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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17)화 (117/174)
  • 117화

    나는 제프리가 떠난 후로도 응접실에 잠시 남았다. 그러다가 영 찜찜한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설렁줄을 울렸다.

    곧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작은 아가씨, 저 칼리나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응. 들어와.”

    칼리나는 내가 허락을 내리자 곧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시키실 일이 있으신가요?”

    “응. 칼리나, 마차를 준비해 줘. 다시 나갔다 올 거야.”

    “네, 알겠습니다.”

    내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나간다고 말하자 칼리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내 말에 의문을 표하지 않고 곧장 고개를 숙이며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칼리나가 나가고 난 후 소파에 앉아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로 제프리가 말한 부랑자 실종 사건에 대해 생각했다.

    만일 이 사건이 14년 전에 벌어졌다면 나는 당연히 그 범인으로 다니엘을 생각했을 것이었다.

    정확한 근거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 불길한 일을 저지를 사람은 다니엘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애석하게도 다니엘은 내가 아홉 살이던 14년 전, 황성의 지하 감옥에 하옥되어 지금까지 그곳에 갇혀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 비브르? 방금 제프리가 말해 주고 간 실종 사건.”

    나는 어깨에서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비브르를 향해 물었다.

    [확실히 수상하긴 하구나. 그런데 혹시 미라벨 넌 그 사건이 악룡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염려하는 게냐?]

    “응. 왠지 불안해서.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이 실종되는 사건이라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니까.”

    내가 작게 중얼거리자 비브르가 수긍했다.

    [하긴. 한번 알아보는 게 좋긴 하겠구나.]

    “응.”

    나는 짧게 대답을 마친 후 테이블에 놓인 차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감미로운 홍차의 맛이 입에 감기는 듯했다.

    * * *

    “작은 아가씨, 마차가 준비되었습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마차가 준비되었다. 나는 빈 찻잔을 컵 받침 위에 내려놓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곧장 응접실을 벗어나 마차가 대기하고 있는 현관으로 향했다.

    내가 마차에 올라타고 아니타까지 마차에 올랐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작은 아가씨?”

    마부석과 연결된 창을 통해 마부가 내게 물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황성 감옥으로 갈 거야.”

    “네?”

    “예?”

    내 말에 아니타와 마부가 놀라더니 동시에 의문을 담았다.

    놀랄 만도 했다. 황성 감옥에 누가 있는지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 황성 감옥으로 가실 겁니까?”

    마부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응.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다녀올 거니까 빨리 출발해 줘.”

    “예, 예에.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내 말에 마부가 마차를 출발시키기 시작했다.

    “아가씨,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 건 아니죠?”

    아니타가 걱정을 담아 내게 물었다.

    내가 황성 감옥을 찾아간다고 하니 불안한 모양이었다.

    황성 감옥에는 다니엘이 있었고, 나는 그가 갇힌 후로 단 한 번도 그를 찾아가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다니엘을 만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별일 없어. 그냥…….”

    나는 짧게 대답을 마친 후 고개를 돌려 마차에 난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아니타는 그제야 내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더는 질문을 꺼내지 않았다.

    나도 오늘 제프리에게 들은 실종 사건만 아니었다면, 다니엘을 굳이 찾아갈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를 찾을 이유가 있었다. 이번 실종 사건에 다니엘이 연루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일 그가 정말로 실종 사건과 연관이 있다면, 사전에 그를 막아야 했다.

    악룡의 부활을 꾀할 정도의 악인이었으니 이번에 또 어떻게 엮여 있을지 몰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니엘이 다시 악룡의 힘을 사용하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만일 악룡의 힘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먼저 데이릭을 어떻게든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신전에서 자라난 지금의 데이릭을 꼬여 내기는 어려워 보였다.

    “도착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마차가 벌써 황성 감옥에 도착했다.

    나는 마차에서 내려 황성 감옥을 확인했다. 황성 감옥은 위로 10층, 지하로 5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다.

    “누구십니까?”

    감옥을 지키던 경비병 한 명이 나를 향해 물었다.

    아니타는 크라이튼 대공가의 문양이 새겨진 가문의 인장을 경비병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자 경비병이 허리를 곧추세우며 나를 향해 경례했다.

    “들어가 보십시오.”

    안으로 들어가자 감옥을 지키는 간수 한 명이 나를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이 감옥의 간수 노먼입니다. 실례지만 성함과 어떤 용무로 찾아오셨는지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미라벨 크라이튼이야. 다니엘 크라이튼을 만나러 왔어.”

