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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19)화 (119/174)
  • 119화

    내 생일을 축하하는 무도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한 다음부터 크라이튼 대공가는 분주해졌다.

    특히나 대공가의 내실을 담당하게 된 엄마는 누구보다 더더욱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어김없이 대공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듀아나 신전으로 향했다.

    성녀가 된 후로 내가 듀아나 신전에서 맡게 된 일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신전을 찾는 이들의 축복을 기원하는 일이었다.

    플레온 사제가 성자였을 때도 매주 있었던 행사였다.

    내가 하는 일은 신전에서 내어 주는 방에 앉아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들에게 여신님의 축복을 빌어 주는 일이었다.

    그다지 부담스러운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매주 듀아나 신전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후에 시간이 비면 어제처럼 특별한 볼일이 없더라도 듀아나 신전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성녀님. 성녀님께 여신님의 은총이 깃들기를.”

    마차가 듀아나 신전에 멈추어 서고, 언제나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던 라이넬 사제가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정식으로 성녀가 되기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라이넬 사제의 뒤로 듀아나 신전의 평사제들이 함께 나와 나를 맞이해 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라이넬 사제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라이넬 사제님께도 여신님의 은총이 깃들기를.”

    짧게 인사를 마치고 주변을 무심코 둘러보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신전이었으나 왠지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종종 외지인들이 이곳에 방문할 때도 이리 어수선했던 것을 떠올리고 관심을 돌렸다.

    라이넬 사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성녀님!”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신시아가 짧은 다리로 나를 향해 열심히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잠시 자리에서 멈추고는 신시아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히고 두 손으로 받친 후 그녀를 기다렸다.

    “무슨 일이니, 신시아? 혹시 톰을 찾은 거야?”

    신시아는 내 앞에 멈추어 선 채 숨을 골랐다.

    “아뇨. 못 찾았어요.”

    신시아가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트리며 대답했다.

    나는 괜히 말했나 싶은 마음에 쓰게 웃었다.

    “그랬구나. 얼른 찾아야 할 텐데…….”

    “그런데 큰일 났어요. 톰 말고도 카린도 사라졌어요.”

    “카린?”

    누군지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육원에서 키우는 강아지입니다. 안 그래도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신전 직원들이 찾아보는 중입니다.”

    라이넬 사제가 신시아의 말을 보충해 주었다. 나는 그 말에 작게 탄식했다.

    길고양이에 이어 보육원에서 키우는 강아지까지 사라졌다.

    톰만 사라진 거라면 어제 데이릭이 말했던 것처럼 영역 다툼으로 인한 이동을 생각해 볼 수 있었으나, 강아지까지 사라졌다니 사안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은 듯했다.

    게다가 어제 제프리에게 부랑자 연쇄 실종 사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라 더욱 그랬다.

    “신시아, 일단은 신전에서도 찾고 있다고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줄래?”

    “……네.”

    신시아가 작은 소리로 답했다. 나는 신시아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은 후 몸을 일으켰다.

    때를 맞추어 다른 평사제 한 명이 신시아를 데리고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신시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가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라이넬 사제를 돌아보았다.

    “라이넬 사제님.”

    “예, 성녀님. 말씀하십시오.”

    “아무래도 단순한 사건은 아닌 것 같아요. 최근 들어 고양이들이 사라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데이릭에게 들었어요. 그런데 톰과 카린까지 사라졌다고 하니 영 찜찜해서요.”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불안함 때문인지 괜히 가슴에 무언가가 무겁게 얹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수도에서 부랑자들이 실종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해요. 저는 왠지 이 두 사건이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내 말에 라이넬 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실종되었다는 면에서 교집합이 있군요. 혹시 모르니 다른 사제님들께도 이 일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라이넬 사제는 걱정 놓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를 바라보다 미소를 짓고는 신전 안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며 일을 보던 사람들이 나를 향해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나 역시 그들에게 마주 인사했다.

    마침내 듀아나 신전에 마련된 내 방에 도착했다. 나는 익숙하게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럼 오늘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빙긋이 웃자 곧 라이넬 사제가 밖으로 나갔다.

    1시가 지나자 사람들이 내 방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들의 말을 듣고 공감하며 축복을 빌어 주는 일뿐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으로도 충분히 위안을 얻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2시에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문이 열리고 마지막 신도가 안으로 들어왔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바라보던 나는 예상치 못한 사람의 등장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안으로 들어온 것은 긴 장신에 근육이 탄탄하게 올라붙어 보기 좋은 체격을 가진, 은색 머리에 푸른 눈을 한 남자였다.

