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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15)화 (115/174)

115화

“성녀님, 성녀님!”

막 듀아나 신전을 나오는데 어린 꼬마 여자아이가 내 치마를 붙들었다.

여자아이의 차림새를 보아하니 신전 보육원에서 지내는 아이로 보였다.

나는 기꺼이 아이의 부름에 응하며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무슨 일이니?”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아이의 잔머리를 쓸어 넘긴 후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톰이 사라졌어요.”

아이는 우물쭈물하는 말투로 내게 말했다. 시무룩한 기색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톰이 누구야? 같은 보육원에서 지내는 친구니?”

“아니요! 아니, 친구는 맞는데……. 보육원에서 지내는 건 아니에요. 걔는 고양이인 걸요.”

“고양이?”

뜬금없는 톰의 정체에 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이내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길고양이구나?”

“네, 맞아요. 하얀색에 까만 얼룩이 있는 고양이예요. 매일 보육원 마당으로 산책 오는 고양이인데 어느 순간부터 오질 않아요.”

아이가 울상을 지었다. 아직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였기에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또 짠하기도 했다.

“찾아 주시면 안 될까요?”

애처롭게 바라보는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움을 안 줄 수가 없었다.

“그럼 나도 찾아볼게. 근데 네 이름이 뭐야?”

“저는 신시아예요! 나이는 다섯 살이에요!”

신시아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이는 손가락을 다섯 개 모두 펼쳐 내게 보여 주었다. 그 기특한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신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신시아. 톰을 찾으면 얘기해 줄게. 알겠지?”

“네, 성녀님! 감사합니다!”

신시아가 내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곧장 보육원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톰을 찾기 위함인지 톰의 이름을 부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성녀님께서 길고양이 찾을 시간이 있어요?”

근처에서 바닥을 쓸고 있던 데이릭이 황당하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데이릭을 돌아보고는 어깨를 으쓱 추어올렸다.

“어린아이 부탁인데 한번 찾아보지, 뭐. 그리고 데이 너도 도와줘.”

“저도요?”

데이릭이 화들짝 놀라며 나를 향해 물었다. 그는 내가 성녀고, 크라이튼 대공가의 소공녀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줄곧 말을 높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과 관계없이 편하게 지낸 탓인지 말은 높이되 대화는 크게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 듯했다.

“그럼 나 혼자 찾으라고?”

“하지만 성녀님께서 하신다고 한 거잖아요. 제가 찾겠다고는 안 했는데요?”

당당하게 나오는 데이릭을 보며 나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같은 보육원 아이가 저렇게 슬퍼하는데 안타깝지도 않아? 그리고 데이 너 지금 한가하잖아. 좀 도와줘.”

“고양이면 뭐, 영역 다툼에서 져서 영역을 바꿨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키우겠다고 데려갔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경우면 어떻게 찾으려고 그러세요?”

데이릭은 귀찮다는 듯 툴툴거렸다.

“그럼 그 정도만 알아보고 얘기해 줘도 되겠지. 그래서 안 도와줄 거야?”

“……알겠습니다.”

내가 재차 데이릭에게 묻자, 데이릭이 결국 내게 굴복했다.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대답하는 모양새가 과거 악룡의 씨앗이었던 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역시 듀아나 신전이 옳았다.

데이릭은 이곳에서 지내는 게 숨막히고 답답하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제법 성실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성인이 된 그는 더이상 보육원에서 지내는 신세가 아니었다. 신전에서 허드렛일을 도우며 신전의 직원으로서 숙식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럼 저는 저쪽을 찾아볼 테니, 성녀님께서는 반대쪽을 찾아봐 주세요.”

싫다고 툴툴거리던 데이릭은 오히려 구역을 지정하며 톰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마찬가지로 톰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비브르, 너도 할 거 없지?’

[나도 도우라는 말이냐?]

‘같이 찾으면 좋잖아.’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비브르가 웃음을 흘리는 듯이 혀를 날름거렸다.

[좋다. 그럼 나는 허공에서 확인해 볼 테니 찾으면 말하거라.]

‘응. 부탁해.’

비브르가 날개를 움직여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고양이 톰을 찾기 위해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해가 벌써 중천에 떴을 무렵에도 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전 입구로 돌아온 나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데이릭과 비브르를 확인했다.

“없어?”

“네, 없네요.”

[없구나.]

두 사람 역시 톰을 찾지 못했는지 별 수확 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신시아에게 말을 해 두고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아 보육원으로 발을 옮겼다.

신시아는 여전히 보육원 마당에서 톰의 이름을 부르며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신시아.”

“성녀님!”

