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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85)화 (85/174)

85화

“정해져 있다니, 그럼 반란을 저지르기로 되어 있다는 말이야?”

“왜 반란을 저질러? 아니야. 난 그냥 황제가 될 거라니까?”

당황스러워하는 두 사람의 말이 계속 엇갈렸다.

결국, 제프리가 그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봐, 데이. 이쪽은 진짜 황태자 전하시거든.”

“…….”

제프리가 에이드리안의 정체를 밝혔다. 에이드리안은 모르고 있었냐는 듯이 데이릭을 확인했다. 조금 억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한참 뒤에 데이릭이 꺼낸 말은 부정의 말이었다.

“왜 말이 안 돼?”

에이드리안은 불만에 가득 차서 입술을 내밀었다.

“왜냐면 너는…… 하나도 황태자처럼 안 보이는데.”

“뭐라고?”

데이릭의 말에 에이드리안이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을 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미라벨.”

“네?”

“나…… 황태자처럼 안 보여?”

왜 갑자기 나를 찾는가 싶었는데 데이릭의 말에 충격을 받아 나한테 확인을 받고 싶었던 것 같았다.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혀요. 그리고 황태자처럼 보이고 안 보이고가 뭐가 중요해요. 그런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황태자 전하께서는 여전히 황태자 전하시고요.”

에이드리안은 내 말에 반쯤 설득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의 찜찜함은 남은 듯했다.

“정말 네가…… 황태자 전하신 건가요?”

데이릭은 믿을 수 없다는 말투로, 하지만 그럼에도 에이드리안이 진짜 황태자일 것을 가정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 내가 이 제국의 황태자 에이드리안 카스트로야.”

“허억.”

에이드리안이 긍정하며 답하자 데이릭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찔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역시 나는…… 재수가 없나 봐.”

“그건 또 왜?”

“이, 이제 황태자 전하의 심기를 거슬렀으니 죽게 되는 거겠지?”

데이릭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에이드리안을 바라보다가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떨어트렸다.

제프리가 그런 데이릭을 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알았으니 됐지. 황태자 전하도 그렇게 신경 안 쓰실 거야. 그래도 다음엔 조심해. 그쵸, 황태자 전하?”

제프리가 중재하며 에이드리안에게 묻자 에이드리안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데이릭을 썩 달가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데이릭은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미안해하는 얼굴로 에이드리안에게 다가갔다.

“기분 상하게 했다면 죄송해요…….”

자신의 잘못을 아는지 데이릭이 기어가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드리안은 그런 데이릭을 보다가 이내 폭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해해 줄게. 밖이니까 모를 수 있어.”

어떻게 되나 지켜봤더니 결국 에이드리안이 데이릭을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마무리되었다.

“이쪽은 아니타야.”

상황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고 나서 아니타를 데이릭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데이릭은 굉장히 고민하는 듯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갑자기 왜 이렇게 진지한 얼굴을 하는 건가 봤더니 그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와 동시에 펠릭스와 제프리가 움직이려 했지만, 내가 손을 들어 그들의 움직임을 막았다.

데이릭은 사람들이 갑자기 움찔거리니 자신 역시 움찔거렸다. 그러다가 나한테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저 아니타라는 분은 황녀님이고 그러신 건 아니지? 아니면 귀족 아가씨라든가?”

실수할까 봐 걱정 가득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묻는 그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아니타는 나를 수행하는 하녀야.”

“아, 그래?”

“응.”

“다행이다. 그럼 내가 뭐 잘못한 건 없는 거지?”

“글쎄…….”

지금 이 행동들만으로도 충분히 무례한 상황인 것 같았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도 에이드리안에게 큰 실례를 했던 데이릭이기에 한숨으로 일관했다.

“만나서 반가워, 아니타. 나는…… 데이야.”

데이릭이 아니타를 향해 자신을 소개했다. 아니타는 그런 데이릭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는 곧장 내 뒤로 숨어 버렸다.

수줍어서 그러나 싶어 돌아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오히려 데이릭을 경계하듯 눈썹을 찡그리고 있었다.

또래의 아이들과 얼추 통성명은 한 것 같았다.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사람도 있는 듯이 보였지만,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일단은 이쯤에서 마무리되었다.

나는 식당가를 한참 걸어간 끝에 내가 익히 알던 식당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여기야.”

“여기?”

내가 식당을 가리키며 말하자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식당으로 쏠렸다.

가게 외부의 모습이 익숙했다.

내가 용병 시절에 왔을 때는 외관도 많이 낡은 상태였는데, 지금은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외관을 보기엔 조금 수수해 보이지만, 맛은 있을 거야.”

