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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90)화 (90/174)

90화

“그게 정말입니까?”

“지금 당장 데리러 가는 게 좋겠군요!”

“근데 왜 성녀님은 데이릭 모어를 데려오시지 않은 겁니까?”

사람들이 많으니 한꺼번에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질문은 데이릭을 만났으면서 왜 데리고 오지 않았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저도 데리고 오고 싶었어요.”

“그럴 수 없었다는 말이군요. 문제가 있었습니까?”

라이넬 사제가 내 말을 이해하고 물었다.

“네. 데이릭이 듀아나 신전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강제로 데려와 봤자 또다시 같은 일만 반복될 거라고 생각해서 차마 데려오지 못했어요.”

데이릭이 듀아나 신전의 사제와 성기사를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금색으로 변한 눈동자에 날카로운 들짐승처럼 예민하게 경계하던 모습이 아직 잊히지 않았다.

내 말에 다른 사제들도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를 감금하지 않는 이상에야 똑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겠죠.”

“네. 안 그래도 아까 데이릭과 함께 있을 때 신전의 다른 사제님과 기사님을 만났어요. 그런데 갑자기 데이릭의 눈이 보라색에서 금색으로 변하더라고요. 그뿐만 아니라 예민하게 경계하는 모습이었어요. 제가 그때 만난 사제님한테 제보라도 했다가는 당장 도망치고 말았을 거예요.”

“눈동자 색이 그때 변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허어…….”

“그래서 데이릭 모어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저택으로 데려가신 것은 아니겠죠?”

사제 한 명이 긴가민가하는 시선으로 나를 주시하며 물어왔다.

마침 그것으로도 이야기할 게 있었다.

“설마요. 다니엘이 저택에서 지내고 있는데 그럴 수는 없죠. 게다가 비브르의 말에 따르면 다니엘이 오늘 빈민가를 찾았다고 해요. 틀림없이 데이릭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겠죠.”

여기저기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조만간 다니엘 측에서도 어떤 반응이 있을 거예요. 사람을 푸는 게 일반적인 반응일 거고요.”

“그렇겠군요. 다니엘 크라이튼이 데이릭 모어를 찾아내기 전에 그를 데려오는 게 급선무겠군요.”

“그럼 데이릭 모어는 어디에 있습니까?”

질문이 연쇄했다. 질문을 건넨 사제를 바라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제 친구가 머무는 여관에 있어요. 아마도 내일 아침까지는 거기 있을 거 같아요. 제가 찾아온 이유가 바로 그거 때문이에요. 이제 데이릭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요. 시간이 많지 않으니 최대한 빠르게 말씀을 나눴으면 해요.”

지금까지 회의를 진행하며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 급해서 최대한 빨리 진행할 것을 부탁하게 됐다.

“예, 알겠습니다.”

플레온 사제가 내게 말했다. 그러더니 다른 사제들을 둘러보았다.

“혹시 아직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분이 계십니까? 그러시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플레온 사제가 물었으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다행히 내가 얘기한 내용에 대해서는 다들 이해한 모양이었다.

“모두 이해하신 듯하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첫째로, 다니엘 크라이튼이 데이릭 모어와 만나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상 우리 신전으로 데려오는 것이 가장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감히 다니엘 크라이튼이 우리 신전에까지 마수를 뻗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어르고 달래서라도 신전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안 되니까 지금 회의를 하는 겁니다. 악룡의 힘을 사용해서까지 신전에서 도망치려 했던 아이입니다. 성녀님께서 외부에 계실 때 다른 사제를 만나는 상황에서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니 설득이 될지 장담할 수도 없겠죠. 오히려 반발심을 갖고 도망쳤다가 다니엘 크라이튼에게 붙잡히면 우리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난감하군요. 지금 다니엘 크라이튼조차도 데이릭 모어의 실종을 알아차렸으니 그 아이를 찾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겁니다. 사소한 움직임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겠지요.”

“그럼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신전으로 데려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놔둘 수도 없지 않습니까.”

나는 사제들이 서로 의견을 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의견은 이미 내가 고민하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니엘에게 들키게 되면 꼼짝없이 악룡의 부활을 위해 학대당하다 죽임을 당하게 되겠지.

차라리 모습이라도 바꿀 수 있으면 또 모를까…….

“사제님들.”

머릿속에서 문득 든 생각에 한창 회의 중이던 사제들을 불렀다.

그와 동시에 말이 오가던 것이 뚝 그쳤다. 그뿐만이 아니라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모여들었다.

