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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23)화 (123/174)
  • 123화

    “어제 별일 없었어? 뭐 무슨 일이 있었다든가 아니면 누군가가 이 근처에 나타났다든가 하는 그런 일들.”

    나는 혹시나 제프리와 그의 동료들이 아는 것이 없을까 하여 그들에게 물었다. 대낮부터 술을 마시며 떠들썩하게 대화하던 그들은 내 질문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내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뇨, 없었습니다만.”

    제프리의 동료 중 한 명이 내게 대답했다. 영문을 모르는 듯한 그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어제? 왜? 어제 무슨 일 있었어?”

    내 질문이 의아했는지 제프리가 나를 향해 되물었다.

    “아니, 그냥. 이 근처에서 무슨 일 없었나 해서. 넌 별일 없었어?”

    나는 괜히 아무 일 아닌 척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며 대답했다. 그러면서 제프리를 살폈다.

    “글쎄. 없었는데. 어제 확인차 신전에 다녀온 후로 몇 번 수도를 수색하다가 다시 돌아왔어. 그 뒤로는 별일 없었고.”

    제프리의 말에 그의 동료들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돌아와서 저녁 먹고 술 좀 마시다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입니다만.”

    맞은편에 있던 용병이 내게 말했다. 대낮부터 술을 벌컥벌컥 마시던 자 중 한 명이었다.

    다들 아무 일이 없었다고 하니 어제 내가 느꼈던 그 기운은 뭐였나 싶었다.

    만일 그런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중에서는 아무래도 용병왕인 제프리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신력을 깨트릴 정도의 막강한 힘을 지닌 사람. 아니면 그 정도로 기교가 뛰어난 사람.

    내 상식으로는 그랬다.

    아니면 데이릭쯤 되어야 할 텐데, 느껴지는 기운은 악룡의 기운과는 조금 달랐다.

    “뭔데 그래?”

    제프리가 말해 보라는 듯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받다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옆에서 제프리가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에게 곧이곧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어제 내가 퍼트린 신력을 깬 그자가 이번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두 가지 일이 비슷한 시기에 벌어졌으니까.

    사람과 동물들이 흔적도 없이 증발하듯 사라지는 일이나,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신력을 알아차리고 깨트리는 일이나.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사건의 시기가 겹친다면, 그자를 범인으로 추정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자의 흔적을 찾아왔더니 그곳에 제프리가 있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나는 내 앞에 놓인 음식을 집어먹으며 제프리를 흘긋거렸다. 제프리는 내 시선을 알면서도 딱히 왜 이렇게 훔쳐보는 건지 묻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욱 그를 수상해 보이게 만들었다.

    “수사하던 건 좀 진척이 있어?”

    신전까지 찾아와 수색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물었다.

    제프리는 애석하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상할 정도로 흔적도 안 남았어. 살아 있든 죽었든 이렇게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람이 사라지다니……. 이해할 수가 없어. 그럴 수가 있나?”

    제프리가 대답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우리한테 의뢰를 맡긴 거겠지만. 어쨌든 아직까지는 딱히 발견한 것도 없고 진척도 없어. 그게 궁금해서 찾아온 거야?”

    “아니, 그냥 찾아온 김에 겸사겸사. 어제 만난 후로 어떻게 됐나 경과가 궁금하기도 했고.”

    “그래도 뭐, 의뢰를 받아들인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찾다 보면 곧 뭐라도 단서가 나오겠지. 설마하니 증거도 없으려고?”

    제프리는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그러겠지.”

    나는 제프리의 말에 맞장구를 친 후 고개를 돌려 내 앞에 놓인 소시지를 포크로 찍어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러면서 신력을 공기 중에 옅게 섞었다.

    기운은 천천히 공기 중으로 녹아들었다. 넓고 얕게 퍼트리던 어제와는 달리 농도를 짙게 만든 상태였다.

    어제는 전체적으로 상황을 살피기 위해 최대한 내 기운을 넓게 퍼트리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오늘은 그 반대였다.

    어제의 그자가 이곳에 있다면 그자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게 중요했다. 그렇기에 신력의 농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만일 제프리, 혹은 제프리의 동료 중에서 내가 퍼트린 신력을 깨트린 자가 있다면 내 기운에 감지되거나 다시 한번 신력에 반발할 것이 틀림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면서 내 신력에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지 살폈다.

    특히나 제프리가 주로 내 관찰 대상이었다.

    그러나 신력을 풀어 이 여관을 감싸 보아도 어제 느꼈던 그 이질적인 기운은 감지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프리나 그의 동료들 역시도 내가 주변에 흘린 신력을 감지하지 못하는지 술잔을 부딪치며 대화를 이어갈 뿐이었다.

    내가 잘못 판단한 걸까?

    분명히 반응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아무도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여기에 어제 그 존재가 없다는 말이 되었다.

