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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13)화 (113/174)
  • 113화

    내가 듀아나 신전의 성녀로 정식 임명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퍼지자 침체되었던 크라이튼 대공가는 다시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마치 다니엘과 있었던 일들을 잊어버리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다니엘에 대한 처분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다니엘 크라이튼이 대공 각하를 공격한 것이 사실입니까?”

    황실에서 파견된 조사관이 우리를 불러 놓고 다니엘과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니엘은 이미 며칠 전에 황실로 인계가 된 상태였다.

    크라이튼 대공은 아직 어린 내가 조사관과 대화하는 것을 원치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누구보다 다니엘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나였기 때문에 나는 조사관과 대면하여 그간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다행히 조사관이 나를 조사할 때, 어떻게 알았는지 플레온 사제와 라이넬 사제가 동행하고 있었다.

    “네, 사실이에요.”

    나는 조사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미 그가 들고 있는 수첩은 저택에서 조사한 내용으로 빼곡했다.

    “웬만해서는 내 하나뿐인 동생이라 용서해 주었겠지만, 이번 일을 겪어 보니 다니엘의 죄질이 매우 무겁다고 느꼈네. 증거와 증인이라면 우리 크라이튼 대공가와 듀아나 신전에서 차고 넘치게 제출하였으니 그것으로도 부족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게.”

    크라이튼 대공이 혹시나 다니엘을 처벌하기 위한 증거가 부족할까 싶어 걱정하는 눈치로 조사관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이미 충분합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지금은 확인을 위해 모든 분들의 증언을 수집하는 과정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사관은 손사래를 치며 크라이튼 대공에게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그럼 다니엘의 처분은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 있겠나?”

    “예. 이건 아직 내부에서 말이 오가는 중이기는 합니다만, 아무래도 크라이튼 대공가에 해를 끼치려 한 점이나 불순한 의도로 사병을 키운 점, 그리고…….”

    조사관이 흘긋 플레온 사제와 라이넬 사제를 확인했다. 그러더니 끊겼던 말을 다시 이었다.

    “사특한 힘을 손에 넣어 제국을 혼란하게 만들려 했던 점을 인정받아 형벌 또한 무겁게 내려질 겁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크라이튼 대공가를 습격한 일 외에는 모두 미수로 끝난 일이기에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는 얘기는…….”

    크라이튼 대공이 인상을 쓰며 조사관을 향해 운을 떼었다. 그러자 조사관이 난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리 미수로 끝났다고 해도 그 정도라면 평생 감옥 밖을 나올 수는 없을 겁니다.”

    조사관은 말을 하며 크라이튼 대공의 눈치를 살폈다. 크라이튼 대공은 그제야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겠네. 더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묻게.”

    크라이튼 대공이 허락을 내리자 조사관이 그간 조사한 내용들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다니엘 크라이튼이 어떻게 악룡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는지 아십니까?”

    조사관의 마지막 질문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정확한 경위는 몰라요. 다만 확실한 건 작은할아버지께서는 그 힘을 스스로 얻은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빼앗은 힘이라는 거예요.”

    “그럼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아십니까?”

    조사관이 내 말을 빠르게 받아 적으며 되물었다. 나는 플레온 사제와 라이넬 사제를 바라보았다.

    아마 내가 지금 이곳에서 데이릭의 이름을 꺼낸다면 데이릭 역시 무사하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아직 데이릭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진해서 신전으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신전에서 느껴지는 신력이 불편하고 괴롭게 느껴질 텐데도 협조적으로 나와준 그의 이름을 대는 게 맞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플레온 사제와 라이넬 사제는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내 결정을 존중해 주겠다는 듯한 의미로 보였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이내 조사관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조사관은 내가 고개를 도리질하는 것을 확인한 후 순순히 수긍했다.

    “예, 그럼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대공 각하, 그리고 소공녀님.”

    조사관은 마지막까지 메모를 꼼꼼하게 한 후 수첩을 재킷의 안쪽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그러고는 우리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닐세.”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사관이 인사를 마친 후 저택을 나섰다. 크라이튼 대공과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더는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서로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세요?”

    나는 크라이튼 대공을 향해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동생을 고발하여 처벌해 달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였다. 그동안 크라이튼 대공은 다니엘을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신뢰가 하루아침에 깨져 버렸다. 그것도 최악의 방향으로.

    그 모든 일을 겪은 크라이튼 대공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괜찮다, 미라벨.”

    크라이튼 대공이 희미하게 웃었다.

    * * *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 다니엘의 처분에 대한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법원으로 향했다.

    황실에서 운영하는 법원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다니엘의 처분이 어떻게 날지 구경 나와 있었다.

    사건의 관계자이며 피해자인 우리는 재판을 가장 앞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크라이튼 대공의 옆에 앉아 크라이튼 대공의 손을 잡아 드렸다.

    조사관의 말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가 불법으로 사병을 모았던 점이나 크라이튼 대공을 습격한 일은 큰 죄였기 때문에 혹시나 그가 풀려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하나하나가 무시할 수 없는 죄목이었다. 아무리 그 외의 것들이 미수로 끝났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사형까지도 내려질 수 있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으니 다니엘이 법정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간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지 기름지던 얼굴이 초췌해져 있었다. 그러나 동정심은 조금도 가지 않았다. 그의 자업자득이었다.

