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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12)화 (112/174)

112화

“네, 어떤 건가요?”

나를 기다렸다는 바론 대주교의 말에 두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일단은 다니엘 크라이튼에 대한 겁니다.”

바론 대주교의 말을 듣고 잠시 크라이튼 대공을 확인했다. 크라이튼 대공은 생각이 많은 얼굴로 고개를 숙여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한때는 믿고 있었던 동생이기에 마음을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듯했다.

“대공 각하께 들으니 어제 많은 일이 있었더군요. 대공 각하께서 그자를 황실로 인계하여 법대로 처리하겠다 하셨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바라건대 다시는 그자가 못된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선처 없이 진행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바론 대주교가 크라이튼 대공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만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크라이튼 대공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잘 알겠습니다. 저 역시 제 가족들을 잃을 뻔한 일이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혹 증인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신전에 증인으로 설 자들이 몇 있습니다.”

“신전에서 도움을 준다면 재판에서도 신뢰를 얻을 수 있겠죠.”

크라이튼 대공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바론 대주교도 이를 보았기 때문인지 더는 크라이튼 대공에게 다니엘의 처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바론 대주교가 평소와 같이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음은 미라벨 님에 대한 것입니다.”

“저요?”

내가 당황해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자 바론 대주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슬며시 다른 사제들을 훑어보았다. 다들 미소를 짓고 있는 게 모두들 내용을 아는 것 같았다.

“어떤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대주교님?”

“성녀님.”

내용을 물었더니 바론 대주교가 나를 불렀다. 차분한 목소리였으나 나를 지칭하는 말이 바뀌어 있었다. 다니엘을 처리하기 전, 평소 회의 때 불렀던 것과 마찬가지로 ‘성녀’라는 호칭을 사용한 채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크라이튼 대공을 확인했다.

이미 내가 성녀로 정해졌다는 것을 알린 적이 있었음에도 괜히 비밀을 들킨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린 탓이었다.

다행히 크라이튼 대공은 내가 어제 꺼냈던 말을 기억하고 있는 건지 ‘성녀’라는 호칭에도 놀라지 않았다.

나는 괜히 멋쩍은 기분이 되어 어색하게 웃었다.

“대주교님, 성녀라고 안 하셔도 돼요. 이제 앞으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내가 바론 대주교를 향해 말하자 그가 더욱 짙게 미소를 띠었다.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성녀님은 수호룡 비브르의 선택을 받은 분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일이 끝났다고 성녀님을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가요?”

얼굴이 괜히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네. 이번에 기다리고 있던 것도 그 일 때문입니다.”

그 일이라고 하면 방금 나를 성녀로 부른 일 외에는 따로 짐작이 가는 것이 없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플레온 사제를 바라보자 플레온 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라벨 님, 부디 계속 우리 듀아나 신전의 성녀로 있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바론 대주교가 나를 향해 말했다.

물론 그들의 말대로 비브르가 나를 선택하여 성녀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나 다니엘을 잡는 것에 동의해서 여기까지 온 거지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원래 성자의 자리는 플레온의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플레온의 역할을 대신하여 다니엘의 계획을 막기 위해 내가 임시로 성녀가 되었을 뿐이었다.

“제가 그래도 되나요?”

나는 플레온을 확인하며 물었다.

원래 자리의 주인이 플레온이었으니 플레온의 의견을 구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플레온 사제는 주름진 눈을 휘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걱정되시는 거군요.”

플레온 사제가 확답을 구하듯 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원래 성자의 자리는 플레온 사제님의 것이잖아요.”

내가 말하자 플레온 사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비브르 님께 선택을 받아 무사히 악룡 크립소의 부활을 막은 건 성녀님이지 않습니까.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성녀님은 정말 친절하시군요. 하지만 저는 성녀님을 보좌하는 것 이상은 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수락하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네.”

내가 수긍하자 회의실에 박수 소리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사제들이 나를 축하하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는 괜히 멋쩍은 기분이 들어 수줍게 웃었다.

“그래서 곧 성녀로서의 임명식을 준비할까 합니다. 대공 각하, 각하께서도 괜찮으신가요? 아직 미라벨 님께서 어리시니 아무래도 보호자 분께 확인은 마쳐야 할 것 같아 말씀을 드립니다.”

“손녀가 성녀가 된다는데 싫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미라벨이 원하고 있는 것을요.”

