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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09)화 (109/174)

109화

대략적인 상황을 털어놓고 난 후, 크라이튼 대공과 브라이언은 상황을 믿기 어려운 듯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눈앞에서 다니엘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두 확인한 까닭이었다.

무형의 힘을 사용하여 크라이튼 대공을 공격하고, 또 브라이언을 조종한 것까지.

내 설명이 아니었다면 상식적으로 풀이가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니엘에 대한 제대로 된 처분이 필요하겠구나.”

크라이튼 대공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구보다 내가 제일 원하는 결론이었다.

“꼭…… 부탁드릴게요.”

나는 크라이튼 대공을 향해 부탁했다. 만일 다니엘을 풀어 준다면 똑같은 일이 또 반복될지도 몰랐다. 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를 누구보다 깊게 소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뭐든 얘기해 보렴.”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겠다는 듯이 푸근한 미소를 띠고 돌아보는 크라이튼 대공을 보며 나도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곧 꺼낼 이야기가 그리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소를 풀어냈다.

“다름이 아니라 조금 전 제가 언급했던 그 데이릭 모어가 사라졌어요.”

“그 아이가?”

“네. 제가 듀아나 신전의 사제님과 함께 데이릭을 데리러 갔는데, 그 사이에 작은할아버지를 따르는 이들이 데이릭을 납치했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도 실종이 되어서…….”

다니엘은 저지했지만, 결과적으로 악룡을 부활시킬 수 있는 존재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악룡의 씨앗인 데이릭이었다.

이미 데이릭은 다른 사람을 악룡의 힘으로 조종할 정도의 힘을 각성한 상태였다.

린제이 사제라면 듀아나 신전에서도 중간급은 되는 사제이기 때문에 다니엘 정도의 힘으로는 쉽게 지배하지 못했을 존재였다. 그런데 데이릭은 린제이 사제를 지배하여 듀아나 신전에서 도망을 친 전적이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데이릭이 지금 사용할 수 있는 힘이 다니엘보다도 월등히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현재로서는 아직 데이릭이 악룡을 부활시킬지 어떨지는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 우리와 듀아나 신전의 시선 안에서 그를 보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될 터였다.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데이릭을 찾아야만 했다.

“듀아나 신전에서 이미 데이릭을 찾기 위해 사람을 풀기는 했지만, 대공가에서도 데이릭을 찾아 주시면 안 될까요?”

크라이튼 대공을 간절히 바라보았다. 이건 신전의 일이기도 했지만, 미래를 앞서 본다면, 제국 전체의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 크라이튼 대공이 내 부탁을 들어주길 속으로 기도했다.

크라이튼 대공은 손을 뻗어 내 작은 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내 손등을 덮쳐 왔다.

손을 확인했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크라이튼 대공을 바라보니 크라이튼 대공이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하마. 그 아이는 어떻게 생겼니?”

“남색 머리에 눈은 금색 아니면 보라색이에요.”

“금색 아니면 보라색?”

크라이튼 대공이 의아해하며 중얼거렸다.

“네. 데이릭의 눈 색이 변해요. 그러니까 두 가지 경우 모두 염두에 두고 찾아야 해요. 처음에 듀아나 신전에서 그걸 몰라서 헤맸거든요.”

“그런 일이 있었군. 알겠다.”

크라이튼 대공은 더 묻고 싶은 게 많은 얼굴이었지만, 일단은 수긍하며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나는 크라이튼 대공의 미소에 화답하며 같이 미소를 지었다.

[미라벨, 가능하다면 하나 더 부탁을 하는 게 좋겠다.]

대화를 잠자코 지켜보던 비브르가 내게 조언했다.

‘어떤 거?’

내가 의아함에 고개를 들자 비브르가 첨언했다.

[일전에 말한 그 브로치 말이다. 저택의 사람들 중 그 브로치를 구매한 이들에게서 브로치를 거두어들이고, 가급적이면 외부에서도 회수하여 폐기하는 게 좋겠구나.]

‘아, 그 브로치.’

다니엘이 무언가 암시를 심어서 판매하고 있다는 브로치가 뒤늦게 생각났다.

비브르는 그 브로치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걸 묻는 건 나중에 해도 될 것 같았기에 우선 크라이튼 대공을 향해 다시금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하나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래. 얼마든지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말고 말하렴.”

다행히도 크라이튼 대공은 내 부탁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할아버지께서 사업차 만들고 있던 브로치가 있어요. 원 두 개가 겹쳐 있는 모양인데 이렇게 생겼어요.”

크라이튼 대공이 알아보기 편하도록 나는 손을 사용해 테이블에 브로치의 문양을 손가락으로 그렸다.

“아아, 그래. 안단다. 매일 다니엘이 하고 있던 그 브로치구나.”