    내가 말하자 간수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간수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서류에 무언가를 기재했다. 아마도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누구를 만나러 온 건지 확인하는 서류인 듯했다.

    꼼꼼히 작성을 마친 후에야 간수가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그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간수를 따라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밝았던 1층과 달리 지하는 습하고 퀘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계단 벽 중간에 횃불이 달려 있기는 했지만, 그 주변만 밝을 뿐, 나머지 공간은 어둡고 스산했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어.”

    그를 따라 지하 5층까지 내려가고 난 후 쭉 길을 따라 걸었다.

    “저, 아가씨. 괘, 괜찮으세요?”

    스산한 분위기에 겁먹은 아니타가 내게 물었다. 나는 슬쩍 아니타를 돌아보았다. 아니타는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빨리 끝내고 가자.”

    “……네에.”

    울상을 짓는 아니타를 보고 있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다니엘을 한 번은 봐야 할 것 같았다.

    “이곳입니다.”

    마침내 깊은 감옥 끝에 도착한 간수가 손으로 조금 더 안쪽을 가리켰다. 그 앞에 도착하여 창살 너머를 확인해 보니 부쩍 수척한 모습의 노인이 보였다.

    “이게 누구야? 듀아나 신전의 성녀 아니야?”

    다니엘은 나를 발견하고 비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감정 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팔짱을 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요.”

    “묻고 싶은 것?”

    다니엘은 되물으며 키득거렸다. 그 웃음 속에 나를 향한 원망과 증오가 뒤엉켜 있는 것쯤은 나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성녀님께서 이 내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직접 행차하셨다니, 이거 영광이군. 근데 이걸 어쩌지? 난 대답할 마음이 없는데?”

    비꼬는 그를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초에 내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 듯했다.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다.

    나로 인해서 그의 계획이 모두 틀어져 종내에는 이곳에 갇히게 되었는데 내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그가 이번 일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확인하고자 입을 열었다.

    “최근 부랑자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어요. 혹시 알고 계세요?”

    만일 다니엘이 이 일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다면 뭔가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어 그에게 말했다. 그러나 다니엘은 뜬금없는 내 말에 황당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랑자? 하! 감히 여기까지 찾아와서 부랑자 따위를 물어?”

    기가 막힌다는 듯한 태도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다니엘의 반응은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조금도 당황하거나 놀라는 기색이 없이 황당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크라이튼 대공을 속여 왔던 실력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연기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가 진심으로 어이없어 되물은 듯했다.

    “왜? 감옥에 갇혀 있는 내가 귀신이라도 돼서 부랑자들을 죽여 버리기라도 했다, 뭐 그런 주장을 할 셈인가?”

    다니엘이 이를 바득 갈며 나를 노려보았다. 지하 감옥에 수감되어 피폐해진 상황에서도 그의 눈만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다니엘은 이번 일과 정말 관련이 없는 듯하구나.]

    비브르가 내게 말했다. 나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모르시면 됐어요. 그럼.”

    더 이곳에 있어 봤자 얻을 것은 없어 보였다. 어차피 다니엘이 이 사건과 연관이 없다면, 내가 굳이 나서서 알아볼 이유도 없었다.

    내가 몸을 돌리자 감옥 내부에서 맹렬하게 나를 향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쾅!

    그러더니 철창이 부서질 듯 울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 보니 다니엘이 철창 가까이로 다가와 숨을 씨근거리고 있었다.

    “미라벨, 언젠가 내가 이 감옥을 나가게 되거든…….”

    증오와 분노로 점철된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말없이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그때는 내 손으로 너를 죽여 주마.”

    한이 서린 위협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니엘이 이 철창을 벗어날 수 있을 때의 일이었다.

    벌써 14년이 지났다. 그가 이 감옥에 들어가게 된 지.

    그 이후로 줄곧 감옥 바깥으론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한 그가 뜬금없이 석방되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를 도울 사람도 없었고.

    혹여나 그가 감옥에서 나오게 된다고 하더라도 노쇠한 그가 나를 해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일은 평생 없을 것 같네요.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작은할아버지.”

    나는 괜히 그에게 꾸벅 인사를 한 후 몸을 돌려 왔던 길을 거슬러 가기 시작했다.

    “미라벨!!”

    뒤에서 다니엘이 내 이름을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지만, 굳이 반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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