신시아가 반색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다 내게서 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트렸다.

“미안.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네……. 그래도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성녀님.”

실망스러운 와중에도 감사 인사를 하는 신시아가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찾으면 얘기해 줄게. 그러니 신시아 너도 너무 오래 밖에 있진 마. 날이 아직 추워서 감기 걸릴 수 있어.”

“네,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신시아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게 보였다. 여전히 톰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신시아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 것 같아 그녀를 놓아주고 몸을 돌렸다.

“찾으면 좋을 텐데.”

내가 아쉬움에 중얼거리자 데이릭이 무언가 생각난 듯이 박수쳤다. 반사적으로 데이릭을 바라보자 데이릭이 뒤늦게 기억난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고양이들이 단체로 영역 다툼을 벌이기라도 하는 건지 보이던 애들이 안 보이는 것 같기는 해요. 톰뿐만이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요.”

“그래?”

“네. 아마 톰도 그래서 안 보이는 거 같은데요?”

“그럼 다행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데이릭의 말을 받았다.

“그럼 어서 들어가 보세요.”

“그래. 다음에 또 올게.”

“예, 예. 성녀님이신데 당연히 신전으로 돌아오시겠죠.”

장난식으로 대답하는 데이릭을 흘겨보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고는 나를 신전 입구까지 배웅해 주었다.

“그럼 다음에 오실 때는 고양이 톰을 찾으셨길 바라죠.”

“그럼 좋겠네.”

간단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이미 내가 탈 마차가 신전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작은 아가씨! 늦으셨어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이제 막 스물두 살이 된 아니타가 나를 발견하고는 재잘거렸다.

“고양이가 없어졌다고 해서 찾다가 늦었어.”

“고양이요?”

여전히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아니타의 모습이 천진해 보여 나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응. 톰이라는 고양이래. 보육원 아이가 찾더라고.”

“저런. 빨리 찾았으면 좋겠네요. 그래도 다음부턴 그런 일은 저한테 맡기세요.”

“아냐, 내가 찾아 주고 싶어서 그랬어.”

“작은 아가씨…….”

아니타는 감동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괜히 멋쩍은 기분이 들어 마차에 올라탔다. 곧 아니타가 뒤따라 마차에 올랐다. 마부는 우리가 모두 자리를 잡고 앉은 것을 확인하고 곧 마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라이튼 대공가로 들어서자 칼리나를 비롯한 하녀들이 나를 반겼다.

“오셨습니까, 작은 아가씨?”

“응. 별일 없었지?”

내가 익숙하게 인사를 받으며 칼리나에게 묻자, 칼리나가 미소를 지었다.

“손님이 와 계십니다.”

“손님? 누구?”

약속이 따로 되어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짐작가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아가씨 친구분이요.”

“아, 제프리가 왔구나?”

“네.”

금세 알아차리고 픽 웃었다. 오랜만의 복귀였다.

나는 가벼운 걸음으로 제프리가 기다리고 있을 응접실로 향했다.

똑똑, 칼리나가 응접실 문을 두드렸다.

“크라이튼 소공녀님께서 오셨습니다.”

칼리나는 말을 마치고 문을 열어 주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눈에 익은 은발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제프리는 나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라벨.”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온 제프리가 반가움의 표시로 나를 가볍게 포옹했다. 짧게 안았다가 멀어진 제프리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간 잘 지냈어?”

어렸을 때와는 달리 조금 낮고 굵어진 목소리로 제프리가 물었다. 나는 소파에 앉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 지냈지.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넌 잘 지냈어? 다친 곳은 없고?”

“나야 뭐.”

제프리가 어깨를 으쓱 추어올렸다. 겉으로 보기에 확실히 멀쩡해 보였다.

“다행이네. 그래도 손 줘 봐.”

제프리는 내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나한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곧 신력이 소량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눈을 뜨니 하얀빛이 제프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러더니 빛은 금세 제프리에게 흡수되어 사라져 버렸다.

“어때?”

“훨씬 좋은데? 매번 성녀님한테 개인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니, 영광인걸.”

장난식으로 말을 거는 제프리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러다 문득 제프리의 머리로 시선이 갔다.

“머리는 여전히 기르고 있네?”

처음 만났을 때의 제프리는 장발이 아니었는데, 지금 제프리는 눈부신 은발을 길게 기르고 있었다.

내가 머리칼을 살피며 묻자 제프리가 어색하게 뺨을 긁적였다.

“안 어울려? 자를까?”

어색한 손만큼이나 제프리의 질문이 멋쩍고 뻣뻣했다. 이렇게나 자르기 싫은 티를 내면서 묻는 것이 우스워 나는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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