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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24)화 (124/174)

124화

어제 내가 느꼈던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내 기운을 감지하고 신력을 깨트렸던 사특하고 불온한 느낌.

잊을 수 없는 기운이 폭사하듯 퍼져나가는 느낌에 목덜미의 솜털이 바짝 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거…….”

제프리의 동료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기분 더러운데 뭐지?”

나는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곧장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려고?”

제프리가 놀라서 물었다. 방금 전까지 내가 이 자리에서 떠나는 것을 얘기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가 말한 ‘간다’는 건 이 기운을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듯했다.

“가 보려고.”

“나도 같이 가. 위험할 수도 있어.”

제프리가 얼굴을 굳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어느새 훌쩍 커서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제프리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따라와.”

나야말로 제프리가 나를 따라와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나 혼자 감당하지 못할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너희들은 여기 있어. 다녀올 테니까.”

제프리는 동료들에게 짧게 말을 남겼다. 나 역시 나를 따라온 아니타에게 잠시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 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제프리가 그런 내 뒤를 따랐다.

기운은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졌다. 여관 문을 거칠게 열고 밖으로 나와 감에 의지하며 골목 사이로 들어갔다.

허름한 주택가로 향하며 점점 주변 기온이 낮아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마 그건 사특한 기운 때문인 듯했다.

악룡의 기운과 미묘하게 비슷한, 그러나 악룡의 것과는 다른 이질적인 느낌.

나는 부디 이 기운을 가진 존재가 악룡과 연관된 인물이 아니기를 바라며 마침내 기운이 응집되어 있는 골목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윽!”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시체가 썩는 것처럼 역한 냄새였다.

옷 소매로 코를 가린 후 천천히 골목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직 사위가 밝은데 이상하게 골목 안쪽으로 향할 때마다 주변이 어두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뭐지?”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은 없고 정체불명의 검은 가루만 바닥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가루가 뿌려진 형태가 꼭 사람의 그림자와 닮아 있었다.

역한 냄새는 가루에서 나고 있었다. 나는 제프리를 한번 돌아본 후 가루 가까이 걸음을 옮겼다.

“조심해, 미라벨.”

내가 막 가루의 앞으로 가려던 찰나에 제프리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내가 먼저 갈게.”

“……응.”

제프리가 먼저 가루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장갑 낀 손으로 가루를 매만졌다. 그 순간, 제프리의 장갑이 치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녹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닥에 놓여 있던 가루들이 바닥에서 지글지글 끓는 소리와 함께 기화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괜찮아, 제프리?”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제프리의 장갑이 녹은 것을 확인하고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했다.

“가까이 오지 마!”

그러자 제프리가 황급히 내게 외치며 말했다.

“위험할지 모르니까 거기 있어.”

제프리는 가루가 있던 곳에서 뒤로 물러났다. 나 역시 그를 따라 뒤로 물러났다. 그런 후 제프리는 황급히 손에 착용하고 있던 장갑을 벗어 버렸다.

옆에서 보니 가루를 집었던 검지와 엄지가 화상으로 인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손 이리 줘. 치료해 줄게.”

내가 제프리를 향해 말하자 제프리가 화상 입은 손을 내게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손이 붉게 물든 것으로도 모자라 짓무르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의 손과 가루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그의 손에 신력을 불어넣었다. 하얀빛이 제프리의 손을 감싸더니 이내 그 속으로 흡수되었다. 그러자 짓물렀던 그의 손이 멀쩡한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프리는 제 손 상태를 확인하고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치료돼서 다행이야.”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에 닿는 것만으로도 장갑과 살을 녹여 버리는 가루라니.

만에 하나 신력이 듣지 않는 속성의 것이었다면, 제프리의 손을 치료할 수는 없었을 터였다.

“이게 대체 뭘까?”

“글쎄. 가루가 흩어져 있는 형태만 보자면 아무래도…….”

“사람 같지?”

내가 묻자 제프리가 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

제프리는 그러고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인상을 쓴 채로 가루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는 모습이 꽤 심각해 보였다.

나 역시 제프리를 한번 살핀 후 가루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가루가 있었던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냄새조차도 더는 나지 않았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가루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아무것도 없는 빈 골목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가루가 있던 곳을 향해 다가갔다.

