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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08)화 (108/174)
  • 108화

    다니엘과 마찬가지로 바든 역시 병사들의 손에 붙들려 지하 감옥으로 호송되었다.

    나는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레피드의 소환을 해제했다. 그리고 주변 상황을 확인했다.

    크라이튼 대공은 이제 막 몸을 일으켜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고, 브라이언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엘리엇은 브라이언을 살피고 있었다.

    이제야 다니엘을 처리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긴장감이 풀린 탓인지 다리에 힘이 빠져 버렸다.

    그대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후 숨을 돌렸다.

    “아가, 괜찮니?”

    크라이튼 대공은 내가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는 것을 확인하고는 재빠르게 나를 향해 다가왔다. 걱정을 가득 담은 시선을 받고 있으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저는 괜찮아요. 할아버지는 괜찮으세요? 아까 작은할아버지가 사용한 창에 배가…….”

    이미 내가 신력으로 치료를 마친 후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크라이튼 대공은 다니엘의 창이 박혔던 배를 매만졌다. 옷이 찢어져 너덜거리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멀쩡해 보였다.

    “괜찮은 것 같구나. 근데 대체 그게 무엇이었는지…….”

    크라이튼 대공이 고개를 돌려 다니엘이 끌려간 방향을 확인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신력을 통해 악룡의 힘을 보거나 느낄 수 있는 나와는 달리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크라이튼 대공은 그저 뭔지 모를 힘이 자신의 배를 관통했다는 것 말고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괜찮으시다니 다행이에요. 자세한 건 나중에,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그보다도 지금 숙부님께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계셔서 걱정이에요.”

    내 말에 크라이튼 대공이 뒤늦게 생각난 듯 브라이언을 확인했다. 브라이언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리는 게 방금 있었던 일로 인해 골이 많이 난 것 같았다.

    “저 고얀 놈이라면 놔두어라. 애비도 못 알아보고, 조카인 너도 못 알아본 것도 모자라 검을 휘두르지 않았느냐?”

    브라이언을 쏘아보는 크라이튼 대공의 시선이 매서웠다.

    나는 난처하게 웃으며 크라이튼 대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었던 거예요. 작은할아버지가 쓴 힘에 넘어가서.”

    “……그래. 원래대로라면 브라이언이 그럴 리 없겠지.”

    크게 한숨을 쉰 크라이튼 대공이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이것도 나중에 같이 설명을 해 줄 거니?”

    크라이튼 대공이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상황이 정리되고 숙부님도 정신을 차리고 나면 그때 말씀을 드릴게요.”

    “그래, 알았다. 그리고 미라벨,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란다.”

    크라이튼 대공의 안도에 나는 그를 잠시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눈물이 터질 것 같은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결국, 내가 모두를 지켰다.

    그 생각을 하니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치솟는 기분이 들었다.

    크라이튼 대공은 내가 울상을 짓자 잠시 멈칫거리더니 두 손을 펴 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내 등을 가볍게 도닥거려 주었다.

    크라이튼 대공의 위로는 무척이나 따뜻하고 감격스러웠다.

    나는 응석을 부리듯 크라이튼 대공을 마주 끌어안았다.

    “아버지! 정신이 드세요?”

    그때, 뒤에서 엘리엇의 목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크라이튼 대공을 안았던 손에 힘을 풀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 타이밍에 맞추어 크라이튼 대공 역시 나를 안은 손에 힘을 풀어 주었다.

    “으, 머리야.”

    브라이언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고는 한 손으로는 이마를 짚은 채 상체를 일으켰다.

    나는 크라이튼 대공과 눈을 마주친 후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것을 크라이튼 대공이 부축해 주어 무사히 일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브라이언을 향해 다가갔다. 브라이언은 그때까지도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숙부님?”

    “미라벨?”

    브라이언은 나를 확인하자마자 뒤늦게 두 눈을 크게 떴다.

    “아버지! 다치신 곳은……!”

    브라이언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떠올린 것은 크라이튼 대공의 부상이었다.

    악룡의 힘에 지배되던 브라이언을 크게 동요시킨 계기가 크라이튼 대공의 부상이었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나는 멀쩡하다, 이놈아.”

    크라이튼 대공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브라이언의 질문에 대답했다. 브라이언은 크게 안도하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다행입니다. 근데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얘기하자면 길어요. 그래서 그런데 자리를 옮기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여기서 말씀드리기엔 자리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요.”

    내가 조심스럽게 제안하자 브라이언과 크라이튼 대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브라이언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엘리엇은 브라이언이 편히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몸을 돌렸다. 이제는 좀 걸을 만해졌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려는데, 갑자기 몸이 허공으로 번쩍 올라갔다.

