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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10)화 (110/174)
  • 110화

    다음 날이 되어 저택에서 다니엘과 있었던 이야기를 신전에 전달하기 위해 아침 일찍 나왔다.

    마차를 타기 위해 현관으로 향하는 나를 향해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몸을 돌려 확인해 보니 크라이튼 대공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할아버지? 어디 가시는 길이에요?”

    크라이튼 대공 역시 어디 가는 길인가 해서 물어보았다. 크라이튼 대공은 내 옆으로 오더니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신전으로 가는 길이냐?”

    “네. 어제 있었던 일을 신전에 알리려고요.”

    “그럼 나와 가자꾸나. 안 그래도 확인해야 할 것이 있으니.”

    “같이요?”

    나는 크라이튼 대공이 나와 함께 듀아나 신전으로 향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크라이튼 대공은 내가 놀라는 것을 보고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싫다면 강요하지는 않으마.”

    “아니에요. 전 상관없어요. 같이 가요, 할아버지.”

    어차피 다니엘이 판매한 브로치의 처리나 데이릭 수색의 협조를 위해서는 크라이튼 대공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크라이튼 대공이 나와 함께 듀아나 신전으로 가 주겠다고 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크라이튼 대공을 향해 손을 내밀자 크라이튼 대공이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나는 크라이튼 대공을 이끌 듯 현관 앞으로 나왔다. 이미 내가 탈 마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크라이튼 대공은 나를 번쩍 들어 내가 편히 마차에 탈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는 뒤이어 마차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그럼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출발 준비를 마치고 마부가 창을 통해 출발 준비를 아뢰었다.

    “출발하게.”

    크라이튼 대공이 허락을 내리자 마차가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어제 미라벨 네가 말한 건 다 지시를 해 두었단다. 일단은 저택 내에서 브로치를 착용한 사람을 모두 찾아내어 회수했고, 그 데이릭이라는 아이를 찾으라 했다.”

    “감사해요, 할아버지.”

    “그래. 내가 몰랐던 탓에 문제가 되었으니 내가 수습해야지.”

    크라이튼 대공이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니엘의 일이 자신의 과오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많이 상심하셨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오히려 미라벨 네가 속으로 혼자 앓았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구나.”

    크라이튼 대공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 듀아나 신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크라이튼 대공과 내가 마차에서 내리자 사제들이 우리의 앞으로 와 인사했다.

    “듀아나 여신님의 은총이 깃들기를. 어서 오십시오, 대공 각하, 그리고 소공녀님.”

    “여신님의 은총이 깃들기를.”

    우리는 사제들에게 간단하게 인사하고 난 후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익숙한 길이었기에 사제들의 안내는 필요치 않았다.

    신전 내부로 들어가니 플레온 사제가 다른 사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먼저 알은체를 하기도 전에 플레온 사제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인사했다.

    “오늘은 두 분이 어쩐 일이신지요?”

    크라이튼 대공이 함께 온 것을 의아하게 여긴 플레온 사제가 질문했다.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 추어올렸다.

    “다른 사제님들께도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회의를 소집해주세요.”

    “회의를요?”

    플레온 사제는 크라이튼 대공의 눈치를 한번 살피고는 나를 똑바로 주시했다.

    이유를 묻는 듯한 눈치였다.

    “제 작은할아버지……와 연관된 일이에요. 할아버지도 이제는 아시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내가 짧게 설명하자 플레온 사제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일단 회의실로 가시죠.”

    플레온은 우리를 회의실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신전의 대회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플레온은 회의장에 도착하자 대사제들을 호출했다.

    나는 크라이튼 대공을 평소 내가 앉던 자리 옆에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한 후 자리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사제들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라이넬 사제와 함께 제프리도 안으로 들어왔다.

    “미라벨!”

    제프리가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나를 불렀다.

    “제프리, 네가 여기는 무슨 일이야?”

    신전 보육원에서 데이릭이 돌아오는 걸 기다리기로 되어 있던 제프리가 대회의실까지 들어온 게 의문이었다.

    “내가 저기 있는 사제님께 졸랐어. 네가 오면 꼭 만나게 해 달라고. 너한테 해 줄 말도 있고.”

    “아, 그랬구나.”

    어떤 상황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너도 일단 앉아.”

    이미 제프리 역시 상황을 알고 있기도 했고, 라이넬 사제가 데려왔을 정도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아 제프리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십니까? 안 그래도 데이릭 모어에 관련된 일로 찾아뵈려 했습니다만, 혹시 먼저 소식을 접하신 것은 아닌지…….”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그런데 다른 중요한 일이 있었어요. 그걸 말씀드리려고 모두 호출한 거예요.”

