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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105)화 (105/174)
  • 105화

    다니엘에게서 나오는 악룡 크립소의 기운이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다.

    일전에 다니엘이 그의 방에서 힘을 사용하던 때보다도 더욱 강하고 억센 기운이었다.

    아마도 틀림없이 데이릭에게서 악룡 크립소의 힘을 추출하여 다니엘이 직접 흡수한 것일 터였다.

    다니엘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시선으로 크라이튼 대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크라이튼 대공은 이제 완전히 몸을 일으켜 상황을 파악해 보려는 듯 부서진 계단과 다니엘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크라이튼 대공이 다니엘의 힘을 알아볼 수는 없을 터였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크라이튼 대공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다니엘, 너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게냐?”

    크라이튼 대공이 다니엘을 향해 물었다.

    지금 상황에서 크라이튼 대공이 떠올릴 수 있을 만한 능력이 마법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마법? 하! 그런 허접한 능력일 거라고 생각하다니.”

    다니엘은 그런 크라이튼 대공의 말을 비웃었다.

    그러더니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아주 느리게 내뱉었다. 그의 숨에 악룡의 기운이 섞여 드는 듯했다.

    “형님.”

    한 걸음, 다니엘이 계단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단지 그것뿐이었음에도 공기가 일순 차가워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건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던 건지 크라이튼 대공의 몸도 옅게 떨리는 듯했다.

    “그래. 코넬리아의 편지를 빼돌린 건 나야.”

    아까까지 비굴하게 빌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다니엘의 얼굴은 오만해 보였다.

    “근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결과적으로 코넬리아가 무사히 형님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았나? 어찌 보면 그것도 전부 내 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니엘 네놈!”

    궤변을 늘어놓는 다니엘의 모습에 크라이튼 대공이 분노하여 소리쳤다.

    “네놈이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그러나 다니엘은 뻔뻔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코웃음을 흘렸다.

    “모두 지나간 일이잖아. 그렇지 않아?”

    “지나간 일? 네가 아니었다면 진작 코넬리아와 만날 수 있었겠지. 코넬리아가 다시 내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미라벨의 용기 덕분이었어!”

    크라이튼 대공의 외침에 다시금 다니엘이 이쪽을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

    그러자 크라이튼 대공이 나를 자신의 뒤에 숨겼다. 수상한 능력을 사용하는 다니엘에게서 나를 보호하기 위함인 듯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크라이튼 대공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의 등은 노쇠하였음에도 올곧고 믿음직스러웠다.

    “그래 뭐, 그건 그렇다 치지. 하지만 형님, 아무리 그래도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

    말을 마친 다니엘의 머리 위로 다시금 악룡의 힘을 담은 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조금 전 쏘아 보낸 것보다 느린 속도로 뭉치고 있었지만, 방심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형님은 모르지? 내가 얼마나 형님을 증오하고 있었는지.”

    다니엘은 아주 느린 걸음으로 나와 크라이튼 대공이 있는 계단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형님은 단지 장남이기 때문에 크라이튼 대공가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잖아. 안 그래?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느 것 하나 손에 쥘 수 없었던 나와는 달리. 나보다 나은 거라고는 고작 일찍 태어난 것밖에 없으면서!”

    나는 그제야 다니엘이 왜 악룡의 힘에 손을 뻗게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크라이튼 대공에 대한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늦게 태어난 죄로 크라이튼 대공가의 모든 것을 형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

    그래서 악룡의 힘을 손에 넣어 크라이튼 대공가를 집어삼킬 계획을 세운 것 같았다.

    [미라벨, 여기 있었구나.]

    그때 비브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비브르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허공에 떠 있는 비브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날 수 있어?’

    태연한 질문을 할 때가 아니라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비브르가 날고 있는 모습이 너무 생소해서 반사적으로 질문이 나왔다.

    비브르는 이상한 질문을 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혀를 날름거렸다.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 날개가 있으니 당연히 날 수 있지 않겠느냐?]

    ‘아, 응. 그렇지.’

    여태 기어 다니기만 하길래 날개는 사용할 수 없나 했더니 그냥 사용하지 않았을 뿐인 모양이었다.

    비브르는 나를 향해 다가와 내 어깨 위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나와 함께 상황을 확인했다.

    [다니엘이 악룡 크립소의 힘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는구나.]

    ‘저게 사용을 못 하는 거야?’

    비브르의 말과는 다르게 다니엘의 주변에 스산하게 흐르는 악룡의 기운은 그 기세가 날카로웠다.

    [그래. 아직 시간이 너무 이르기 때문인 듯하구나.]

