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99)화 (99/174)
  • 99화

    “참, 대화가 끝나시면 일전에 빈민가에서 데려왔던 그 두 명에 대해서도 말씀을 나눴으면 합니다. 듣기로는 그자들이 크라이튼 대공가의 사람이었다고 하던데요.”

    길을 안내하며 플레온이 내게 제안했다. 나는 그제야 데이릭과 함께 구조했던 세드릭과 윌터를 떠올렸다.

    그들은 빈민가에서 구출한 이후로 쭉 듀아나 신전에서 보호를 겸하여 구금하고 있는 상태였다.

    다니엘에게 배신당한 채 지하실에 갇혀 고문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어쨌든 그들 역시 다니엘과 관련된 사람들이었기에 풀어 줄 수가 없는 탓이었다.

    그들에게 확인해야 할 일이 있었으므로 나는 플레온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제프리와 대화가 끝나면 만나러 갈게요.”

    플레온은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은 후 곧 비어 있는 방 하나를 찾아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제프리를 방 안으로 데려온 후 그에게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다. 제프리는 순순히 내가 가리키는 의자에 앉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나는 아직 방을 구경하는 제프리를 보며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언젠가 그가 용병왕의 자리에 오르고, 우리가 아직 다니엘을 잡지 못한 상황이라면 그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다.

    그때는 당연히 제프리에게 의뢰를 맡기는 식이 되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는 용병왕은커녕 용병도 아니었다.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그를 위험에 빠트리게 되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로 돌려보내기에는 이미 많은 것을 보인 후였다.

    무엇보다 다른 사제들이나 내가 돌려보내려 한다고 하더라도 제프리가 거부할 것 같았다.

    “제프리.”

    “응, 듣고 있어.”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제프리가 그제야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올곧게 나를 향하고 있었다.

    “듀아나 여신님을 지키는 수호룡에 대해 알고 있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좋을까 생각하다가 일단은 수호룡 비브르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알지.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

    제프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수호룡과 반대되는 악룡의 존재도 알고 있어?”

    “악룡?”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되묻는 제프리의 모습에 나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응. 지금 어떤 나쁜 사람들이 그 악룡을 깨우려고 하고 있어. 그리고 그걸 이 듀아나 신전에서 막으려 하는 거고.”

    제프리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최대한 간단하게 내용을 풀어 얘기했다. 제프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그게 무슨 동화책 같은 소리야?”

    제프리는 내가 꺼내는 말이 어처구니가 없었던 건지 황당해하며 물었다.

    그가 믿지 않는 것도 이해는 갔다.

    나 역시 이 모든 일을 겪지 않았다면 허황된 소리라고 치부했을 테니까.

    “거짓말 아니야. 진짜로 악룡을 깨우려는 사람들이 있어. 그리고 그 악룡의 봉인을 풀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데이야. 정확히는 데이릭 모어.”

    제프리는 내 말이 끝나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더니 내 뒤에 서 있는 플레온 사제를 한번 확인했다.

    플레온 사제가 어떤 식으로 반응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프리는 곧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다시 주시했다.

    “그럼 너는 그걸 막는 쪽이고, 데이는 나쁜 놈이라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야. 아직은.”

    “아직?”

    “응. 확실하지는 않지만 데이는 아직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걸 모르는 눈치였어. 너도 같이 다녀 봐서 알잖아. 걔는 그냥 자기가 불행하고 불운한 아이일 뿐이라고 믿고 있었어. 안 그래?”

    “……응.”

    제프리는 내 말에 곰곰이 생각해보는 듯 테이블을 응시했다. 나는 잠시 그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제프리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그럼 데이를 쫓는 사람들은 뭐야?”

    “그 사람들이 악룡의 봉인을 풀고자 하는 사람들이야. 데이릭을 이용해서 악룡의 힘을 각성시키고 마침내 악룡의 부활을 꾀하려는 자들.”

    나는 잠시 말을 마치고 숨을 고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추측이지만, 데이릭이 가진 악룡의 힘은 고통 속에서 강해지는 것 같았어. 그래서 데이릭을 쫓는 그 사람들이 데이릭을 감금하고 학대했던 것 같아. 우리도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돼서 데이릭을 구한 거였어. 그들로부터 데이릭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데…….”

    “데이가 신전에서 탈출한 거구나.”

    “응. 바로 맞혔어.”

    제프리는 빠르게 상황을 이해했다. 이미 여관에서 데이릭의 상황을 짧게나마 들었기 때문인 듯했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지금 그 나쁜 놈들도 데이릭을 쫓고 있어. 그걸 신전에서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데이릭을 최대한 빨리 찾아 보호하려는 거였는데, 신전에서 데이릭을 찾아가기도 전에 조금 전과 같은 일이 벌어진 거야.”

    내 말이 끝나자 제프리가 뺨을 긁적이며 눈을 굴렸다.