    “미라벨.”

    남자가 시원하게 웃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입술을 달싹였다.

    “제프리?”

    오늘 마지막 신도는 제프리였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제프리가 이런 방식으로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 놀란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제프리는 성큼성큼 걸어와 내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의뢰 때문에 신전에 왔다가 데이릭을 만났는데 네가 여기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가기 전에 한번 들렀지. 밖에 우리 용병단 녀석들이 있었는데 봤어?”

    제프리의 말에 기억을 더듬어 봤다. 그런 후에야 신전이 왜 어수선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본 거 같아. 그래서 수사는 잘 돼 가?”

    “글쎄. 아직은 큰 수확이 없어. 부랑자들이라 목격자들도 드물고.”

    제프리가 팔짱을 낀 채 나른한 얼굴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신전에서 혹시 부랑자들에 대해 아는 게 있나 해서 와 본 건데 딱히 알아낸 것도 없고.”

    제프리가 이 사건을 어디서부터 조사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나도 하나 말해 줄 게 있었어.”

    “뭔데?”

    내 말에 제프리가 재깍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최근 고양이들이나 강아지도 실종되고 있는 것 같아.”

    “뭐?”

    제프리는 황당하다는 듯이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사람이 실종된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제프리에게 고양이와 강아지의 실종을 언급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에게 말했다.

    최근에 일어난 실종 사건이 모종의 이유로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도 확인을 해 봐야 할 터였다.

    게다가 동물들의 실종이 제프리의 수사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아는 건 신전으로 찾아오는 고양이 톰이랑 신전 보육원에서 키우는 강아지 카린의 일이지만, 데이릭은 그 외에도 더 많이 알고 있나 봐. 듣자 하니 데이릭은 단순한 영역 다툼이라고 생각한 것 같더라고.”

    “근데 부랑자 실종 사건과 시기가 겹친다는 거지?”

    제프리가 내 말의 요지를 캐치하고 확인차 되물었다.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내 긍정에 제프리가 잠시 생각하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턱을 매만졌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시기상 겹친 것도 그렇고, 하필이면 실종인 것도 그렇고. 시체도 안 나온 거잖아. 그렇지?”

    “아마도. 그런 것 같아.”

    제프리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것도 감안해서 수색해 볼게.”

    “오래 걸릴까?”

    “글쎄? 해 봐야 알 것 같은데? 이런 흔적 없는 실종 사건은 처음이라서.”

    흔적이 발견되면 빠르게 일단락될 사건이었다. 고작 하루밖에 안 되긴 했지만, 그래도 용병단의 인원을 풀고도 흔적조차 찾지 못하는 건 조금 문제가 있는 듯했다.

    “그리고 혹시…….”

    “응?”

    제프리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향하는 제프리의 눈동자는 언제나 친절하고 다정해 보였다.

    “혹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데이릭도 조사를 좀 해 줄래?”

    “데이를?”

    제프리가 놀라서 내게 반문했다.

    나도 사실 제프리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게 맞나 고민을 하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 제일 걱정되는 건 데이릭이 아무도 모르게 악룡의 힘으로 사람이나 동물을 죽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곳 신전에서 14년 동안 자라며 어긋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데이릭이었다. 내가 아는 데이릭이 그런 일을 저질렀을 리가 없다고 믿었지만, 그가 갖고 있는 악룡의 힘이 데이릭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거 때문에 그래? 그…… 데이가 악룡인지 뭔지 그 씨앗이라고 했던 거?”

    제프리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듣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응. 아닐 거라고는 생각해. 그동안 제프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게 나니까. 그래도 확인해 봐서 나쁠 건 없잖아.”

    내가 걱정을 지우지 않으며 말하자 제프리가 수긍했다.

    “그래. 아니면 괜한 오해 받지 않아도 될 테지. 데이에게는 미안하지만 한번 조사해 볼게.”

    나는 제프리의 말에 안도했다. 혹시나 제프리가 거절하면 내가 직접 조사해 볼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제프리가 내 부탁을 받아 주었다.

    “아니었으면 좋겠네.”

    “아닐 거야.”

    제프리는 내가 걱정하는 것을 보며 픽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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