크라이튼 대공은 기꺼워하며 바론 대주교에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는 모두 신전에서 담당할 겁니다. 성녀님께서는 당일에 저희가 보내 드리는 마차를 타고 오시면 됩니다.”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는 흔쾌히 수긍하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내가 감사 인사를 하자 다들 흐뭇하게 바라봤다.

바론 대주교 역시 다른 이들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자, 아무래도 바쁘신 분들을 저희가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 같군요.”

“아닙니다. 저희가 찾아온 거니 괜찮습니다. 그래도 돌아가긴 해야 할 것 같군요.”

크라이튼 대공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 역시 그와 같은 타이밍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여신님의 은총이 깃들기를.”

짧게 인사를 마치고 신전을 나왔다.

신전으로 올 때와는 달리 그래도 돌아가는 길에는 크라이튼 대공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피어 있었다.

저택으로 돌아왔다. 아직 보수되지 않은 중앙 계단이 어제 있었던 일을 증명해 주는 듯했다.

크라이튼 대공은 잠시 계단을 바라보다 이내 나를 데리고 1층의 응접실로 데려갔다.

“모두를 이리로 소집해 오게.”

집사를 향해 지시하자 집사가 크라이튼 대공에게 고개를 숙였다.

“예, 대공 각하.”

“그래, 미라벨, 뭐 먹고 싶은 건 없느냐?”

“전 괜찮아요! 아침도 먹었잖아요.”

“아침을 먹었어도 신전에 다녀오느라 힘이 빠졌을 텐데,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뭐든 말하렴.”

“생각나면 말씀드릴게요.”

“그래, 그래.”

대답을 마친 크라이튼 대공이 하녀에게 말해 평소 내가 자주 먹던 간식들을 내오라 일렀다.

그 뒤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가족들이 응접실에 모였다.

어제 다니엘과 있었던 상황을 직접 겪은 브라이언과 엘리엇은 말이 없었고, 엄마는 그런 우리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부르셨어요?”

“그래, 코넬리아. 기쁜 소식이 있어 불렀단다.”

“기쁜…… 소식이요?”

엘리엇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작은 소리로 되물었다.

크라이튼 대공은 엘리엇을 보고 작게 웃음을 흘렸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으니 너희들 역시 마음이 안 좋겠지. 그래. 나도 마찬가지란다. 가족이라 믿었던 다니엘이…….”

잠시 말끝을 흐렸던 크라이튼 대공이 애써 웃으며 뒷말을 이었다.

“그래도 언제까지 우울해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게다가 오늘 듀아나 신전을 찾았다가 좋은 소식을 접하고 오는 길이란다.”

“좋은 소식이라면 어떤 겁니까, 대공 각하?”

브라이언이 물었다. 크라이튼 대공은 질문 잘했다는 듯 브라이언과 눈을 맞추며 대답했다.

“미라벨이 성녀의 능력을 갖고 있어 다니엘을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을 들었지?”

“네. 그건 들었습니다.”

“그래. 오늘 대주교께서 미라벨에게 정식으로 성녀가 되는 것을 제안하셨단다.”

“미라벨이요?”

“그게 정말이에요, 아버지?”

크라이튼 대공의 말이 끝나자 모두가 크게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어쩐지 민망해서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겠느냐?”

“당연히 그럴 리 없죠, 아버지. 맙소사. 정말 우리 벨이 성녀가 되는 거군요.”

엄마가 나를 돌아보며 작게 탄성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기특하다는 듯 나를 향해 두 손을 벌렸다.

나는 기꺼이 엄마의 품에 안겼다.

따뜻한 엄마의 품에 안기니 마음도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그런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어 넘겨 주었다.

“엄마 모르는 새 많이 컸네, 우리 딸. 그래도 그런 어려운 일을 하고 있었으면 엄마한테는 말을 해 주지. 우리 벨이 힘들어하는 걸 엄마는 몰랐잖아.”

귓가에 닿는 엄마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괜히 응석을 부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러면 엄마가 더 걱정할 것을 알아서 포기했다. 대신 엄마에게서 조금 떨어진 후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그래. 알았어.”

“벨, 진짜 성녀가 되는 거야?”

이어서 엘리엇이 내게 질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응. 바론 대주교님께서 제안해 주셨어. 나도 좋아서 그러기로 했고.”

“잘됐다. 축하해, 벨!”

“축하한다, 조카야.”

엘리엇과 브라이언이 나를 향해 축하의 말을 건넸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오빠도 고마워.”

내가 감사의 말을 꺼내자 모두가 즐거운 듯이 웃었다. 적어도 지금 순간만큼은 어제 다니엘과 있었던 일들을 잊어버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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