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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89)화 (89/174)

89화

“어디 있는 곳이야?”

데이릭도 긍정했겠다, 적어도 앞으로 그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할 수 있는 기간이 적어도 반나절은 생긴 참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데이릭이 제프리와 헤어지기 전에 방법을 세워야 했으므로 일단은 다시 그를 찾아가기 위해 제프리가 머무는 여관의 주소가 필요했다.

“동쪽 성문에서 바로 왼쪽 아래로 내려오면 낡은 여관 건물이 몇 개 있어. 제일 첫 번째로 보이는 여관으로 오면 돼. 3층이고, 가장 오른쪽 끝 방이야.”

제프리의 설명을 잘 기억해 두었다.

“돈은 어디서 구했어? 아직 어려서 일 같은 거 하기 힘들 텐데.”

“이번에 갔던 곳에서 상단 배달 같은 거 하면서 벌었어.”

“힘들었겠다.”

“별로. 생각보다는 몸 쓰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더라고. 그러면서 같이 일하던 용병들한테 검을 쓰는 법도 좀 배우고.”

나도 대공가에서 지내는 동안 나름 바쁘게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제프리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았다.

“몸 생각하면서 해.”

“당연하지. 나한테는 몸밖에 없는걸.”

나는 제프리의 어깨를 한번 두드려 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저택으로 돌아가 볼게.”

“그래, 잘 들어가.”

제프리와 데이릭은 여관으로 향하기 위해 동문으로 향했고, 우리는 대공가로 돌아가게 되었다. 에이드리안의 옷이 대공가에 있는 탓이었다.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

“그랬다니 다행이네요.”

내가 웃으며 대답하자 에이드리안도 흡족한 듯이 웃었다.

“특히 오늘 봤던 것 중에서는 역시 처음 상점가에서 봤던 그 조각들이 제일 좋았어. 내가 황제 폐하께 말씀드려서 황성에도 그런 거 만들 테니까, 나중에 미라벨도 놀러 와. 알겠지?”

“네, 그럴게요. 기대할 테니까 화려하고 예쁜 걸로 부탁드릴게요.”

“응!”

벌써부터 기대되는지 에이드리안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앞장서 가기 시작했다.

저택으로 돌아오고 난 뒤, 달리아가 에이드리안의 옷을 챙겨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나는 주랑현관 앞에서 에이드리안이 마차에 올라타 황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시간을 체크했다.

시침이 벌써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은 보통 6시였지만, 오늘 내가 외출하며 이미 추가로 식사를 했기 때문에 따로 저녁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칼리나.”

“네, 작은 아가씨.”

“신전에 잠깐 다녀오고 싶은데 마차를 준비해 줄래? 그리고 오늘 저녁 집에서 못 먹을 것 같다고 전달해줘.”

“예, 알겠습니다.”

칼리나는 내가 한 말을 다른 하인과 하녀에게 다시 전달했다.

마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오래 걸리지 않아 크라이튼 대공가의 마차가 내 앞에 멈추어 섰다.

마차에 빠르게 올라탄 후 곧장 듀아나 신전으로 향할 것을 지시했다.

신전에는 빨리 도착했다. 이번에는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고 신전에 도착한 것이기 때문에 따로 라이넬 사제가 마중 나와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미 길은 익숙했기 때문에 따로 안내는 필요하지 않았다.

“금방 돌아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예, 작은 아가씨.”

칼리나와 아니타를 마차 옆에 대기하도록 하고 나는 금방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성녀님?”

내부로 들어가 사제들을 찾았다. 다행히도 플레온 사제가 기도실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플레온 사제 역시 내가 기도실 안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오늘부터는 신전에 나오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플레온 사제는 걱정스러워하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오죽 당황했는지 여신님의 은총을 기원해 주는 것조차 잊은 상태였다.

“중요하게 말씀드릴 게 있어서 왔어요. 다른 사제님들은요?”

“나갔던 다른 평사제들을 확인하러 갔습니다. 하지만 별달리 얘기가 없는 것을 보아하니 데이릭 모어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듯싶군요.”

플레온은 침중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 후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거 때문에 오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온 거예요. 제가 오늘 그 데이릭 모어를 만나고 왔어요.”

내가 데이릭을 만나고 왔다는 소리에 플레온 사제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혹시 무슨 사고라도 있었습니까? 성녀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플레온 사제는 다급히 나를 붙잡고 상태를 살폈다. 아마도 데이릭이 나를 공격하지 않았나 해서 걱정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플레온 사제의 행동에 두 손을 들어 손사래를 쳤다.

“저는 괜찮아요. 오히려 데이릭은 제가 누군지 전혀 몰랐어요.”

“몰랐……다고요?”

나처럼 바로 이유를 떠올리지 못하는 플레온 사제를 향해 나는 다시 설명을 풀어내야 했다.

