들었다.

“네, 시간을 내 볼게요.”

“감사합니다, 성녀님.”

라이넬 사제가 더욱 짙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런 라이넬 사제를 확인한 후 곧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혹시 이 일과 관련해서 실마리가 잡히거나 알아내는 게 있다면 제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참. 그리고 마차를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내가 조심스럽게 라이넬 사제에게 물었다. 그러자 라이넬 사제가 흔쾌히 긍정했다.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감사해요.”

나는 라이넬 사제에게 감사를 표한 후 회의실을 나왔다.

마차는 오래 걸리지 않아 준비되었다. 나는 아니타와 함께 마차에 올라 저택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제 신력을 소모한 탓인지 피로가 빠르게 찾아왔다.

오늘 신력을 마저 회복시킨 후 다시 알아보는 게 좋을 듯했다.

눈을 감고 마차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어느새 마차가 멈추어 섰다.

“도착했습니다, 성녀님.”

마부가 도착을 알려 와 천천히 눈을 떴다.

익숙한 저택이 창문 너머로 보였다.

“고마워.”

나는 마부에게 감사 인사를 남긴 후 마차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섰다.

안으로 들어가자 저택의 고용인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인사했다.

“작은 아가씨, 대공 각하께서 찾으십니다.”

칼리나가 나를 향해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네.”

“어디 계셔? 안내해 줄래?”

“네, 작은 아가씨.”

칼리나의 안내를 받아 크라이튼 대공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똑똑, 칼리나가 문에 달린 고리를 이용하여 문을 가볍게 두드리고 입을 열었다.

“대공 각하, 작은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하게.”

크라이튼 대공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칼리나가 곧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그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부르셨다고 들었어요, 할아버지.”

“오, 그래. 어서 오거라, 미라벨. 일단 거기 앉으렴.”

서류 처리를 위해 썼던 안경을 벗은 크라이튼 대공이 푸근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크라이튼 대공이 권한 소파에 앉았다. 크라이튼 대공도 곧 자리에 앉았다. 그의 손에 서류가 몇 장 들려 있었다.

“곧 생일이지 않느냐? 갖고 싶은 것이 없다고 말하였지만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느냐?”

“저는 정말 괜찮아요. 딱히 갖고 싶은 것도 없고요. 그러니 심려치 않으셔도 돼요. 제게는 할아버지께서 건강하신 게 제일 큰 선물인걸요. 혹시 어디 편찮으신 곳은 없으세요? 말씀하시면 제가 언제든 고쳐 드릴게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크라이튼 대공이 허허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말해 주어서 고맙구나, 미라벨. 역시 날 걱정해 주는 건 우리 미라벨 밖에 없구나.”

크라이튼 대공의 목소리에서 기쁨이 묻어나고 있었다. 크라이튼 대공이 기뻐하니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구나. 자, 이걸 보렴.”

“네.”

크라이튼 대공은 들고 왔던 서류를 내게 내밀었다.

서류를 보아하니 금광의 소유에 대한 서류였다. 그리고 그 소유자로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게 뭐예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크라이튼 대공이 푸근히 웃었다.

“아가, 네 생일 선물로 뭐가 좋을지 고민하다가 너를 위해 금광을 구매했단다.”

“금광을요?”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눈을 크게 뜨고 크라이튼 대공을 바라보았다.

“그래. 거기서 나오는 금은 모두 너를 위해 사용할 예정이란다. 그러니 그 증서를 갖고 있으렴.”

크라이튼 대공의 선물은 금광이었다. 나는 너무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네 생일 선물로 준비한 것이니 부디 사양하지 말았으면 한다. 널 생각하는 이 할애비의 마음이라고 여기고 받아 두렴.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르지 않니?”

“네. 정말 감사해요.”

내가 인사를 전하자 크라이튼 대공이 기분 좋은 듯 웃음을 터트렸다.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할아버지, 제게 손을 줘 보시겠어요?”

서류를 잠시 탁자에 내려놓고 크라이튼 대공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크라이튼 대공은 내 두 손에 그의 큰 손을 올려 두었다.

이제는 주름이 진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크라이튼 대공의 손을 통해 신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하얀빛이 크라이튼 대공을 향해 천천히 흡수되기 시작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질병을 치료하고 피로를 풀어 주는 것.

크라이튼 대공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힘이었다.

크라이튼 대공이 내가 겪었던 그때와 달리 건강하고 오래 살아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도록.

마침내 크라이튼 대공의 몸을 향해 흡수되던 마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운용하는 신력이 크라이튼 대공의 몸에 흡수되고 난 후에야 신력을 거두었다.

“어떠세요?”

크라이튼 대공의 주름진 손을 꼭 쥐며 말하자 크라이튼 대공이 미소로 화답했다.

“훨씬 좋구나. 고맙다, 아가.”

“좋다니 다행이에요.”

크라이튼 대공은 내게 잡힌 손을 풀고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이 할애비가 너무 오래 붙잡은 건 아닌가 싶구나. 어서 올라가 보렴. 외출했다 돌아오느라 힘들 텐데.”

“그럼 이만 올라가 볼게요. 할아버지도 무리하지 마세요.”

“그래. 유념토록 하마.”

크라이튼 대공의 대답을 들은 후 나는 서류를 들고 내 침실로 향했다.

서류를 보관함에 정리해 넣은 후 침대에 누웠다. 이상하게도 피로감이 남아 있었다.

나는 침대에 곱게 누운 자세로 천천히 신력을 운용했다. 그러고는 크라이튼 대공에게 했던 것처럼 나를 향해 신력을 사용했다.

하얀빛이 내 몸에 맴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피로감은 없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비브르.’

내가 비브르를 부르자 비브르가 침대 위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신력을 사용해도 피로가 안 풀리는 것 같아. 왜일까?’

비브르를 향해 물었다. 평소라면 신력으로 피로까지도 날려 버릴 수 있었는데 도저히 그게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물은 것이었다.

혹시나 비브르에게서 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비브르는 내 얼굴을 살폈다. 비브르의 눈에 맺힌 걱정이 또렷이 보이는 듯했다.

[아무래도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인 듯하구나. 신력이 갑작스럽게 깨져 버렸으니 미라벨 네 몸도 꽤 타격을 입었을 거야. 그러니 오늘은 신력에 의지하지 말고 푹 쉬는 게 좋을 듯하구나.]

비브르가 내게 조언했다.

안 그래도 피로감 때문에 쉴 예정이었던 터라 나는 금세 수긍했다.

‘그렇게 할게.’

[그래. 혹시 필요하면 다시 날 불러 주렴.]

‘응.’

비브르에게 대답을 마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피로 때문인지 나는 금세 수마에 빠져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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