    ‘어제 분명히 이 근방에서 느껴졌는데…….’

    [그런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느냐?]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며 아랫입술을 깨물자 비브르가 나를 향해 물었다. 비브르 역시 어제 내가 겪었던 일을 전해 들은 터라 긴장한 모습이었다.

    ‘……응. 깨끗해. 다른 곳과 다르지도 않아. 제프리와 그 동료들에게서 강한 마나가 느껴지긴 하지만, 마나의 느낌은 어제 그것과는 다르거든.’

    [그럼 어제 미라벨 네가 느꼈던 그 이상한 존재는 제프리나 이 자리에 있는 인간이 아니었던 것 같구나.]

    비브르가 내 찜찜함을 알아차리고는 말했다.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들은 무고했다.

    ‘어제 그건 뭐였을까? 왜 이쪽 지역에서 느껴진 거지?’

    [혹시 모르지. 자신의 존재를 캐고 다니는 제프리와 그 일행들을 찾아왔던 게 아닌지.]

    ‘그럴 수도 있겠다.’

    제프리가 쫓는 대상과 내가 어제 느낀 그 존재가 동일한 존재라면, 비브르의 말대로 자신을 찾고 있는 제프리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왔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내가 기운을 감지했을 테고.

    그렇게 따진다면 어제 일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이구나.]

    ‘응? 뭐가?’

    안도하는 비브르의 말에 내가 고개를 들어 비브르를 바라보았다. 비브르는 웃는 듯한 얼굴로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네 오랜 친우인 제프리가 사건의 범인이 아닌 것 같으니 말이다.]

    ‘아…….’

    비브르의 말을 들은 후 작게 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다행이었다.

    제프리와 적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의 무력이 뛰어나 용병왕이라 불리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14년 동안 친하게 지낸 제프리가 내 적이 되는 것은 정말 끔찍한 상상이었다.

    “미라벨.”

    “응?”

    비브르와 대화를 나누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제프리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제프리가 걱정스러워하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를 살피며 내가 풀어놓았던 신력을 다시 회수하기 시작했다. 곧 여관 내부를 채운 신력이 모두 내 안으로 흡수되었다.

    “오늘 무슨 일 있어? 이상한 질문 하는 것도 그렇고, 방금도 좀 이상했고…….”

    말을 마친 제프리가 커다란 손을 들어 내 이마를 짚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라는 것도 잠시, 제프리는 다른 손으로 제 이마를 짚으며 곰곰이 생각에 빠진 듯했다.

    “열은 없는 거 같은데.”

    내 이마에서 손을 뗀 제프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안 아파. 그리고 내가 누군지 알잖아. 성녀인 내가 병에 걸리는 것도 우습지.”

    웬만한 병은 모두 내 신력으로 치유할 수 있었다. 그건 타인에게만 쓸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쓸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러니 내가 몸이 좋지 않아 열이 오르는 일은 없을 거라는 소리였다.

    “그럼 다행이고.”

    제프리는 그제야 안심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걱정했어?”

    “당연하지. 네가 갑자기 찾아온 것도 놀라운 일인데 평소와 달라 보이기도 하니까. 혹시 불편한 거면 굳이 여기서 자리 지키지 않아도 돼. 네가 우선이니까.”

    제프리는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는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그런데 대낮부터 술 마셔도 돼?”

    아직 해가 하늘 꼭대기에 있었건만 벌써부터 술을 마시는 이들을 보고 있어서 한 말이었다.

    제프리는 그런 동료들을 바라보다 픽 웃었다.

    “괜찮아. 오늘 쉬는 인원들만 마시는 거니까.”

    “그럼 뭐.”

    내가 딴죽을 걸 만한 내용은 아니었기에 빠르게 수긍했다.

    그러고는 제프리의 동료들을 지켜보았다. 사선을 함께 넘나들기 때문인지 그들의 신뢰는 돈독해 보였다. 나도 과거의 한때엔 이곳에 합류할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인지 그들에게 친밀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한참이나 제프리의 동료들 사이에 섞여 있던 나는 슬슬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해 보았다.

    생각한 목표를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미 그자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굳이 여기 계속 있을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신전에 말이라도 전해 두는 게 더 나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볼게.”

    제프리를 향해 말하자 제프리가 아쉬움을 담아 나를 바라보았다.

    “벌써 가려고?”

    “응. 일정이 있어서. 잠깐 지나가던 차에 널 발견한 거였거든.”

    “그럼 내가 널 너무 붙잡고 있었나 보네. 데려다줄까?”

    제프리가 싱그럽게 웃으며 내게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제프리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냐. 넌 여기 있어. 어차피…….”

    대답을 마치려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강렬하고 역겨운 기운이 폭발하듯 느껴졌다. 이 기운을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는지 나를 바라보고 있던 제프리도, 그리고 제프리의 동료들도 일순 그 기운이 느껴진 곳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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