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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98)화 (98/174)

98화

제프리는 나와 베트람, 그리고 라이넬 사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미라벨 너, 꼭 데이를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데?”

“……음.”

나는 이걸 어디까지 제프리에게 말해도 될지 고민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제프리는 다니엘과는 접점이 없었다. 이건 플레온 사제의 말을 떠올려 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처음 신전에서 회의를 했던 날, 플레온 사제는 용병왕의 도움을 구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말했었다.

그렇다는 것은 곧 용병왕이 다니엘, 그리고 악룡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 그에게 대충이나마 사정을 알리는 게 나을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는 게 나을지 고민이었다.

“우선 여기서 이동하자. 길거리에서 이런 얘기 해 봤자 좋을 거 없으니까.”

“그럼 따라가면 말해 줄 거야?”

제프리는 확답을 요구하듯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니까 가자.”

“알았어.”

제프리가 순순히 내 말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말은 어떻게 나누어 타시겠습니까?”

“말이 두 마리니 한 명이 라이넬 사제님과 함께 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베트람의 물음에 내가 대답하며 말했다. 두 마리의 말을 라이넬 사제와 제프리, 그리고 내가 나눠 타야 했다.

“제가 라이넬 사제님과 탈게요.”

“예, 그럼 올려 드리겠습니다.”

내 키가 닿지 않았기 때문에 베트람이 나를 들어 말 위에 올려 주었다. 나는 말 위에 자리를 잡고 제프리를 돌아보았다. 제프리는 멀뚱히 말을 바라보기만 했다.

“뭐해? 안 탈 거야?”

“아니…….”

제프리는 당황스러워 하는 얼굴로 말문을 흐렸다.

“나, 말…… 타 본 적이 없는데.”

“뭐?”

나는 제프리의 말에 놀랐다. 그러다가 이내 제프리가 열한 살짜리 어린이였으며, 말을 쉽게 접하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나는 전생의 기억으로 인해 말을 탈 수 있었지만, 그는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럼 라이넬 사제님이랑 같이 탈래?”

“넌 말 탈 줄 알아?”

“응. 탈 줄 알아.”

“…….”

제프리는 무언가 불만인 듯이 입술을 비죽거렸다.

하지만 말도 못 타면서 억지를 부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결국 라이넬 사제와 제프리가 말 하나에 같이 타고, 내가 혼자 말 위에 타게 되었다.

“신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사람을 부를 테니 안전한 곳에 계세요.”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답을 마친 베트람은 길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을 골목 안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모습을 확인한 후에 천천히 말을 몰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선은 여관으로 돌아가는 대신 신전으로 바로 향하기로 했다.

이 모든 상황을 알린 후에 다시 여관으로 돌아가도 늦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을 몰아 빠르게 왔던 길로 향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말을 모는 나와는 달리 제프리와 라이넬 사제 쪽에서는 무언가 대화가 오가는 듯했다.

하지만 작은 소리였기에 내가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는 없었다.

나는 그 대신 지금의 상황을 비브르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비브르. 데이릭을 놓쳤어.’

[……그랬구나.]

조금 씁쓸한 듯이 느껴지는 비브르의 목소리에 괜히 내가 미안한 기분을 느꼈다.

‘두 가지 경우가 있어. 하나는 다니엘이 데이릭을 쫓는 이가 더 있다는 것을 알고 미끼를 썼든가, 아니면 데이릭이 악룡의 힘을 써서 달아났든가.’

[만일 전자의 경우라면 곧 데이릭 모어가 다니엘과 만나게 되겠구나.]

비브르는 빠르게 내 말을 이해했다.

‘응. 그래서 말인데 계속 다니엘의 곁에서 보고해 줄래? 혹시라도 다니엘이 데이릭을 빼돌린 거라면 또다시 계획을 세워야 할지 모르니까.’

[그래. 그렇게 하마. 그리고 미라벨.]

‘응?’

갑작스럽게 나를 부르는 비브르의 음성에 말을 모는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 다행히도 라이넬 사제가 내 속도에 맞추어 속도를 늦춰 주었기 때문에 뒤처지는 일은 없었다.

[항상 몸조심하렴. 만일 데이릭 모어가 악룡 크립소의 힘을 더욱 자재로이 사용하게 된 거라면 나의 씨앗인 네가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알겠느냐?]

염려를 담은 목소리에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응. 명심할게.’

[그래.]

비브르와의 대화는 일단 이것으로 종료했다.

아직은 다니엘 쪽에도 데이릭이 도착하지는 않은 듯했다.

신전에 도착한 우리는 말에서 내려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제프리도 함께였다.

“공장단지 쪽으로 사람을 보내 주세요. 그곳에 성기사 베트람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라이넬 사제는 우선 다른 성기사들에게 부탁하여 일부 인원을 베트람에게 보내었다.

