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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21)화 (121/174)
  • 121화

    신전의 정문으로 나오자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럼 난 이만 동료들이 기다려서 가 볼게.”

    “응. 나중에 또 봐.”

    제프리가 웃으며 내게 짧게 인사를 남기고 정문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용병단원들을 향해 다가갔다.

    몇 번 본 적 있는 사람도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제프리가 복귀하자 이런저런 말들로 그에게 장난을 걸었다. 제프리는 웃으며 그들 사이에 섞여 이내 거리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마차가 기다리고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아니타, 오늘은 좀 걷고 싶어. 마차는 그냥 돌려보내 줘.”

    “네, 작은 아가씨.”

    아니타가 마부를 향해 먼저 돌아갈 것을 이르자, 마부가 나를 향해 인사를 남기고는 곧장 마차를 몰아 멀리 떠나갔다.

    나는 마차가 움직일 무렵부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듀아나 신전을 찾을 때마다 주로 마차를 타고 움직이느라 바깥으로 나다니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내 기억 속의 주변 건물들을 따라가니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틈틈이 골목 사이사이를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내가 마차를 타지 않은 이유는 혹시나 실종된 동물들이나 사람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었다.

    사건이 빨리 일단락되어야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는 것도 멈출 수 있을 테니까.

    데이릭을 단지 악룡의 씨앗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의심하는 것은 정말로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일이었다.

    14년 동안 신전에서 자라난 그였다.

    내가 성녀로 임명된 이후로 그를 줄곧 지켜봐 왔지만, 데이릭이 예전과 같은 악행을 저지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나는 데이릭이 실종 사건의 범인이 아닐까 의심하고 제프리에게 그의 뒷조사를 의뢰했는데, 정작 데이릭은 신시아의 부탁으로 신전 북쪽 산에서 톰과 카린을 찾기 위해 나무를 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성녀라는 게 창피할 정도였다.

    최대한 골목 사이를 확인하며 고양이의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리 골목들을 확인해 봐도 고양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성녀님 아니세요?”

    시장에 들어서자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 물었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시장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자넷이었다.

    나보다 다섯 살 정도 많은 것으로 아는데, 종종 신전에 와서 기도를 드리거나 내게도 찾아오는 신도였다.

    자넷은 나를 확인하고는 정중하게 인사했다. 나 역시 그녀를 향해 듀아나 신전 식 인사를 건네었다.

    “여신의 은총이 깃들기를. 반가워, 자넷. 이곳에서 일하는 거지?”

    반가움에 그녀를 향해 물었다. 자넷은 얼굴 가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시장의 과일가게 중에서 제일 신선한 과일만 취급하고 있어요. 이번 사과가 좋은데 한번 드셔 보시겠어요?”

    자넷은 당장이라도 내게 사과를 깎아 줄 요량인지 사과를 하나 집어 들며 물었다.

    나는 그런 자넷의 배려에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아니야. 오늘은 찾을 게 있어서 걷다 보니 이곳으로 왔어. 혹시 점박이 고양이 못 봤어? 신전 주변을 돌아다니는 길고양이인데.”

    “고양이요?”

    내 질문이 뜻밖이었는지 자넷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그러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못 봤어요.”

    “그래? 그럼 이쪽 시장으로 온 건 아닌 건가?”

    내가 긴가민가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자넷이 뒷말을 덧붙였다.

    “근데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요.”

    “뭐가?”

    “최근 들어 동네에서 길고양이를 마주친 적이 없어요. 평소에는 오며 가며 한두 마리씩은 꼭 봤는데, 근 한 달 사이에는 한 마리도 못 본 것 같아요.”

    “……정말? 그냥 못 보고 지나친 건 아니고?”

    확답을 구하기 위해 자넷에게 물었다. 자넷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낮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어 내 말을 부정했다.

    “아니에요. 성녀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이곳은 시장이라서 고양이가 많은 편이에요. 하루에 한 마리도 못 보고 지나가는 경우는 없다시피 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한 마리도 못 본 거 같아요.”

    확신하는 자넷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벌써 두 명째였다. 근방의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 사람이.

    처음은 데이릭이었고, 다음은 자넷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고양이가 사라진 것은 신전 부근에서의 일만이 아니라 최소한 시장까지로 그 구역이 확대된다는 것이었다.

    “그럼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

    내가 조심스럽게 자넷에게 질문하자 자넷이 흔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요. 얼마든지 물어보셔도 돼요.”

    “고마워. 다름이 아니라 시장에도 부랑자들이 종종 나타나지?”

    “어머, 당연하죠. 가끔씩 과일을 하나 훔쳐 달아나곤 해서 얼마나 골머리를 앓는데요.”