    “으앗!”

    너무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러 버렸다.

    “미안하다. 많이 놀랐니?”

    나를 안아 든 것은 크라이튼 대공이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조금 놀랐어요. 저 괜찮아요. 내려 주셔도 돼요.”

    나를 안아 든 크라이튼 대공을 향해 말했다. 혹시나 그가 힘들지 않을까 염려한 탓이었다. 그러나 크라이튼 대공은 허허 낮게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염려치 않아도 된다. 가자꾸나, 아가.”

    “……네.”

    나는 거절하는 대신 얌전히 크라이튼 대공의 품에 안긴 채 1층 메인 응접실로 향하게 되었다.

    응접실 안으로 들어온 크라이튼 대공은 나를 소파에 앉혀 준 후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브라이언이나 엘리엇 또한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러고는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을 가졌다.

    바로 말을 하려 했지만, 놀란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도 필요해 보였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숨을 돌리는 사이에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그래, 이제 설명을 들을 때가 된 것 같구나. 말해 주련? 지금까지 무슨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다니엘이 하는 말을 들으니 성녀가 언급된 것 같기도 했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더구나.”

    마음을 가라앉힌 크라이튼 대공이 나에게 질문했다. 나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낼까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은 작은할아버지께서 악룡을 부활시키려 하셨어요.”

    “악룡?”

    내 말에 엘리엇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소리를 높였다.

    “응. 악룡.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리는 거 알아. 하지만 사실이니까 일단 내가 얘기하는 걸 들어줘.”

    “……으, 응.”

    뒤늦게 민망했는지 엘리엇이 뺨을 긁적였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다가 다시 설명을 이었다.

    “작은할아버지께서 사용하신 힘들이 모두 악룡의 힘이에요. 작은할아버지는…… 데이릭 모어라는 아이에게서 빼앗은 힘으로 악룡을 부활시키고, 또 대공가를 장악하려 했어요.”

    “데이릭 모어라면…… 세드릭과 윌터가 말했던 그 아이 얘기니?”

    크라이튼 대공이 세드릭과 윌터가 지나가듯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맞아요. 사실 신전에서 세드릭과 윌터를 구한 건 우연이었어요. 원래의 목적은 작은할아버지에게 이용당하고 있던 데이릭 모어를 구하는 거였어요. 듀아나 신전에서 악룡의 힘의 근원을 찾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세드릭과 윌터가 있었던 거고요. 그래서 겸사겸사 두 사람도 구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된 거구나. 어쩐지 그 둘이 왜 신전에서 보호를 받고 있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구나.”

    크라이튼 대공이 이제야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듀아나 신전에서는 숙부님께서 악룡의 힘을 사용하려 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얘기니?”

    브라이언이 조심스럽게 나를 향해 물었다.

    “네.”

    잠시 숨을 돌린 후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작은할아버지께서 악룡의 힘에 손을 댄 이후로 듀아나 신전에서 이를 막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저를 우연히 보게 된 거고, 제가 악룡에 대적할 성녀라는 걸 알아본 거예요.”

    “그래서 신전에 그리 자주 다녔던 거구나.”

    “어쩐지.”

    브라이언과 엘리엇이 뒤늦게 알아차린 듯이 탄성을 터트렸다.

    나는 그들의 반응이 어쩐지 기꺼워서 웃음을 지었다.

    “네. 신력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또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요.”

    “그런데 아직 어린 네가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일이지 않느냐.”

    순수하게 감탄을 터트린 브라이언과 엘리엇과는 다르게 크라이튼 대공은 조금 화가 난 기색을 보였다.

    나는 차마 그런 크라이튼 대공에게 내가 사실은 24살이었다가 죽음을 겪은 후 지금의 나이로 회귀하게 된 거라는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대신 애매하게 웃고 있으니 크라이튼 대공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모두 내 잘못이다. 다니엘이 수상한 사람을 만나고 이상한 짓을 벌이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설마하니 그런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 줄 알아채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니에요. 속인 사람이 나쁜 거죠. 작은할아버지께서는 황실과 크라이튼 대공가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 엄마의 편지를 빼돌리기까지 했는걸요.”

    “뭐라? 그럼 다니엘이 조금 전 내게 했던 말은…….”

    “거짓말이겠죠. 제가 아는 한 작은할아버지는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크라이튼 대공은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후회 섞인 목소리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대신 손을 뻗어 크라이튼 대공의 손을 잡아 주었다.

    이미 해결된 일이었으니 크라이튼 대공이 스스로를 너무 질책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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