내 설명과 그림을 확인한 크라이튼 대공이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 크라이튼 대공의 말대로 다니엘이 매일 옷깃에 하고 있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그걸 모두 회수해 주세요. 일단은 저택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서요. 그다음에는 제국민들이 구매한 브로치를 모두 회수하셨으면 해요.”

“그건 왜인지 물어도 되니?”

“그 브로치에 작은할아버지가 무슨 암시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아무래도 좋은 의도로 하신 것 같지는 않으니 일단 회수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흠.”

내 말에 크라이튼 대공이 잠시 생각하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이내 수긍했다.

“좋다. 여길 나가는 대로 바로 지시하도록 할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말거라.”

“감사합니다.”

나는 크라이튼 대공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크라이튼 대공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 어깨를 가볍게 도닥거려 주었다.

“그럼 저는 이만 올라가서 쉬어도 될까요? 많은 일이 있어서 그런지 좀 피곤해서요.”

확답을 들은 후 응접실에 있는 모두에게 물었다. 크라이튼 대공과 브라이언, 그리고 엘리엇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렴. 우리가 널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구나.”

“어서 올라가서 쉬거라, 벨.”

“푹 쉬어.”

세 사람의 인사를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곧장 응접실을 나와 중앙 로비가 아닌 왼쪽 끝에 위치한 계단을 올라갔다. 중앙 계단은 다니엘 때문에 일부가 부서져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3층 내 침실로 들어간 나는 곧장 침대에 몸을 실었다.

다니엘을, 정확히 말하면 다니엘에게 조종당하는 브라이언과의 전투가 너무 긴장이 되었던 건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피로가 물밀 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있으니 피로가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 정말 고생했다, 미라벨.]

그런 내게 비브르가 수고의 말을 건넸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비브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데이릭만 찾아서 보호하면 이 일도 끝나는 거겠지?’

[그럴 거란다.]

‘근데 그래서 브로치에는 어떤 암시가 걸려 있는 거야?’

[지배의 힘이었단다.]

‘지배?’

악룡의 힘에 지배당하던 브라이언을 떠올리고 몸을 잘게 떨었다. 또다시 브라이언과 대적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설마 조금 전 숙부님 같은 그런 거야?’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다니엘의 힘을 분산 받은 자들이 사용하는 힘은 그리 강하지 않을 테니까. 다니엘조차도 지배의 힘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했으니, 그 아래라면 더더욱 약하겠지. 게다가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하는 상품에 그 정도로 섬세한 힘을 담을 수 있는 자는 드물단다.]

‘그건 다행이네.’

나는 괜히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껏해야 구매를 독려하거나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을 못 본 체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겠지. 적어도 내가 느낀 능력은 그랬단다.]

확실히 브로치를 이용해 구매를 독려하게 된다면 자금을 원활히 수급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된다면 병사들을 키우는 것도 수월할 테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허탈함에 작게 웃었다.

그럼 내가 죽었던 그 세상에서 다니엘이 크라이튼 대공가를 수월히 장악할 수 있었던 것에는 브로치의 힘 또한 작용했을 것 같았다.

‘이제 데이릭만 찾으면 정말 끝이네.’

[모두 미라벨 네 덕이란다. 네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빠르게 정리되지 못했을 거란다. 고맙다, 미라벨.]

비브르의 말이 어쩐지 낯간지럽게 느껴져서 나는 목을 움츠리고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근데 그러면, 우리도 헤어지겠네.’

내가 성녀로서의 일을 마치게 된다면 비브르와 더 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정도 들었고, 비브르와 대화하는 것도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니 계속 함께 있고 싶었지만, 신전이나 비브르가 생각하는 바는 다를 수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삼켰다.

비브르는 루비처럼 빨간 눈으로 나를 똑바로 직시했다.

어쩐지 서운해하는 것 같았다.

[나를 보내고 싶은 게냐?]

‘응?’

뜻밖의 말에 당황해서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자 비브르가 침대를 기어 내 앞에 똬리를 틀어 앉았다.

‘서운하구나. 그래도 네가 싫다면 그렇게 하마.’

시무룩한 비브르의 모습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아냐, 그게 아니라.”

[괜찮다, 미라벨. 네 마음은 충분히 알았단다.]

오해가 깊어지는 것 같았다. 오죽 당황했으면 육성으로 말해 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침실에는 나 혼자였기 때문에 비브르 외에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도 같이 있고 싶어. 하지만 내 역할이 끝났으니까 이제 헤어지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서 말한 거였어.”

[그럼…… 계속 내가 옆에 있어도 되겠느냐?]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비브르의 말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비브르는 내 말이 끝난 후 기쁜 듯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얼굴은 근엄한 듯 굳히고 있었지만, 꼬리에 기분이 절로 반영되는 모양이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비브르.”

[나야말로 잘 부탁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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