    아직까지도 그의 눈에서는 불신이 어리는 듯했다.

    그의 말처럼 동화 같은 이야기로 들렸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지만, 네가 보고 들은 이 모든 이야기는 비밀로 해 주었으면 좋겠어.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가면 곤란한 이야기들이니까.”

    사실 제프리가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 하더라도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떠드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할 것이 뻔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기에 제프리에게 비밀로 해 주기를 부탁했다.

    “으응. 그거야 어렵지 않은데…….”

    제프리는 순순히 내 부탁에 수긍했다. 하지만 영 미심쩍은지 말꼬리를 흐렸다.

    “그럼 당장 데이를 구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지. 혹시나 데이릭이 나쁜 사람들 손에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악룡의 부활은 물론이고, 데이릭의 목숨도 보장하기 어려워. 그 사람들은 데이릭을 괴롭히고 또 학대한 끝에 원하는 것을 손에 넣겠지만, 그럼 데이릭은 어떻게 되겠어?”

    내 말에 제프리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는 이해가 되는 모양이었다.

    “근데 하나 궁금한 게 있어.”

    “응. 물어봐.”

    제프리가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는 순순히 그의 질문에 대답할 생각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그럼 넌 뭐야?”

    “응? 나?”

    “응. 미라벨 너. 듀아나 신전이랑 데이에 대한 건 알겠어. 근데 넌 뭐야? 사람들이 널 성녀님이라고 부르던데, 진짜 성녀님이야?”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밖에는 비밀이지만.”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 정식으로 공개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비브르의 선택으로 인해 듀아나 신전의 성녀가 된 것은 맞았기에 나는 제프리의 질문에 긍정했다.

    “그럼 미라벨 네가 그 나쁜 놈들이랑 싸워야 하는 거야?”

    제프리는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기 위한 성녀니까.”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넌 아직 아홉 살밖에 안 됐잖아.”

    예상치 못한 제프리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 그렇기는 한데.”

    이것도 설명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굳이 내가 미래에서 회귀했다는 것까지 알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

    “넌 아직 애니까 그런 위험한 일은 어른들이 해야 하는 거야.”

    “으, 응. 그렇지. 보통은.”

    “그렇죠?”

    제프리가 고개를 들어 확답을 구했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플레온 사제가 있었다.

    “그렇긴 합니다. 그래서 저희도 성녀님께서 위험해지시는 일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플레온 사제의 첨언에도 제프리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난 괜찮아.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거든.”

    나를 죽이고 또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다니엘에 대한 복수.

    나는 그것만 할 수 있으면 되었다.

    그럼에도 제프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플레온 사제를 노려보다가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라벨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위험한 건 어른들한테 맡겨. 알았지?”

    “응. 그렇게 할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제프리가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됐어. 이제 데이를 찾으러 가는 거야? 이대로 뒀다가 나쁜 놈들한테 잡혀가면 어떡해?”

    “데이릭을 찾는 건 신전에서 할 거야. 최대한 사람들을 풀어 찾을 거니까 금방 찾을 수 있겠지.”

    말을 하면서도 나 역시 불안했다.

    만약 데이릭이 벌써 다니엘 앞에 잡혀갔다면, 이번엔 정말로 데이릭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이미 한 번 데이릭을 잃었던 다니엘이 대비조차 안 했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러니 부디 신전에서 최대한 빨리 데이릭을 찾길 바랄 뿐이었다.

    “알았어. 그럼 나는 데이를 찾을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도 돼?”

    “여기서?”

    제프리가 꺼낸 뜻밖의 말에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제프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여기서. 데이가 걱정되기도 하고, 또 미라벨 너도 걱정돼서. 데이를 찾기 전까지는 이곳에 잠시 머무를게. 그래도 되죠?”

    제프리가 플레온 사제에게 물었다. 나 역시 제프리의 시선을 따라 플레온 사제를 돌아보았다. 플레온 사제는 나를 잠시 내려 본 후 이내 제프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허락을 내려 주었다.

    “그렇게 하시죠. 그리고 필요하다면 신전 보육원에 방을 하나 마련할 테니 그곳에 머무르시죠.”

    플레온 사제는 제프리가 머무는 것을 허락한 것뿐만이 아니라, 제프리가 신전 보육원에서 지낼 수 있도록 여건을 봐주겠다고 말했다.

    신전 보육원이라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되고, 정착하여 교육도 받을 수 있으니 제프리에게 좋은 기회가 될 터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프리의 반응으로 보았을 때 그가 신전 보육원에 정착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 추측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제프리는 고개를 저으며 플레온 사제에게 말했다.

    “데이를 찾을 때까지만 있을게요.”

    “괜찮으시겠습니까?”

    플레온 사제가 재차 제프리에게 물었다.

    “네. 괜찮아요.”

    제프리는 긍정을 표하며 이내 나를 보고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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