“이게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건 알지만, 일단 다니엘에게 들키지 않는 게 관건이잖아요. 그래야 데이릭을 설득하든 달래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그야…… 그렇겠죠. 다니엘 크라이튼이 모르고 있다면 모를까, 그자도 데이릭 모어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요. 게다가 다니엘 크라이튼은 데이릭 모어의 눈동자 색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알 수도 있겠고요. 그렇다면 찾아내는 것은 금방입니다. 그러니 그걸 막는 게 우리의 우선 과제라고 봐야겠습니다.”

바론 대주교가 내 말에 동의했다.

어쨌든 지금은 시간을 버는 일이 중요했다.

“그럼 마법 아티팩트를 쓰는 게 어때요?”

“마법 아티팩트요?”

“네. 전에 제가 빈민가를 들를 때 사용했던 아티팩트요. 그걸 사용하면 데이릭의 외양을 바꿀 수 있을 테고, 그럼 다니엘 측에서 데이릭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겠죠. 그럼 적어도 며칠 정도는 시간을 벌 수 있지 않을까요?”

데이릭을 다니엘에게 들킬까 걱정하는 것은 다니엘이 데이릭의 얼굴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면 데이릭의 얼굴을 못 알아보게 바꾸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일 것이었다.

아직 다니엘이 어떻게 데이릭을 찾아내었고, 또 데이릭이 악룡의 씨앗이 될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내었는지는 모르지만, 평범하고 보편적인 방법으로 찾아내진 않았을 거라는 건 나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다니엘은 악룡의 힘을 감지하는 방법을 많은 이들이 알도록 내버려 둘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외향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다니엘 측 사람들의 이목을 속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말씀하신 대로 임시방편은 되겠군요.”

플레온 사제가 긍정하며 말했다. 그러나 말을 꺼내며 ‘임시방편’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데이릭에게 마법 아티팩트를 주어 모습을 숨기는 건 그만큼 리스크도 있었으니까.

만일 데이릭이 아티팩트만 챙긴 채 도망가 버린다면 악룡의 기운을 감지하기 어려운 우리에게는 더욱 곤란한 상황이 되어 버릴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걸 어떻게 그 아이에게 줄 수 있을까요? 그 아이는 듀아나 신전의 사제들이라면 경계부터 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설마 성녀님께서 직접 하려고 하시는 건 아니겠죠?”

플레온 사제는 설마 하는 얼굴로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그런 플레온 사제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지금 이곳에서 누구보다 그 역할에 걸맞은 사람이 바로 저 아닌가요? 플레온 사제님이나 라이넬 사제님은 물론이고 어떤 사제님들도 데이릭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울 거예요.”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이곳저곳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그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오늘만 해도 혹시나 내가 다쳤을까 염려하며 몇 번이나 내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놔두고 위험할까 봐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저는 오늘 종일 데이릭과 다니면서 친분을 쌓았어요. 호의로 좋은 거 준다고 하면 솔깃하지 않을까요? 어쨌든 데이릭도 아직 어린애일 뿐이니까요.”

내가 생각한 바를 차분하게 대답하자 주변에 있던 사제들이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주시했다.

“왜요? 뭔가 다른 문제가 있을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라이넬 사제가 쓰게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대체 왜 그러나 싶어서 눈을 깜빡이고 있는데 플레온 사제가 미안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성녀님도 아직은 아홉 살의 몸인데 저희 때문에 너무 무리하시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

라이넬 사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제야 나는 그들이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 깨달았다.

그러고는 피식 웃음을 피워냈다.

“다들 제가 단순히 아홉 살짜리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계시잖아요.”

겉은 아홉 살이지만 속은 스물네 살의 성인이었다. 내가 실제로 어린이인 데이릭을 타자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어떻게, 다들 이 방법으로 다니엘의 눈을 속이는 것에 대해 찬성하시나요?”

내가 동의를 얻고자 사제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사제들은 섣불리 대답하지는 않았다.

충분히 위험성을 고려해야 했고, 만일의 사태를 상정해야만 했다.

사제들은 옆 사람과 수군거리며 내 의견대로 진행해도 될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결론을 내릴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모두의 의견을 취합한 바론 대주교가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성녀님, 정말 하실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도록 만들어야죠. 지금 당장은 그것밖에 길이 없다면요.”

내가 흔쾌히 대답하자 바론 대주교가 씁쓸하게 웃었다.

“예, 그럼 성녀님께서 제안하신 바를 수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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