    비브르는 진지하게 다니엘을 주시했다. 나 역시 크라이튼 대공의 뒤에서 조심스럽게 다니엘을 확인했다.

    이미 악룡의 봉인을 깨트린 후의 미래를 겪은 비브르는 지금 다니엘의 힘이 강하지 않다고 인지하는 듯했다.

    확실히 시간이 십 년은 더 전인 데다가 데이릭까지 곁에 없으니 다니엘의 능력이 그때와 비교하면 현저히 차이가 날 것임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놓고 내게 하는 지원조차 끊겠다고?”

    그 사이에도 다니엘은 크라이튼 대공에게 자신의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미라벨, 레피드를 준비해야겠구나. 저 힘이라면, 레피드로 무력화할 수 있을 게다.]

    ‘응. 알았어.’

    비브르가 내게 제안했다. 나 역시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비브르의 말을 따랐다.

    손을 등 뒤로 뺀 후 레피드를 소환했다. 바로 내 손에 감기는 손잡이가 느껴졌다. 나는 레피드를 천천히 고쳐 쥔 채 다니엘을 주시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크라이튼 대공의 뒤에 있으면 시야도 방해될 뿐더러, 다니엘의 공격을 막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크라이튼 대공은 다니엘에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동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또다시 위험하다며 나를 그의 뒤로 숨겨 두면 나 역시 다니엘에게서 그를 보호하기 힘들 테니까.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럴 거면 나도 필요 없으니까. 내가 직접 가져가면 돼. 그렇지 않아?”

    다니엘이 말을 마치는 순간,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던 악룡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창이 다시금 크라이튼 대공을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대공 각하!”

    브라이언이 다급히 소리치는 것을 들으며 나는 황급히 레피드를 들고 앞으로 도약해 나갔다. 그리고 어두운 기운의 창을 그대로 반으로 갈라 버렸다.

    콰광!

    순식간에 두 조각으로 잘린 다니엘의 힘이 터지며 커다란 충격파를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굉음이 저택을 울렸다.

    레피드를 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충격이 가시기를 잠시 기다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람들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특히나 다니엘은 내가 자신의 공격을 막았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떻게…….”

    충격파의 영향으로 손이 아릿하게 저려 왔다. 나는 레피드의 손잡이를 고쳐 잡은 채 크라이튼 대공의 상태를 살폈다.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어, 그, 그래. 난 괜찮단다. 그런데 방금…….”

    크라이튼 대공은 얼떨떨한 얼굴로 나와 다니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직 상황이 파악되지는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한가하게 어떻게 된 일인지 크라이튼 대공에게 설명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모든 설명은 다니엘을 저지하고 난 후에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미라벨, 네가 어떻게 내 힘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니엘이 나를 향해 외쳤다.

    내게 미약한 신력이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한 다니엘에게는 조금 전의 상황이 당황스러웠을 터였다.

    나는 다니엘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로 천천히 대답했다.

    “크라이튼 대공가는 포기하세요.”

    다니엘은 내가 꺼내는 말에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허탈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방해꾼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가까이에 있었구나.”

    말을 마친 다니엘이 매서운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마치 나를 찢어발길 듯이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를 똑바로 주시했다.

    “숙부님!”

    그러고는 우선 다니엘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브라이언을 불렀다.

    아직 어리고 신력을 자재로이 다룰 수 없는 지금의 내게는 다니엘을 같이 견제할 사람이 필요했다.

    마침 이곳에 검술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브라이언 크라이튼, 내 숙부였다.

    브라이언은 상황을 이해했는지 허리춤에 매여 있던 검을 뽑아 들고 다니엘을 경계했다.

    악룡의 힘을 사용하여 공격한다면 당장 브라이언이 그 힘을 막을 수는 없을 테지만, 물리적인 힘만으로 따진다면 다니엘도 브라이언을 당해 낼 수는 없을 것이었다.

    브라이언의 검 끝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확인한 다니엘이 브라이언의 눈을 똑바로 주시했다.

    “숙부님, 그만두십시오.”

    브라이언이 다니엘을 향해 제안했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악룡의 기운을 더욱 거세게 일으켰다.

    “브라이언, 마침 네가 내 곁에 있구나.”

    다니엘이 기쁜 듯 웃으며 중얼거렸다.

    [맙소사, 안 된다. 미라벨, 어서 다니엘을 막아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몰라 살피고 있는 사이에 비브르가 외쳤다.

    그러는 와중에 다니엘의 몸에서 피어오른 검은 기운이 흡수되듯 브라이언의 몸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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