    “중요한 일이요?”

    “네.”

    나는 대답을 마치며 슬쩍 크라이튼 대공을 바라보았다. 크라이튼 대공은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내 말을 이었다.

    “내 동생 다니엘이 악룡의 힘을 부활시키려 했다는 얘기를 미라벨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크라이튼 대공의 질문에 대답한 건 바론 대주교였다.

    “어제 저택에서 다니엘과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포박해 지하 감옥에 가두었죠.”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크라이튼 대공의 말에 회의실이 술렁였다.

    크라이튼 대공은 천천히 사제들을 둘러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다니엘이 악룡의 힘을 사용하여 나를 공격하고, 내 아들 브라이언을 조종하여 나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미라벨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죽었을 겁니다.”

    “그런…….”

    사제들은 상황을 대략적으로 눈치채고는 작게 탄식을 터트렸다.

    “미라벨 님은 괜찮으십니까? 다치신 곳은……!”

    라이넬 사제가 황급히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라이넬 사제의 걱정이 왠지 민망해서 작게 웃었다.

    “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다쳐도 치료할 신력을 갖고 있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다치지도 않았고요.”

    브라이언과의 전투로 인해 근육통을 얻기는 했지만, 신력을 사용하여 이를 회복한 지 오래였다.

    “정말 다행입니다.”

    라이넬 사제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간신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쨌든 그 일이 있은 후로 미라벨에게 대강의 이야기들은 들었습니다. 미라벨이 성녀인 것도, 그리고 다니엘이 그간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도 말이죠. 그래서 확인하고자 이곳에 방문한 겁니다.”

    크라이튼 대공의 말이 끝나자 바론 대주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오셨습니다.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 거라면, 잠시 후 자리를 옮겨 제가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론 대주교의 말에 크라이튼 대공이 수긍했다.

    “중요한 건 작은할아버지가 갖고 있는 악룡의 힘이 어제의 일로 대부분 소모되었고, 남은 건 데이릭뿐이라는 거예요.”

    내가 꺼낸 말에 다들 집중했다.

    “데이릭이라면 신전에 있습니다.”

    “네?”

    내 말을 받아친 건 플레온 사제였다. 내가 당황해서 그를 바라보자 그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이를 알고 이렇듯 찾아오신 줄 알았는데 아니셨군요.”

    “네. 전혀 몰랐어요. 어떻게 된 거예요?”

    내가 설명을 요구하자 플레온 사제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어제 새벽의 일입니다. 사라졌던 데이릭 모어가 자신의 발로 신전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가지 요구를 하면서요.”

    “어떤 요구요?”

    데이릭이 어떻게 신전으로 돌아오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경위에 대해서는 천천히 물어보기로 하고 당장 궁금한 것을 플레온에게 물어보았다.

    “미라벨 님을 뵙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미라벨 님을 만나 뵌 후에 신전 보육원에서 지낼지 말지를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데이릭이요?”

    “네.”

    나를 왜?

    알 수 없는 데이릭의 언행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혹시 알고 있었는가 해서 제프리를 돌아보았다.

    제프리는 일단 데이릭이 돌아오기까지 신전에 머무르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맞아. 나도 새벽에 데이를 만났어.”

    “데이가 혹시 뭐라고 했어?”

    “널 만나고 싶대. 자길 이곳으로 데려오고 싶어 했던 것도 미라벨 너니까, 널 만나서 결정하고 싶댔어. 내가 전하고 싶었던 말도 그거였고.”

    이제야 아귀가 맞아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데이릭이 어떻게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것인지.

    그래도 내 말을 잊지 않고 신전으로 돌아와 준 데이릭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럼 지금 당장 데이릭한테 가 볼게요. 어디 있는지 안내해 주실래요?”

    “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라이넬 사제가 기꺼이 내 부탁에 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잠시 크라이튼 대공을 바라보았다.

    “잠깐 다녀올게요, 할아버지.”

    “그래. 나 역시 대주교님과 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 이따 보자꾸나.”

    크라이튼 대공이 부담을 느끼지 말라는 듯 가볍게 눈짓을 해 주었다.

    나는 크라이튼 대공에게 짧게 고개를 끄덕인 후 곧장 라이넬 사제에게로 다가갔다. 제프리 역시 금세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안내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라이넬 사제를 따라 회의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한 번 가 본 적 있는 길을 지나 듀아나 신전의 보육원으로 향했다.

    보육원에는 아침부터 많은 아이들이 밖으로 나와 놀고 있었다. 그리고 등나무로 둘러싸인 휴식터 아래에 데이릭이 혼자 앉아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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