    자넷은 아직까지도 부랑자가 과일을 훔쳐 가던 일을 기억하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그 사람들 최근에 본 적 있어?”

    “……어? 그러고 보니 그 사람들도 못 본 지 꽤 됐네요?”

    자넷은 뒤늦게 이상한 점을 깨닫고 콧잔등을 긁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걱정을 담은 자넷의 말에 나는 웃음으로 답했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별일 아니니까 신경 안 써도 돼.”

    내가 웃으며 말하자 자넷은 불안함을 조금 지운 듯했다. 그럼에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는지 염려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자넷에게 더 들을 이야기는 없을 것 같았고, 얘기가 깊어지면 자넷의 불안감만 깊어질 것 같아 여기서 대화를 중단할 필요성을 느꼈다.

    “알려 줘서 고마워.”

    “네에……. 그럼 살펴 가세요. 다음에 신전에 들르겠습니다.”

    나는 자넷과 대화를 마치고 곧장 시장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넷의 말대로였다. 시장에서 고양이 한 마리 발견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뿐만이 아니라 노숙자나 부랑자 역시 찾기 어려웠다.

    확실히 뭔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비브르 혹시 느껴지는 거 없어?’

    [느껴졌다면 나뿐만이 아니라 미라벨 너도 느꼈을 거란다. 너도 이제 어엿한 성녀가 아니냐.]

    비브르가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그렇겠지?’

    성녀로 임명된 이후로 더는 내 신력을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 그 탓에 라이넬 사제로부터 제한 없이 신력을 다루는 법을 배워 왔다.

    그리고 혼자서 신력을 다뤄 보기도 하며 스스로 실력을 키웠다.

    비브르조차도 내가 신력을 사용하는 게 굉장히 뛰어난 경지에까지 올랐다고 칭찬할 정도였다.

    그러니 만일 수도에서 악룡의 기운을 느꼈다면 비브르나 나, 둘 중 하나는 그 기운을 느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럼 내 기우인 걸까? 내 기억상으로는 미래에 이런 실종 사건은 없었던 것 같은데.’

    [과거가 바뀌었으니 미래가 바뀌는 것도 당연하단다.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일이 벌어진 걸지도 모르겠구나.]

    비브르의 말에 나 역시 조금 불안해졌다.

    ‘악룡의 부활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 건 아니겠지?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데.’

    [좀 더 상황이 진행되어 봐야 알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아니었으면 하는구나.]

    비브르 또한 내 말에 걱정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나는 비브르와의 대화를 마치고도 한참이나 거리를 돌아다녔다. 시장을 지나 고급상점가로 향했음에도 고양이는커녕 쥐 한 마리 보지를 못 했다.

    “수도가 이렇게 깨끗했나?”

    물론 수도는 지방보다 관리를 잘 하고 있는 편이기는 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수도를 전체적으로 돌아본 후 저택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간이 다섯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목욕을 마치고 식사까지 한 후에 침실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조용히 신력을 풀어 보기 시작했다.

    [살피려고 하는 게냐?]

    “응. 자꾸 찜찜한 기분이 들어서. 뭔가 놓치고 있는 기분이야.”

    [그렇구나. 그럼 방해하지 않으마.]

    비브르는 내가 집중할 수 있도록 조용히 옆으로 비켜 나와 침묵을 유지했다. 그제야 비로소 신력을 미세하게 흩어 기운을 탐지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신력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자 내 감각은 더욱 예민하고 세심하게 주변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공기 중에 신력을 흩어 놓으면 다른 이질적인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만일 신력이나 악룡의 힘인 마력을 사용한다면 내가 풀어 놓은 신력이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저택에서부터 천천히 감각의 범위를 늘리기 시작했다.

    가까이에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감각은 옅어졌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내가 감지하고자 하는 것은 정말로 실종 사건에 악룡의 기운이 사용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 기운을 감지한 이후 수색은 별개의 일이었다.

    그때였다.

    예민해진 감각으로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그건 수도 동쪽 주택가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이질적인 기운이 어떤 종류의 기운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악룡의 기운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옅고 흐릿했다. 그렇다고 신력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럼 대체 뭐지?

    의아해하는 순간이었다.

    “꺅!”

    오싹한 기운과 함께 내가 퍼트렸던 신력이 동시에 부서지듯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순식간에 사라진 기운에 놀랄 새도 없이 상체를 일으키며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러운 상실감으로 인해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마치 높은 곳에서 불시에 아래로 추락하게 된 것 같은 감각이 나를 엄습했다.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내가 공기 중에 퍼트린 신력을 알아차리고 내게 경고하듯 신력을 깨트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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