“저와 라이넬 사제님, 그리고 기사 베트람이 데이릭을 구출하러 갔을 때 혹시 몰라서 모습을 바꾸는 마법 아티팩트를 사용했었잖아요. 게다가 비브르는 오늘 다니엘을 미행하러 갔기 때문에 곁에 없었거든요. 그래서 못 알아보는 것 같았어요.”

“아, 그랬었죠.”

뒤늦게 깨달은 플레온 사제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한쪽 무릎을 굽혀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무사하신 거 맞으시죠?”

여전히 걱정을 담은 플레온 사제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나는 미소를 띠었다.

“저는 무사해요. 아무런 일도 없었어요.”

“다행입니다.”

플레온 사제가 깊게 안도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플레온 사제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의미를 깨닫고 그의 손을 잡았다.

플레온 사제의 손을 잡고 대회의실로 향했다.

익히 알던 것처럼 대회의실에는 대사제들을 호출하는 버튼이 있었다.

플레온 사제가 버튼을 누르자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대사제들이 한 명씩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혹시 데이릭을 찾은 겁니까?”

회의실 안으로 들어오며 의문을 제기하던 대사제들은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성녀님?”

그들의 반응이 플레온 사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긴 어떻게 오신 겁니까? 플레온 사제님께서 위험하니 한동안은 오지 않으시는 게 좋을 거라고 말씀을 전달드린 것으로 아는데요.”

대사제들이 모두 모이고 나서 라이넬 사제님이 대표로 내게 질문했다.

“제가 오늘 외출했다가 데이릭을 만나게 돼서 알려 드리러 왔어요.”

“데이릭 모어를 만나셨단 말입니까?”

“어디 다치신 건 아닙니까?”

역시나 플레온 사제와 같은 반응이었다. 사제들은 내가 데이릭과 만나 트러블을 일으켰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그들이 본 데이릭이라면 그럴 만한 인물이었다.

빈민가 지하실에서 구출해 이곳 신전에 데려오자마자 악룡의 힘으로 린제이 사제를 지배하여 이곳을 탈출하였으니, 나와 따로 만나 크게 싸우지 않았는지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을 확인하며 나는 빙긋 웃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멀쩡해요. 아무런 일도 없었어요.”

“정말 아무 일도 없었습니까?”

“네. 보시다시피 다친 곳도 없고 멀쩡해요.”

내가 다시금 확인시켜 준 후에야 사제들은 뒤늦게 안심하며 듀아나 여신님을 찾았다.

“그런데 성녀님께서 대체 데이릭은 어떻게 만나신 겁니까?”

“오늘 오후에 일정이 없어서 외출했다가 우연히 제 친구의 짐을 몰래 훔치던 데이릭을 만나게 됐어요. 그런데 우리가 못 찾은 이유가 있더라고요.”

“못 찾은 이유가 있다고요? 아무리 인상착의만으로 찾기가 어렵다고 해도 수도를 나가지 않는 한은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데이릭의 눈동자 색이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달랐어요.”

“네? 그럼 그동안 다들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플레온 사제께서 분명…….”

모두의 시선이 플레온 사제에게 모여들었다. 아마도 플레온 사제가 잘못 보았거나 잘못 알려 주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플레온 사제는 틀리지 않았다.

“금안이라고 하셨겠죠. 그래서 남색 머리에 금안인 아이를 찾고 계셨을 거고요.”

“맞습니다.”

플레온 사제가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플레온 사제를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본 데이릭은 보라색 눈동자였어요. 근데 플레온 사제님께서 잘못 보신 건 아니에요.”

플레온 사제는 잠시 긴장했었는지 굳었던 어깨를 조금 늘어트렸다.

내가 꺼낸 말이 애매했는지 회의장이 술렁거렸다.

“그럼 눈 색이 변하기라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연세가 지긋한 사제인 카디예 사제가 나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변에서 그럴 리가 없다는 대화들이 오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부정을 도리어 부정하듯 차분하게 대답했다.

“맞아요. 눈동자 색이 바뀌어요. 그걸 제가 목격했어요.”

“그런……. 그럼 저희가 못 찾은 이유가 있었군요.”

“네. 우리가 알고 있는 데이릭의 외관 정보는 너무 한정적이었고, 눈 색이 바뀌기까지 했으니…… 열 살 남짓한 소년이라는 점과 머리 색, 눈 색만 가지고는 데이릭을 찾을 수 없을 거예요.”

길게 말을 하고 있으니 목이 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미지근한 물이 메마른 목을 적셔 주니 조금 편안해졌다.

“어쨌든 눈동자 색이 왜 변하는지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조건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고작 반나절 같이 있었던 걸로는 그런 것까지 알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정확한 건 제가 지금 데이릭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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