성기사들은 준비를 마치자마자 베트람을 돕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회의실로 향했다.

“오, 성녀님. 무사하시군요. 다행입니다. 어떻게 되신 겁니까?”

무심코 회의실 안으로 들어와 내 안부를 확인하던 사제들이 내 옆에 있는 제프리를 확인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옆에 있는 아이는 누구입니까?”

에밀 사제가 대표로 내게 물었다.

“제프리 콜먼이에요. 제 친구고, 또…….”

“용병왕이군요.”

내 말을 받은 것은 뒤이어 들어온 플레온 사제였다.

성자 플레온의 기억을 갖고 있는 플레온 사제는 제프리의 이름을 듣자마자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맞췄다.

그러나 제프리는 자신을 용병왕이라 지칭하는 플레온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뭐야? 나 아직 용병 아닌데?”

“으응. 이따가 설명해 줄게.”

당장은 제프리의 궁금증을 채워 주는 것보다 데이릭에 대한 일이 우선이었다.

“데이릭 모어를 놓쳤다는 이야기는 들어오면서 라이넬 사제에게 들었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된 일입니까?”

플레온 사제가 나와 라이넬 사제에게 정황을 설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우리가 여관을 찾아서 본 것과 곧장 데이릭을 찾기 위해 공장단지로 향한 것, 그리고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사제들에게 간략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사제들은 데이릭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저마다 탄식을 뱉어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데이릭이 그……자에게 도착하면 제가 바로 알 수 있으니 만일 소식이 들려온다면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나는 무심코 다니엘의 이름을 부르려다가 ‘그자’라는 호칭으로 바꾸어 불렀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제프리에게 모든 것을 노출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내가 다니엘을 대명사로 지칭하였음에도 사제들은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았다. 이미 그자라는 게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고 있는 까닭이었따.

“하지만 만일 데이릭이 직접 도망친 거라면 그자에게 도달하지 않을 테니 최대한 신전의 인원을 풀어서 데이릭을 찾아 주셨으면 해요.”

“예,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게 제일 낫겠군요. 그럼 그리하겠습니다.”

바론 대주교는 바로 내 말에 동의했다.

“그럼 데이릭 모어에 대한 일은 행방의 가닥을 잡는 것을 우선해야 하겠군요.”

“네. 만일 데이릭이 그자에게 가게 된다면 곤란하니까요. 우리에게도, 또 데이릭에게도요.”

“그렇겠죠. 그럼 일전에 알려 주셨던 데이릭 모어의 인상착의를 추가로 전달하며 찾는 인원을 더욱 늘리겠습니다.”

“부탁드려요.”

“헌데 성녀님. 그 옆의 아이는 왜 데리고 오신 겁니까?”

대화를 마치자마자 바론 대주교가 내게 물었다. 거부감이나 경계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운 물음이었다.

“어쩌다 보니 제프리에게 상황을 많이 들키게 됐어요. 그런 김에 혹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지 해서 데려왔습니다.”

“도움이요? 저 작은 아이가요?”

내 말에 사제들이 술렁였다. 제프리는 그들을 보며 미간을 팩 찡그렸다. 그의 미간에 골이 점점 더 깊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말씀 조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분은 미래에 용병왕이 되실 분입니다.”

그나마 사제들을 잠재운 것은 플레온 사제의 말이었다.

“그때 말씀하진 그자로군요? 훗날 도움을 요청하면 좋겠다고 했던.”

“네.”

이전의 회의를 떠올린 사제가 플레온 사제를 향해 확답을 요구했다.

그제야 다들 제프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의심하지 않았다.

“제프리에게는 일단 제가 사정을 설명할 테니 부담 주시지 않았으면 해요.”

다들 희망을 갖고 제프리를 바라보기에 내가 제프리를 보호하듯 말했다.

제프리는 어쩌다 보니 이 일에 끼게 된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에게는 무엇이든 강요하지 않는 게 옳았다. 설령 그가 원하는 경우에 도움이나 좀 부탁하면 모를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성녀님의 말씀을 따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아이를 이곳 회의실까지 데려온 것에도 분명 성녀님의 신뢰가 바탕이 되었을 테니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바론 대주교는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제프리에게 이런 것들을 알려도 되나 싶은 마음이 반쯤 들었는데, 바론 대주교는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모양이었다.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그럼 성녀님께서 편히 말씀하실 수 있도록 방을 내어 드릴 테니 그곳에서 편히 말씀을 나누십시오.”

바론 대주교가 신호하자 플레온 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플레온 사제가 우리를 향해 말했다. 나는 제프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가자. 얘기해 줄게.”

“……응.”

제프리는 내가 내민 손을 잡았다.

나는 그와 함께 플레온을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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