“미라벨, 들어가지 않는 게 좋지 않겠어?”

“잠깐 확인 좀 할게.”

제프리가 나를 향해 충고해 주었지만, 그렇다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무릎을 굽혀 앉은 후 손에 신력을 감은 채로 가루가 있던 곳을 매만졌다.

아직 가루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바닥을 만질 때마다 신력이 타들어 가는 듯 기묘한 감각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감각은 어제 느꼈던 불쾌한 공격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했다.

나는 이 기운의 주인이 나를 약 올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일부러 내 기운을 깨트린 것도, 그리고 오늘 이곳에서 기운을 폭사시킨 것도.

아무래도 나를 이곳으로 이끌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왜?

대체 뭐 때문에 그런 거지?

의아함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었다.

“괜찮아?”

뒤에서 제프리가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옅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괜찮아.”

그를 안심시킬 요량으로 손을 들어 보이자 제프리가 퍽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걸로 일단은 제프리를 사특한 기운의 용의자에서 제외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신력을 퍼트렸을 때 그에게서 마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으며, 또한 이번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그가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신술을 쓰지 않는 이상에야 나와 함께 있는 동안에 다른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럼 일어나.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제프리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생각해 두었던 바를 입에 담았다.

“혹시 이거 제프리 네가 쫓고 있던 사건과 관련된 게 아닐까?”

“부랑자 연쇄 실종 사건?”

제프리가 즉각적으로 내게 되물었다. 나는 긍정을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부랑자들이 갑자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면서. 만일 정말 그 가루가 사람이었고, 또 그 괴악한 기운이 사람을 이렇게 만든 거라면…… 납득이 가지 않나 해서.”

성급한 판단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방금 전의 그 가루와 실종 사건이 다른 일인 것 같지는 않았다.

최근 수도에서 별다른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같은 시기에 벌어진 수상한 사건이 총 세 가지였다.

첫째는 동물이 실종되는 사건.

둘째는 부랑자들이 실종되는 사건.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군가 사특한 기운을 이용해 사람이었던 존재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사건.

첫 번째 사건과 두 번째 사건이 같은 사건이고, 또 세 번째 사건의 주동자가 이 모든 사건의 범인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확실히 우리가 의뢰를 맡기 전에도 경비대에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일리가 있기는 해. 하지만 우리가 본 건 일이 터지고 난 후니까, 당장은 확신하기 어려울 것 같아.”

제프리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제프리도 의심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정작 이 가루가 사람이었던 건지 확신할 수 없으니 아주 약간의 틈을 남겨 놓는 듯했다.

우리가 목격한 그 가루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기운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통 그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에 느껴지는 인기척 또한 없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눈을 감고 신력을 공기에 섞어서 흘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기운을 감지하고 찾아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범인이 멀리 도망치지는 못했을 거라는 말이었다.

공기 중에 짙게 깔린 신력이 이 일대를 감쌌다. 그러나 주택가 근처에서는 그 어떤 이상한 기운도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서서히 기운을 회수했다. 그리고 모두 회수한 시점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내 앞에는 제프리가 걱정을 담은 얼굴을 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에 뭔가가 느껴지진 않네.”

“그래…….”

“일단 돌아가자. 나는 신전에 이 일을 얘기해 봐야 할 거 같아. 아무래도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아서.”

내 말에 제프리는 순순히 수긍했다.

제프리와 함께 주택가를 벗어나 다시 여관에 도착했다. 제프리의 동료들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었고, 아니타는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보고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어요? 별일 없으셨죠? 용병분들이 무서운 소리를 해서 걱정 많이 했어요.”

아니타가 울상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무슨 말?”

“악마 같은 기운이 느껴졌는데 거기 작은 아가씨가 가셨다고요. 혹시 작은 아가씨께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했어요. 괜찮으신 거죠?”

아니타가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우리가 떠나고 제프리의 동료들이 대충 어떤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아서 씁쓸하게 웃었다.

“괜찮아. 아무렴 용병왕인 제프리와 함께 갔는데 뭐가 문제겠어?”

나는 괜히 제프리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아니타는 조금 안심하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신전으로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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