    다니엘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며 눈을 부라렸다. 독기가 오른 눈이 매섭게도 보였으나, 어차피 그뿐이었다.

    악룡의 힘을 모두 소진한 그가 무서울 리 없었다.

    그러나 다니엘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난 것인지 사람들은 다니엘을 보며 겁에 질려 수군거렸다.

    반면, 크라이튼 대공은 다니엘을 보는 순간 주먹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나를 잡은 손에도 절로 힘이 들었다.

    “앗.”

    세게 조여 오는 통증에 낮게 신음하자 뒤늦게 크라이튼 대공이 놀라서 내 손을 놓아 주었다.

    “미안하구나. 많이 아프냐?”

    “아니에요.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실제로도 괜찮았기 때문에 어깨를 으쓱 추어올렸으나, 크라이튼 대공은 매우 미안해하며 내 손을 감싸 쥐었다.

    그때 따가운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당연하게도 시선의 당사자는 다니엘이었다. 다니엘은 우리를 씹어 먹을 듯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밉겠지. 다니엘의 모든 계획이 14년 뒤가 아닌 지금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그리고 최고의 결과이기도 했다.

    나는 뿌듯하게 웃으며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다니엘이 이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조금 더 기다리고 있으니 황제 폐하를 비롯해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 착석한 후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를 들춰 보았다.

    “오늘 다니엘 크라이튼의 죄를 묻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황제가 착석하고 나자 법정에 있던 조사관 한 명이 입을 열어 선언하듯 말했다.

    “다니엘 크라이튼은 악의 힘을 손에 얻어 불순한 계획을 꾀하려던 죄, 허가 없이 사병을 모집한 죄, 크라이튼 대공 각하에게 상해를 입힌 죄를 물어 이 자리에 올랐습니다”

    조사관이 확실시된 다니엘의 죄를 언급했다.

    “다니엘 크라이튼, 이를 인정합니까?”

    조사관이 묻자 다니엘이 눈을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에게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순순히 인정할 리가 없는 질문이었다.

    “대답하지 않겠다면 증거와 증인을 제시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증인으로 안에 들어온 것은 바든이었다.

    “바든 케드윅으로, 다니엘의 수족이 되었던 자입니다. 바든 케드윅, 자네가 본 것을 모두에게 낱낱이 고하게.”

    바든이 크라이튼 대공의 눈치를 한 번 살피고 크라이튼 대공을 확인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사관의 말이 맞습니다. 다니엘 님께서는 사병을 모으고 대공 각하를 악의 힘으로 공격하였습니다.”

    바든의 말이 끝나자 다시 법정이 소란스러워졌다.

    “이제라도 대공 각하께 사죄드립니다. 대공가의 일원으로 대공 각하와 그 가족분들께 성심을 다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나 오랜 정에 이끌려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바든은 우리를 바라보며 깊이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그러나 그가 진심으로 우리에게 사과하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만일 그의 말이 진심이라면,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방치하지 않았겠지. 언제고 다니엘의 만행을 크라이튼 대공에게 알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제 와서 그때의 선택을 후회한들 이미 기회는 없어진 후였다.

    바든의 말이 끝났음에도 다니엘은 말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입술을 움직여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그 소리가 너무 작아 들리지 않았다.

    “다니엘 크라이튼?”

    조사관이 다니엘의 말에 의아함을 느끼고 그를 확인했다. 그때였다.

    “……수는 없어!”

    희미한 악룡의 기운이 그의 주변에 휘몰아쳤다. 조사관은 황급히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고, 구경을 온 사람들 역시 몸을 숨겼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의 몸에 남아있는 악룡의 기운은 극소량의 양일 뿐이라는 것을.

    그 정도의 양으로는 누군가를 위협할 만한 힘을 낼 수 없을 터였다.

    설령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가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만한 정도의 힘이었다.

    [악한 자의 말로구나.]

    비브르가 다니엘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서 다니엘 크라이튼을!”

    제국 기사단인 라이언 기사단 단장이 외쳤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라이언 기사단이 칼을 빼 들어 다니엘을 향해 달려갔다. 그 일사불란한 모습이 마치 극을 보는 듯했다.

    한순간에 여러 자루의 검이 제 목을 향하자 다니엘이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가 중얼거리는 말이 무슨 말인지 분명히 들려왔다.

    “너만 아니었으면……!”

    원망 가득한 다니엘의 시선이 이어졌다.

    “아가, 보지 말거라.”

    크라이튼 대공은 손으로 내 눈을 가리며 말했다.

    “보아서 좋을 게 없다. 괜히 널 여기까지 데려왔구나.”

    크라이튼 대공이 작게 사과하며 말했다.

    “나가자꾸나. 이곳은 황실에서 수습할 게다.”

    “네.”

    크라이튼 대공이 나를 안아 들고 법정 밖으로 향했다. 나는 크라이튼 대공에게 안긴 채 멀어지는 다니엘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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