내가 보증하듯 말하자 다들 수긍했다.

“미라벨이 맛있다면 맛있는 거겠지.”

제프리가 먼저 나를 믿는다는 듯 말을 해 주었다.

“맞아. 믿을 수 있어.”

“저도 작은 아가씨를 믿어요!”

뒤이어 에이드리안과 아니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했다.

세 아이들은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 내게 그렇게 말했다.

데이릭은 자꾸만 말실수를 하다 보니 이제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였으나 그뿐이었다.

“그럼 들어갈게요.”

다른 사람들을 대동한 채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테이블 몇 개가 간신히 놓인 작은 가게였기에 우리가 들어가니 식당이 꼭 찼다.

“어서 오십시오.”

중년의 여성이 우리를 반겼다.

“지금 간단한 식사 될까요?”

“그럼요. 앉으세요. 여기는 따로 메뉴를 주문하는 방식이 아닌데 괜찮을까요, 꼬마 아가씨?”

다정하고 푸근한 목소리가 기분이 좋았다.

내가 아는 건 좀 더 노쇠한 목소리였는데, 세월이 다르니 느껴지는 것도 달랐다.

알은척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나뿐이었으니 괜히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기로 했다.

“네, 괜찮아요.”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제프리와 에이드리안, 데이릭이 바로 나와 함께 앉게 되었다.

아니타도 함께 앉았으면 좋았겠지만, 아니타는 칼리나와 함께 다른 테이블에 앉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음식 나올 거야.”

사실 그렇게 배가 고픈 건 아니었다.

에이드리안이 저택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엘리엇과 함께 식사를 한 탓이었다.

순전히 데이릭 때문에 식사가 가능한 곳을 찾은 것이었으나, 고소한 냄새를 맡고 있으니 다시 배가 고파지는 것 같았다.

“빨리 나오면 좋겠다.”

에이드리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식사하고 온 거 아니에요?”

“맞아.”

“그런데도 괜찮으세요?”

사실 나뿐만 아니라 웬만한 사람들은 다 식사를 한 이후일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는 했다.

그런데 다들 표정을 보아하니 식당을 찾은 게 썩 나쁜 선택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밖에 나와 많이 움직여서 그런지 배고팠거든.”

“그러시면 기대하셔도 좋아요. 여기 음식 맛이 꽤 괜찮거든요.”

“그럼 기대할게!”

에이드리안의 씩씩한 대답을 들으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오래 걸리지 않아 요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 근데 여기는 메인 요리가 벌써 나와?”

앞에 차려진 양고기 스테이크를 확인한 에이드리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만도 했다. 항상 황성에서 코스요리를 먹고 자란 에이드리안이었으니 식사 처음부터 본요리가 등장하는 건 낯설 터였다.

“여기는 코스요리가 아니거든요.”

내가 설명하자 에이드리안이 이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진짜 먹어도 돼?”

데이릭이 자신의 앞에 차려진 식사를 확인하며 불신하듯 내게 물었다.

“그럼 앞에 차려 놓고 못 먹게 할까 봐?”

내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데이릭은 내 말을 장난으로 못 받아들이는 듯했다. 나는 괜히 멋쩍어져서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괜찮으니까 편하게 먹어.”

“응.”

데이릭은 그제야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식사를 떠먹는 모든 과정이 조심스러워 보였다.

다들 자신의 앞에 차려진 음식을 시식하기 시작했다.

“오, 맛있다.”

“진짜…….”

여기저기서 맛있다는 감탄이 들려왔다. 내심 내가 직접 데려왔는데 다른 사람들 입맛에 안 맞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나는 그제야 어깨를 펴고 식사를 시작했다.

배가 그렇게 고프지 않았음에도 식사가 맛있으니 또 들어갔다.

점심을 못 먹은 제프리와 데이릭은 식사를 한 번 더 추가시켜 먹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조금 남기거나 다 먹거나 둘 중 하나였다.

마지막 고기를 입에 넣은 데이릭이 마침내 포크를 손에서 놓았다.

그는 꽤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때? 괜찮았지?”

일부러 그에게 물으니 데이릭이 내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맛있었어.”

“다행이네. 그럼 다음은 디저트인데 괜찮겠어?”

“어? 디저트면…….”

“아까 말한 케이크. 거기 진짜 맛있거든.”

내 말에 데이릭이 자신의 배를 매만졌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더 들어갈지 의문인 듯했다.

“괜찮아. 배불러도 들어갈 건 다 들어가더라.”

“그럴까?”

“그럼.”

의아해하는 데이릭을 향해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모두가 식사를 마치고 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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